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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Dec 30. 2021

올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 Top 3

올해 당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2021년도 어느덧 1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도 여전히 코로나는 기승을 부렸다. 처음 중국에서 코로나가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오랫동안 바이러스가 나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거라 예측하지 못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일상에서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고 생활하고 있으며, 이동과 만남 모두 자유롭지 않고 제약이 많다. 새로운 도전과 즐거운 만남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코로나 탓만을 하며 우울하게 지내기에는 나의 한 번뿐인 마흔 살이란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40대 첫해를 재미있고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매일 감사의 마음으로 주어진 시간들을 선물처럼 활용해 일상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물론 지난 1년을 곰곰이 돌이켜 보니 아쉬운 점도 많다. 여전히 나를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남겼고, 온전히 나의 욕구에 충실하게 행동하기보다 타인과 세상의 눈치를 살피며 왜곡되게 행동하고는 했다. 혼술이라는 나쁜 습관은 여전히 종종 나의 일상에서 나타났으며, 주어진 일을 별 고민 없이 대충 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참 감사한 일이 많았던 2021년이다. 2021년 마지막 일요일 아침에도 나는 새벽에 조용히 혼자 일어나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의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행복'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온전히 그 느낌을 향유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진다. 사람마다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는 다르다. 새해에도 여전히 나는 더 나은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날 것이다. 진짜 내가 바라는 것들을 찾아가는 여정의 일환으로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며 2021년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그 순간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글로 남겨 보기로 했다.



© kevin_butz, 출처 Unsplash


나를 되살아나게 한 고맙다는 문자 한 통


 첫 번째는 G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이다. 첫 번째 행복했던 순간으로 조금 임팩트가 약하지 않냐고? 현시점에서 내 삶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바로 배우자인 G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그녀의 인정을 갈구한다. 그녀의 칭찬은 그 누구의 칭찬보다 나의 기분을 요동치게 한다. 결혼 이후 나라는 항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행성이 부모님에서 아내로 바뀌었음을 직감했다. 아들이 태어난 이후 아들이란 행성이 아내와 같은 궤도에서 내 주변을 맴돌게 되었다. 당연히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 두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는 당연히 희생이 동반될 수밖에 없었다. 나의 희생과 최선에도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 그때는 배우자의 힘듦을 지켜봐 주고 공감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 또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어떻게든 현실적으로 그녀의 힘듦을 해결해 주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내 새끼를 책임지고 길러내야 한다는 육아의 무게감과 자식이란 눈부신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인 대가로 내가 쥐고 있던 모든 세계를 놓아야 했던 그녀의 허망함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내 능력을 벗어나는 범위 안에서는 기대를 놓아야 했다. 하지만 나는 결혼과 출산 이후 늘 행복한 순간만이 우리 가정에 가득해야만 한다고 욕심을 부렸다. 하지만 현실은 더욱 냉혹했고, 그 화풀이를 애먼 G에게 자주 표출하고는 했다.


 G의 복직으로 우리는 주말부부가 되었다. 사람이 간사한 것이 상황이 변하게 되자 우선 내 걱정부터 하게 되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해서 힘들고 외롭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나 혼자서 주중 시간을 생산적으로 잘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물론 주중에 직장 생활과 육아를 동시에 해야 할 G에 대한 걱정도 컸다. 아무리 장모님께서 함께 생활을 하신다고 하더라도 하원 후 아이 육아는 전적으로 G의 몫이다. 웬만해서는 어른들께 아이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는 G의 성격상 혼자서 아이를 전담할 것이다. (물론 대신 살림살이를 해주시는 장모님이 계셔서 천군만마이기는 하다.) 당연히 직장 생활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성격의 G로서는 쉴 틈이 없는 하루가 더욱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아빠 없이도 건강하고 밝게 자라고 있는 아들을 볼 때마다 G에게 늘 미안했고 고마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1주일에 3일(금토일)이라도 최선을 다해 아빠와 남편 역할을 해내는 것이었다. 금요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정시 퇴근을 해서 최대한 빨리 천안으로 향했다. G가 평소보다 많이 힘들어하는 주의 경우에는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조퇴를 신청했다. 1시간이라도 일찍 집에 들어가면 가족 모두 기뻐했다. 무엇보다 나는 주말 동안이라도 G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난 뒤에야 혼자만의 시간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월 화 수 목, 4일 동안 넉넉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나는 어떻게든 G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엄마 껌딱지인 아들을 나 혼자서 독차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G 역시 주중과 주말 구분 없이 아이의 부름에 한결같이 따뜻한 태도로 응답했다. 아들이 일요일 저녁마다 아빠와 헤어지는 것을 힘들어하자 아들이 잠이 든 후에 집에서 나서기로 했다. 당연히 출발 시간은 더욱 늦어졌고, 밤 11시 반은 되어야 대구 자취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몸은 조금 더 피곤해졌지만 마음은 훨씬 더 가벼웠다. 아이가 울먹이며 "대구 가지 마! 일하지 마! 돈 벌지 마!"라고 외치며 나를 붙잡는 모습보다는 새근새근 평화롭게 잠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떠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매일 직장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야 하는 아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일요일 밤이 되면 나 역시 몸과 마음 모두 녹초가 된다. 게다가 함께 잠자리에 누웠지만, 먼저 잠이 든 가족을 두고 몰래 집을 나가야 할 때의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왜 나 혼자 이렇게 떠나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올 때도 있다. 혹시라도 아이가 깰까봐 조심스럽게 외투를 걸치고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간다. 조용히 집을 나서 주말 동안 부족했던 운동량도 보충할 겸 천안아산역까지 걸어간다.


