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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Nov 16. 2021

혼술과 폭식의 유혹 앞에서 나는...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행복할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행복할까?


 1주일 동안 금욕 생활을 했다. 건강 검진을 대비해 술을 끊고 탄수화물을 줄였다. 점심 급식을 제외하고는 밥이나 면을 먹지 않았다. 오늘은 두부 한 모를 먹고 버티는 중인데 속이 많이 허전하다. 그래서 투명한 빛깔과 시원한 촉감, 특유의 매력적인 향과 톡 쏘는 맛을 지닌 소주 한 잔이 절실하게 생각이 났다. 배가 고픈 날은 술이 당긴다. 특히 배가 고프면서 직장에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 후에 집으로 돌아온 날은 더욱 위험하다.


 그럼에도 평소처럼 달리기 30분, 산책 30분, 팔굽혀펴기와 스쿼트 운동을 했다. 운동 후에는 공을 들여 작성했지만 하고 싶은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아 있던 글을 마지막으로 퇴고를 한 후에 발행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 시간은 오후 9시다. 아무래도 혼자 지내다 보니 집안일에 시간을 거의 쓰지 않는다. 여유로움은 외로움을 동반해서 찾아온다. 나 혼자 사는 집은 적막하다. 자유의 공기로 꽉 차있다. 내가 무엇을 해도 누구 하나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내 마음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다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중국 음식을 주문해 볼까? 아니야! 이번 주 금주를 결심했잖아. 블로그에 선언까지 했고.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 인생을 각박하게 살 필요가 있나?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아준 나 자신에게 이 정도 선물도 못해 주니? 형준아! 간단하게 참치 회에 소주 한 잔 어때? 참치 회는 탄수화물이 아니라 살도 안 찌잖아. 오늘 술 마신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어.'


 마음이 심란해지고 번뇌가 찾아올 때는 보통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30분 정도 뛰고 나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유혹이 보통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미 퇴근 후에 바로 운동을 다녀왔고, 지금 나는 바로 잠자리에 누워도 될 정도로 깔끔한 상태이다. 지금 이 순간 혼술을 할까 말까에 대해 글로 써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일기라고 생각하고 솔직히 내 마음을 글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글을 썼음에도 술을 마시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면 죄책감 없이 시원하게 혼술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한 글을 다 쓰고 난 뒤에 독자들과 공유할 만한 메시지가 없으면 영원히 비공개로 나만의 일기로 남기면 된다고 여겼다. 만약 뭔가 에세이 비스름한 느낌의 글이 될 듯하면 블로그에 공개하면 된다. 어떻게 생각해도 글쓰기는 나에게 무조건 이익이 되는 행위였다.


 지금의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먹고 마시지 못해서 괴롭다. 그럼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으면 과연 우리의 삶은 더욱 행복해질까? 물론 때로는 자신을 내려놓는 것으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만악 오랜 시간 술을 참으려고 애썼던 내가 지금 소주 한 잔을 들이켠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가령 절제의 끈을 놓고 폭음 및 폭식을 한다거나, 오후 늦게까지 푹 자버린다거나, 시간 제약 없이 원하는 만큼 게임을 하거나 넷플릭스 영상을 본다거나 하는 등의 행위 역시 우리들에게 행복을 준다.


 꼭 오늘이 아니더라도 술을 마실 때 나는 행복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행복이라기보다는 해방감이다. 평소 술을 절제하고 멀리해야 한다는 의지로부터 일시적으로 해방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일이 당장 시험이라 공부를 해야 하는데 잠시 들여다보는 인스타그램이 훨씬 더 재미있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우리의 뇌는 당장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나 자신에게 행복이란 감정을 부여함으로써 그 행위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며 사는 것이 진짜 행복일까?



