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디피(D.P.)' 시청 후기
9월의 어느 날이었다. 평소보다 조금 빨리 수업을 마쳤다. 학생들에게 수업과 관련된 질문을 받았다. 예상했던 대로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때 한 학생이 번쩍 손을 드는 것이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질문을 하라고 했다. 그녀는 수업 내용과 관련 없는 질문도 괜찮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무엇이든 궁금한 게 있으면 선생님이 아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답해주겠다고 했다. 학생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선생님~ 군대 가면 정말 죽을 만큼 힘들어요? 그리고 고참이 때리면 무조건 맞아야 하나요?"
나는 지레 짐작으로 학생의 오빠나 가까운 사람이 군 입대를 한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힘든 순간도 있지만 이겨낼 만하다고. 너희 앞에 서 있는 나 역시 2년 2개월 동안의 군 생활을 잘 이겨냈으니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너희 앞에 서 있지 않느냐고. 누가 입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역시 잘 해낼 거라고 어줍잖게 위로했다. 그러자 학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에 입대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 화제의 드라마인 'D.P.'를 보고 군대 문화의 폭력성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군대와 관련된 드라마? 당장 생각나는 것은 유시진 대위라는 캐릭터로 송중기를 슈퍼스타로 만든 '태양의 후예'가 떠올랐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는 군대를 소재로 한 판타지 물에 가깝다. 군대 병영 문화를 적나라하게 다룬 대표적인 콘텐츠로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들'과 주호민 원작의 '신과 함께'가 떠오른다. 주호민 작가의 경우 본인의 군 생활을 다룬 '짬'이란 웹툰으로 데뷔까지 했다. 지금까지 군필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수작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군대 소재 영화는 여성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용서받지 못한 자들'은 남자인 내가 봐도 참 불편했다. 천 만 관객을 동원한 '신과 함께'의 경우 군대 문화의 일부만 영화의 소재로 쓰였기에 예외로 하겠다.) 그런데 여고생까지 공감하고 보게 만드는 군대 소재의 드라마라니. 정해인이란 배우의 티켓 파워일 수도 있겠으나, 호기심이 갔다. 주변 사람들에게 'D.P.'를 봤느냐고 물어보자, 대부분이 이렇게 우려를 나타났다.
"웬만하면 주말에 봐라. 일단 1회를 보는 순간 마지막 회까지 다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드라마보고 군 생활이 떠올라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인들의 말이 맞았다. 그들의 우려대로 단숨에 마지막 회까지 모두 보았다. 한 회당 40분 정도의 러닝타임에다가 6회가 마지막 회였고 1.2배속으로 돌려봤기에 하루면 충분히 도전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오후 9시부터 보기 시작한 드라마 시청은 새벽 1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바로 잠자리에 누웠지만, 드라마의 여운으로 인해 잠이 오지 않았다. 왠지 꿈에서 입대한 날로 돌아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D.P.'의 주인공은 '안준호(정해인)이다. 사회에서 변변치 않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던 그는 군 입대 후 훈련소를 거쳐 헌병대로 자대 배치를 받는다. 그가 입대하는 장면이 이 드라마의 오프닝이다. 사실 오프닝의 경우 시간이 아깝다고 판단해 보통은 '바로 가기'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D.P.'의 경우 오프닝 장면에서 쉽게 바로 가기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오프닝 장면은 다음과 같다.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아기가 소년 시절을 거쳐 입시를 치른 후 성인이 된다. 성인이 된 그는 20대 초반 마음껏 청춘의 자유로움을 누리다가 국가의 부름을 받아 입대를 하게 된다. 훈련소 입소 장면에서 안준호는 한참을 객석 쪽을 향해 바라본다. 객석을 향해 바라보는 그는 극중 안준호일 수도 있고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조석봉일 수도 있고, 부대원들에게 악마 그 자체였던 황장수였을 수도 있다. 이렇게 각자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던 20대 남자들은 2년 남짓 한 시간 동안 '군대'라는 조직에 갇혀 머무르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천진난만한 웃음과 목소리로 매일 나에게 기적과도 같은 행복을 선사하는 우리 아들도 곧 겪게 될 일이라는 생각까지 미처 숨이 막혔다.
