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천소년 Nov 13. 2020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나만의 소확행 10가지



출처: 픽사베이


내가 만나는 학생들이 세상과 어른들이 알려주는 대로 따라가기보다 ‘왜’라는 질문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왜 학교를 다니냐?”, “왜 공부를 하느냐?”, “왜 대학에 가려고 하느냐?” 등의 질문을 학생들에게 자주 한다. 학생들이 신중하게 고민해서 말하는 대답은 바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요.”이다. 그럼 지금은 행복하지 않니라고 물어보면 천성이 밝은 소수의 아이들만 밝게 웃으며 행복하다고 답한다. 대부분은 무슨 그런 쓸모없는 질문을 하느냐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행복을 목표로 고등학교를 다녔던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을 목표로 살아간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취업해야 하고, 승진하려고 하고, 학위를 따며, 주말에도 직장에 나가 일을 하고, 종잣돈을 모아 부동산 및 주식에 투자를 한다.



나 역시 학창 시절 미래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실하게 공부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했다. 목표했던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곳에 취업하면 따라오는 부산물이 행복이라고 여겼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면 좋은 대학과 좋은 직업을 쟁취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처절하게 노력해서 그 자리에 갔기에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만약 현재 내가 불행하다면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부족하게 했고, 과거의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삶은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다. 목표했던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고, 아버지께서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나는 스무 살 전까지 단 한 번도 교사라는 직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실 진지하게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해 본 적도 없었다. 그냥 막연히 경찰, 광고기획자, 방송국 PD, 회사원, 회계사 같은 직업을 가지면 폼 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찰대학교에 우선 지원했고, 시원하게 1차 지필시험에서 불합격했다. 다음 플랜은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후 뜨거운 연애를 해 보는 게 목표였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며 먹고살지는 20대를 보내면서 천천히 고민을 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 수능 점수를 받지 못했고,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사범대학에 진학했고, 한 번도 꿈꾼 적이 없던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목표로 하지 않았던 교사가 된 나는 지금 행복하다. 오히려 교사가 될 수 있도록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범대학에 원서를 넣어주신 아버지께 고마울 따름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내가 막연하게 꿈꾸었던 경찰이나 회사원의 삶을 사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다. 꼭 고등학교 때 스스로 정한 진로대로 사는 것이 답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마다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삶대로 존중하고, 나는 내가 가는 길에 의미를 부여하면 된다. 그럼 꿈을 이루지 못한 내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행복의 조건’과 함께 말해보고자 한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행복은 매일 누려야 할 마땅한 것이다. 행복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 안 된다. 행복은 와신상담의 정신으로 고통을 참고 견뎌 언젠가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누려야 할 마땅한 것이다. 오늘 하루도 소소하게 느껴야 할 인생의 도구 같은 것이 바로 행복이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느끼자. 지금 삶에 행복할 요소가 하나도 없다고 한숨 쉬지 말자. 그럴 리가 없다. 나는 행복할 거리가 하나도 없다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햇살이 적당히 들어오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낄낄거리며 웃는 것도 행복이고, 수업을 통해 새로운 것을 깨우치는 것도 가끔 선생님의 진지하고 썰렁한 농담에 헛움을 짓는 것도 행복이며,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급식에 나오는 것도 행복이다. 행복은 대학에 가고, 취업해야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교복을 입고 매일 따분하고 비슷한 생활을 반복하는 고등학교 시절에도 행복한 사람이 20, 30대가 되어서도 행복하다.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때, 하교 후 친구들과 놀 생각을 하고, 친구들과 놀면서 그다음 날 숙제나 이번 달 시험 걱정을 하지 마라. 지금 여기에서 행복함을 느끼자.


