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식
아들이 말을 배우고 난 후부터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좋은 아빠가 되기 전에 좋은 사람이 먼저였다.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아빠뿐만 아니라 좋은 교사도 될 수 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와 힘을 주고 싶었다. 누군가의 인정이 아닌 나 스스로가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싶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태도가 곧 자존감이 아닐까?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려면 두 가지 경험이 필요했다.
첫 번째가 '성장'의 경험이다. 우리는 누구나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누군가와의 비교가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해서 조금 더 좋아졌음을 느낀다면 분명히 성장한 것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경험을 통해 성장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비록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다면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또한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결심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두 번째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이다. 다른 사람을 돕고 배려할 때 우리는 스스로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누구나 타인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어 한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도와주고 난 후의 표정을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의 그 표정은 그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선량함이다.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고 싶다는 욕망에서 나의 헌혈은 시작되었다. 정확히 2년 전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절마다 헌혈을 실천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자기계발에 이어 헌혈 역시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계기가 되었다.
2년 전 이맘때가 떠오르는가?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과 달리 코로나 초창기에 해당되었기 때문에 코로나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극심했던 시기이다. 대구 신천지 사태로 인해 대구 안의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했다.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우리 가족은 천안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혹시라도 대구에서 온 것이 들통이 날까 봐 아파트 안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했다. 이웃 주민들이 어디에서 이사 왔어요라고 물어볼까 봐 두려웠고, 대구에서 온 입주민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할까 봐 무서웠다. 게다가 목감기에 걸린 아들이 대구에서 왔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 당했을 때는 정말 참담했다. 평소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지닌 지역에 대한 혐오 정서까지 더해져 대구 시민들이 더욱 고통을 받고 있을 때였다.
학교 개학은 늦추어졌지만 나이스 시스템 개편을 하기 위해 나는 대구로 가야 했다. 업무를 마무리했음에도 대구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쉽게 가족이 있는 천안으로 향하지 못했다. 바이러스로 인해 가족이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때 우연히 예능 프로를 보고 꽁꽁 얼어 있던 내 마음이 녹게 되었다. 유퀴즈라는 예능 프로에서 대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던 의료인과 인터뷰를 한 것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한 대구를 폐쇄해야 한다는 몰지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위기의 대구를 구하기 위해 생업을 중단하고 한 걸음에 달려와 준 의료인들과 소방대원들도 있었다. 아직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따뜻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한 그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바로 휴대폰을 꺼내 의료인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 병원에 물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이온 음료를 여러 박스를 사 당시 코로나 거점 병원이었던 동산병원 앞으로 보냈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돈을 쓴 적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가 타인과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아비가 되고 난 후부터 아들에게 참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기에 그런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교 공부를 마친 나는 평생을 불우 이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가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부와 봉사는 10억 정도의 자산은 가져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 고민의 끝은 헌혈이었다. 마침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혈액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당시 대구는 죽은 자들의 도시였다. 모든 상가의 문은 닫혀 있었고 거리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같이 누군가와 엘리베이터를 탈 바에 계단으로 걸어갔던 시절이었다. 코로나 공포가 절정에 달했던 그 시국에 걸어서 헌혈의 집으로 향했다. 훈련소에서 강제로 피를 뽑고 난 이후에 스스로 자원해서 간 첫 헌혈이었다.
사실 나는 헌혈에 대한 공포심이 크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헌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수업에 빠지고 초코파이를 먹기 위해 헌혈 차에 탑승했다. 당시 타고난 혈관이 얇다는 이유로 헌혈을 거부 당했다. 어린 시절부터 팔뚝의 핏줄이 보이지 않아 혈관 주사를 맞을 때마다 고생했다. 도저히 팔뚝에 주사를 놓을 수 없을 때는 손등에 있는 핏줄에 혈관 주사를 맞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주삿바늘 때문에 고생한 트라우마가 있기에 헌혈이 무서웠다. 사실 지금도 헌혈하러 가는 길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게다가 가장 최근 헌혈 때 여러 번 바늘에 찔려 팔목에 멍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헌혈 주사가 무서웠다. 심지어 혈액 검사를 위해 손가락 끝을 찌르는 바늘조차 두려웠다.