 한 번은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G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보통 G는 월요일 출근을 위해 아이와 함께 일찍 잠을 청하는 편이다. 그래서 보통 '기차 잘 탔다, 대구 잘 도착했다'라는 나의 메시지를 읽을 수도 없고 반응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그녀로부터 "오빠 덕분에 주말 동안 너무 행복했어. 당신은 좋은 남편이자 아빠야."라는 답장을 받았다. 그녀의 격려는 누적된 피로로 인해 짐짝처럼 기차 안에 구겨 넣었던 나를 다시 살아나게 만들었고, 춤을 추고 싶도록 만들었다. 오랜만에 G에게 인정을 받았던 그때가 지금 돌이켜 봐도 올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그 행복의 순간을 또 누리고 싶어 G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올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그 문자를 받았을 때라고. 나 역시 당신이 아내로서 엄마로서 해내는 역할의 수고로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고맙다는 표현을 자주 하겠다고. 서로에게 행복한 순간을 더 많이 선사할 수 있는 2022년을 만들어 가자고.



© andrewtneel, 출처 Unsplash


매일 행복을 주는 블로그 글쓰기


 두 번째로 올해도 나는 매일 보장된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 하루 중 언제 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꼈을까? 바로 블로그 글을 발행했던 순간이다. 나는 주로 출근 전인 아침 7시 또는 퇴근 후인 오후 6시에 글을 발행하는 편이다. 매번 양질의 글을 쓸 수는 없지만 보통 하루에 2~3시간 정도 블로그 포스팅에 시간을 할애한다. 이웃 블로그에 방문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하루 중 10분의 1 이상을 블로그와 관련된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꽤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있음에도 블로그를 끊을 수 없는 이유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블로그 글쓰기를 놓는 순간 다시 2년 전의 무기력했던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2년 전 자기혁명이란 거창한 단어를 블로그 대문에 내세우고 난 후 나의 삶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글도 쓰고 달리기도 했으며, 출퇴근 시간에는 영어 회화를 들으며 문장들을 통째로 외워 왔고, 퇴근 후에는 꾸준히 책을 읽고 인스타에 간단히 서평을 남겼고 세줄일기 앱을 통해 감사일기를 썼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루틴에 충실하게 열심히 살았던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지인들을 만나 술을 진탕 먹을 때도 있었다. 또한 어떤 날은 넷플릭스에 빠져 몇 시간이고 드라마를 볼 때도 있었다. 다행인 것은 하루 이틀 정도 방탕한(?) 생활을 했다가도 금방 오뚝이처럼 원래의 루틴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나를 다잡아준 비결이 블로그 글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체력이 방전되었고 무기력한 날조차도 내가 놓치고 있지 않은 활동이 바로 블로그 글쓰기다.


 예전이었으면 생산적이지 못한 일로 가득 채운 날에는 허무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을 것이다. 그리고 관성의 법칙에 의해 그다음 날도 의미 없이 일상을 보낼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1일 1블로그 포스팅을 실천하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아무리 농땡이를 치며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하루의 끝에도 최소한 오늘 하루 글 한 편을 세상에 남겼다는 생각에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직장에서 나의 쓸모에 회의감이 드는 날도 블로거 '영천소년'으로서 나의 또 다른 정체성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시답지 않은 일로 직장 상사에게 지적을 받은 날이 있었다. 마침 그날은 아침에 발행한 글에 스스로 만족감이 충만했던 날이었다. 나 스스로도 어떻게 이런 글이 내 머릿속에서 나왔지라며 흡족했고, 다행히 '좋아요' 또는 '답글'의 수를 보니 이웃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그런 날은 나에게 그리 관심과 애정이 많지 않은 직장 상사의 지나가는 한 마디가 내 삶에 어떠한 타격을 미치지도 못한다.


