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천소년 Aug 07. 2021

행복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

어설픈 아빠의 육아 일기

 어제는 여름 휴가의 첫날이었습니다. 가족과 일상을 함께 하게 된 첫 날이기도 하고요. 대구에서 혼자서 조용히 보내는 평일 일상과는 완전히 다르지요. 이제는 장모님의 역할을 제가 수행해야 합니다. 잠시라도 생업에서 떨어져 가족과 함께 일상을 보내고 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음에 행복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루의 시작부터 마음껏 기쁨을 누리고 싶었지만 어디 인생이 그렇게 만만하던가요? 어젯밤 일찍부터 푹 잠을 잤음에도 새벽에 일어났을 때 온몸이 쑤셨습니다. 요즘 매일 팔굽혀 펴기를 100개 넘게 하고 있는데 그 여파인가 싶기도 했고요. 확실히 학기 중의 피로가 그동안 누적된 것인지 주말 내내 푹 잤음에도 몸 상태가 개운하지 않고 몸이 무거웠습니다. 게다가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목에 근육 경련까지 왔네요. 그럼에도 새벽 아니면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가 충분히 스트레칭을 하고 달리기를 했지요. 몸에 무리가 갈까 걱정이 되어 일부러 천천히 뛰었습니다.


 운동을 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샤워까지 마친 저는 아침식사를 준비했습니다. 기상 시간이 되어서도 꿈적도 않고 자고 있던 아들을 깨웠고요. 아들의 밥을 차려주고, 아들 등원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아들의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밤에 잠을 설쳤나 봅니다. 아이는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GY만 찾는 증상이 재발합니다. 뭘 하려고 해도 아빠인 저의 손길을 거부하고 그녀 뒤만 졸졸 따라다니지요. 저 또한 오랜만에 아이 등원을 준비하다 보니 뭐부터 챙겨줘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이 옷을 입혀달라는 그녀의 요청에 태평하게 놀고 있는 아들을 강제로라도 붙잡아야 했습니다. 옷을 입히려는 저의 손놀림이 거칠게 느껴졌는지 아들이 반항을 하다가 저의 머리를 가격했습니다. 아빠도 너의 아빠이기 이전에 소중한 인격체이니 화가 나도 때리지 말아 달라고 아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양말을 신기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저의 뺨을 때리더라고요.


 저를 때리는 아들의 모습을 모두가 방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화가 솟구쳤습니다. 그 순간 제가 이 공간에서 무시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아들이 화가 나고 짜증이 나더라도 다른 가족에게 손찌검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거든요. 아들 입장에서도 자신의 화를 풀기에 만만한 아빠가 제격이겠지요. 엄마는 아들 입장에서 너무 거대한 존재니깐요. 제 머릿속에는 '평소 주중에 함께 하지 않는다고 모두 나를 괄시하는구나, 이 집에서 나는 필요 없는 존재구나.' 등의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정서적으로 차분해진 지금 그때를 떠올려 보면 왜 그런 생각까지 했는지 어이가 없지요.)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로 스스로를 고문하기 시작했고, 끝내는 다섯 살 아들에게 너무한 것 아니냐고 고함을 지르며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방학 첫날부터 최악의 아침을 만들어버렸습니다. 아빠인 제가요.


 이후 아들에게 화를 낸 것에 대해 사과했고, 아들 역시 저에게 사과를 했지만, 저의 기분은 불행 모드였습니다.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기에 불행을 느끼게 되었지요. 그날 아침 저는 완벽한 아빠의 모습으로 우리 가족의 아침을 준비하고 싶었거든요. 아이 등원을 시킨 후에 집에 와서 대청소까지 할 계획이었습니다. 평소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느라 GY가 챙기지 못했던 집안 구석구석을 제대로 청소할 계획이었습니다. 대청소 후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우아하게 오후 시간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역시 인생은 계획했던 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돌이켜 보면 말 한 마디가 시작이었습니다. "차가 액셀을 밟아도 잘 나가지 않더라. 오늘 보험사에 전화해서 견인차를 불러서 정비소에 맡겨야겠다. 가급적이면 자동차검사받는 곳과 일치하는 정비소에 가는 게 좋으니깐 ○○공업사로 가봐." 무심코 던진 그 한 마디에 제가 구상했던 월요일 하루가 무너졌습니다. 집안 대청소도 하고, 이발도 하고, 글도 쓰려고 했던 저의 계획대로 오늘 하루가 흘러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겉으로는 차 정비 잘해놓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놓고는 마음 한구석에는 불만과 섭섭함이 차 올랐습니다. 굳이 방학 첫날까지 기다렸다가 나에게 집안일을 시켰다는 서운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또한 제가 타고 다니지도 않았기에 차에 대한 애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차 정비를 하러 가는 것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졌고, 생소한 경험은 곧 부담감과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그때부터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차는 지난주에 탈이 났는데 기어코 나의 노동력을 써먹으려고 내가 천안에 올 때까지 고장 난 차를 주차장에 두었구나, 나는 이 집에서 험한 일을 전담해야 하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존재이구나 하는 잘못된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혔죠. 그 와중에 아들에게 빰을 맞으면서 저의 부정적인 생각들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절정의 끝은 나는 가족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라는 결론이었고요. 어리석게도 제가 내린 결론을 진짜 현실로 만들기 위해 잔뜩 굳은 표정으로 심술궂게 행동했습니다.