스물 한 살, 2002년 월드컵을 4개월 앞둔 나는 진해 기초군사학교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를 타기 전에 부모님께 큰절을 했다. 어머니께서는 오열을 하셨고, 아버지께서는 처음으로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셨다. 훈련소에 도착해서는 그곳까지 함께 와준 지인들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 운동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도열을 한 후에 한 번이라도 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다시 지인들이 있던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아무리 애타게 찾아도 수많은 청중에 묻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들 역시 두리번거리는 나를 향해 계속해서 나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끝내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그들의 얼굴도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생의 신분을 벗고 군인이 되었다. 군인이 되기 전에 누구나 각자의 스토리가 있고 사연이 있다. 군복을 입기 전에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형이었고 친구였고 애인이었고 (과외) 선생님이었다.
드라마 초반에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단연 '황장수(신승호)'이다. 병장인 그는 내무반에서 왕이다. 특히 안준호를 눕혀 놓고 뺨을 때리는 장면이나 못이 튀어나온 벽에다 대고 머리를 밀치는 장면은 소름이 돋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안준호의 어머니가 쓴 편지를 공개적으로 읽으며 인신공격을 하는 그의 연기를 보며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병이었던 안준호에 감정 이입이 되어 괴로움에 몸부림을 칠 때 즈음 안준호는 'D.P.'로 차출이 된다. 'D.P.'는 탈영병을 잡는 헌병으로 바깥 생활을 주로 하기에 내무반에서 생활하지 않을 때가 많다. 자연스럽게 안준호를 괴롭히는 황장수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안심하고 있을 때마다 황장수 캐릭터는 등장한다. 그리고 안준호가 아닌 일병 조석봉을 잔인하게 괴롭힌다. 구타와 얼차려뿐만 아니라 성추행까지 쉽게 저지른다. 드라마 속 황장수는 악마 그 자체이다. 그가 악마인 이유는 단순히 후임을 괴롭혀서가 아니다. 내무반 내의 폭력의 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낙수 효과처럼 폭력이 대물림되도록 만들어 그가 제대한 후에도 조석봉은 다른 선임들에 의해 여전히 학대를 당한다.
'황장수'를 보며 떠오른 사람이 있다. 처음 자대 배치를 받아 군함에 오른 날이다. 나는 새로 전입을 왔지만 누군가는 전출을 갔다. 당시 전출을 갔던 상병이 부대 내의 유명한 독쟁이였다. (해군에서는 후임들을 잘 괴롭히고 학대하는 선임을 독쟁이라고 불렀다.) 그는 웃으면서 우리 동기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나와 군 생활을 같이 안 해서 정말 다행인 줄 알아라. 복받았어." 그 말을 하던 그 사람의 얼굴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단 하루 동안 같이 생활했지만 그의 얼굴과 이름까지 아직도 기억할 정도로 그는 강렬했다. 다행히 그는 떠났지만 나의 군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의 유산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가장 괴롭힘을 당했던 후임이 부대 내의 최고 독쟁이가 되었다. 그는 본인이 괴롭힘을 당했던 방식대로 나를 비롯한 후임들에게 되돌려 주었다.
