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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Nov 30. 2021

인생을 대하는 지혜로운 자세

여덟 단어, 박웅현


내 인생의 본격적인 독서 여정은 지난 해부터였다. 책 한 권에는 저자가 인용한 또다른 다양한 책들이 등장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독서가 이어져 나갔다. 좋은 책은 서평으로 남기기 위해 세 번씩 읽었다. 오늘 소개할 '여덟 단어'라는 책 역시 세 번을 읽었다.


나는 '기억하고 싶은 구절, 내 삶에 적용하고 싶은 문장, 말과 글에 인용할 내용' 등에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박웅현 작가의 '여덟 단어'에는 밑줄이 가득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서평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정리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2013년에 출간된 이 책의 리뷰는 2,600건이 넘는다.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참고로 오랜 기간 인문학 부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리뷰(2,210건)보다 더 많은 수이다. 물론 100쇄를 넘게 찍은 판매량에서도 '여덟 단어'가 오랜 기간 많은 독자들에게 꾸준하게 사랑을 받았던 책임을 알 수 있다.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이 책을 독서 모임을 통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11월 색종이 독서모임 책으로 추천했고, 동료들의 지지를 받아 선정되었다. 오늘은 박웅현 작가가 생각하는 삶을 대하는 지혜롭고 올바른 태도, 그의 '여덟 단어'에 대해 소개할까 한다.



자존을 지키기 위해 현재를 살아라

© brett_jordan, 출처 Unsplash

작가는 인문학적 삶의 태도라는 주제로 여덟 번에 걸쳐 강의를 했다. 이 책은 그 강의의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책이다. 자신의 딸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썼기에 가독성이 아주 좋다. 큰 형님과 소주 한잔을 하면서 따뜻하게 인생에 대한 조언을 듣는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한 단어씩 읽을 때마다 소주 한 병씩 마신 기분이 들었다.) 저자가 제시한 여덟 단어는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팀장님,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저자는 행복한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단어로 '자존'을 꼽았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자존이다. 나 역시 '자존'이 행복한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는 점에 동의한다. 자존이 있으면 무엇을 해도 행복하다. 반면에 자존감이 낮으면 무엇을 해도 불행하다.


자존감이 낮은 친구가 있었다. 그는 대학 시절 쓰레기를 수거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쓰레기들을 청소차에 싣고 난 후에 조수석에 타려고 하자, 사수는 그에게 곧 내려야 하니 뒤에 매달려서 오라고 했다. 그는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자신이 쓰레기 수거 일을 하는 것을 볼까 봐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길로 아르바이트를 때려치웠다고 했다. 그는 자존감이 낮았기에 자신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기준점을 내 안에서 찾지 않고 밖에서 찾았다. 부족해 보이는 자신을 믿고 내가 맡은 일에 의미를 발견했다면 쓰레기 수거하는 일도 즐겁게 할 수 있다. 자존의 마음이 있다면 20대 초반 쓰레기 수거한 일을 무용담 삼아 자신의 삶을 누군가에 들려줄 수도 있다.


나 역시 나의 자존보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책망한 적이 있었다. 결혼이란 숙제를 해결하지 못한 30대 초중반의 나는 굉장히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다. 그때까지 세상이 건네준 '대학교 입학, 군대 제대, 안정적인 직장, 자가 구입'이란 숙제는 무난하게 해결한 상태였다. 하지만 서른세 살의 남자는 가정도 꾸렸어야 했다. 주변의 친구들은 하나둘씩 장가를 갔고 아빠가 되었다. 내 또래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나의 자존도 함께 떨어졌다.


