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뿐인 나의 삶, 어떻게 살 것인가
저는 책을 참 안 읽는 학생이었습니다. 혼자서 차분하게 책을 보는 것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했죠. 책상에 오래 앉아 집중할 수 있는 타입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유튜브에 접속하면 너무도 많은 지식과 정보들이 입맛에 맞게 편집되어 있습니다. 직업으로 인해 독서와 관련된 수업이나 평가를 할 때도 마지못해 읽었습니다. 제가 읽는 책은 교과서와 참고서가 유일했습니다.
작년 제가 거주하고 있던 대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동네의 모든 음식점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대구 시민들은 코로나에 대한 공포로 서로를 바이러스로 대하며 거리 두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했습니다. 사람과 어울리던 것을 좋아하던 저는 외롭고 답답했습니다. 그제서야 나 자신에게 시선을 주더라고요. 세상이 원하는 대로 내 나이에 맞는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저의 삶이, 저의 하루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던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은 곧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책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나보다 먼저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한 사람들이 남겨놓은 그들의 문화적 유산이 바로 '책'이었습니다. 제가 책을 읽는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한 번뿐인 나의 삶, 어떻게 살 것인가?"
저는 책을 교재로 생각했습니다. 내 삶에 적용하고 싶은 부분에 밑줄을 그었고, 독서에 대한 아웃풋을 추구했습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단 하나라도 저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기를 바랐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며 한 인간으로서 '성장'을 목표로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던 작년의 경우 80여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80권의 책은 저의 생각과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기존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제 생각의 틀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경상북도 영천 땅에서 태어나 대구에 거주하면서 만나는 사람은 늘 정해져 있었습니다. 경상도 출신의 30~40대 남자 교사들과 주로 대화를 했던 저는 저의 세계관에 갇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저의 아집을 놓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배움과 성장에 대한 욕구가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세상은 넓고 배워야 할 것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생각에 겸손한 태도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조금씩 글쓰기 실력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 밑줄을 그었던 것을 위주로 다시 메모 앱에 정리했고,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서평으로 남겼습니다. 저자의 생각과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곧 글쓰기였습니다.
매일 책을 읽고 배울 것이 있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저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직장에서도 훨씬 더 밝은 표정으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24시간이라는 하루가 선물이라는 생각으로 긍정적으로 제 삶과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친한 동료에게 의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혹시 로또 1등 당첨된 것 아니냐고.)
그래서 2021년에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습니다. 바로 한 해 동안 책 100권을 읽겠다는 것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시기가 있습니다. 바로 군 생활을 했을 때입니다. 향로봉함이란 군함을 떠나 포항기지대라는 육상 부대에서 남은 1년의 군 생활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포항기지대에는 수병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사실 도서관은 각종 가혹행위와 단체 기합 등이 행해지던 공간이었습니다. 병장이 된 저는 도서관을 제 서재처럼 사용했습니다. (제가 도서관을 점령한 후부터는 적어도 도서관 안에서의 가혹 행위가 사라진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죠.) 점호 후에 후임들에게 TV 리모컨을 건넨 후 바로 도서관으로 가 책을 읽었습니다. 당직 시간 그리고 주말 동안에도 저는 도서관에 박혀 있었습니다. 당시 목표가 제대하기 전에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도 매일 읽은 책의 제목과 저자 이름 등을 관물대에 부착해 놓은 종이 위에 메모해두었는데요. 제대할 때가 되니 1년 동안 100권의 책을 읽었더라고요. 그때 제 나이가 스물두 살이었습니다.