하지만 헌혈은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준다. 내 두 눈에 내 피가 빠져나가고 있음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피는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생명이 위급한 누군가의 몸에 들어갈 것이다. 나의 피가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타인과 연결되어 그에게 큰 도움을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퇴근 후에 헌혈의 집을 방문했다.
사실 어제 헌혈을 하려고 계획했으나, 개학 첫 날인 어제는 너무 피곤했다. 건강한 피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오늘 아침 늦게까지 푹 잤다. 헌혈 후에는 과격한 운동을 삼가야 해서 헌혈의 집이 있는 동성로까지 달렸다. 집과 가까운 대구 동성로에는 헌혈의 집이 네 곳이나 있어 여러 군데를 번갈아가며 방문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최근에 방문했던 중앙로 헌혈의 집에 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헌혈의 집에 들어가니 간호사분들께서 놀라셨다. 넉넉하게 물을 마시고 숨을 충분히 고른 다음 헌혈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그리고 그분들은 핏줄이 거의 보이지 않는 나의 팔뚝을 보고 두 번째로 놀라셨다. 젊은 간호사는 이것은 내가 찌를 수 있는 팔뚝이 아니라며 연배가 있으신 분께 도움을 청했다.
그분 역시 내 팔뚝을 보고 약간 긴장을 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분의 긴장을 풀어드리고자 여러 번 찌르셔도 되니깐 편안하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을 덧붙였다. "사실 지난번에 이곳에서 주삿바늘에 어려 번 찔려서 팔뚝에 멍이 들었어요. 그래도 저는 중앙로 헌혈의 집이 좋아 일부러 여기에 다시 왔습니다. 오늘도 실수하셔도 괜찮으니깐 편안하게 찔러 주세요." 베테랑 간호사께서는 왜 그런 말을 해서 사람 마음을 심란하게 하냐며 주삿바늘 찌르는 것도 기세에 달려 있다고 나에게 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잠시 후 짧은 심호흡 끝에 기세 좋게 내 팔뚝에 헌혈 바늘을 꽂으셨다. 역시나 오늘도 아팠다. 그렇게 나는 오늘 태어나서 열 번째로 헌혈을 하게 되었다.
하필 헌혈 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헌혈 중이니깐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고 하고 끊었다. 헌혈을 마치고 난 후에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며 오늘 헌혈을 하며 느꼈던 점에 대해 짧게 인스타에 남겼다. 인스타에 글을 쓰고 있는데 휴식 시간이 끝나서 집에 가셔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다. 알겠다고 답한 후에 그 자리에 앉아서 인스타 글 작성을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는 학기 초라 바쁘고 힘들 것인데 왜 헌혈을 했냐고 성화가 나셨다. 나처럼 약한 아이가 어디 피를 뽑을 게 있냐고 속상해하시던 엄마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엄마, 걱정 안 해도 된다. 내가 헌혈을 했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다는 증거다. 헌혈하기 전에 이것저것 검사를 해서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헌혈도 못 한다. 그래도 아들이 건강하니깐 언제든지 헌혈을 할 수 있는 거다. 앞으로도 헌혈을 하기 위해 건강에 더욱 신경을 쓸 거니깐 좋은 거 아니가. 헌혈 앞뒤로는 술도 못 마시니깐 엄마한테도 좋지. 엄마는 아들 술 먹는 것도 속상하잖아. 그지?"
아들이 헌혈했다는 말에 속상해하시는 엄마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래서 헌혈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고자 하면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그 수많은 이유들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마음을 먹은 오늘 헌혈을 실천한 자신에게 무척 뿌듯하다. 헌혈이란 행위를 통해 분명히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다음에도 아마 무서운 주삿바늘이 생각이 나 헌혈을 망설일 것이다. 하지만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그 기분을 또다시 느끼고 싶어 퇴근 후에 헌혈의 집에 다시 방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