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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Sep 04. 2022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난여름 아내와 같이 '미스터 션샤인'이란 드라마를 1회부터 정주행했다. 이 드라마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는 김희성(변요한)이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라는 무거운 현실 앞에서 무기력했던 지식인으로 등장했다. 드라마 내내 그가 자주 반복했던 대사가 있다. 바로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한다'라는 말이다. 드라마는 끝이 났지만 김희성이란 인물의 슬픔이 묻어 있는 미소와 함께 그 대사는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가 말한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은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과 같은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런 것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인생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평소 일상에서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의 가치를 느끼며 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는 다르다. 처음 겪는 시공간 앞에서 누구나 세상을 받아들이는 촉수가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진다. 늘 내 주변을 맴돌았던 꽃, 나무, 돌, 바람도 여행지에서는 새롭게 느껴진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의 가치를 느끼기 위해 의식적으로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다.



라오스에 대체 무엇이 있는데요?


 지난여름 나는 도서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여행 에세이를 읽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여러 번 읽으며 하루키의 수필 문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여행을 좋아하고 자신의 여행 경험을 맛깔나는 글로 기록하는 작가이다. 게다가 책의 제목에 흥미롭게도 '라오스'가 들어간다. 아마 책 제목은 한국 출판사의 편집 팀에서 지었겠지? 제목이 정말 기똥차다. 늘 아들과 단둘이서 라오스로 배낭여행을 갈 거라고 떠들고 다녔던 나의 입장에서 하루키와 라오스의 조합은 이 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참고로 아들과의 라오스 여행은 김민식 작가의 여행 에세이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의 영향 때문이다.)


 이 책은 열 편의 여행 에세이가 담겨 있다. 제목에서 언급한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이외에도 세계 여러 곳이 등장한다. 저자의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을 집필했던 장소인 그리스의 섬, 대자연의 아늑함과 광활함을 여유롭게 느낄 수 있던 핀란드와 아이슬란드, 달리기와 재즈 마니아인 작가에게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던 보스턴과 뉴욕까지. 작가는 섬세한 관찰력과 기록하는 습관을 바탕으로 읽는 맛이 나는 여행기를 써내려갔다. 게다가 각 여행지의 특성, 문화 등에 대해서도 쉽고 해박하게 풀어나가고 있어 인문학적 지식들로 똑똑해지는 느낌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여행기로서 정보 제공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각 여행지에서의 크고 작은 여행 팁도 책에서 등장한다. 가령 아이슬란드에서 무인 주유소를 이용할 때의 곤란했던 상황을 통해 여행 전에 꼭 무인 주유소 사용법을 숙지하라는 그의 조언은 언젠가 아이슬란드 여행을 계획할 때 반드시 생각이 날 듯하다.


 그럼 라오스에 대체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베트남에서 라오스로 가는 공항에서 직원에게 그 질문을 받는다. 그 질문에는 베트남이 라오스보다 살짝 우월하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저자 역시 그 질문을 듣고 대답하지를 못했다. 그곳에 왜 가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행지에 직접 방문해서야 찾을 수 있다. 여행지에서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미리 안다면 굳이 우리가 먼 길을 떠날 필요가 있을까. 하루키 역시 '라오스에 대체 무엇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라오스까지 가야만 했다. (그의 실제 방문 목적은 '일'이었다. 일하러 가서 여행도 하고 그 기록을 책까지 내는 그의 삶은 작가의 특권이고 동시에 나의 꿈이기도 하다.)


 라오스에는 라오스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풍경, 사람, 냄새, 소리, 촉감이 있다. 하지만 여행자마다 라오스에서 느끼고 배우는 것들은 저마다 다르다.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낯선 여행지를 경험하고 받아들인다. 라오스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우리의 삶에 실질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여행지에서의 추억은 금세 일상에 묻혀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질 수도 있다. 사실 여행이란 것이 끝나고 나면 공허하다. 하지만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는 김희성처럼 나 역시 일상에서 놓치고 지냈던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의 가치를 보고 느끼고자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 sasint, 출처 Pixabay


 여행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여행의 일정이 어느 정도 여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고등학교 수학여행처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유명 관광지에 들러 기념 사진 찍기 바쁜 여행에서는 여유롭게 여행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여행은 최소 1주일 이상 가는 것이 좋다. 또는 여행 일정을 빡빡하지 않게 짜는 것이 좋다. 낯선 여행지를 일상처럼 편안하게 느끼려면 여유가 필요하다. 책에서는 라오스의 한 호텔에서 맨발의 하루키가 의자에 편하게 기대어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이 등장한다. 그 사진을 보며 여행을 일상처럼 즐기는 저자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여행에서 여유로움이 있어야 다소 느긋하게 여행지의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충분히 시선을 둘 수 있다. 여행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눈에 담으며 나와 그들의 삶이 큰 차이가 없음을 느낄 때가 온다.


