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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Jan 27. 2022

방학을 맞이한 선생님들이여! 떠나라!

동료 선생님들께 드리는 겁없는 제언




 1월부터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이 등원, 와이프 출근을 위해 분주하게 아침 시간을 보냈다. 평일임에도 아빠가 대구에 가지 않고 천안에 있으니 아이 입장에서 신기하면서도 놀라운가 보다. 월요일인데 왜 대구에 가지 않았느냐는 아이의 질문에 '방학'이란 개념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아이는 아빠가 집에 있어서 기분이 좋다.


 모두가 떠난 후에 설거지를 비롯한 집 정리를 마무리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 방학 기간 동안 읽을 책도 구입했다. 원래는 아이 하원까지 천안아산상생협력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을 생각이었다. 곧 도서관은 매주 월요일이 휴무라는 사실이 떠올랐고, 플랜 B로 변경했다. 중고서점에서 책을 구입한 후에 인근 스벅으로 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평일 오전에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카페에서 읽고 싶은 책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감사했다.


 지금의 이 행복한 순간은 사진으로 남겼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안 그래도 방학 때마다 교사들 월급을 주면 안 된다, 교사 방학을 없애야 한다 등의 여론이 큰데, 괜히 방학을 맞이해서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가 욕 얻어먹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오늘도 방과후수업 및 업무 관계로 출근한 동료들이 나의 피드를 보고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스쳐갔다. 독서와 글쓰기와 같은 개인적 취향도 공동체의 목표라는 더 큰 권위 앞에서는 폄하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년에 100권의 책을 읽고, 매일 글쓰기를 하고, 독서모임을 운영했던 나의 2021년 역시 누군가에게는 거슬리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얼마나 직장생활이 편하고 일을 대충 했길래 매일 글을 쓸 수 있느냐는 비난을 간접적으로 듣기도 했다. (물론 그런 비난을 받는다고 해서 지금의 루틴을 멈출 생각은 없다. 누군가의 한 마디에 사정 없이 흔들렸던 예전의 나였으면 홧김에 독서와 글쓰기를 접고 스마트폰을 꺼내 게임을 설치했을 것이다. 그리고 타인과 세상 탓을 했겠지.)


 며칠 전 회사 다니던 친구에게도 그런 소리를 들었다. "선생들은 방학이 있어서 정말 좋겠다. 나는 1년 내도록 쉬는 날 없이 맨날 일해야 하는데." 그런데 그 친구 역시 1주일에 두 번은 쉰다. 그리고 봄이나 가을과 같이 날이 좋을 때 연가를 써 여행을 가기도 한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월급과 성과급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방학이 부러우면 너도 경영대 가지 말고 교대나 사대를 가지 그랬냐. 방학이란 제도가 최근에 생긴 것도 아닌데. 왜 본인에게 방학이 없다는 이유로 모든 사람들에게 방학을 없애야 한다는 결과적 평등의 잣대만 들이대는 것이냐."라고 애먼 친구에게 화풀이를 할 뻔했다. 사실 너는 교사라 방학이 있어서 좋겠다 정도는 워낙에 많이 듣는 이야기라 그냥 웃으면서 넘겼다.


 오늘은 교사들에게 방학이 당연하다는 말 따위를 늘어놓으려고 쓴 글은 아니다. '교사'라는 직군은 연가를 쉽게 쓸 수 없고, 겸직 허가가 되지 않으며, 어린 학생들을 상대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 인해 휴식이 필요하다, 연수와 같은 것들로 공부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등의 논리로 방학을 정당화(?) 하는 글은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만약 방학이란 제도가 없어진다면 나를 비롯한 많은 학부모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교사는 방학을 기다리고 학부모는 개학을 기다린다는 말도 존재하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 1년 내내 하루 8시간씩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노동이다. 확실한 것은 수업을 하는 것보다 수업을 받는 게 훨씬 더 힘들다. 혹시라도 학창 시절이 기억 안 나시는 분들은 성인이 된 후에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했던 교육(예를 들면 민방위 교육?) 시간을 떠올려봐라. 그렇다고 교사들에게 학기 중 연가 사용 및 겸직 허가를 허용해 주고 방학을 없앨 수도 없다. 앞으로 방학이란 제도에 대한 변화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학이 갑자기 사라지고 1년 내내 학사가 운영될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참고로 대학은 방학이 휠씬 더 길다. 하지만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



© jeshoots, 출처 Unsplash


 그럼 '방학'이란 이 제도를 교사들은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나는 1년 동안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선생님들이 방학을 맞이해 떠났으면 좋겠다. 될 수 있으면 멀리. 물론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현실적으로 멀리 떠날 수가 없다. 하지만 언젠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 돌아왔을 때 누구보다 선생님들이 방학을 통해 여행을 자주 다녔으면 한다.