블로그와 브런치를 하면서 군대 이야기를 몇 번 쓴 적이 있다. 지금도 네이버 검색창에 내가 근무했던 군함의 이름을 검색하면 나의 블로그가 최고 상단에 뜬다. 그래서인지 제대 후에 연락이 끊겼던 후임들이 비밀 답글을 많이 남겼다. 사실 D.P.를 보며 피해자로서의 나의 모습보다 가해자로서의 내 모습을 더 많이 떠올렸다. 병장 때의 기억이 비교적 최근이니 말이다. 다행히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기 복이 있다. 당시 우리 동기는 부대 안에서 꽤 인원도 많았고, 바로 위 선임과 9개월이나 차이가 나 비교적 빨리 내무반장이 되었다.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었다. 우리 동기들은 후임들의 방패막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병 때의 일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내무반으로 들어가는 길에 선임에게 뺨을 맞은 적이 있다. 아침 일찍 왜 맞는지도 모르는 채 멍하게 서 있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468기! 밑의 얘들 똑바로 안 잡고 뭐 하냐! 오늘 국기수가 펑크 났다고 이 XXX야!" 하필 간부에게 꾸중을 들어 화가 난 그의 시야에 내가 들어왔고, 재수 없게도 나는 맞았다. 아마 우리 동기 중 누구라도 가장 먼저 눈에 뜨인 사람이 맞았을 것이다. (D.P. 시청 후기를 쓰며 가급적 나의 군 생활 추억 팔이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참 쉽지 않다.) 당시 일병이었던 우리 기수는 모든 후임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대신해서 추궁 받았다. 병장들은 일병인 우리가 밑의 아이들을 조질 것을 기대하는 폭력의 낙수효과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선임들로부터 받은 폭력을 후임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나름 애썼다. (나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철부지였지만, 나와 함께 군 생활을 시작한 동기들의 인격이 훌륭했다.) 최소한 후임들에게 손찌검과 같은 육체적인 폭력은 가하지 않았고 함께 이 힘든 군생활을 이겨내자고 격려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의 블로그를 찾아온 후임들은 '그때 468기 선임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고마웠다. 우리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셔서 감사했다.' 등의 답글을 달아주었다. 물론 내가 근무했던 부대에 황장수 같은 악마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군 생활을 하며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존엄성은 지킬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극 중 조석봉은 그러지 못했다.
이야기는 두 가지 축으로 흐른다. 하나는 주인공 안준호가 탈영병을 잡는 에피소드이다. 몇 가지 단서를 갖고 탈영병을 잡아야 하는 수사물의 포맷이라 매력적인 서사 구조이다. 하지만 극 연출의 재미를 떠나 'D.P.'를 소재로 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탈영병 에피소드에는 반드시 군대 문화의 부조리함과 폭력성이 드러난다. 전개 흐름상 그들이 왜 탈영을 해야 했는지에 대한 사연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 스틸러 한호열(구교환) 상병이 등장한다. 한호열은 완벽한 캐릭터이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에 능력이 있고 예의도 바르며 집도 잘 산다. 무엇보다 탈영병을 잡아야 하는 본인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 있는 군인이다. 주인공 안준호가 이병이고 아직 군 생활이 미숙하다는 약점을 한호열이 보완해 준다. 사실 한호열의 등장 장면을 빼면 대부분 드라마의 장면들은 어둡고 우울하다. 누군가는 한호열이란 캐릭터가 너무 완벽해서 작품 몰입에 방해된다고 하던데, 나는 한호열이란 원작에 없던 캐릭터의 등장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생각한다. (한호열 역할을 맡은 구교환 배우를 보면서 예전 건축학개론의 조정석 배우가 맡았던 '납득이'가 생각났다. 그만큼 구교환 배우가 맡았던 '한호열'이란 캐릭터는 독특했고 인상적이었다. 킹덤에 잠시 등장했던 구교환 배우의 모습도 참 인상적이었는데, 앞으로 그가 조정석 배우 못지않게 성공한 배우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또 하나의 축은 내무반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조석봉 일병이다. 그는 소위 말하는 오덕후이다. 남자들 세계에서 괴롭힘당하기 좋은 캐릭터로 등장한다. 예전에 유도 선수 활동을 했을 정도로 피지컬은 남부럽지 않지만, 군대 문화에 적응을 못한 그는 황장수의 첫 번째 타깃이 된다. 내부반을 배경으로 등장할 때 주인공 안준호는 관찰자 역할이 된다. 아무리 정의감에 넘치는 안준호라도 이제 이병에 불과한 그가 위기에 처한 조석봉을 구해줄 수도 도와줄 수 없다.