© stanislas1, 출처 Unsplash

의식적인 노력으로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리는 인생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삶이란 내 뜻대로 가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생각보다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 대한 나의 기대가 조금이라도 어긋날 경우 우리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급기야 상대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며 나를 싫어할 거라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게으릅니다. 뇌가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인간은 그렇게 자신을 규정해 버립니다. 스스로 나 자신을 가족에게 무시받는 존재라고 계속 생각한다면 정말로 그런 불행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실 그날 아침 저는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은 표정으로 아이와 유치원 앞에서 헤어지는데 아들이 밝게 웃으면서 "아빠~ 안녕!"이라고 손을 흔들더라고요. 불과 20분 전에 본인에게 그만 때려라고 고함을 지르던 저에게 말이죠. 그 순간 저는 흔들렸습니다. 사실 아침에 있었던 일과 차를 정비하러 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기분이 안 좋았거든요. 저는 스스로 제 자신을 불행한 사람으로 규정했고, 그 정의에 맞춰 성실하게 불행한 사람으로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불행의 원인은 아내와 아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제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죠.


 아이의 눈을 보니 더 이상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와 아이의 아침을 불행하게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학교 내 유치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OO아~ 유치원 잘 다녀와. 아빠가 많이 많이 사랑해." 그 순간 아들뿐만 아니라 아들의 손을 잡고 있던 선생님과 교문 앞에 있던 학부모님들도 저의 말을 듣고 모두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공개적으로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해서 그런지 저 역시 살짝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굳어 있던 제 표정이 조금씩 웃는 인상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행복이나 불행은 저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제가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침에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잠에서 덜 깬 상태로 밥도 먹어야 하고 등원 준비도 해야 해 까칠했던 아들이 저를 때렸던 그 순간을 말이죠. 이미 벌어진 일 앞에서 왜 저는 행복 대신 불행을 선택했을까요? 거창한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생존의 위기가 일상이었던 원시 시대 우리 선조들은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긍정적 회로보다는 부정적 회로를 더 선호했을 것입니다.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것이 더 유리했으니깐요.


 하지만 생존의 문제가 아닌 행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벌어진 사건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생존 법칙에 의해 나의 DNA가 부정적인 회로를 돌리려고 할 때 의식적으로 뇌에게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생각을 멈춰라고 지시해야 합니다. 아내가 저에게 차 정비를 부탁했을 때 '그래도 내가 휴가 기간이라 차 수리를 대신할 수 있어 좋다거나, 아들이 차량 문제로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가졌으면 저와 제 가족은 더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들이 저를 때렸을 때 '아직 우리 아이가 5살이라 부정적인 감정을 잘못된 방식으로 푸는구나. 그래도 다른 사람이 아닌 아빠에게 손찌검을 해서 다행이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도록 내가 잘 가르쳐야겠다. 이번 여름 방학 동안 인내심을 갖고 아들이랑 그 문제에 대해 잘 이야기해봐야지.'라고 생각했으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반성을 합니다.


 한편 이 날의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요. 오늘 있었던 작은 사건도 저 스스로를 한없이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의 전환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었습니다. 행복은 그냥 찾아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매일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의식적인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뇌에게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생각을 멈춰라고 지시해야 합니다. 다행히 어제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빨리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차 수리를 맡기고 돌아와 집안 곳곳을 청소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아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누그려졌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기꺼이 나의 시간과 수고로움을 사용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고, 해당 순간을 기록할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 두었거든요. 감사하는 일기를 쓰는 습관이 저를 조금 더 좋은 어른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결혼 초기의 저였다면 하루 종일 냉랭한 태도를 유지했을 거예요.