스물두 살 이후에 저는 다시 책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서른아홉이 되어서야 잘 살아보고 싶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 책을 잡게 되었죠. 그리고 스물두 살의 나를 넘어서겠다는 목표를 잡았습니다. 바로 책 100권 읽기이지요. 사실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이렇게 포스팅하는 것도 저의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켜주는 행위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한 번은 100권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채워 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일단 양으로 먼저 채울 수 있어야 질로도 전환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100권의 책이 저의 독서 인생의 임계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우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부적인 목표를 다시 세웠고, 실천 방안을 구상했습니다. 한 해 동안 100권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한 달에 8권 이상의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다시 주 단위로 환산을 하면 최소한 1주일에 두 권의 책은 읽어야 했죠. 1주일에 두 권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하루 2시간의 독서 시간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하루에 2시간이란 독서시간을 따로 정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자투리 시간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늘 읽고 있는 책을 들고 다녔습니다. 여유가 생겼는데 읽을 책이 없을 경우에는 가까이에 있는 서점에 들러 책을 구입했습니다. 지하철, 기차 안에서도 항상 책을 꺼냈고, 점심시간에도 빈 교실을 찾아 책을 읽었습니다. 하루에 남는 시간만 모아도 1시간의 독서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주말의 경우 아내와 아들이 낮잠을 잘 때 책을 읽었습니다. 1주일 중 하루 정도는 각을 잡고 인근 도서관이나 카페에 들러 3~4시간씩 몰입해서 집중적으로 책을 읽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번째로,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저의 목표를 세상에 선언했습니다. 올해 초 버킷리스트 100개를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며 100권의 책을 읽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인스타그램에 독서 인증을 남겼습니다. 한 권의 책을 모두 읽은 다음에는 간단한 소감이라도 남겼고요. 매달 말일에는 한 달 동안 읽었던 책을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보상이 있어야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집니다. 저에게는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 확실한 보상이었습니다. 사실 올해 100권의 책을 읽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저에게 주어지는 불이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나의 목표를 세상에 선언했다고 했지만, 제 목표를 기억해 주는 사람은 없고요. 슬며시 제 마음속에서 목표를 접더라도 저의 일상은 크게 바뀌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잘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SNS를 통해 나의 실천을 인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좋아요' 수에 집착하지 않고, 매일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음을 인스타 피드 그리고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기적으로 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음을 세상에 공헌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너무 어려운 수준의 책을 억지로 읽으려고 애쓰지는 않았습니다. 2년 차 독서가로서 스스로 독서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수준에 맞는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던 책의 경우 빨리 포기했습니다. 다음에 조금 더 성장하고 성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포기한 책은 서가 한구석에 꽂아 두었죠. 언젠가 다시 그 책을 만날 날을 기약하며 다른 책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성장을 위해서는 어려운 책, 벽돌 책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가끔은 저의 수준보다 높은 책에 도전해야만 더 빠른 스텝 업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는 독서모임을 적극적으로 이용했습니다. 함께 읽으니 고전과 벽돌 책도 끝까지 읽을 수 있겠더라고요. 독서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사피엔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싱크 어게인'과 같은 다소 두꺼운 책을 두 번에 걸쳐 읽고 필사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던 친구들이 참 많이 만날 수 있었죠. 그런 친구들에 비교했을 때 저의 작문 실력은 참 초라했습니다. 물론 재수를 하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으로 사대에 진학했던 저로서는 애초에 읽고 쓰는 과정에 관심이 없었지요. 우여곡절 끝에 국어교사로 살고 있지만, 일상에서 전혀 책을 읽지 않았고 어떻게든 글쓰기를 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읽기와 쓰기를 하지 않더라도 국어 수업을 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기에 필요성을 못 느꼈고요.
책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제가 올해 100권의 책 읽기에 성공했습니다. 100권 읽기를 성공했다고 해서 제 인생이 극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다섯 살 아이의 아빠로 주말의 대부분 시간은 아이와 함께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전과 달라진 점은 있습니다. 100권의 책을 읽기 전의 저와 읽은 후의 저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2년 전의 제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지요. 그리고 꿈이 생겼습니다. 감히 작가의 꿈을 갖게 된 것이지요.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하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저를 주눅 들게 만든 천재적인 역량을 지녔던 문재들도 포기했던 그 꿈을 말입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 꿈을 구체적으로 갖게 된 것도 독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도 여전히 책은 제 삶과 함께 할 것입니다. 기존의 독서모임을 여전히 유지할 것이고, 새로운 유형의 독서모임을 만들어 볼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내년에는 독서와 책 쓰기 관련 책을 중점적으로 읽으며 구체적으로 제가 쓰고자 하는 주제의 꼭지글을 하나씩 채우고 싶습니다. 벌써부터 저에게 주어질 2022년, 1년이란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내일 아침을, 다음 주 월요일을, 새해 첫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게 된 것도 100권의 책이 저에게 준 선물입니다. 2021년은 저에게 백 권의 책을 읽은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