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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Mar 22. 2022

부모가 된다는 무게감

엄마 수업, 법륜

 고민 끝에 친구가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나는 그에게 작년부터 적극적으로 육아 휴직을 권했다. 그는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담임만 내리 6년을 했다. 집에는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이 있었다. 집과 직장의 거리가 멀어 아무리 일찍 퇴근한 날에도 밤 8~9시가 되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야자 감독을 하거나 학생들 자소서라도 검토했던 날은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은 평생에 한 번뿐이었지만, 그는 6년째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함께 호흡했다. 직장에서 그가 학생들의 꿈을 위해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 교실을 지킬 때마다 그의 아내는 혼자서 갓난아기를 돌보며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친구 입장에서도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늦게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이 야속했을 것이다. 아내 역시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오는 남편의 고단함을 챙겨주기에 힘에 부쳤다. 온 마을이 돌봐 주었던 과거와 달리 혼자서 하루 종일 갓난아기를 돌보며 녹초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친구는 교직 생활 중 처음으로 휴직을 결정했다. 누군가 돈은 벌어야 하기에 그의 아내가 복직했다. 그는 교육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고 1년 동안 직접 아이를 돌보기로 결정했다. 만 2세인 나의 아이를 키우는 일이 학교에서 다수의 고등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달프고 체력적으로 힘이 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들과 함께 할 1년이란 시간 앞에서 설레어했다. 누구보다 그 1년을 의미 있게 잘 보내고 싶어 했다. 나는 휴직 기간을 통해 더 나은 아빠와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친구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마침 블로그 이웃 중에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며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쓴 분이 계셨다. 그분은 얼마 전 1년 동안의 육아 휴직 기간을 정리하는 글을 발행했다. 그가 1년 동안의 휴직을 총평하며 첫 번째로 얻은 것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엄마 없이 아빠와 둘만 지내도 아이가 안정적인 심리 상태'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 겨울 방학 동안 나는 아들과 많이 친해졌다. 덕분에 아내에게 2주 동안의 연수 기회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불가능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아들이 엄마 없이 긴 밤을 맞이하는 것이다. 아내에게 1박 2일의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지만, 여전히 엄마 껌딱지인 아들은 엄마의 외박을 허락할 수 없다. 그래서 아이가 엄마 없이 아빠와 둘만 있어도 안정적인 정서와 태도를 갖게 되었다는 이웃분의 글이 참 부러웠다. 1년 동안의 육아 휴직 기간을 통해 지금 이 시절의 아이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어 좋았다는 그의 자랑이 부러웠다. 1년 동안 그 집안의 주 양육자는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다. 주 양육자는 아이의 사랑을 주도적으로 받을 수 있는 특권을 마땅히 누릴 수 있다.


 그에게 육아 휴직 예정인 친구에게 책 선물을 하고 싶다고 전달했다. 1년 동안 읽었던 육아 및 아이 교육 서적 중에 좋은 책들을 추천해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드렸다. 감사하게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댓글을 통해 총 6권의 책을 권해 주셨다. 그중 첫 번째로 권한 책을 바로 친구에게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보내주었다.


 블로그 이웃께서 추천해 준 첫 번째 책은 법륜 스님의 '엄마 수업'이었다. 아직 읽어보지도 않은 책을 친구에게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저자가 '법륜' 스님이었기 때문이다. 7년 전 '행복한 출근길'이란 그의 책을 읽고 직장생활에 임하던 불안했던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그가 진행하는 '즉문즉설' 팟캐스트를 들으며 결혼과 육아 생활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친구에게 책을 선물해 준 후에 나 역시 똑같은 책을 구했다. 제목은 '엄마 수업'이지만, 나는 부부가 함께 아이 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만큼 '엄마'를 '부모'로 바꾸어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 meneya, 출처 Pixabay