 사실 가족과 함께 하는 주말 동안 블로그 글을 쓰지 않겠다고 G에게 다짐했다. 그럼에도 1일 1포스팅의 습관을 놓치고 싶지 않아 주말에는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난다.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 아들이 눈을 뜰 때까지 블로그 글을 작성했다. 주말 글쓰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침에 글을 완성하지 못하면 퇴근 후에 이어서 쓰면 되는 주중과 달리 주말은 아침 시간 외에는 따로 나의 개인 시간을 낼 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절박한 심정으로 글에 매달리게 된다. 주말 글쓰기의 데드라인은 아들이 눈을 뜬 후 "아빠, 어디 있어요?"라는 외침이 들릴 때까지다. 은근히 긴장감을 갖고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더욱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었다. (놀랍게도 촉박하게 작성했던 주말의 글이 좋은 반응을 보일 때가 많았다. 역시 사람은 무슨 일이든 궁지에 몰려야 집중력이 발휘되는 듯하다.)


 술자리나 약속이 있는 날은 어떻게든 출근 전에 글쓰기 발행 버튼을 눌렀다. 그만큼 작년에 이어 올해도 블로그 글쓰기는 나의 주된 루틴이었고, 스스로에게 부여한 매일 해내야 하는 과제였다. 그 과제를 매일 해내며 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도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자부심과 교사로서 내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블로그는 나에게 작은 수익도 안겨 주었다. N잡러라고 스스로를 부르기에 아직 미흡한 점이 많지만, 어쨌든 블로그 애드 포스트 수익을 통해 올해 치킨 네 마리 값 정도는 벌었다. 삶에 의미도 주고, 작지만 월급 이외에 작은 수익까지 주는 블로그를 통해 2021년에도 나는 행복했다. 내년에도 이어서 행복할 예정이다.



© reddalec, 출처 Unsplash


함께 읽고 성장하는 모임


 끝으로 올해 독서 모임을 하며 행복했던 순간을 자주 느꼈다. 작년부터 자기혁명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스스로 달라지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방법을 몰랐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혼자만의 사색으로 답을 찾아나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책에 답이 있다는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 번뿐인 나의 삶을 제대로 살고 싶다는 욕망에서 무작정 책을 읽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꾸준히 혼자서 책을 읽어 나갔고, 내 삶에 필요하고 적용하고 싶은 구절에 밑줄을 그었으며, 그 문장들을 토대로 책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서평을 작성했다. 책을 읽고 그 일부를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문제는 독서는 집중력을 갖고 혼자서 해야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소중한 월 화 수 목 내내 퇴근 후에 집에 앉아서 책만 읽기에는 나의 엉덩이가 너무 가벼웠다.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나는 외향적이고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지인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내 안의 에너지가 채워졌다. 문제는 내 주변에 친한 사람들이 죄다 술로 이루어진 관계라는 사실이다. 가끔 술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들과 만나더라도 술 마시는 것 이외의 것을 지인들과 해본 적이 없다. 게다가 늘 익숙한 사람들과 자주 만난다는 것도 문제였다. 직장 동료들을 만나면 상사와 직장 험담만 하다가 만남이 끝이 났고,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는 과거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현재 직장에 대한 불만을 함께 토로하며 잠시라도 현실의 고통을 잊고자 하는 사람들, 나의 현재가 아닌 과거만으로 나를 쉽게 판단하는 사람들과 만나 술을 마시는 것이 나의 여가생활의 전부였다.


 조금 더 생산적인 만남이 없을까 고민한 끝에 용기를 내 직장 안에서 독서모임을 제안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모임을 제안할 만큼 간덩이가 크지 않은 나는 우선 친분이 있는 같은 교과 선생님들을 설득했다. 독서모임을 함께 하자는 메시지를 작성하는데만 30분은 쓴 듯하다. 다행히 나와 비슷한 갈증이 갖고 있던 분들과 직장 안에서 독서모임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직장 동료들과 만나면 각자의 불만을 토로하기 바빴지만, 독서모임은 달랐다. 함께 읽은 책이라는 공통의 주제가 우리 모임의 중심을 잡아 주었다. 무엇보다 대화의 진짜 주인공은 책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책을 통해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고, 내가 바라는 삶과 세상까지 사고를 확장할 수 있었다. 그 소중한 경험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던 독서모임은 올해 내 인생에서 가장 가슴이 벅찼고 찬란했던 순간이었다.


 물론 애주가인 나의 입장에서 독서 모임에 가서도 술을 마시기는 했다. (멤버 중에 나 혼자만 술을 마셨음에도 늘 뒤풀이를 함께해 준 색종이 멤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그럼에도 다른 술자리와는 달리 독서모임의 경우 다음 날이 되어도 마음이 전혀 공허하지 않았다. (심지어 숙취도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과 책을 통해 같이 배우고 성장해 나간다는 의미까지 동시에 가질 수 있는 모임이 독서모임이었다. 이 모임을 통해 혼자서는 읽기 쉽지 않았던 '사피엔스, 주홍글자, 멋진 신세계, 백야, 이방인, 카라리니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와 같은 고전들을 읽을 수 있었다.