 앞으로도 또다시 제 인생에는 별의별 일들이 펼쳐질 것입니다. 제 앞에 놓인 일들 앞에서 저는 생존 본능에 의해 방어적이고 부정적으로 사태를 해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불행한 사건이 불행을 낳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생각이 불행을 낳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싶습니다. 현재 왜 내가 스스로를 불행하게 느끼고 있는지 그 원인을 생각하고 해결한 후 정리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출처: 픽사베이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여기에 행복과 관련된 한 가지 팁을 더 드리고자 합니다. 행복은 단순히 생각의 전환을 통해 불행을 없애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닙니다. 의식적인 노력으로 지금보다 더 행복한 상태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노력은 바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로 하루를 채우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BTS의 무대를 본다거나, 땀이 흠뻑 흐르도록 달리기를 한다거나, 나의 생각과 경험을 조합해 한 편의 글로 만들어 본다거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떤다거나, 지적 호기심과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주는 책을 읽는 등의 행위들이 해당합니다. 작지만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평소에 자신을 잘 관찰해서 구체적으로 메모해 놓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해당 사건이 일어난 그날의 경우 아이 하원까지 두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1시간씩을 각각 할애해 두 편의 블로그 글을 포스팅할 수 있었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다루었고, 제 글쓰기 실력에 큰 보탬이 안 되는 소재였지만 지난주를 복기해 기록하는 과정은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인생의 거대한 이벤트를 통해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취업을 한다거나, 결혼을 한다거나, 원했던 차를 갖는다거나,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 집을 구입한다거나, 승진을 한다거나, 더 나은 직장으로 이직에 성공하거나 등이죠. 하지만 인생에서 그런 이벤트는 자주 발생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행복은 더 좋은 가격에 매도할 수 있는 집과 주식에 달려 있지도 않고요. 사회화가 이루어지기 전의 아이가 좋은 집과 많은 돈에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경험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의 기원'이란 책의 저자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이런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다.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살면서 인생을 뒤집을 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생겨도 초기의 기쁨은 복잡한 장기적 후유증들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진다. (113쪽)


 어제 하루 저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봅니다. 바로 아들이 환하게 웃을 때였습니다. 아내가 퇴근한 후 아들과 함께 공원에 나들이를 갔습니다. 아침에 있었던 일과 관련해 오해와 화는 다 풀렸지만, 저는 아내와 아들에게 괜히 조금은 근엄하게 대하고 있었죠. 아들은 부모보다는 공원에서 만난 초등학생 형들과 무척 어울리고 싶어 했습니다. 초등학생 형들은 다섯 살이라 소통이 되지 않는 아들과 함께 놀기를 꺼려했지요. 아내가 우리끼리 놀자면서 저에게 아들이 좋아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때가 다소 소원했던 가족 간의 분위기를 행복 모드로 전환할 찬스다 싶어서 최선을 다해 놀이에 참가했지요. 결국 우리 가족이 신나게 노는 것을 보고 초등학생 무리들까지 함께 놀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초등학생 어린이들을 묶어주려는 목표를 달성한 셈입니다. 이제 여기는 내가 맡을 테니 아내에게 먼저 집에 들어가서 쉬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들과 초등학생 어린이들과 함께 계속해서 게임을 했습니다. 아들은 역시나 게임 규칙과 상관없이 자기 멋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래도 형들과 함께 놀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행복했나 봅니다. 본인 나름대로 놀이에 참가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아들과 함께 하며, 아내에게 잠시의 휴식 시간을 줄 수 있음에 저 역시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그날 밤 잠들기 전까지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야아~옹", "꿀 꾸~울" 등의 의성어를 재미나게 읽어줄 때, 아들은 까르르 소리를 내며 웃더라고요. 사실 아들이 제 곁에 없는 순간조차도 아들의 웃는 얼굴을 상상하면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아이가 자지러지도록 웃는 영상은 항상 휴대폰에 넣어 다니지요. 아무리 누가 저를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 영상 하나면 제 기분은 다시 행복 모드로 바뀌거든요. 저의 행복 리스트 중에 1번은 정해졌네요. 아들을 웃게 하거나 아들이 웃는 모습을 떠올려 보기! 다행히 아들은 자주 웃는 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빵빵 터집니다. 덕분에 아들을 지켜보는 제 행복의 빈도도 높지요.


 여러분도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리스트를 평소에 떠오를 때마다 만들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세상에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나만의 보물들을 빨리 찾는 게임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의식적으로 불행보다 행복으로 향하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소한 일들을 매일 스스로에게 선물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닌 의식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좋은 어른 아버지가 되는 길은 스스로를 불행의 늪에 빠뜨려 가족가 제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의 기운을 전파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어 행복의 에너지를 나눠 주는 것에 있다 믿습니다. 오늘 작성해 본 내용들을 바탕으로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 사는 것과 회복탄력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