아이에게만큼은 화살을 겨누지 말자


 책의 프롤로그 제목은 '여자가 아닌 엄마로 산다는 것'이다. 아이는 본 대로 물드는 존재이니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주 양육자인 엄마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만약 아이가 사춘기 때 문제 행동을 한다면 부모가 잘못 키웠기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모든 문제는 자식 탓이 아니라 부모 탓이라는 게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얼마 전에도 나는 큰 실수를 했다. 아내가 나를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았다고 오해하며 아이 앞에서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면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가족에게는 내 성질대로 퍼부었다. 물론 1~2시간만 참으면 헤어지는 지인과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아내의 존재감은 차원이 다르다. 아내에 대한 기대감이 큰 만큼 기대에서 어긋날 때마다 무척 화가 났다. 화가 났던 그 순간만큼은 나를 분노하게 만든 상대를 원망했고 미워했다.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으면 내 안의 화를 주체하지 못해 어리석게 행동했던 나 자신을 원망했다. 나의 기질을 고치기 위해 한 번만 더 가족 앞에서 화를 내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성질머리대로 행동을 해 놓고는 송곳으로 스스로를 찌르지 못했다. (사실 화를 냈던 그날, 아이를 재우고 난 뒤에 송곳을 찾으려고 했으나 아이와 함께 잠들어버렸다.)


 책에서는 인상적인 사례가 나온다. 남편의 바람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았던 부인의 이야기다. 아내는 자신도 모르게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을 아이에게 풀었다. 아이 앞에서 서음없이 남편 험담을 했다. 아이는 반항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이 되었고,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와 싸우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이런 가족 이야기를 들으면 바람을 핀 남편을 비난할 것이다. 남편이 원인 제공자인 것은 맞다. 사회적으로도 당연히 남편이 비난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원치 않았던 사건은 일어나 버렸다. 이런 상황에도 아이 곁을 지켜야 할 주양육자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불교계에서는 제1의 화살이란 용어가 있다. 가령 남편의 바람이란 사건은 제1의 화살이다. 사건은 이미 일어났고,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아내는 제1의 화살을 맞으며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본인의 선택이다. 제1의 화살을 계속해서 그녀는 스스로에게 겨누며 고통을 증대시킨 것은 본인의 몫이다. 게다가 자해를 넘어서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제3의 화살을 날렸다.


 사실 평생 화를 내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일상을 함께 하고 각자를 동일시하기 쉬운 가정 안에서는 의도하지 않았던 사건으로 인해 '분노'라는 감정을 생길 수도 있다.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사건은 이미 발생해 버렸다. 나는 이미 제1의 화살을 맞았다. 중요한 것은 제1의 화살을 맞고 난 후의 나의 태도이다. 이후에 분노라는 감정을 계속 안고 갈 것인가, 아님 털어 버릴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다. 누군가의 언행을 계속 마음에 담아 스스로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 또한 부모로서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세상에서 가장 여리고 부모만 믿고 있는 아이 앞에서 표출하는 행동만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녀에게 제3의 화살을 날려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식은 아무 죄가 없다.


 이 책을 읽고 또다시 결심한 바가 있다. 어떤 이유든 아이 앞에서는 화를 내지 않겠다고 말이다. 내가 화를 내는 만큼 아이의 정서는 망가지고, 그 업보는 추후에 아빠인 내가 반드시 받게 된다는 진리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부모가 화를 내는 것은 아직 어린아이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이자 위협이다. 아이에게 큰 심리적인 상처를 준다. 적어도 부모라는 사람은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만약 또다시 아이 앞에서 화를 낸다면 나 스스로에게 벌을 줄 것이다. 송곳으로 허벅지 찌르는 짓은 차마 실천하지 못할 듯하고, 혼자 빈 방에 들어가 1천 배 절을 할 것이다. 천 번의 고개를 숙일 때마다 나의 모나고 어리석은 행동을 반성하고 가족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절을 할 것이다.


© shelbymary_, 출처 Unsplash

최고의 자식 교육은 부부가 잘 지내는 것


 나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36살에 결혼을 했다. 남들이 결혼을 하니깐 나도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감만 컸지 스스로 가정을 꾸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본 적은 없었다. 아빠가 된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혼이 늦었기 때문에 빨리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진지하게 아빠로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에 대해 고심한 적이 없었다.