일상의 행복만큼 짜릿한 감격도 중요하다


 지금 이런 종류의 행복에 심취해 있다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의 나 자신이 누리는 행복에 대한 책임을 미래의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폭음과 폭식으로 즐거움을 누린 만큼 미래의 내가 그 대가를 감당해야 한다. 오늘 원하는 만큼 늦은 시간까지 넷플릭스 드라마를 본 대가로 다음 날 우중충하고 피곤한 컨디션으로 주어진 일을 해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시는 날도 웬만하면 도보로 이동하려고 한다. 술을 마셨다는 부채를 조금이나마 덜기 위한 나만의 루틴이다.


 나는 이번 주를 포함해 다음 주 목요일까지 열흘 동안 금주와 탄수화물 절제를 결심했다. 오랜 기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며 살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 다행히 지금 나는 건강하다. 웬만한 음식들은 모두 소화시키고 조금 무리해서 일을 하더라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하지만 마흔 살 이후의 건강은 부모님의 유산이 아니라 나의 평소 습관에 달려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먹고 싶을 때 먹고 마시고 싶을 때 마셨다면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인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잦은 음주라는 원인은 반드시 비만 또는 성인병 등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갑자기 술이나 면과 빵과 같은 나쁜 탄수화물을 끊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서서히 나의 체질과 습관을 바꾸어 나가고 싶다.


 한편 다음 주 목요일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모임이 예정되어 있다. 서로 하소연을 들어주며 공감해 줄 수 있는 동료들과의 만남이다. 이날은 오감을 모두 동원해 술자리를 즐길 것이다. 내가 음주를 하고 싶을 때마다 했다면 다음 주 목요일은 그저 평범한 일상의 행복한 날로 머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 건강하게 식사를 하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다. 오늘은 고작 두부 한 모를 삶아 먹고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잠자리에 누울 것이지만 괜찮다. 내가 정한 나 자신과의 루틴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루한 루틴 끝에는 반드시 찌릿한 감격을 느끼게 된다. 다음 주 목요일에 나는 차가운 소주 한 잔을 넘기며 짜릿한 감격을 느낄 것이다.


© jarritos, 출처 Unsplash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의 행복이다. 김민식 작가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행복론을 전파하셨다. 그 말이 맞다. 우리의 매일은 행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 행복에는 대가가 따를 수도 있다. 기다림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 대가를 지불하고 기다리면서 얻은 감격스러운 순간이 바로 진짜 행복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감격이 꼭 큰 것일 필요는 없다. 인생에서 올림픽 금메달 같은 눈물겨운 감격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감격스러운 순간은 자주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는 일이다. 그게 바로 기다림이고 대가가 아닐까? 결국 따분한 루틴 끝에 얻는 감격의 순간이야 말로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참된 일상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도 목요일 술자리가 내게는 그런 시간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고작 그 정도로 행복을 논한다는 게 조금 부끄럽기는 하다. 하지만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나의 목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소주 한잔은 충분히 감동적일 것 같다. 특히나 이번 한 주 나와의 약속을 지킨 나를 칭찬하고 얻는 것이라 그 감동은 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렇게 글로 정리하고 보니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주말 부부로 시작한 작년부터 올해까지 나를 잘 관찰해 봤다. 지금으로서 나는 2주에 한번 정도 술을 마시는 것이 적절했다. 그 정도면 나를 무너뜨리지 않고, 충분히 술과의 만남이 나의 삶과 성장에 좋은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그 틀을 깨고 싶은 유혹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찾아온다. 그때마다 달리기나 글쓰기 등으로 나의 욕구를 잘 달래줄 것이다. 또한 내가 매일 지키고자 하는 루틴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감격의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끝으로 음주와 폭식의 욕망에서 괴로워하고 있던 나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던 톰 행크스의 명언을 공유하며 오늘의 일상 에세이를 끝내도록 하겠다.


Eating everything you want

is not that much fun.

When you live a life

with no boundaries,

there's less joy.

If you can eat anything you want to,

what's the fun

in eating anything you want to?


Tom 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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