시간이 지나자 맞고만 있던 조석봉도 변하기 시작한다. 드라마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조석봉 일병이 후임들을 구타하는 장면이다. 사회에서 봉디(조석봉의 '봉'과 마하트마 간디의 '디'의 합성어로 조석봉이 사회에서 얼마나 선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는 별명이다.)쌤이라고 불렸던 그는 결국 본인이 군대라는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후배들을 구타하고 만다. 모든 폭력의 뒤에는 황장수가 있다. 오랜만에 내무반에 나타난 안준호는 잘못된 행동이라며 조석봉을 말렸다. 위기에 처한 안준호는 한호열 상병이 나타나 구해준다. 조석봉이 마음을 열었던 안준호는 또다시 탈영병을 잡기 위해 부대를 떠났고, 남은 조석봉은 계속해서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드라마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는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웠을 것이다. 괴물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으며, 스스로 괴물이 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진 그를 도와준 사람은 없었다. 올바른 장병 문화를 위해 설립되어 있을 군대 내의 시스템은 한없이 무력했다.
탈영병을 쫓고 잡는 이야기에 조금씩 익숙해져 갈 때 즈음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사건이 등장한다. 4회 마지막 장면으로 안준호는 동료였던 조석봉이 탈영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조석봉의 탈영으로 극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지금까지 다른 부대의 탈영병을 상대했다면 이제는 함께 생활했던 동료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모두가 조석봉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알고도 방관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분노를 폭발시키며 '탈영'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다. 5회부터 마지막 회까지는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다. 5회부터 주인공은 안준호가 아니라 조석봉이다. 이성의 끈을 놓은 그는 무서운 사람이 되었다. 그는 미대 오빠이기 이전에 전직 유도 선수로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기에 피지컬적으로 부족하지도 않다. 조석봉은 경계 근무 때 자신을 성추행하던 선임을 박살 내고, 그 길로 제대한 황장수를 죽이기 위해 탈영한다. 황장수 역시 사회에서는 평범한 청년이다. 내무반에서 왕이었던 그 역시 20대 초반의 청년일 뿐이다. 군대에서 악마였던 그는 제대 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점주에게 구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군 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군대에서는 오직 계급으로만 통한다. 사회에서 아무리 잘 나갔어도 입대 순으로 서열이 정리된다. 하지만 군대에서 만났던 동료들 역시 사회에서는 20대 초반의 철부지 청년들이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황장수 같은 가해자가 되고 조석봉 같은 피해자가 되고 안준호 같은 방관자가 된다. 왜 우리 모두는 군대에서의 폭력을 당연하게 여겼을까? 때리는 것도 맞는 것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기에 폭력의 문화가 활개칠 수 있었다. 나 역시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일병 시절 창고에서 선임으로부터 집단 얼차려를 받던 중 바지를 벗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다들 당황하고 있던 찰나에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무슨 용기였는지 "OOO 수병님,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선임의 손에는 해치 파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나는 맞을 각오로 말했고, 다행히 그도 스스로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원산폭격을 시켰다. 바지 벗으라는 명령에는 부당함을 지적했던 나도 원산폭격을 지시하는 부당함에 대해서는 감히 지적할 생각을 못 했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 박으라고 하니 그냥 박았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까라면 까야 하는 게 군대 문화다.
