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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Jun 17. 2022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망쳐버린 나의 시간들도 받아들인다는 것

© tsaichinghsuan, 출처 Unsplash

 늘 해오던 일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운동하기 정말 힘든 날이 있다. 오늘이 나에게는 그러한 날이었다. 보통 새벽 6시에 일어나서 1시간 정도 헬스장에서 스트레칭 및 근력 운동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오늘은 의도적으로 7시 20분까지 누워 있었다. 평소처럼 6시 즈음 눈이 떠졌지만 일부러 잠을 더 청했다. 어제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평소에 늘 마시듯이 소주 두 병을 마시고, 7시간 이상 잠을 잤더라면 거뜬하게 새벽 6시에 일어나 운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는 그러하지 못했다. 올해 육아휴직에 들어간 친구를 격려(?) 해주기 위해 직장에서 1시간 30분을 이동해 친구 집까지 방문했다. 또 다른 지인이 공자의 술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량주인 '공부가주'를 갖고 왔다. 친구의 사랑스러운 아들을 함께 돌보며 공부가주를 한 잔씩 마시다 보니 항아리 속 술이 모두 사라졌다. 아이를 재우고 난 후에 소주로 2차가 시작되었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술을 마셨고,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은 너무 즐거웠고 소중했다. 지금도 공부가주의 맛이 떠오를 만큼 술의 향과 맛 그리고 분위기까지 훌륭했다. 대신 오늘은 술자리와 지인들과의 만남이라는 즐거움에 대한 대가로 새벽 운동을 포기해야 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억지로 일어나 새벽 운동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지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술 마신 다음 날에 하는 무리한 운동은 심장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음주 후 운동은 삼가해야 한다고 했다. 운동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늦게까지 잠을 자야 하는 이유로 내 머릿속이 가득 찼다. 나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학생들 앞에 서야 한다는 상위의 명분을 떠올리며 기꺼이 늦잠을 청했다.


 늦잠을 자고 나니 새벽 운동을 하지 못했고, 정신없이 출근길에 나서다 보니 영어 회화 공부도 시도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에 늘 하던 산책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건너 뛰었다. 게다가 오늘은 직장에서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던 날이다.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화를 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코로나 시대 이후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화를 낸 날이다. 역시 담임교사의 삶은 만만치 않다. 비담임 시절보다 3배 정도는 더 힘들다.) 학생들을 훈육하는 과정에서 욱하는 감정을 넣는 순간 교육적인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을 늘 유념하며 학교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오늘은 상식 밖의 행동을 보여주었던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상식이다. 상식은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범주로 구분된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마땅한 행동일 수도 있다.) 결국 버럭 화를 내며 꾸지람을 했다. 교무실에서도 흥분된 상태로 있자 동료 선생님들께서 그런 나를 공감하고 위로해 주었다. 그렇다고 마음이 개운하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니 어제 술을 마셨기에 오늘 피곤했고, 따라서 내 감정 주머니도 평소보다 더 작아졌을 것이다. 평소의 온화한 마음 상태였다면 화를 표출하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엄중한 목소리로 학생들을 지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니 무엇 하나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런 날은 삶에 대한 만족도도 매우 떨어지는 날이다. 우리는 자신의 예상대로 삶이 흘러가야지 스스로가 잘 살고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담임교사로서 우리 반 학생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따라줘야 내가 담임교사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루틴도 망가졌고, 학생들도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하루의 시작이 삐걱거리면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불 속에 파묻혔다. 어제 보지 못했던 '나는 솔로' 8기 출연자들의 자기소개를 유튜브 영상으로 보았다. 이후에는 숙취 해소를 목적으로 금기의 음식인 라면을 끓어 먹었다.