 모임을 만든 나 이상으로 멤버들이 독서모임에 애착을 갖고 애정을 드러낼 때도 무척 행복했다. 올해 첫 독서모임 뒤풀이 때 모임의 이름을 정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빠른 회의 진행을 위해 미리 모임 전에 아이디어를 준비하기로 했다. 나의 예상과 달리 각자가 다양하게 모임 이름을 미리 준비해 오셔서 깜짝 놀랐다. 많은 의견들 중에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이 다채로운 색으로 만들어가는 모임이란 뜻의 '색종이'가 우리 독서모임의 이름이 되었다. 색종이는 2022년도에도 계속 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또한 '책 수다' 독서모임도 올해 나의 행복을 논할 때 빼놓을 수가 없다. 앞서 언급한 색종이 독서모임은 모든 멤버가 같은 직업이라는 장단점이 존재했다. 심지어 모든 멤버들이 국어교사다. 아무래도 책을 읽고 난 뒤의 감상이나 생각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나의 시야를 넓히고 세계관을 키우기 위해 다른 연령대, 직장,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행히 21세기 문명의 혜택인 인터넷, SNS를 통해 랜선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마침 올해 초 변실모의 수장이신 최호진 작가가 매달 한 번씩 부담 없이 책에 대해 수다를 나누자는 의미로 '책 수다' 독서모임을 제안했다. 나는 흔쾌히 함께 하겠다고 바로 지원을 했고, 다른 오프라인 모임과 겹치지 않는 한 항상 참가하려고 노력해 왔다.


 아마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을 읽고 난 후의 모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까지 책수다에서 선정했던 책들 중에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가장 극명하게 갈렸던 책이었다. 반면에 올해 가장 즐거웠던 모임이기도 했다. 책을 통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진실된 이야기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화면 속 사람들이 집중해서 들어주고 반응해 주는 것은 정말 황홀한 경험이었다. 2시간이 넘도록 줌 화면 앞을 떠나지 않고 집중해서 앉아 있었다. 다른 멤버들의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2시간 동안 화장실 용무까지 참았다. 당시 모임을 마무리하는 소감으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2시간 동안 모니터 앞에 앉아 걸그룹 영상을 봐라고 해도 사실 쉽지가 않다. 하지만 오늘 책수다 멤버들의 삶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는 걸그룹 뮤비보다 나의 눈과 귀를 더욱 즐겁게 해주었다. 지금이라도 모임이 끝나 화장실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살면서 화장실 용무를 참을 만큼 재미있었던 모임이 내 인생에 있었던가? 책수다 독서모임 역시 나에게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관계'와 자기계발이란 '의미' 모두 부여해 주었다. 책수다 멤버들과는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는 사이이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나다움을 찾아 세상에 나를 드러내면서 살아가기를 갈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로 닮았기에 서로 진심으로 잘 되기를 응원하고 격려해 주는 그런 관계이다. 지난 주의 경우 올해 마지막 책수다 모임이 있었다. 친한 지인과의 저녁 약속과 겹쳐 모임을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거리 두기 정책으로 인해 평소보다 일찍 헤어졌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모임이 시작한 지는 한 시간이나 지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멤버들이 무척 보고 싶었다. (아마 술기운에 만용을 부린 것일 수도 있다.) 술이 얼근하게 취한 홍조 빛 얼굴로 줌에 접속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모르게 횡설수설했다. 또한 민망하게도 술 마신 것을 촉이 좋은 멤버에게 들켰음에도 그 만남이 무척 즐거웠다. 책 수다 모임을 통해 랜선에서도 충분히 인간미를 느낄 수 있고,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올해 나를 행복하게 해 준 두 독서모임이 내년에도 꼭 이어졌으면 한다. 더 행복해지고자 하는 욕심에 내년에는 대구에서 직접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만들어 운영해 볼 계획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상으로 올 한 해 나를 행복하게 했던 순간들을 정리해 보았다. 세상에서 나에게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인 G에게 칭찬받았을 때, 매일 블로그 글을 발행하며 직장 일 외에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음에 뿌듯해할 때,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하길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가 올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정리해 보면 결국 나의 행복은 '관계, 생산, 성장'에 달려있었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매일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배움의 결과를 글로 쏟아내고, 지금 여기에서 매 순간을 감사하게 여기고 몰입하는 삶, 그것이 2021년 한 해를 되돌아보며 깨닫게 된 나의 진짜 '행복'이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여쭙고 싶다. "올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는 과정이 진짜 내 모습에 다가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진짜 나에게 다가갈수록 삶은 더욱 편안해진다. 얼마 남지 않은 남은 2021년도 평온한 나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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