제대를 했다고 해서 군대 문화가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취업 후에도 오랜 기간 대학생일 때 살았던 자취 집에서 생활을 했다. 설렘의 꽃향기가 가득한 어느 봄날 학교를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 도중 법대 앞 농구장에서 깜짝 놀랄 장면을 보았다. 2010년대였는데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복학생이 신입생들 군기 잡는다는 명목으로 벌을 주고 있었을 것이다. 10년 전 내가 신입생일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사회에서의 부조리한 신고식 문화 역시 군대 문화와 비슷하다. 그리고 은연 중에 우리 사회 및 조직에는 폭력적이고 위계적인 군대 문화가 숨어 있다. 까라면 까야 하는 군대 문화는 관료제가 중심인 기관이나 기업에도 존재한다. 상사의 부당한 명령에 복종해야만 화는 문화는 군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편 'D.P.'는 의무 복무를 하는 장병들의 부조리만 다룬 것이 아니다. 드라마에는 총 세 명의 직업군인들이 등장한다. 중령 천용덕(현봉식), 대위 임지섭(손석구), 중사 박범구(김성균)가 주요 간부로 등장한다. 세 명의 간부 모두 장병들의 복지와 인권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승진을 위해 애쓰고 있다. 나는 간부들의 대화 및 힘겨루기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특히 장교와 부사관의 미묘한 신경전을 잘 그려냈다. 군 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경력이 많은 능글능글한 부사관과 의욕이 넘치는 젊은 장교 간의 기싸움 말이다. 헌병대장으로 등장한 천용덕은 군 간부의 부정적인 요소를 모두 보여주고 있다. 그는 권위적이면서 폐쇄적인 군 문화의 상징이다. 박 중사와 임 대위와의 신경전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히 이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용 가치가 없으면 가차 없이 동료를 버린다. 심지어 탈영 및 가혹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실탄을 지급한 특공대를 출동시키기도 한다. (사실 이 장면은 너무 심했다. 대장이 복면을 쓰고 몰래 조석봉을 살해하려고 했으면 그나마 이해하려고 했다. 그런데 실탄을 지급한 특공대를 출동시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거의 내란죄에 해당하는 중죄이다.) 정리하자면 그는 자신의 승진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 싶으면 함께 했던 동료도 쉽게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세 명의 간부들과 같은 사람들이 실제로 즐비하다는 것이다. 군대의 폭력적인 문화가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간부들의 은폐에도 큰 책임이 있다. 헌병대장도 한때는 국가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된 훈련을 견뎌냈던 생도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심신이 건강한 좋은 군인들이 훈련 기관을 통해 잘 양성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군 문화가 폭력적, 위계적, 폐쇄적이라면 그들 역시 기성 세대처럼 변할 것이고 결국 세대가 달라져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드라마의 끝은 슬프다. 탈영한 조석봉 일병이 제대한 황장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D.P. 조와 경찰 그리고 헌병대장이 출동시킨 특공대가 그들을 쫓는다. 안준호와 한호열은 최선을 다해 조석봉이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도록 설득한다. 그때 조석봉이 한 말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우리가 쓰고 있는 수통이 언제 것인지 아느냐. 6.25 전쟁 때 쓰던 것이다. 이런 집단에서 무슨 변화를 바라느냐."
훈련소 때 내가 사용했던 낡은 수통이 떠올랐다.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이 얼마나 발전했는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당당히 경제 규모 10위권의 나라로 올라섰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군대는 정체되어 있음을 수통이란 상징적인 물건을 통해 보여주었다.
제대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마흔이 된 지금, 주변에 자신을 괴롭혔던 선임을 다시 만나 복수하겠다거나 군대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악몽을 꿨다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나도 한동안 군대를 잊고 살았다. 하지만 그때 겪었던 2년이 넘는 그 시간은 내 삶의 뚜렷한 흔적 중 하나이다. 그 증거 중 하나로 제대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군번을 외우고 있다.