 나에게 첫 해외여행은 스물여덟 살 때였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해외여행과 비행기를 타는 것은 부자들이나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해외 어디를 가더라도 비행기 요금은 200만 원이 넘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방대 사범대학 출신이라 그런지 주변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친구들도 없었다. 심지어 우리 동기들은 여행 경비에 대한 부담으로 그 흔한 졸업 여행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교사가 된 후에도 멀리 떠나는 여행은 내 삶과 크게 동떨어져 있었다. 직장인이 되었음에도 해외여행은 나의 분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국 학생들을 데리고 떠난 제주도 수학여행이 첫 해외여행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해외여행은 아니다.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니깐.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처음으로 바다를 건넜기 때문에 나에게는 제주 여행이 첫 해외여행 같았다. 실제로 처음 가 본 제주도는 무척 이국적이었다. 아이들 못지않게 나 역시 첫 비행기 탑승에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담임교사가 자신의 학급을 인솔해야 했기에 몇 번이나 비행기 탈 때 유의사항 등을 검색해서 읽어보았다. 아이들에게도 병, 라이터 이런 걸 가져오면 비행기 못 탄다고 신신당부했다.


 비록 아이들을 인솔해서 떠난 수학여행이었지만, 5박 6일 동안의 제주 여행은 지금도 내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 당시 5박 6일 동안 제주의 유명한 관광지는 대부분 섭렵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제주만의 지리, 역사, 문화에 대한 체험은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당시 책을 읽지 않던 내가 제주 여행 후에 현기영의 '순이삼촌'이란 소설을 찾아 읽었다.) 그러다 보니 은근슬쩍 그때의 제주 여행 경험은 내 수업에 반영이 많이 되었다.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지식이 지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늘 학습 내용을 우리의 삶과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언제나 최고의 동기유발 자료는 교사의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나의 경우 내 이야기를 통해 수업을 풀어나간 적이 많았다. 나와 1년을 함께 수업하면 어설픈 지인보다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학생들이 더 많이 알게 될 정도였다. 나뿐만 아니라 절친들 에피소드까지 필요하다면 모두 동원했다. 교원 평가 때 이런 멘트를 들은 적도 있다. "수업 초반에는 국어 선생님이 왜 저런 이야기를 굳이 지금 할까라고 생각하며 듣는다. 수업이 끝나갈 때 즈음 되면 선생님의 TMI가 수업 목표와 교과 내용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깨닫고 늘 소름이 돋았다." 내가 노력했던 바를 정확하게 알아봐 준 학생의 멘트를 보고 1주일 내내 기분 좋게 웃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대학 친구가 근무하던 경북 지역의 학교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마침 나의 방학이 그보다 며칠 빨라서 친구의 학교에 방문할 수 있었다. 퇴근 후에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일부러 종례 시간에 맞춰 갔다. 친구가 담당하는 반 학생들 숫자만큼 아이스크림을 사서 교실에 기습적으로 방문했다. 친구는 활짝 웃으면서 반 아이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 분이 바로 방귀 사건의 주인공이다."라고. 조금 부끄러운 과거 이야기지만 나는 학창 시절 '국어교육론'이란 중요한 전공 시간에 엎드려서 자다가 큰 소리로 방귀를 뀐 적이 있다. 그는 나의 창피했던 그 사건을 문학 또는 글쓰기 수업 때 에피소드로 방출한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만으로 모든 수업 내용을 연결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교사들에게 더욱 독서와 여행이 필요하다. 교사는 걸어 다니는 교재, 숨 쉬는 백과사전이 되어야 한다. 독서와 여행을 통해 세계관을 넓힐 필요가 있다.


 그래서 방학은 교사들에게 재충전의 시간도 되어야 하지만, 경험을 쌓는 시간도 되어야 한다. 독서는 의지만 있으면 학기 중에도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은 학기 중에 쉽지 않다. 여행을 가겠다고 학기 중에 연가를 쓰면 파렴치한 사람이 된다. 당연히 교사들 중에서 아이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면서까지 학기 중에 연가를 쓰고 여행을 갈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존재하지 않는 방학 때 여행을 떠나야 한다. 여행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 오죽하면 김민식 작가는 청년들에게 20대 때 많이 해야 할 세 가지를 '여행, 독서, 연애'로 꼽았다. 그중에서 '여행'이 성장을 도모하는 데 최고라고 평했다. 성장은 20대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많이 경험해 봐야 한다.