그 동안 대한민국 표준 남자라는 딱딱 맞는 상자 속에 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결혼은 나 혼자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미션이 아니었다. 그때 해외 학교 파견이라는 기회가 주어졌다. 모두가 나를 말렸다. 결혼 적령기에 열심히 선을 봐서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고 했다. 내가 해외에 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는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셨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틀 밖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한국 사회가 정해준 틀 속에 맞춰 산다는 것은 틀 밖의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역시나 해외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료들 중에 미혼 남자 교사는 나뿐이었다.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평생 혼자 사는 것은 아닌지 겁도 났다. 그때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삶을 살고 있던 선배 교사가 나를 부러워하며 한 마디를 했다. "물 흐르듯이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을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박 선생님이 너무 부럽네요."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새삼 얻었다. 그때부터 중국행을 결정한 나의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일찍부터 해외에 거주를 하며 문해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그들의 문해력 실력을 키우기 위해 수준 별로 학습지를 제작했다. 학교에서 막내였던 나는 젊은 교사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애를 썼다. 함께 운동장에서 공을 찼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으며, 운동장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고, 축제마다 무대에 섰다. 한국에 그대로 남았다면 꿈에 그리던 여자를 만나 결혼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잊고,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자존을 지키기 위해서 현재에 집중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답은 내 삶과 오늘 하루에 있었다.


그러고 보면 술자리에서만큼 나는 평생을 순간에 충실하며 살았다. 예나 지금이나 술자리에서 휴대폰을 꺼내 놓지 않는다. 휴대폰은 가방 안에 넣어두고, 집에 갈 때가 되어서야 확인을 하는 편이다. (물론 유부남이 된 지금은 늘 휴대폰 화면이 시야에 보이도록 올려 놓는다. 내가 약속이나 모임이 있을 때 웬만해서 G는 연락하지 않지만, 그래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편이다.) 술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에게 모든 관심을 쏟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앞에 있는 그들과 마지막 술자리라는 생각으로 항상 술자리에 임했다. 이제는 술자리에서의 내 마인드를 생활 전반으로 넓히고자 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여덟 단어'라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몰입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스마트폰과 같이 나를 방해하는 것들과는 거리를 둔다. 밥을 먹을 때는 오직 음식 그 자체에 집중하고, 달리기를 할 때는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나의 신체에 집중한다.


어떤 삶이 의미 있는 삶일까? 정답은 없다. 살아 숨 쉬는 유기체의 숫자만큼 대답은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적용이 되는 정답이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비롯해 모든 순간마다 의미를 부여하면 우리의 삶은 의미 있는 삶이 된다는 것이다. 인생은 레이스가 아니다. 특정 대학에 입학하고, 공기업에 취업하고, 일정 자산을 획득한다고 끝나는 게임이 아니다. 인생은 매 순간의 합이다. 나의 마음에 따라 매 순간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 매 순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존을 지킬 수 있다.



고전을 통해 본질을 찾자

© stevepb, 출처 Pixabay

작년에 G가 넷플릭스를 신청한다고 했을 때 못마땅했다. 텔레비전 채널만 하더라도 볼 게 얼마나 많은데 굳이 돈을 들여서 OTT 서비스를 신청한다 말인가. 그런데 올해 들어서 생각이 바뀌었다. 왜냐하면 올해 TV를 통해서 본 콘텐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넷플릭스를 통해 벌써 'D.P., 오징어 게임, 마이네임, 괴물'까지 총 4편의 드라마를 봤다. 이제 넷플릭스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까지 진출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TV보다 OTT 매체의 힘이 더 강화되고 있다는 추세로 봐야 할까? 아니다. 넷플릭스가 뜬 가장 큰 이유는 콘텐츠가 더 좋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에게 서사 장르의 드라마를 통해 즐거움과 감동을 주겠다는 본질에 더욱 집중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본질'에 집중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나만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매일 하는 행위 속에서도 본질에 대한 고민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스스로를 수영이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10년 전 대학교 수영장에서 초급반을 수강한 적이 있다. 함께 수영을 배웠던 10명 중에 남자는 나와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이 둘뿐이었다. 당시 열세 살이었던 어린이는 급속도로 실력이 늘었다. 반면에 나는 10명 중에 가장 진도가 느렸고, 젊은 남자 강사조차 나보다는 젊은 여자 수강생들에게 더 집중했다. 급기야 강사로부터 수영을 할 수 없는 신체를 타고난 것 같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수영장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나와 달랐다. 혼자서 유일하게 상급반에 진출하지 못했음에도 수영을 그만두지 않았다. 창피하지 않냐는 아내의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수영을 배우는 목적이 잘 하려는 게 아니라 땀을 흘리는 것에 있다고. 그는 수영을 하면서도 그 행위의 본질을 잊지 않았다. 반면에 서른 살의 나는 본질을 고민하지 않았기에 쉽게 흔들렸고, 어쩌면 평생의 취미가 될 수도 있었던 수영을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쉽게 포기해 버렸다.