 한편 나는 주중을 이벤트처럼 ○○데이로 운영한다. 오늘은 '글쓰기'데이였다. 최호진 작가와 함께 하는 글쓰기 모임에 금요일 안으로 글을 제출해야 했다. 흰색 모니터 앞에 앉아 무엇을 써야 하나 고민했다. 최근에는 제주 여행 후기를 계속 올리고 있다. 하지만 글쓰기 모임에서는 될 수 있으면 나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를 제출해야 했다. 일상에서 소재가 떨어져 이번 주에 읽은 책들 중 하나를 골라 서평을 쓰고자 마음을 먹었다. 제주 여행 기간 동안 읽은 '다이어트의 성 정치학'이란 책의 서평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부족한 나의 지식과 역량으로 인해 두 개 문단까지 작성한 후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운동도 하기 싫었지만 글도 쓰기 싫은 날이 오늘이었다. 모니터 앞에 앉아 1일 1블로그 포스팅이란 과제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우리 반 학생에게 온 메시지였다. 한 달 전에 공지했고 여러 번 강조했던 안내사항을 다시 물어보았다. 학급 단톡방에 들어가 검색만 해도 쉽게 알 수 있는 정보였다. 다음 날 학교에서 물어도 될 내용을 굳이 퇴근 이후 본인이 편한 시간대에 담임교사에게 물어보는 학생이 괜히 얄밉게 느껴졌다. 운동도 하기 싫고 글도 안 써지는데 살짝 짜증이 났다. 기분을 조금이라도 전환하고 싶은 마음에 아내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귀여운 아들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하지만 화면 속 아들이 나에게 처음으로 했던 말은 "전화 안 해!"였다. 동시에 "지금 ○○이 기분이 별로 안 좋으니깐 나중에 통화해!"라는 아내의 급박한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순간적으로 가족에게도 버림받았다는 욱한 마음에 "알았다."라고 냉담하게 말한 다음 거칠게 영상통화를 껐다.


 마음속으로 '진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짜증 나는 날'이라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런 날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한 날이기에 자존감도 떨어지고 무기력해지는 날이다. 스스로와의 약속(새벽 운동, 아침 영어 공부, 점심 산책, 건강한 저녁 식사, 퇴근 후 글쓰기)들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게다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 학생들에게 짜증을 냈고, 아들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못했다. 무기력 역시 관성의 힘이 있어 한 번 탄력이 붙기 시작하면 무섭다.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매사 모든 것이 귀찮았다.


 시계는 어느덧 저녁 8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2022년 5월 26일은 4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욱하는 마음에 냉장고에 있는 술을 꺼내 유튜브 속 드라마 리뷰 영상이나 스포츠 중계 등을 보며 하루를 마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남은 4시간을 후회 없이 쓰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5월 26일이라는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다.


 얼마 전 제주 여행을 떠올렸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제주였고,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제주였다.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어쩌면 이번 제주 여행이 내 인생의 마지막 제주 여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매 순간 제주 여행을 즐기기 위해 애를 썼다. 덥다는 이유로 숙소에 들어가서 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한 군데라도 더 들르려고 했고, 지금 이 순간 제주의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을 느끼려고 애썼다. 가족과 함께 더 많이 웃기 위해 노력했다. 매일 주어진 일상도 여행처럼 받아들인다면 훨씬 더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 greenpjy123, 출처 Unsplash


 하루 24시간 중에 20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보내지 못했다. 이미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루의 스무 시간 가까이를 망쳤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억울해하거나 분하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시간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마음도 편안해지고, 남은 시간 동안 뭐라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 남은 4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내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일단 눈앞에 있는 설거지부터 해결했다. 냄비 하나, 국그릇 하나, 밥그릇 하나, 수저 한 세트를 세척하는데 5분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싱크대와 책상까지 정리하는데 5분이 추가로 더 걸렸다. 일단 내 주변이 깨끗해지자 힘이 났다. 다행인 것은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실내복이 아닌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언제든지 운동을 나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놓은 것이다.


 러닝화 끈을 꽉 조인 후에 집을 나섰다. 일단 카톡으로 질문을 한 학생에게 답장을 보냈다. 다음으로 음성 통화로 다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아들은 영상 통화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하지만 아빠인 내가 어떻게든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에 자꾸 아들이 선호하지 않은 영상 통화로 전화를 건다. 게다가 아이 입장에서 본인이 통화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늘 아빠의 전화에 상냥하고 예의 바르게 전화를 받아야 할 의무는 없다는 이야기다. 저녁 식사 후 기분이 좋아졌는지 두 번째 통화에서 아들은 천사 같은 목소리로 "아빠 지금 어디야? 뭐해?"라고 말을 걸었다. 아들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듣던 그 순간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모든 부정적 감정이 사라졌다. 하루 동안 학교에서 힘들었던 일을 아내에게 토로하고 나니 새로운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태로 기분이 전환되었다.