1년에 한 번 누릴 수 있던 강도 높은 행복보다 매일 누리는 행복이 더 좋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행복을 쉽게 설명해 주는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학교 축제 때 공연을 했다. 축제 기간이라도 아이들 앞에서 광대가 되어 학생들에게 큰 웃음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섰다. 하지만 매번 무대에 설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아이들의 함성소리 때문이다. 노래 부르다가 음이탈이 나도 된다. 우스꽝스럽게 춤을 춰도 상관없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무대에 선 것 자체만으로 엄청난 데시벨의 환호를 보내준다. 그 순간 나는 아이돌이 된 기분을 느꼈다. 지나고 보면 그게 매년 무대에 설 수 있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1년에 단 한 번만 누릴 수 있었다. 매번 수업 시작 때마다 그런 환호를 보내주었다면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높아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학생들은 무대 위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선생님은 격하게 반기지만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오는 선생님은 크게 반기지 않는다. (물론 어디에나 별종은 있듯이 나의 수업을 격하게 반기는 소수의 학생은 어디든 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소수가 아니라 극소수다.) 그래서 나는 학기 초에 아이들에게 훈련을 시킨다. 내 수업의 인사 구령은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보고 싶었습니다.”이다. 안 보고 싶더라도 보고 싶다고 말하라고 강제로 시킨다. 말의 힘이 무서운 것이 나 역시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는 마음을 갖게 되고, 좀 더 애정을 갖고 수업을 준비하게 된다. 무엇보다 하루에도 몇 번을 “보고 싶었다."라는 말을 하고 듣는 나는 더 행복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나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거짓말이더라도 보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표정도 더 행복해 보인다. 우리는 연애 초창기를 제외하고 생각보다 "보고 싶다"라는 말을 서로에게 자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매일 그 말을 하고 들으며 산다. 학교 축제 때 들을 수 있는 아이들의 환호성은 1년에 한 번이지만 보고 싶다는 말은 매일 말하고 들을 수 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또한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성취도 시간이 지나면 무덤덤해진다. 사실 대학 다닐 때는 교사가 되어 교단에 서게 된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연구수업을 나에게 시킨다고 구시렁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행복은 큰 한 방에 있지 않았다. 어렵게 이루어 낸 성취도 금방 잊힌다. 오히려 다양하면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 매일 누리는 것이 훨씬 행복에 유리하다.



그렇기에 직업과 직장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직업과 직장은 내 삶의 일부일 뿐이다. 직업이나 직장을 나의 전부로 여기며 올인하는 것은 위험하다. 학생들에게 진로지도를 할 때도 말한다. 인생에서 ‘반드시’, ‘결단코’라는 말은 너무 쉽게 사용하지 말라고 말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보고, 자기 그릇에 맞춰 꿈을 변경하는 것이 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가수, 작가, 배우, 화가'와 같은 직업을 꿈꾸었지만 삶의 안정성이 위협을 받아 다른 직업을 갖게 되더라고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야구선수가 그렇지 못한 야구선수들보다 항상 더 행복하다는 말로 해석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메이저리그에서 MVP까지 받은 선수보다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히 선수 생활을 하며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수행한 선수가 훨씬 더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도 있다.



위험을 분산해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플랜 A가 만만치 않거나 생각보다 별로일 때 대체할 수 있는 플랜 B, 플랜 C를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다. 글 쓰는 것이나 그림 그리는 것, 노래 부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싶은데 꿈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 태어났으면 자기 밥벌이는 해야 하기에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것은 취미생활로 꾸준히 이어 나가면 된다. 퇴근 후 신세 한탄을 하며 술을 마시는 것보다 하루 2~3시간씩 매일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고, 그 콘텐츠를 플랫폼에 꾸준히 올린다면 언젠가 세상이 기회를 줄 것이라 믿는다. 다행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을 쉽게 드러낼 수 있는 시대다. 콘텐츠를 가진 누구나 생산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수히 많은 플랫폼들이 존재한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 취미생활, 봉사활동, 사회적 연대 등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도 많다. 꼭 돈이 많거나 높은 지위를 가지지 않더라도 각자 자신만의 개성을 갖고 다양한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 수 있다.



현재 나는 지위에 대한 야망이 없다. (그렇다고 세상이 나에게 지위를 제안했을 때 거절할 생각도 없다.) 때로는 주변에서 목표 없는 삶은 공허하다며 나를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없기에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다. 미래에 무언가가 되기 위해 현재를 살아가지 않는다. 그저 지금 내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나가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며 살아간다. 교사라는 직업은 나라는 존재의 일부에 불과하다.



나는 본능적으로 ‘학생들을 위해’라는 문구를 싫어한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위해’라는 말을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나는 학생들을 위해 대단한 것들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강한 한 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해야 한다. 아이들의 교육에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역시 교사의 강한 한 방보다 지속적이면서 꾸준한 사랑을 원한다. 3월에는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사랑한다며 임팩트 있는 이벤트를 벌이다가, 아이들이 뜻대로 따라오지 않자 학기 말에 초심은 온데간데없이 학급 생활 지도를 놓아버리는 사례들을 몇 번 보았다. 교사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지속 가능한 노력을 하면 된다. 단지 수업 자료를 재미있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준비하기 위해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고, 조금 더 따뜻한 태도로 인내를 갖고 학생들을 대해주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행동은 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는다. 나의 지속 가능한 행복은 곧 학생들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출처: 픽사베이


행복은 좋은 관계에서 나온다



학교생활을 하며 "와우!"라고 말하며 환호성을 지를 때가 언제일까? 성과를 냈을 때? 월급을 받을 때? 바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고맙다는 말을 듣거나 고마움이 담겨있는 편지나 쪽지를 받을 때이다.



