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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Jul 14. 2022

SRT 기차 연착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일상 속 감사일기

아들 선물 / 럭키백 이벤트


 금요일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습니다. 퇴근 후에 가족을 만나러 천안에 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금요일 아침에는 동료들에게 "오늘도 천안에 가시겠네요?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고 오세요." 등의 인사를 기분 좋게 받습니다. 주중에 영상통화로만 보던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 덕분인지 저 역시 금요일은 평소보다 더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한답니다.


 퇴근 후 동료 선생님께서 지하철역까지 태워 주셨습니다. 웬만하면 운동도 할 겸 걸으려고 했는데, 역까지 가는 길이 그늘 한 점 없는 정말 땡볕이랍니다. 오늘 날이 너무 뜨거워서 그러는데 역까지 좀 태워 주실 수 있냐는 저의 부탁에 Y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매번 부탁할 필요 없이 금요일은 항상 자연스럽게 태워 주시겠다고 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동대구역까지 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J 선생님을 만나 도란도란 수다를 나누며 즐겁게 금요일 퇴근길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동대구역에 도착한 후에는 참새가 방앗간을 두고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습니다. 기차 안에서 읽을 책은 따로 챙겨 왔고요. 서점에 들른 진짜 목적은 아들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들의 취향을 고려해 신중하게 책을 고르고 골라 '두근두근 세계 여행'이라는 책을 구입했습니다. 책 구입 과정에서 직원의 소개로 럭키백 이벤트에 참여했지요. 럭키백 이벤트 참여는 이번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1만 3천 원으로 럭키백을 구입하면 1년 동안 5만 원 한도 내에서 15% 할인을 해 줍니다. 럭키백 이벤트 때 제일 처음에 받았던 빨간색 에코백은 지금도 제 수업 가방으로 유용하게 쓰고 있고요, 두 번째로 받은 푸른색 에코백은 장바구니로 잘 쓰고 있습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만 매년 50만 원 이상 책을 구입하는 듯해요. 저에게 무조건 남는 장사이기 때문에 럭키백 이벤트가 있으면 꼭 참여합니다.



 아들에게 줄 선물도 사고, 럭키백 이벤트로 에코백도 하나 구입해 기분 좋게 동대구역으로 향했습니다. 기차 출발 시간까지는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지요. 그런데 동대구역 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전광판 앞에 서서 하염없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4시 30분에 출발해야 하는 서울 방향 KTX가 한 시간이 넘도록 출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타야 할 5시 38분 기차는 출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예 전광판에 뜨지도 않았어요. 바로 폰을 꺼내 기사를 검색해 보았지요. SRT 열차가 대전역 인근에서 탈선했다고 하더라고요. 승객 7명이 다쳐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서울 방향으로 가는 모든 기차가 연착이 되며 동대구역은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누구도 확실하게 몇 시간 뒤에는 출발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으니 답답했습니다. 복구 작업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 줄 알 수가 없으니 그저 전광판에 제가 타는 기차가 뜨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방송으로 오늘 상행선 기차가 많이 지연될 예정이니 급한 일정이 있는 사람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안내가 흘러나왔습니다.


 '오늘 중으로 천안에 갈 수 있겠지?,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들 준다고 책 선물도 샀는데, 늦게라도 아이 얼굴이 보고 싶은데.'


 대구에서 천안까지 주말부부를 한 지도 어느새 3년 차가 되었습니다. KTX와 SRT는 3년 동안 늘 정해진 시간에 저를 가족의 품으로 안전히 데려다주었지요. 오늘 안으로만 무사히 천안에 도착하면 된다고 마음을 먹고, 아내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사고 관련 피해자들과 관계자들 모두 무사히 큰 피해 없이 이번 사태를 잘 넘어가기를 바라며 바닥에 퍼질러 앉았습니다. 일단 앉으니 편하더군요. 잠시 후에 의자에 자리가 나서 냉큼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기차는 출발할 기약이 없어 보이고,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를 위한 시간은 그 순간에도 가능했지요. 최대한 편안하고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좋은 것이 숨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 필요가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베네딕트 교수는 행복의 일곱 가지 요건 중 첫 번째로 부정적 상황에서의 방어기제를 꼽았습니다. 기차는 언제 올지 알 수 없고, 에어컨 작동이 잘 안 되는지 대합실은 덥고, 배는 고프고 갈증이 나며, 땀은 나서 찝찝하고, 기차를 기다리는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도 짜증이 가득하고, 퇴근 후의 피곤함까지 몰려오는 이 상황에서 감사할 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연착 시간 동안 책을 읽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원래 어제부터 주식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 주식 및 경제 관련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오늘은 기차 안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이 읽고 싶더라고요. 재작년에 감명 깊게 읽었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가방에 챙겼습니다. 애타게 기차를 기다리는 군중들 속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은 책이었습니다. (사실 지금 읽고 있는 주식 책 대신 하루키의 수필을 챙긴 진짜 이유는 책 무게 때문입니다. 제가 어깨가 좋지 않아서 가방이 무거워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편이거든요.^^;; 그래도 종이책에 대한 욕심은 있어서 늘 책 한 권은 가방에 넣어 다닙니다.)


