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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May 19. 2022

아이 앞에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된다면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오은영

© ddimitrova, 출처 Pixabay


아빠가 되어 성숙한 사랑을 배우다


금요일 퇴근 후 기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저녁 7시 30분이다. 지하철을 타고 동대구역에 가서 다시 기차를 타고 천안아산역까지 간다. 다시 전철을 타거나 걸어서 집으로 간다. 집까지 가는 여정은 조금 피곤하다. 게다가 금요일은 닷새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피로도가 가장 많이 축적된 날이기도 하다. 피곤한 상태에서 아이의 놀고자 하는 요구를 모두 받아주면 더욱 힘들어진다. 하지만 아이가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권리 또한 마땅하다. 아이는 아빠와의 시간을 되찾기 위해 무려 5일을 기다렸다.


내가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아빠로서 아이가 아빠와 함께 할 권리를 지켜주어야 한다. 아이 입장에서 직장 생활과 주말부부는 나의 사정일 뿐이다. 내 숙제가 아이의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아이의 권리를 지켜주겠다고 오버하다 보면 '욱'할 상황이 생긴다. 몇 년 동안 나를 관찰하며 내 감정 주머니는 체력이 떨어질 때 급격히 작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와의 만남을 앞두고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아이를 만날 수 있도록 애쓰기로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금요일 하루 전 날인 목요일은 약속을 잡지 않는다. 그날은 퇴근 후에 푹 쉬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해 두었다. 혹시 야자 감독이 걸렸을 때도 동료에게 부탁을 해서 다른 요일로 변경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금요일 저녁에 최상의 몸 상태로 만들기 위해 세팅해 놓은 일종의 시스템이다. 금요일 저녁도 간단히 동대구역에서 해결한다. 집에 도착한 후에 저녁 식사를 하고 나니 소화를 시키는 데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다. 그럼 아무래도 몸이 퍼지게 되고, 아이와 몸으로 놀이를 할 때 살짝 힘겨움을 느꼈다. 배고프지도 배부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렇게 나의 감정 주머니를 넉넉하게 채워 놓으면 어떤 변수에도 가족에게 감정적으로 대하거나 욱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나는 성숙한 사랑을 배우게 되었다. 사랑은 타인에 대한 감수성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욕구를 최우선으로 여겼다. 말만 사랑한다고 했지 중요한 순간에는 결국 나의 욕구를 앞세웠던 것이 사실이다. 처음으로 나의 욕구보다 상대의 욕구를 철저하게 우선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아들을 통해 성숙한 사랑을 배운 것이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축복이지만, 자기계발적인 면에서도 나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아이와의 육아를 통해 내가 훨씬 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욱하는 부모부터 달라져야 한다


최근에 지인을 통해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라는 책을 소개받았다. 삼 형제를 키우던 지인은 늘 둘째 아이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 그는 첫째와 셋째 사이에서 난폭한 행동을 자주 하던 둘째 때문에 욱한 적이 많았다. 그는 자주 둘째 아이에게 화를 냈고, 그럴수록 둘째 아이는 엄마에게 더 집착했다. 막내가 엄마와 교감하는 것을 참지 못했고 기를 쓰고 막았다. 그런데 최근에 둘째와 사랑스럽게 서로 꼭 안고 있는 지인의 사진을 SNS를 통해 보게 되었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더니 철이 들었고 성장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지인은 둘째 아이보다 자신이 더 성장했고 바뀌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나에게 둘째 아이와 관계가 좋아진 비결로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라는 책을 선물해 주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아이 앞에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욱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아이 앞에서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준 날은 후회와 자책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때로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아이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다면 나부터 변해야 한다. 내가 변해야 상대도 변하고 우리 가족도 변한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알고 싶었다. 육아에 어려움이 있다면 나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천천히 되돌아 보고 나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면 부모부터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개선점을 찾으려고 애써야 한다. 아무리 개정의 여지가 없는 문제 학생이라도 먼저 시도하고 노력해야 하는 사람은 교사다. 어른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보통의 부모들은 자녀 앞에서 더러 '욱'하는 경우가 있다. 지나고 나면 별 일 아닌 일도 그 당시에는 얼굴이 벌게져서 고함을 지르고 악을 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자녀 앞에서 '욱'하는 행위는 옳지 않고 자녀의 성장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욱'의 본질을 생각하면 판단하기 쉽다. 상대가 아이든 배우자든 직장 동료이든 간에 욱의 본질은 상대를 굴복시키겠다는 뜻이다. 나의 감정을 상대에게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이고, 내 뜻대로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의지가 바로 '욱'이다. 그런 점에서 욱의 본질은 이기고 지고의 싸움이고 상대를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겠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왜 아이가 꼭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교사인 나는 이렇게 질문을 바꿀 수도 있겠다. 왜 학생은 담임교사의 말을 반드시 고분고분하게 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무리 자식이라도 아이와 나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다. 아이 또한 하나의 인격체로서 독립성을 발휘하고 싶어 한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가 하자는 대로 무작정 내버려 두라는 말은 아니다. 아이가 내 뜻대로 쉽게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자녀를 바라보는 기본 태도가 되어야 한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다음으로 교육에 있어서 조급하면 안 된다. 아직 어린아이기 때문에 어른인 내가 끈기를 갖고 여러 번 가르쳐 주어야 한다. 감정을 넣어 혼내는 게 아니라 가르치겠다는 마음으로 훈육을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빨리 바뀌기를 보채서도 안 된다. 훈육 뒤에는 아이의 변화와 성장을 오랜 기간 기다려주어야 한다. 육아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당연한 것을 '참아 준다'라고 받아들인다며 언젠가는 반드시 욱하게 된다. 보통 부모들은 세 번까지는 참는다. 하지만 아이가 같은 잘못을 네 번째로 하게 되면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른다. 도대체 그 세 번의 기준이라는 게 누가 정해준 것인가. 기본적으로 교육을 상대의 잘못을 참아 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참아준다는 말은 마치 내가 너를 위해 큰 희생을 하고 있다는 말과 유사하다. 언젠가 나 스스로 정해 놓은 인내심의 한계점에 도달하면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아무리 이성적으로 친절하게 잘 가르친다고 해서 아이가 "어머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잘못 행동했군요. 앞으로 그러지 않겠습니다."라고 쉽게 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가르친 다음 그의 변화를 기다려야 한다. (이는 부모로서뿐만 아니라 교사로서도 가져야 할 마인드이다.) 그래서 교육은 어려운 것이고 위대한 것이다.