 결혼하기 전에 나는 아내에게 손에 물 하나 묻히게 하지 않겠다는 고전적인 약속을 했다. 결혼 후에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당시에는 집안일을 내가 도맡아 하겠다는 실천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한 생명을 돌보는 일은 가사 업무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 부부 모두 아이만 쳐다보느라 서로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게다가 내가 아내에게 맞추기보다는 그녀가 나에게 맞춰 주기를 바랐다. 그녀가 내 마음과 같기를 바랐고 나의 헌신을 인정해 주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나와 같을 수는 없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내를 나와 동일시했고, 그녀가 나의 바람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마다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직장 생활과 육아를 함께 하느라 내 시간이 전혀 없다며 자주 화가 났었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있는 아내가 있었기에 티를 내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기꺼이 나의 시간을 아이에게 쓰겠다는 약속이다. 아빠로서 아이를 돌보는 것은 선택적 의무가 아닌 절대적으로 내가 해야만 하는 역할이었음에도 나는 나의 개인 여가 시간이 없다는 것을 속상해했던 철없던 아빠이자 어른이었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둔 제로섬 게임 앞에서 아내와 다툴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무엇보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자라기 위해서는 부부가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아빠로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기 혁명도 재테크도 육아 교육도 아닌 아내와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었다. 내 뜻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아내에게 성질을 부리는 것은 최악의 행동이었다. 아이는 아기 시절부터 나의 분노 표출을 지켜봐 왔고, 그때마다 분명히 감정적으로 불안해했을 것이다.


 아이와 교육을 이유로 아내와 잘 지내는 척 연기해서도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연히 갈등을 조장하지 않기 위해 서로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것 또한 안 될 것이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서로에 대한 애정 없이 건조하게 대하는 것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린다. 결국 자녀를 위해서라도 부부간에 잘 지내야 한다. 부부가 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자녀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아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면 그의 어머니인 아내를 훌륭한 사람으로 대해 줘야 한다. 나 역시 내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내이자 엄마라는 마음으로 그녀를 존중할 것이다. 그것이 그 어떤 일보다 아빠로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다. 이와 관련해 법륜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부가 사이가 좋으면 아이는 마음이 편안해져서, 세상에 나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51쪽


아이에게 좋다면 300배가 아니라 3천 배를 하라고 해도 "네"하고 마음을 내는 것이 엄마예요. 자식이 좋아진다는데 남편 아니라 그 누구한테라도 마음을 숙일 수 있어야죠.

138쪽


아이와 함께 대천해수욕장

다정함과 단호함을 동시에

 

 부모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자세는 나와 아이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아이를 나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면 그에게 집착하게 된다. 물론 자식이 어릴 때는 헌신적으로 아이를 돌봐주어야 한다. 하지만 자식이 성장하고 자아를 찾아갈수록 한 발자국 떨어져서 지켜보고 응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결혼 전에 남자아이 셋을 키우는 집에 방문한 적이 있다. 어른 세 명이서 밥그릇을 들고 아이 셋을 따라다니며 밥을 먹이는 모습을 보았다. 속으로 나는 절대로 아이를 저렇게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밥그릇을 들고 아이를 쫓아다니고 있다. 오히려 아내가 나보다 더 냉정하게 밥상머리 교육을 지도하려 한다. 나 역시 식사는 식탁에 앉아서 가족과 함께 먹는 거라고 아이에게 가르치고 있다. 한 번 말한다고 해서 아이가 말귀를 당장 알아듣지는 않는다. 그 역시 자신의 욕구가 있기에 지금 당장 밥 먹는 것보다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몇 번 더 아이에게 식탁에 앉아 밥 먹으라고 알려준 다음에도 아이의 행동에 변화가 없으면 아이 밥을 치워야 한다. 때로는 그런 단호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막상 아빠가 되어 보니 밥그릇을 치운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럼 내가 아이 밥그릇을 치우지 못하고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닌 이유가 무엇일까? 아이를 위해서? 아니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는 게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즉, 내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에 6살 아이를 쫓아다니며 직접 밥을 떠먹여 주었다. 나를 위해 행한 나의 행동은 결국 아이의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귀찮은 마음에 아이의 잘못된 행동 앞에서도 눈을 감아 버리고 만 것이다.