 달리기 전에 신천까지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오늘 하루 나는 큰 욕심을 부렸다. 내 주변의 상황들을 어떻게든 내 뜻대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40대가 된 지금 이미 깨닫지 않았는가.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특히 각자의 욕망을 갖고 살아가는 내 주변의 사람들은 더욱더 그러하다. 내가 전화를 걸 때마다 아내와 아들이 다정하게 받아줄 수는 없다. 학생들이 나의 훈계를 듣고 "네! 선생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도덕 교과서에 나올 것 같은 그런 대화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내 뜻대로 움직이도록 만들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행동을 하는 순간 나와 그들의 사이에는 지옥이 만들어진다. 모든 것이 나의 계획과 예상대로 흘러갈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상황이 벌어졌을 때의 감정만큼은 내 뜻대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오늘 벌어진 상황에서 더 이상 우울해하지 않기로 내 감정을 결정했다. 마음속으로 "오늘 나의 하루는 괜찮아. 좋은 날이야.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는 감사한 날이야."라고 외치며 신천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마음과 달리 현실은 냉혹했다. 라면에 밥 한 공기까지 말아 배부르게 저녁을 먹은 탓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몸이 무거웠다. 허리, 무릎, 종아리 그리고 발목까지 그만 달려라고 아우성이었다. 술 마신 다음 날 웬 달리기냐고 심장까지 나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행위에는 당연히 고통이 동반된다. 단 한 번도 고통스럽지 않을 때가 없었기에 오늘도 그냥 묵묵히 달렸다. 3킬로미터 즈음 지나자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고통의 순간이 조금씩 사려졌고 환희의 순간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오늘 한 번도 도전하지 못했던 10킬로미터를 달릴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일 퇴근 후에 천안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하지는 말자며 6킬로미터 정도로 달리는 것에서 멈추었다. 화요일이나 수요일 정도에는 10킬로미터에 도전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집에서 무기력하게 누워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달렸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6킬로미터를 채운 후에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집까지 걸어갔다. 집까지 걸어오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글로 쓰기 위해 생각을 했다.


 달리기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은 무척 뿌듯하다. 달리기를 하고 난 후에는 편의점에 가서 1+1 상품이 아닌 단품으로 이온음료를 사 먹는 사치도 기꺼이 즐긴다. 나름대로 수고한 나를 위한 선물이다. 찬물로 샤워까지 하고 나오면 나의 몸과 마음은 상쾌함으로 가득 찬다. 다시 컴퓨터를 켜서 블로그에 접속했다. 오늘은 글쓰기 데이이니깐 새 창을 열고 다시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산책을 하며 오늘 작성할 글을 마음속으로 말해 보았기 때문에 첫 문장부터 술술 나왔다. 단 30분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생각해 보면 오늘 나의 하루는 완벽하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통제하지 못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들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즉,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 날이었다. 해야 할 일들을 많이 놓쳤으며, 직장에서도 프로답지 못했고, 가족에게도 다정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기지 못했다고 해서 무조건 패배한 날이라고는 할 수 없다. 경기에서는 무승부라는 게 있다. 프로야구에서도 12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 무승부로 기록된다. 축구 경기에서도 연장전까지 승부를 보지 못하면 무승부다. 승점을 받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점수가 깎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하루 동안 긍정적인 면을 떠올려 보았다.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는 대신 '신문 읽기의 혁명'이란 책을 완독했고, 어떤 상황이든 학생들에 대한 지도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저녁 식사 후 다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달렸다. 게다가 한 편의 글도 완성했다. 100점짜리 글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블로그에 올릴 글을 작성했다. 독자에게 좋은 정보와 감동을 줄 수 있는 멋진 글을 쓰겠다는 욕심과 부담을 버리고 그저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과 깨달은 점을 바탕으로 한 편의 글을 작성했다.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한 날도 있다. 하지만 하루 중 일부는 어떻게든 나의 의지대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완벽한 하루를 보내지 못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라도 매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공부가 잘되지 않아 오늘 하루만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고 싶다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엎드려서 자도 되고 음악을 들어도 되니깐 네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라고. 뭔가 잘 안 풀리는 날이 있다. 그래도 적어도 패배한 날은 만들지 말자. 뭔가를 잘 해내지는 못했더라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기본이라도 해낼 수 있다면 적어도 패배한 하루가 되지는 않는다. 언젠가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좋아 운동도 잘되고 글도 잘 써지는 날이 올 것이다. 공부하는 족족 모든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그런 날도 있다. 잘 되는 날에 확실히 포인트를 쌓아두자. 대신 슬럼프가 오는 날에는 잘 해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그냥 해야 할 일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내자.


 3년 전부터 어쭙잖게 자기 계발을 시작한 이유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좋은 사람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나의 본질을 생각하며 매일 꾸준하게 해야 할 일을 쌓음으로써 만들어진다고 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그냥 마음 편하게 쉬어라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제목을 보고 내 글을 클릭한 독자들도 그런 내용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작은 일이라도 좋고 허접하게 해도 좋으니 나만의 루틴을 놓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 패하지 않는 날을 보낸다면 내일은 반드시 승리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오십에 읽는 논어'의 저자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는 삶,

특히 스스로 정한 인생의 원칙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삶이 아름답고 행복할 것입니다.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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