자녀의 인성 교육을 위해서는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차분하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남편과 아빠가 되고 난 후에 내 감정 주머니가 이렇게 작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늘 옳고 너는 틀렸다는 마인드가 문제였다. 이런 태도가 습관이 되어 버리면 이 세상에는 욱할 일이 정말 가득한 곳이 되어 버린다. 물론 불합리하고 부당한 사건에 대한 공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과연 일상에서 그렇게 화를 많이 내며 살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나의 가족들에게? 이 책을 통해서 의식적인 '자아성찰'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만들고자 하는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잠들기 전에 가족이 돌아가며 오늘 하루 중 잘못된 일이나 후회가 되는 일이 서로 말하는 것이다. 아직 만 4살인 아들이 그 날 자신이 잘못한 일이나 후회되는 일을 부모 앞에서 잘 표현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는 없다. 그래도 아이에게 충분히 취지를 설명하고 나부터 실천할 것이다. 이런 생활 속의 자기반성 습관은 우리 가족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책에는 못 참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사례 별로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다. 당장 안 해주면 난리를 피우는 아이, 제 뜻만 고집하고 누구 말도 듣지 않는 아이, 밀고 때리고 던지고 침을 뱉는 아이, 공공장소에서 부모 말을 듣지 않는 아이, 부모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말대답하는 아이, 아무리 달래도 징징대는 아이, 빨리 움직이지 않는 아이, 안 자고 안 먹는 아이, 똑 부러지게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아이,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무기력한 아이에 대한 사례가 파트 2와 3에 걸쳐서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친절하게 못 참는 아이를 대하는 법과 욱이 치미는 상황에서의 해결책이 나와 있다.


 그런데 여러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솔루션이 있다. 바로 부모가 욱하지 않는 것이다. 보통 부모들은 자녀들의 반복되는 문제 행동 앞에서 결국 감정 통제를 하지 못하고 화를 내게 된다. 하지만 부모는 늘 기억해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것을. 부모를 보고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10년 전 즈음에 교실에서 너무 험하게 말을 해서 주변 친구들을 불편하게 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 문제를 갖고 부모와 상담을 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어머님께서는 상냥하게 담임교사의 전화를 받으셨다. 대화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 학생의 보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생은 왜 담임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궁금해 하는 듯했다. 그때 어머님께서 수화기를 멀리 대고 아이에게 험한 말로 저리 가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일상에서 엄마가 딸에게 사용하는 언어를 들었다. 왜 그 아이가 학교에서 감정 표현을 험하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를 보고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조금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 욱을 하면 아이 역시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부모가 아이를 무섭게 대하고 화를 내서 아이의 행동을 바꾸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무서운 부모의 눈을 피하기 위해 변한 척 할 뿐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이 되면 언젠가 아이의 감정 주머니는 넘치게 되고 결국 안 좋은 방향으로 폭발할 수 있다. 부모로서 아이가 좋은 인성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 책에서 단 한 문장을 내가 얻어갈 수 있다면 다음 문장이다. 가장 좋은 인성 교육은 부모가 욱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감정을 배우고, 부모가 보여주는 행동을 통해 배운다. 열 번 중에 아홉 번을 어른으로서 친절하고 상냥하게 잘 대해주어도 단 한 번을 실수로 욱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낸다면 아홉 번 잘 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버린다. 부모가 되는 길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이 곧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다. 평생 동안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배우고 적용하고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 책을 읽으며 아이 앞에서 행했던 수많은 나의 실수들이 떠올랐다. 나는 왜 이런 육아 서적들을 조금 더 빨리 일찍 읽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렇다고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한 번의 실수로 내 아이의 인성이 삐뚤해지고 내 아이의 미래가 엉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부모로서 나의 미성숙함도 아이에게는 또 다른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마음가짐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란 없다. 완벽한 부모도 없다. 그저 현재 위치와 상황에 맞추어 아이 교육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꼭 기억하고 실천하고 싶은 문장들을 언급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어제보다 오늘은 더 성장한 부모가 되고 싶은 모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나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욱하지 않겠다.
아이는 절대로 예쁘게 말을 듣지 않는다.
가르친다고 혼내는 것은 가르침이 아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서 다짐해야 할 세 가지


1. 아이 말을 중간에 끊지 마세요.

2.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 주세요.

3. 여러 사람 앞에서 나무라지 마세요.

4. 때리지 마세요.

5. 그렇다고 버릇없이 키우진 마세요.

6. 지키지 못할 약속은 절대 하지 마세요.

7.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대신 해 주지 마세요.

8. 자녀에게 사과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9. 아이가 "엄마 아빠 정말 미워"라고 화낼 때 너무 속상해하거나 같이 화내지 마세요.

10. 아빠들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양보다 질을 더 신경 쓰세요.


오은영 박사의 부모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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