국어 수업을 재미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잘 지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꿈을 이룰 수 있었어요. 선생님이 잘 도와줘서 그 친구와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어요. 항상 따뜻한 모습으로 우리 반을 위해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습니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를 도와주려면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즉, 내가 조금 손해를 봐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더 큰 선물을 나에게 준다. 바로 '행복'이다. 또한 나의 문제일 때보다 상대의 문제를 해결할 때 우리는 놀라울 만큼 큰 능력을 발휘한다. 누구나 본인의 연애 문제는 해결하지 못해도 친구의 연애 문제에는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나 역시 최근에 몇몇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사실 큰 기대 없이 나의 고민과 어려움을 이야기하였고, 그들이 성심성의껏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도움을 청했던 세 명 모두 그 다음날 먼저 나를 찾아왔다. 집에 가서 나의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렇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면서 각자 나름의 대안을 갖고 온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무척 고마웠다. 그리고 나를 돕기 위해 굳이 나의 자리까지 찾아온 그들의 눈을 보았을 때 그들은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해 보였다. 결과론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보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행위가 훨씬 더 나를 이롭게 한다.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올린 블로그 글에 누군가가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고 공감을 했다는 댓글을 달아주면 행복하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한다. 물론 '좋아요'를 많이 받아도 행복하다. 하지만 영혼 없는 댓글이 달렸을 때는 사실 긍정적인 감정이 들지 않는다. 나의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았으며, 나의 글이 상대에게 별로 감흥이 없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치 있는 존재라고 스스로 느낄 때 행복감을 느낀다.



지금도 돈에 관심은 많다. 그런데 2013~14년에 부동산에 엄청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관련 책도 보고 커뮤니티도 가입해서 부자가 되겠다는 열망이 가득했던 나에게 한 선배가 해준 충고가 있다. 그는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돈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사람은 한자로 인간이다. 행복 역시 관계에 있다. 아무리 부자가 되고 지위가 높아지더라도 함께 기쁨을 나눌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과연 그 사람은 행복할까? 내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함께 놀아줄 사람이 없다면 과연 나는 행복하다고 느낄까? 나의 성공을 함께 기뻐해 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행복을 느낄 것이다. 승진은 했지만 모든 구성원들이 피하는 상황에서 혼자 와인을 마시며 자축하는 사람은 행복을 느낄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승진에 대한 대가를 다른 방식으로 요구할 것이기에 승진과 동시에 바로 괴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학교에 학생들이 자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교우관계이다. 학생들은 교실에서의 단절을 가장 두려워한다. 사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사람과의 단절이다. 반대로 말하면 행복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관계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하는 마음을 갖고 관계를 맺으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 '행복의 기원'에서는 진화심리학적으로도 인간에게 있어 동료 인간이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이라고 했다. 진화 과정에서 인간에게 생존과 번식에 가장 필수적인 자원은 동료 인간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성이 높은 사람이 행복감도 많이 느끼게 된다. 인간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 사회를 이루어 함께 살 수밖에 없다. 혼자만 행복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문제 앞에서는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없을 때는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나의 노력은 곧 나의 행복과 직결된다.



출처: 픽사베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



2014년의 나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1주일에 4~5번 정도는 술을 마셨다. 스스로 심각하다고 느낀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술자리를 갖는 것보다 혼자 마시는 것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가 컸던 것도 아니다. 그 해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최고였다. 관리자들의 존중을 받아 나만의 방식으로 일처리도 할 수 있었고, 반 학생들과의 관계는 역대급으로 좋았으며, 동료들과도 잘 지냈고, 대외적으로 활동도 많이 했다. 하지만 33살이었던 나는 결혼에 대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특히 어느 날 평소 과묵하신 아버지께 뜬금없이  전화가 와서 "내가 한번 선 자리 알아볼까?", "친구 아들 결혼식에 지금 왔는데...", "네 동생 여자친구랑 식사하러 밖에 나왔다." 등의 이야기들을 듣는 순간 나는 스스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음을 느꼈다. 결혼에 대해 조급한 마음으로 열심히 소개팅을 했다. 이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이익인지 손해인지 성실하게 계산을 했다. 그리고 자주 상대에게 거절당하며 자존감까지 하락했다.