 책에는 아이가 떼를 쓴다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공감 가는 사례가 하나 나온다. 가령 백화점에서 장난감을 사 달라고 아이가 떼를 썼다고 가정해 보자. 보통은 아이의 올바른 경제관념을 위해서 계획에 없는 소비는 들어줄 수 없다고 아이를 설득할 것이다. 이것은 아이를 위한 부모의 결정이다. 그런데 아이가 떼를 쓰며 부모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든다. 결국 부모는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자 못 이기는 척 아이의 요구를 들어줘 버린다. 그 과정에서 더 최악은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야단을 친 다음 종내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다.


 아내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미리 합의를 할 필요가 있다. 합의한 사안에 대해서는 먼저 부모가 일관성 있게 행동해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가령 올바른 식사 예절 습관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부모부터 스마트폰이나 TV를 보면서 식사하는 습관을 버려야 할 것이다. 아이에게 몸에 나쁜 가공 식품을 먹이지 않겠다고 정했으면 부모부터 식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아이에게 바라는 점을 나부터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평소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하다가 지도가 필요한 경우에는 단호하게 행동할 수 있다.


여행 때 자신의 짐은 스스로 책임지기


너의 인생을 살아라


부모는 절대로 자식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학교 현장에서 확실히 느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하소연을 했다. 본인들이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임교사에게 대신 부탁했다. 심지어 자녀를 외면하는 부모도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집착한 결과가 자녀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가 자식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부모를 위협하는 자녀에게 도움을 준다는 명목으로 간섭을 한다. 아이 입장에서는 반복해서 자신을 옥죄는 부모로부터 억압받는다는 심리를 느낀다.


심지어 남녀 공학 학교에서 담임교사에게 자식이 연애할 경우 그 사실 여부를 꼭 전달해 달라는 학부모도 꽤 있다. 될 수 있으면 학창 시절에는 공부에만 전념해야 하니 연애를 못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행여나 자식이 남자 친구 또는 여자 친구를 잘못 사귀어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부모들도 많다. 자식이 조금의 상처라도 입을 까 봐 자식을 품 안에서 놓아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항상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뜻대로 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잘못 탄 기차가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기도 한다. 아이에게 실패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야 한다. 친구 관계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처절한 이별의 순간도 겪어봐야 성장할 수 있다.


나 역시 아들을 성장하는 만큼 그에게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강요할까 봐 걱정이다. 아들이 나와 다른 사람이고, 나에게 나의 인생이 있듯이 그에게는 그의 인생이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물론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아빠로서 최선을 다해 아이를 보살필 것이다. 현재 아내와 조율 중인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우리 부부가 합칠 수 없다면 내가 대구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 퇴근 이후의 나의 시간을 온전히 아이를 위해 쓸 각오가 되어 있다. 그리고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아이의 삶에서 한 발자국 물러날 것이다. 나 역시 나의 인생을 살면서 아이의 삶을 지켜보고 때로는 응원할 것이다. 아이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행동하지 않더라고 아이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선을 놓지 않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을 신뢰할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


자기 발로 서고 자기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하는데 오늘 우리 인생은 그렇지를 못해요. (중략) 부모가 이렇게 중심도 없이 살면서 자식한테는 요구하는 게 참 많습니다.

147쪽


 누구나 자식이 자립할 수 있는 성인으로 잘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부터 삶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에게도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세상의 요구대로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게 될 것이다. 네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핑계로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며 자식을 괴롭힐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해서는 안 된다. 이 간단한 사실을 가족이라는 범주 안에서는 자꾸 망각하게 된다. 부모는 아이 스스로 자신의 적성과 취향을 찾을 수 있도록 그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믿고 봐주어야 한다.