기사를 통해 요즘 군대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휴대폰도 사용할 수 있고, 군 생활도 짧아졌으며, 월급도 내가 받던 2만 원에 비해 훨씬 많이 올랐다. 예비역들은 요즘 군대는 보이 스카우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사실 'D.P.'라는 드라마도 너무 과장되었고, 극화되었다는 지적이 많다. 사실 2000년대 초반에 군 생활을 했던 나의 입장에서도 후임의 음모를 태운다거나 자위행위를 강제로 시키는 등의 가혹 행위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군대의 폭력성과 은폐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D.P.'라는 드라마를 통해 군대 문화는 전혀 바뀌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 시절과 나의 시절 그리고 지금의 청춘들이 겪는 군 시절 동안에도 누군가는 군대에서 무참히 짓밟히며 인격을 유린당했었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그리고 그곳이 군대였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면죄부가 주어졌다. 게다가 지휘관의 은폐로 폭력적이고 위계적인 군 문화는 더욱 강화되었다.
서두에서 언급한 작품들 외에도 군대를 소재로 한 많은 콘텐츠들이 지금까지 존재했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태극기 휘날리며', 분단을 다룬 '실미도' 모두 큰 인기를 누렸다. 군대를 소재로 한 판타지 물이라고 할 수 있는 '태양의 후예'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그 작품들은 군대의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며 우리 사회 구성원의 성찰을 촉구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D.P.'라는 드라마 작품의 성공은 참 감사할 일이다.
영화 같은 6부작 드라마 'D.P.'는 시청하기 불편한 내용을 담은 작품임에도 좋은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화제가 되었다. 아무리 극화되는 과정에서 허구가 가미되었다고 하더라도 군대 문화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오프닝에서 가족 지인들 쪽을 향해 돌아보는 정해인 배우의 표정이 선명히 떠오른다. 극 중 안준호는 설정상 입대하는 날 아무도 함께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꽤 오랜 시간 뒤돌아 보고 있다. 과연 그는 누구를 보고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의 시선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우리를 향해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눈빛은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 관심을 갖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도 나도 집에서는 귀한 아들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국가의 아들이란 미명 아래 20대의 청춘 중 일부를 군대라는 곳에 바친다. 하지만 사고가 나는 순간 국가의 아들이 아닌 너네 아들이 된다. 피해자 가족 앞에서 국가는 보호자가 아닌 가해자가 돼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행히 'D.P.'와 같은 좋은 콘텐츠의 등장으로 우리 사회가 조금씩 더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이 긍정적인 변화를 지속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언젠가 나와 가까운 사람 중 누군가가 군대에 가게 될 것이니 말이다. 요즘 군대가 군대냐고 말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군대 문화의 폭력성과 폐쇄성에 고통을 받고 있음을 생각하자. 군대라는 이유로 폭력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군인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만, 국가 역시 국민의 한 사람인 군인을 지켜줘야 한다. 더 이상 조석봉 일병과 같은 비극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이 작품을 보고 난 후 이제는 군대도 좋아졌잖아라는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아직 좋아진 게 아니었다.
드라마 D.P를 보고 한 여학생이 던졌던 질문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군대를 소재로 한 드라마이지만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단순히 배우들의 연기가 좋고, 대본이 좋아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군대를 넘어서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군인의 힘이 비대했다. 해방 직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군대가 사회의 주류로 떠올랐다. 군사 쿠데타로 인해 군인이 사회 지도자가 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군대 문화가 스며 들어갔다. 군대의 폭력적이고 위계적인 문화는 낙수 효과처럼 사회 기관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학교까지 전염되었다. 군 복무를 하지 않을 여학생들까지 느낄 정도로 말이다. 군대를 다녀 오지지 않아도 상명하복과 까라면 까야 하는 군대식 위계질서가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이제 학생의 질문에 다시 답을 해주어야겠다.
"선생님~ 군대에서 선임이 때리면 맞고 있어야 하나요?"
"맞고 있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군대 문화와 조직이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이더라도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용기 내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학교를 졸업하고 더 큰 세상에 나아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거대한 조직과 권력의 위계 질서에 따르는 부당함과 부조리 앞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군대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더욱 개인의 인격과 취향을 존중해주는 인간다운 곳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