그럼 나만의 '본질'은 무엇일까? 어떤 기준으로 나의 본질을 찾아야 할까? 저자는 이렇게 조언을 해주었다.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5년 후의 나에게 긍정적인 체력이 될 것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했다. 나를 기준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이 행동이 5년 후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를 갖고 판단해야 한다. 그럼 적어도 나의 20~30대의 많은 시간들을 할애했던 NBA 2k 게임은 아닐 것이다. 워낙 오랜 세월을 했기에 나는 그 게임을 제법 잘 한다. 약한 전력의 팀으로 강팀을 상대로 이기면 즐겁다. 하지만 게임은 전혀 본질적이지 않다. 어렴풋이 독서와 글쓰기가 훗날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줄 체력과 상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흔을 앞둔 작년부터 게임을 끊고 독서와 글쓰기에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지혜로운 삶의 태도와 풍성한 인생을 위한 교양이 내 삶의 본질이라 생각했고, 그 본질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했다. 다행히 독서와 글쓰기 모두 재미가 있다. 게다가 나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행위라는 확신이 있어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도 된다.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작년의 경우 내 수준에 맞는 책들부터 읽었다. 일단 문해력을 키우고 책에 대한 흥미를 가지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조금씩 독서모임의 힘을 빌려 고전을 찾고 있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시간에 굴복하지 않고 시간과 싸워 이겨낸 것들이다. 해마다 출판 시장에는 엄청난 수의 책들이 쏟아진다. 그 책들 중에 50년 후에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을 책이 몇 권이나 될까? 당장의 유행보다 시간이라는 시련을 이겨낸 고전이 본질에 가까울 것이다. 또한 나와 다른 시대의 거장들과 소통하는 과정 그 자체로도 즐겁다.


고전에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음악과 미술도 있다. 음악과 관련해 책에서 인상적인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선생님들께 부탁이니 딱 한 번만 효율을 포기하고,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스피커를 가져다 놓고 아이들에게 비발디의 음악을 들려주라고 했습니다. 분명 그중 반 이상은 감동을 받아 소름이 돋을 것이고 그러면 그걸로 됐다고. 그 이후로는 스스로 찾아 들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덟 단어. 83쪽


우리에게 고전이란 공부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학생들은 '아비뇽의 처녀들'이 피카소의 작품이며, '월광소나타'가 베토벤의 작품인 것을 외운다. 느끼기 전에 지식으로 암기할 뿐이다. 지금도 여전히 학교에서는 미술 작품을 보고 작가 이름을 쓰거나, 클래식의 한 대목을 듣고 곡목을 맞추는 수행평가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고전'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비록 학교 교육이 우리로 하여금 고전과 멀어지게 했더라도 지금도 늦지 않았다. 백 세 시대인 지금 성인들에게 남은 시간이 꽤 많다.


나는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피카소, 모차르트, 도스토예프스키를 높게 평가할까? 왜 그들의 작품은 오랜 세월 살아 남아 사람들의 사랑을 지금도 받고 있을까? 고전이 고전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고전에 대한 호기심과 갈증이 나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거라 믿었다. 한 번뿐인 우리의 삶에서 고전을 즐기는 태도는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공부도 필요하다. 작년에는 '1일 1클래식 1기쁨'이라는 책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누렸고, 올해는 '방구석 미술관'이란 책을 통해 예술가들의 삶에 교감하는 감동을 느끼고 있다. G에게도 이번 겨울 방학 때 샤갈 특별전을 보러 꼭 대구미술관에 가자고 요청을 했다. 지금의 욕심으로는 스피커도 좋은 것으로 사고 싶다. 앞으로도 나는 고전을 궁금해하면서, 읽고 듣고 보는 행위들 속에서 본질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싶다.