고통을 잊기 위해 즐거움을 찾았다. 그래서 선택한 즐거움이 술이었다. 퇴근길에 소주와 참치캔 그리고 컵라면을 사들고 집으로 갔다. 마침 당시 삼성 라이온즈가 전성기 끝물이었기에 야구 중계도 볼 만했다. 때로는 좋아하는 분야의 유튜브를 시청하며 혼자 술을 마셨다. 술이 얼근하게 취하면 자취집에서 혼자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다. 즐거움을 느끼면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한다. 나는 끊임없이 도파민이 분비되기를 원했고 다음 날 더 큰 자극을 원했다. 일이 없어 일찍 퇴근하는 날은 맨날 술이었다. 나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올해 주말부부가 되어 다시 혼자 살게 되었다. 그리고 매일 술을 마셨던 그 동네로 다시 돌아왔다. 자취집에 입성하던 첫날 다짐했다. 절대로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그 다짐은 지금도 지키고 있다. 워낙 술을 좋아해서 사람들과 함께 마시는 경우는 있더라도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에 혼자 있어도, 가족이 보고 싶어 우울해져도 술 생각 자체가 나지 않는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술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심심한데 술이나 한잔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퇴근 후에도 무언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으로 삶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내가 만든 루틴에는 즐거움도 있지만 고통도 따른다. 퇴근 후 바로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며 쉬고 싶다. 선뜻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달리기를 하러 나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숨이 차도록 달리며 땀을 흘리고 난 후 집으로 돌아올 때 상쾌함과 성취감이라는 행복을 느낀다. 매일 더 가벼워지고 건강해지는 몸을 보면 행복하다. 매일 스쿼트를 한 덕분에 아직은 화성 물이 흘렀던 자국처럼 희미하지만 배에 王 자도 조금씩 보인다. 미라클 모닝, 영어책 한 권 외우기, 중국어 단어 공부하기, 독서하기, 일기 쓰기 등을 통해 오늘 어제보다 더 성장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애를 쓰는 과정도 행복하다. 귀찮음과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며 나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내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 힘겨울 때가 있다. 최근에 '경제용어' 포스팅을 1주일 동안 못했다. 그런데 지난주 금요일 밤에 댓글 하나를 보았다. '경제용어 포스팅을 보며 재미있고 쉽게 경제 공부를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요즘 바쁘신지 새 글이 안 올라오네요.'라는 댓글이었다. 다음 날 평소보다 빠른 새벽 5시에 일어나 경제용어 공부 후 내가 이해한 만큼 글을 작성해 포스팅을 올렸다. 나의 시간과 노력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을 때 나는 기꺼이 새벽에 일어날 수 있다. 또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힘겨움을 감수할 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생명을 살리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의사를 꿈꾸는 학생이 있다. 그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의대에 진학해야 한다.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해야 하지만 그는 불행하지 않다. 기꺼이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불편함과 입시 스트레스를 감수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에서 교사들이 가진 재능을 활용해 주말에 학생들을 위해 진로 캠프를 진행할 때가 있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자기 좋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주말에도 학교에 출근하는 것이다. 행사를 진행할 때 선생님들의 표정을 보면 정말 행복해 보인다. 나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내가 세상에 쓸모 있음을 알게 되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세상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무언가를 감수할 때 본인도 행복하고 세상도 행복해진다.



사실 고통 없는 즐거움은 금방 식는다. 2014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미디어를 보며 기름진 음식과 알코올로 배를 채우는 행위로 누렸던 행복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비록 고통이 따르지만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판단했고, 스스로 기꺼이 그 선택을 했다면, 그 일은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이다.



요즘 나의 최고 행복은 가족과 함께 자는 것


글을 나가며



고등학교 시절 故 신해철의 노래를 참 많이 들었다. 그의 가사는 철부지 고등학생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노래 가사에 '고흐의 불꽃 같은 삶'과 '니체의 상처입은 분노'라는 말이 나오기 쉽지 않다. 이 가사는 신해철 2집 Myself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노래에 나온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때로는 내 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 내 울고 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모두가 돈, 큰 집, 빠른 차, 명성,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성공을 행복의 척도라고 여길 때 그는 자신이 만족하는 행복을 찾아 나섰다. 그 역시 자신이 선택한 행복의 길이 맞는지 불안했다. 그리고 그는 아무리 세상이 빨리 변해도 우리의 행복은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답을 제시했다.