 고3 담임을 맡게 되면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올해 1년이란 시간이 너희들의 삶을 결정하지 않으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한다. 열아홉 살 때 아이들이 정하는 학과와 수능 성적이 곧 그들의 미래는 아니다. 아이들에게 너희들의 삶의 틀을 잡아가는데 아직 10년이란 시간이 남았다고 말해준다. 이십 대에 다양한 일을 시도해 보고, 새로운 것에도 도전해 보고, 그 과정에서 고생을 하다 보면 자신의 적성과 취향을 찾을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내 자식에게도 적용해야 할 듯하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 것보다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수백 억을 벌어도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며 자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며, 길거리에서 붕어빵 장수를 하면서도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우리 아이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하루가 나에게 선물처럼 주어졌음에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아끼는 마음은 삶의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고, 나답게 살아가는 길로 인도해 줄 것이다. 물론 부모인 나부터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니 말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엄마들 입장에서야 의무와 책임에 대한 부담으로 불평등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제로 이런 헌신적인 사랑 때문에 아이들은 아빠보다 엄마를 더 따르고 찾는 겁니다. (중략) 늘 보살펴주고 안아 주었기 때문에 엄마를 그리워하고 놀라거나 넘어져도 보통은 '아빠'하지 않고 '엄마'하고 부릅니다.

143쪽


 스님은 자녀 교육에 있어 직설적으로 아빠보다는 엄마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엄마가 주 양육자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흔이 된 지금까지도 정서적으로 아빠보다 엄마를 더 가깝게 느끼고 있다. 웹툰 '신과 함께'에서 사고로 생매장당했던 군인이


 차가운 땅 속에서 목숨이 끊길 때까지 '아빠'가 아닌 '엄마'를 찾았을 때 우리 모두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자녀와 관련해 일차적인 책임이 무조건 엄마에게 있다는 스님의 말씀이 세상의 많은 엄마들에게 참 부담스럽게 다가갈 듯하다.)


 우리 아들 역시 어떤 순간에서도 엄마를 찾는다. 나와 둘이 있는 순간에도 아빠는 세계만큼 좋지만, 엄마는 우주만큼 좋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아들에게 엄마는 신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우리 집 역시 대부분의 가정처럼 아내가 주 양육자이다. 예전 세대와 다르게 부부가 함께 육아를 공동으로 담당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자가 육아만큼 훨씬 더 많은 역할을 맡고 있다. 그래서 이 책 제목 역시 부모 수업이 아닌 엄마 수업일 것이다.


 월요일이면 출근을 위해 대구로 가야 한다. 금요일 저녁까지 아이는 엄마와 주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이가 엄마와의 시간을 절대적으로 원하기 때문에 내가 아이를 데려갈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인 내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주 양육자인 아내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주는 것이다. 엄마의 마음이 편안해야 아이의 정서도 편안해진다. 물론 아내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감정적으로 대한 적이 없다. 한결같이 따뜻한 태도로 아이를 대해 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나 역시 앞으로도 아내가 엄마로서 아이에게 한결같은 사랑과 지지를 표현할 수 있도록 아빠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편 나는 아빠이고 주말에만 아이를 돌보지만 나 역시 주 양육자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었다. 책에 주로 등장하는 엄마라는 단어 대신 부모 또는 아빠라는 단어로 바꾸어서 글 내용을 받아들였다. 아무리 스님의 말씀처럼 아이의 미래에 엄마의 역할과 태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아내가 엄마로서 자녀 교육에 갖는 부담을 나눠 가지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또한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들의 존재로 인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아들 덕분에 책을 읽게 되었고, 글을 쓰게 되었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게 되었다. 평생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배움을 지향하게 되었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방법은 나부터 좋은 인격을 지닌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습관을 바꾸고, 스스로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하루를 선물처럼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한 아이의 아빠로서 내가 최선을 다하는 길이다. 아이에게 바라는 삶을 내가 살아가는 것, 아이가 그런 부모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 가장 훌륭한 부모 교육이 아닐까.



엄마 수업 / 법륜 /휴 / 201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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