제대로 見 하고, 권위에 저항하고, 지혜롭게 소통하자

© jasonlong, 출처 Unsplash

2010년 팔공산에서 1급 정교사 연수를 받았다. 연수 중 가장 나를 괴롭게 만들었던 과제가 있었다. 바로 시(詩)를 쓰는 것이었다. 내가 쓴 시를 발표하고 동료들의 품평까지 받아야 했다. 게다가 완성된 시를 갖고 시집을 만들어 대구 시내 모든 중고등학교에 배부할 계획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는 깊은 좌절에 빠졌다. 나의 작품이 수업 안에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세상에 공개된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자작시를 발표했던 날에 범접할 수 없는 천재성을 느끼게 해 준 친구가 있었다. 그는 매일 연수원이 있는 팔공산까지 오르는 길목에 있는 사물들을 소재로 시를 썼다. 나 역시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1시간 가까이 팔공산으로 향했다. 나는 그저 보기만 했고, 그는 자세히 관찰했다. 똑같은 잡초를 보고 다른 것을 읽어내는 힘이 그에게는 있었다. 당시에 나는 그가 나와 다른 천재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 그것은 천재성이 아니라 '보는 힘'이었다. 일상의 소재를 관찰해 그 안의 빛나는 것을 찾아내는 힘이었다.


인생을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잘 봐야 한다. 제대로 봐야 한다. 시간을 들여 봐야 한다. 일상에서 제대로 보고 느끼는 것이 많은 삶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이다. 애주가인 나의 입장에서 스무 살 이후 지금까지 정말 많은 술자리를 가졌다. 그중에서 잊히지 않는 강렬했던 추억들이 몇 장면 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대학교 동기와 후배와 함께 늦은 시간까지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칠성시장 포장마차였다. 그날은 신기하게도 달이 밝게 떴는데 비가 내렸다. 술과 달빛과 비에 함께 취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끼리 밤새도록 노래를 불렀다. 왜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의 찰나를 기억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때 그 순간에 소주잔에 비친 달빛과 빗소리를 잡아냈기 때문이다. 그 순간들이 놀랍고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했다. 그냥 술을 마시는 사람과 "창밖 좀 봐. 비가 내린다."라고 말하며 술을 마시는 사람의 삶에는 풍요로움의 차이가 있다고 말이다.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곳에 3일밖에 못 머물기 때문이다. 나에게 특별한 이벤트가 일어나기를 기대하지 말자.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다. 일상도 여행처럼 낯선 눈빛과 설레는 마음으로 보내보자.



개인적으로 '여덟 단어'를 읽으며 박장대소한 부분이 있다. 드라마에서 회장 가족이 나오는 장면이다. 회장의 아내가 딸에게 "얘! 회장님 오셨다."라고 말하며 남편과 아빠를 맞이하는 장면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드라마를 보면서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했다. 대기업의 회장이라는 권위에 나도 모르게 설득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이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아빠고 남편일 뿐이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쌓은 사람도 설거지를 하고, 자식의 기저귀를 갈았으며, 가끔 배우자의 눈치를 보고는 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농구 선수인 마이클 조던도 농구 분야에서는 완벽할지 몰라도, 인격적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게 불완전한 사람들이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에게 허구적인 개념을 믿는 힘이 있다고 했다. '권위'라는 것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 간의 약속이고,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하에 권위가 만들어졌기에, 권위에 저항을 하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가 만든 권위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더라도 높은 직위를 지닌 사람을 만나면 괜히 움츠러진다. 하물며 같은 조직 안에서 권위를 지닌 사람 앞에서는 더욱 기가 죽는다. 비굴하게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며 내 생활이 조금 편해졌다고 치자. 내가 그 순간을 비굴하고 비겁하게 행동했다는 것은 내 안의 생채기로 오랫 동안 남아 있다. 니체의 영원 회귀 관점에 의하면 비겁했던 그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다. 조금은 불편해지더라도 당당하게 소신 있게 권력자 앞에서 행동하는 것이 낫다. 또한 그들에게 동정의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저항해도 되는 대상들은 충분히 강하다. 그러니 나로 인해 상처받을 그들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내 영혼의 맑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해지자. 그것이 인생을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다.