스스로 불행해지려고 노력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부모가 본인을 버렸고, 가난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규정지었다. 학생의 가정사를 알았기에 그의 행동이 안타까웠지만 그렇다고 엇나가는 그를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아무리 부모가 나를 버렸고, 세상이 나에게 해코지를 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마저 스스로를 버려서는 안된다고 다그쳤다. 냉정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행복하고 불행한 것은 본인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네 인생의 행복은 부모님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정하는 것이고, 너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설득했다.



나 역시 육아로 힘이 들 때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을 조금만 더 견디자고 다짐한 적이 있다. 그전에는 결혼만 하면 내 인생의 숙제는 끝이 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결혼을 하니 이제서야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기분이었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또 다른 고민이 생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을 목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행복을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생각으로 날마다 작은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행복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달려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 또한 본인의 꿈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수할 때도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의 기준은 세상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 의해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정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나만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다. 인생을 살면서 최대한 다양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다. 끝으로 나만의 소확행을 공개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1. 가족과 함께 잠을 잘 때


작년까지 나는 따로 잠을 잤다. 코를 골아서 아이 잠을 방해한다는 이유였다. 내심 기뻤다. 혼자 자면 누워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 방에서 아내와 아들과 같이 잔다. 우리가 가족임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 내가 코를 골면 바로 거실에 나가서 자겠다고 아내에게 양해를 구했다. 좁은 방에서 아내와 아이와 밥알처럼 꼭 붙어서 잠을 청한다. 잠들기 전 그날 있었던 일과 생각나는 일들을 막 내뱉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즐겁고, 가족의 살냄새를 맡으며 잠이 드는 것도 포근하고 정겹다.



2. 주말 나들이


아내와 나는 둘 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을 즐긴다. 올해 해외를 나갈 수 없으니 국내 여행을 다닌다. 사실 여행이라고 하기에 거창하고 소소하게 천안 아산 일대를 다닌다. 나에게 충남이라는 지역은 생소하다. 게다가 천안은 경기도와도 가까워 당일치기 나들이를 갈 곳이 많다. 매주 아이를 데리고 또는 가족과 함께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은 나에게 확실한 즐거움이다.



3. 공부하듯이 책을 읽을 때


나는 늘 연필을 들고 다닌다. 언제든지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기 위해서다. 그리고 떠오르는 기억이나 하고 싶은 말, 내 생각 등을 메모하기 위해서다. 공부하듯이 책을 읽는 것이 참 재미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 책을 선택하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책을 보다가 아직 이 책을 읽을 시기가 아니다 싶으면 덮는다. 그리고 현재의 나와 대화가 통할 또 다른 책을 찾는다. 책을 통해 좀 더 성장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고, 더 좋은 사람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줘서 좋다.



4. 글을 완성했을 때


진지한 글이든 경제용어를 소개하는 글이든 맛집을 소개하는 글이든 어떤 소재의 글이든간에 내가 완성한 글은 모두 소중하다. 사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다. 포스팅하기에 부끄러운 글들도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해서 TMI를 남발하는 일기 같은 글들을 많이 양산했다. 그럼에도 매일 글을 올리는 자신을 칭찬한다. 매일 쓰다보면 가끔 한 번씩 스스로 마음에 드는 글을 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너의 머리에서 이런 생각들과 문장들이 나왔냐며 자신을 대견해한다. 올해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쓴 첫해이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 것이므로 매년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을 즐기고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낄 것이다.



5. 아이가 웃으며 나에게 달려올 때


금요일 퇴근 후 바로 동대구역으로 달려간다. 먼 길을 달려 천안 집에 도달했다. 문 앞에 비밀번호를 누를 때 인터폰으로 아빠가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면 어김없이 아이와 아내가 손을 잡고 현관에 서서 웃고 있다. 특히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로 "아빠다!"라고 외치며 나를 반겨준다. 격하게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싶지만 코로나 예방을 위해 눈물을 머금으며 "아빠 금방 씻고 나와서 안아줄게."라고 말한 후 바로 화장실로 직행한다. 샤워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지만 5분 전의 감동은 사라졌고, 아이는 다른 장난감에 집중해서 놀고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1주일에 한 번 볼 수 있는 아이의 그 웃음은 아빠로써 확실한 나의 행복이다.