 두 번째로 반바지로 갈아입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가방 안에 체육복 반바지를 챙겨 갔지요. 요즘 날씨가 워낙 덥다 보니 퇴근할 때 간편한 옷차림으로 미리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만약 평소처럼 출근할 때 입었던 복장으로 대합실에서 기다려야 했다면 더욱 갑갑했을 것입니다. 좋은 타이밍에 반바지를 챙겨간 저의 센스에 셀프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세 번째로 기차가 연착이 되면서 이렇게 평소 금요일과 다른 일상을 기록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기록하는 사람, 글 쓰는 사람에게는 예상된 스토리보다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된 위기나 곤경이 더욱 흥미롭습니다. 전 MBC 피디였던 김민식 작가는 노조를 통해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법원에 송치되는 순간에도 오늘 블로그에 글 쓸 소재가 생겼다면서 내심 기뻤다고 합니다. 얼마 전 동료 교사 J도 제가 코로나 확진 판정받았을 때 걱정되는 마음보다 블로그에 코로나 관련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고 합니다. 기록하는 사람은 불확실하고 힘든 상황을 글쓰기의 소재로 삼을 수 있어 좋습니다.


 네 번째로 연착 덕분에 동대구역 맛집에 가서 김밥과 우동을 먹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오늘 연착이 되지 않았다면 저녁 식사는 건너뛸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하루에 두 끼만 먹는데 오늘은 아침에 동료 선생님이 건네 준 쿠키와 딸기우유로 식사를 했거든요. 하지만 대합실이 너무 더웠고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식당에서 조금이라도 쉬고 싶다는 생각에 계획에 없던 저녁을 먹었습니다. 어묵김밥과 김치우동을 먹었는데 역시 김밥과 국물의 조화는 언제 먹어도 최고입니다. 시원한 곳에서 얼큰하고 따뜻한 국물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다섯 번째로 1시간 40분을 기다려 기차를 탈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하마터면 연착된 기차도 놓칠 뻔했어요. 상행선 고속철의 경우 출발 시간을 쉽게 예측할 수 없어 하나씩 전광판에 표시가 되다 보니 늘 긴장을 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책에 집중하다 보니 전광판에 눈길을 주지 못했습니다. 순간 싸한 느낌이 들어 전광판을 보니 제가 타야 할 기차가 88분 지연 표시와 함께 떠 있더라고요. 전속력으로 12번 플랫폼까지 달려가 겨우 기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대합실에 있다가 기차를 타니 정말 시원하더라고요. 쾌적한 환경의 기차를 탈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여섯 번째로 가차 안에서 따뜻한 분을 만나서 감사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헐떡거리며 기차에 탔습니다. 제 자리 옆의 할머니께서 "학생도 기다린다고 고생했죠? 과자 하나 먹으세요!"라며 고소미 과자를 하나 나누어주셨습니다. "저 학생이 아니라 40대 아저씨랍니다. 젊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과자는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할머니도 기차 기다린다고 고생하셨죠?" "아이고! 나는 5시부터 와서 2시간 넘게 기다렸어요. 너무 지치네요."라고 말씀하신 후에 새근새근 주무셨습니다. 대전역에서 내리신다고 하셨으니 계속 주무시면 깨워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책을 꺼냈습니다. 저를 무려 학생으로 봐주시고, 정겹게도 과자를 나눠 주신 할머니께 감사합니다. (저도 압니다! 제가 마기꾼이라서 할머니께서 학생으로 오해하신 거...ㅠ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일곱 번째, 금요일 밤에 아들과 아내를 볼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기차가 더 늦어졌다면 아들이 잠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제가 천안아산역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오기로 했습니다. 6시 40분에 도착해야 할 기차가 9시 10분이 되어서야 천안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 덕분에 아들도 오랜만에 늦은 시간까지 놀았네요. 준비한 책을 선물로 주자 아들은 내심 서운해하며 "책이 아니었으면 더 좋았겠다."라고 슬쩍 말하더라고요. 사실 아이가 뭘 갖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지난번 대전 여행 때 서점에 들렀을 때 국기 카드를 사고 싶어 했죠. 이미 집에 국기 카드가 세 개나 있는데도 다른 버전으로 또 갖고 싶은 듯해요. 당근 마켓에서 국기 카드를 구할 수 있을지 검색해 봐야겠습니다.


 참 감사할 것이 많은 금요일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사한 상황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저 자신에게도 감사했습니다. 2년 전 자기 혁명이라는 기치 아래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이것저것 많이 시도했습니다. 독서, 글쓰기, 운동, 경제 공부, 영어 회화 그리고 감사일기 작성까지요. 세줄일기라는 플랫폼을 통해 매일 꾸준히 감사일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습관 덕분에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감사할 것을 찾아 제 마음을 다스리고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깐요.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영어 속담이 있습니다. 모든 구름은 은색 빛줄기가 있다는 뜻으로 아무리 안 좋은 상황에서도 한 가지 긍정적인 측면은 있다고 해석할 수 있지요.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더라도 긍정적인 측면을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늘 즐겁고 기쁜 일만 가득할 수는 없죠. 하지만 저는 부정적인 상황 앞에서 몹시 흔들렸던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는 상황 또한 소중한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찾으려고 노력하니 실제로 좋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덕분에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력도 생겼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저의 주말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번 주말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괴롭고 힘든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저에게 생기든 주말을 마무리하며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 안의 저는 행복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인 결말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금요일 퇴근 이후의 감사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 이번 주말도 선물 같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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