일곱 번째 단어는 '소통'이다. 소통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결혼 초기에 G가 직장에서 겪었던 속상한 일을 나에게 토로한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그건 네가 잘못했네."라고 답해버렸고, 그날 매우 혼이 났다. 이제 결혼 5년 차가 되니 남녀의 대화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다. 남자들은 보통 어떤 상황을 접했을 때 해결 방법부터 떠올린다. 그래서 마땅한 해결 방법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배우자나 애인이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내는 것이다. 반면에 대부분 여자들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메시지를 담아 대화를 시도한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은 가족이다. G와 아들의 심기가 불편하면 나의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긴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G에게 "주말에 진지하게 이야기 좀 하자."라는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다. 나는 항상 술자리에 200% 이상 집중을 하는 편인데, 그날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나의 어떤 언행이 G를 언짢게 했을까라는 고민이었다. 도저히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그때 알았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가족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결국 가족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소통을 잘해야 한다. 배우자와 잘 지내기 위해서는 남녀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자식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나와 자식 세대가 다르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곧 상대에 대한 배려이다. 우리의 행복한 인생을 위해 지혜로운 소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모든 인생은 제대로만 된다면 하나의 소설감이다.


마지막 단어는 바로 '인생'이다. 앞서 '자존, 본질, 고전, 현재, 견, 권위, 소통'이란 단어는 결국 '인생'을 더 지혜롭고 잘 살기 위해서 필요한 삶의 자세이다. 얼마 전 이웃이신 '뉴정군'님의 블로그에서 짧지만 강렬했던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스타 특강 쇼에 출연했던 박신양 배우의 이야기였다. 그는 20대에 러시아 유학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러시아어 선생님께 "왜 이렇게 내 인생은 힘든 건가요"라고 물었다. 러시아어 선생님은 대답 대신 그에게 시집 한 권을 주었다. 그 시집에는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제목의 시가 있었다. 그 문장은 박신양 배우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꽤 큰 충격을 주었다.


우리 삶에서 힘든 순간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나는 아프지 않고, 내 뜻대로 일이 잘 풀리고, 뭐든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에 기본값을 맞추고 있었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정해놓고 설정한 다음, 그것에 어긋날 경우에 화를 내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즐거울 때보다 힘들고 지루한 순간이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했더라도 개인보다 훨씬 더 위력이 강한 시대가 받쳐 주지 않는다면 내 뜻대로 꿈을 이룰 수 없는 게 세상사이다.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최선의 선택을 했음에도 불행할 수도 있고, 차선의 선택이 더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도 있다. 지구는 탄생 이래 단 한 번도 동일한 날씨를 반복하지 않았다고 고미숙 선생께서 말을 했듯이 우리의 인생도 예측이 불가능하다. 위험하고 불안하다. 반면에 누구에게나 가 보지 못한 길이기에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나는 하루하루는 성실히 살고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살고 싶다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이 마음에 든다. 먼 미래의 일은 예측할 수 없지만,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만큼은 내 뜻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을 감사하게 여기며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부터 행복하고 싶다. 어떻게 해야 지금 이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할 수 있을까?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다.


묵묵히 자기를 존중하면서

클래식을 궁금해하면서

본질을 추구하고 권위에 도전하고

현재를 가치 있게 여기고, 깊이 봐가면서

지혜롭게 소통하면서

각자의 전인미답의 길을 가자.


여덟 단어, 박웅현


박웅현 작가의 표현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책을 통해 평소 작가가 소중히 여기는 여덟 단어에 대한 그만의 깊이 있는 성찰과 깨달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여덟 단어를 나름 나만의 방식대로 재해석을 해 보았다. 물론 인문학으로 깊은 성찰을 이루었고 우리나라 광고계의 스타인 그의 생각이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각자 제각기이기에 인생에 정답은 없다. 각자의 삶에 맞는 여덟 단어가 존재할 뿐이다. 미래를 꿈꾸기보다 오늘 하루 충실히 살아가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여덟 단어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네 인생은 그 여덟 단어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지금 내 앞에 놓인 삶의 여정을 충분히 즐기며 여러분의 인생 속에서 각자의 여덟 단어를 찾으시길 바란다. 깨달은 바를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가면서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찾아가기를 바란다. 전인미답인 나만의 인생에서 찾은 그 답이 바로 당신 삶의 정답이다.


여덟 단어, 박웅현,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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