 어느 순간 여행지에서의 낯섦이 익숙함으로 느껴질 때가 온다. 우리는 방랑자가 아닌 여행자이다. 여행자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이야기다.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일상에서 다시 낯섦을 느낀다. 여행을 통해 나의 내면은 변했고 세계관은 확장되었다. 새로운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니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여행지에서 배운 것들을 일상에 녹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다행히 나는 주말 부부라 매주 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대구와 천안에 갈 때마다 내가 지내는 곳이 낯설게 느껴진다. 특히 첫날의 경우 동네를 산책하거나 달리는 경험이 더욱 즐겁다. 내가 사는 동네가 새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늘 다니던 골목길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둘러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다닐 수 있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하루키는 다음과 같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여행뿐만 아니라 인생도 그러한 거라고. 여행지에 존재하는 미지의 그 무언가를 찾아 여행을 떠나듯이 일상에서도 낯섦을 찾아 떠나보는 것은 어떠할까? 우리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바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문화권으로 멀리 떠나는 것도 좋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행을 자주 가기에 우리에게 시간, 돈 그리고 체력이라는 제약이 있다. 하지만 하루라는 일상은 매일 아침 우리에게 주어진다. 일상을 여행처럼 즐겨보는 것은 어떠할까? 여행을 떠날 열흘을 기대하고 꿈꾸며 350일 이상을 참고 사는 것도 바람직한 삶은 아니다. 마치 열흘간의 휴가를 위해 350일의 일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나 역시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권태를 느끼기가 쉽기에 신나고 새로운 일이 가득한 여행을 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삶이라는 여행에 참여하는 것이다. 마음을 활짝 열고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새로운 사건과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 일상에 작은 균열을 만들거나 사소한 일탈 행위를 하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함으로써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 넣을 수 있다. 어느덧 2학기 개학한 지도 2주가 지났다. 남은 2022년 하반기라는 시간 역시 내 인생에서 처음 겪는 시간이다. 남은 일상 속에서도 나는 크고 작은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마흔 한 살의 가을과 겨울이 기대가 되고 기다려진다. 매일 아침, 오늘 하루는 무엇으로 채워갈까를 고민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를 내일의 새로운 여정이 기대된다.



이 책을 읽고 결심한 것


 이 책을 통해 결심한 것이 있다. 첫 번째, 하루키처럼 맛깔나게 여행의 경험을 기록하고 싶다는 욕심이다. 그는 재즈와 달리기와 더불어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작가이다. 작가는 글로써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고 기록한다. 글을 통해 다시 태어난 여행의 흔적은 저자의 개인적인 추억담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에게 정보와 감동 그리고 영감을 준다. 일단 그처럼 생생하게 여행기를 쓰기 위해서는 여행지에서의 순간 온전히 내 몸을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여행을 되돌아보면 지금 여기에 나를 두고 있지 않았다. 유명한 관광지에 들러 사진을 찍고, 맛집을 탐방하고, 쇼핑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타인과 세상의 욕망에 맞추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느라 여행지에서의 순간에 몰입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나와 달리 하루키는 여행 때마다 사진을 찍어주는 기사를 대동한다.) 또한 여행을 통해 얻게 된 작은 성장 과정을 글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새로운 곳으로 가 여정을 남기는 글도 쓸모가 있다. 하지만 흔한 여행지에 방문했더라도 그곳에서 겪은 나만의 성장 스토리가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더 의미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두 번째는 다시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사실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욕망보다 돈을 아껴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싶다는 욕망이 더 크다. 사실 나는 코로나를 핑계로 떠나고 싶어 하는 아내의 욕망을 억누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마구 들었다. 원래 가고자 했던 라오스는 물론이고 핀란드, 그리스, 아이슬란드까지 나의 희망 여행지 목록에 추가되었다. 특히 책에서는 한때 일상을 보냈던 그리스에 여행자의 신분으로 다시 방문한 저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 역시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부모가 살았던 중국으로 여행을 갈 생각이다. 그곳에서 나의 30대 중반의 삶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다.


 책을 통해 히루키의 시선으로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를 읽어 보기를 권한다.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더욱 다가올 여행이 기다려질 것이다. 여행 중에는 나만의 시선과 태도로 여행지에서의 여정과 느낌을 메모해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기억에 남는 것을 중심으로 나의 여행을 글로 남겨 보기를 바란다. 하루키조차 여행을 다녀온 후 글을 쓴다는 것은 괴로운 작업이라고 했다. 하지만 글로 당시의 생생함을 남기지 못했던 여행은 아무리 좋았던 추억도 대부분 머릿속에서 흐릿해진다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무엇이 있는데요?'라는 책은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열망과 그 과정을 기록하고 싶다는 욕망을 동시에 떠오르게 해 주었다.



추신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라오스는 아빠 혼자 가야겠다. 하루키처럼 보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고, 진득하게 시간을 들여 라오스의 곳곳을 바라보고 싶다. 아마 10년 뒤에는 혼자서 여행이 가능하겠지? 아니면 뜻이 맞는 동지와 함께? 저랑 같이 라오스에 가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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