6. 나만의 아침 시간


새벽 6시에 일어나면 아침부터 나만의 시간을 두 시간이나 확보할 수 있다. 출근 전에 두 시간이나 나를 위해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샤워 후 따뜻한 차를 마시고, 명상하고, 미라클 모닝 일지를 쓰고, 책을 읽으며 필사하고, 자기계발 영상을 보고 체조를 한다. 출근 준비 후 마지막으로 영어 회화 한 페이지를 사진 찍거나 캡처를 한다. 나는 나만의 아침 시간으로 매일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게다가 원래 잠이 많은 편도 아니고, 기상 시간 6시가 그렇게 부담스러운 시간대가 아니라 나의 아침은 힘겹지가 않다. 물론 드물지만 가끔 전 날 과음(소주 세 병 이상) 했을 때는 7시에 일어날 때도 있다.



7. 점심시간 산책하기


직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가 바로 점심시간이다. 코로나로 인해 칸막이 안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식사 후에는 산책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학교 주변과 운동장을 매일 30분 이상 걷는다. 환절기라 날씨가 추워도 점심시간만큼은 다닐 만하다. 특히 요즘은 더욱 걸을 만하다. 가을 하늘을 보며 서늘하지만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걸을 수 있다. 게다가 나와 산책을 해주는 멤버가 두 명이 있어서 감사하다. 두 분 모두 담임교사라 시간이 맞지 않으면 혼자 걸을 때도 있지만, 보통 둘 중 한 명과는 산책 시간이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학교생활 중 유일하게 사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8. 같은 책을 읽고 생각나누기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독서토론 모임이 있어 삶이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 내 취향과 상관없이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어 좋다. 모임을 위해 책과 관련된 내 생각과 경험들을 메모하는 과정도 즐겁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이나 색다른 경험을 듣는 것도 유쾌하다. 사실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함께 책을 읽는 사람들도 참 좋다. 각자 개성도 있으시면서 인품도 뛰어나시다. 특히 나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의 듣는 태도가 엄청나다. 공감적, 적극적 듣기의 달인들이다. 혹시나 내가 제일 연장자라는 이유로 전체 대화에서 너무 말을 많이 할까 봐 늘 전전긍긍하고 있다.



9.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자리


나는 확실히 누군가와 대화를 반가워한다. 말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도 즐거워한다. 사실 술 약속이 잡히면 그전 날부터 설렌다. 전 날부터 식단 조절을 하고 다음 날 독서 및 글쓰기 같은 루틴도 미리 당겨서 해 놓는다. 그리고 약속 당일 웬만하면 술자리 장소까지 뛰어간다. 만약 둘이서 보는 거면 지인에게 같이 운동하고 술 마시러 가자고 권한다. 아예 신천 둔지에서 만나 1시간 30분 정도 같이 걷거나 뛰다가 식당으로 간다. 운동 후에 마시는 소맥은 정말 꿀맛이다. 그리고 술자리가 파한 후 집까지 다시 걸어간다. 자연스럽게 술 먹는 날은 두 시간 이상 걷거나 뛰게 된다. 그럼 다음 날 웬만해서는 숙취로 괴롭지 않다.



10. 스스로가 성장했음을 느낄 때


올해 여러 상황을 대처하는 제 마음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작년보다 더 성장했음을 느낀다. 특히 아내와 아이를 대할 때 조금 더 배려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감지했을 때 스스로 뿌듯해한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나 동료들에게 올해 행복해 보인다, 즐거워 보인다, 눈빛이 살아있다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 행복하다. 자기 혁명의 첫해를 잘 보내고 있는 듯해 기쁘다.


그 밖에 부모님과 영상 통화하기, 학생들이 빈말이라도 애정 표현을 하거나 칭찬해 줄 때, 좋은 강연을 만났을 때, 노래방에서 감정 이입해서 노래 부르기, 하늘 사진 찍기, 내 일을 간섭 없이 내 방식으로 해내는 것, 블로그 댓글 달아주기, 임영웅 유튜브 동영상 보기, 알라딘 중고서점 방문하기, 급식에서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나왔을 때, 내가 매도한 주식의 주가가 떨어질 때, 지나가다 빵집에 들러 가벼운 빵 하나 사 먹을 때 등이 있다.







참고도서

행복의 기원, 서은국, 21세기북스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자기 계발 영상을 보게 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