 교사의 여행은 나의 성장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낙수효과처럼 어떻게든 매일 만나는 학생들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때 EBS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다큐의 모든 편을 볼 만큼 열정이 있지는 않았지만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참 궁금했다. 도대체 학교란 무엇일까? 학교라는 공간을 다각도로 취재하고 연구한 EBS 제작팀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학교란 곧 '교사'라고.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절대 넘어설 수 없다. 학기 중에 최선을 다해 수업을 하고 학생들 생활 지도를 담당했던 대한민국의 많은 선생님들께서 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떠나셨으면 한다. 여행지에서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경험과 여행지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일상에서 누리지 못하는 성장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또한 낯선 환경에서 적응력과 호기심을 키울 수도 있다.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에 충실한 수업을 매년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든다. 여행은 죽어 가던 교사의 호기심을 살릴 수 있다.


 참고로 나는 서른네 살 때 처음으로 혼자서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중국에 있는 국제학교에서 근무를 하기 위해 혼자서 먼 곳까지 가야 했다. 나는 비행기 탑승 전 날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국제학교에서 비행기 티켓을 우편으로 보내주지 않은 것이다. 왜 티켓을 주지 않으냐는 나의 질문에 행정실에서는 그냥 여권 챙겨서 수속을 밟으면 된다는 그 당시 나로서는 알 수 없던 답변만을 주었다. 나에게는 공항에서 직접 수속을 하고 짐을 싣고 플랫폼에 가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모든 것이 낯설고 신선했다. 중국에 입국한 뒤에도 "중국어 할 줄 아느냐?"는 간단한 중국어 회화도 알아 듣지 못해 "I can't speak Chiness'라고 연신 외치기만 했다. 심지어 공항에서 사진 좀 찍어 달라는 중국인에게 위협을 느낀 나는 큰 목소리로 "No!"라고 외쳤다. 그렇게 중국으로 가는 첫날의 여정은 내 삶의 자산이 되었고 필요한 순간 나의 수업 교재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교사가 된 후에 여행의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사실 돈이 없다는 말은 핑계였다. 술 마실 돈만 아꼈어도 방학 때마다 충분히 해외여행을 가고도 남았다.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교사의 해외여행이 사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심지어 방학 때도 학교에 나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마인드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방학 전에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교감, 교장 선생님께 찾아가는 동료 교사들을 아니꼬운 시선으로 쳐다본 적도 있었다. 관리자들은 땡전 한 푼 보태주지 않으면서 방학 중 해외여행을 허락해 주는 데 거드름을 피우기도 했다. 나는 어이없게도 관리자도 아닌 주제에 동료 선생님들을 그런 식으로 쳐다봤던 것이다. 내가 누리지 못하니 너희도 누리지 말라는 식의 못된 심보였다. 심지어 방학 중 교직원 워크숍과 하루 일정이 겹친다는 이유로 유럽 여행을 취소한 동료도 있었다. 교장선생님의 훈화로 가득한 교직원 워크숍보다 유럽 여행이 그 선생님의 성장에 더욱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아직도 여행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유흥 정도로 생각하는 풍조가 학교에 만연한 듯하다.


 여전히 방학 중에 자주 학교에 나오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관리자도 있다. 충분한 소통 없이 학교장 재량으로 방학 중 출근을 명령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없는 방학 동안 전교직원이 학교에 있다고 한들 그게 교육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문 처리 및 행정 업무는 방학 때마다 의무적으로 출근해야 하는 관리자들만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실제로 방학 중에는 교장과 행정실장만 출근했던 학교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 물론 개학 1주일 전에는 학교에 출근해 본격적으로 다음 학기를 준비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교와 교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다. 마땅히 해야 하는 그런 시간들 정도를 제외하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살아있는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도록 교사들이 방학을 이용해 멀리 떠나는 것을 권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교사의 직간접적 경험은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관리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교사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을 응원해 주었으면 한다. 교사의 경험은 개인의 성장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전달이 될 것이니 말이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동료 선생님들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다. "1년 동안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친 선생님들이여! 방학을 맞이해 멀리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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