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천소년 Nov 19. 2022

오해는 흔하고, 이해는 희귀하기 때문에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이슬아 남궁인


 한 권의 책을 통해 두 명의 멋진 작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라는 책을 통해 내적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던 이슬아 작가와 응급실 의사라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매일 엄청난 양의 글을 써 내려가는 남궁인 작가입니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라는 책은 두 사람이 1년 동안 주고받은 서간문을 엮은 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이후 처음 읽는 서간 수필이었습니다. 특별한 주제 의식도 없이 두 스타 작가를 묶어 놓으며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출판사의 기획 의도가 뻔히 드러나 쉽게 책에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책이라는 입소문 덕에 연이 닿게 되었고, 책의 프롤로그를 읽으며 이 책과 만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은 구린 걸 능숙하게 구리다고 말할 줄 아는 이슬아 작가의 편지로 시작합니다. 편지를 통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자신에 대해 알아갑니다. 남궁인 작가는 남을 생각하다가 문득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서간문의 본질(31쪽)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이슬아 작가는 자신만을 생각하던 사람이 남을 돌아보는 것이 서간문의 본질(205쪽)이라 책에서 밝혔죠. 그러다 보니 주로 이슬아 작가가 남궁인 작가를 디스 하기도 하면서 나긋나긋하게 질문을 던지고, 남궁인 작가는 이에 자신을 변호하기에 급급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티키타카는 애정이 있기에 따뜻하고 상대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하기에 흥미롭습니다. 남궁인 작가를 대하는 이슬아 작가의 태도를 보면 사람에 대해 그녀의 호기심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귀하게 여깁니다. 남궁인 작가는 이슬아 작가의 글에 누군가의 생과 존재에 대해 경탄하고 탐구하려는 자세가 깊이 배어 있다고 평했는데 심히 공감하는 바입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배우는 태도가 그녀를 요즘 세대를 상징하는 이야기꾼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편 그녀의 서슬 퍼른 질문에 남궁인 작가의 말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간문의 형식이지만 불특정한 다수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이었기 때문에 이슬아 작가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자세했고 친절했습니다. 마치 "어서와! 남궁인은 처음이지!"라는 BTS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고 할까요. 독자인 저의 입장에서 남궁인 작가의 매력적인 과거와 삶에 대한 그의 태도들을 자세히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남궁인의 재발견'으로 표현했는데요. 이 책을 통해 처음 남궁인 작가를 접한 저로서는 '남궁인의 발견'이라고 표현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저와 비슷한 나이이고 같은 남자이다 보니 남궁인 작가의 글에 더 공감하며 책을 읽은 것이 사실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슬아 작가의 글보다 그의 글이 덜 불편했죠.


혹여나 누군가 제 구림을 꾸짖을까봐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았습니다. 11쪽


가운을 벗고 집에 돌아오면 저 또한 매일 불안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해결되지 않는 일을 생각합니다. 저 또한 불안과 영원히 살아가는 일을 암담하게 받아들입니다. 48쪽


 왜 자신이 궁상스럽게 살아야 했는지에 대한 위와 같은 그의 궁색한 변명(?)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매사에 당차고 자신감이 있는 이슬아 작가보다는 누군가 자신의 구림을 꾸짖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남궁인 작가에 더욱 저를 이입할 수 있었죠. 그가 넉넉한 인품을 지녔기 때문에 이슬아 작가가 마음껏 본인이 숨기고 있던 악동(?) 기질을 글을 통해 발휘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선생님의 편지 안에서 수신자인 저와 크게 상관없는 썰이 참 길었다는 점이에요. 205쪽


 이슬아 작가의 악동 기질의 백미는 책의 말미에 등장합니다. 제목부터 파격입니다. 제목이 무려 '남궁인밖에 모르는 남궁인 선생님께'입니다. 대놓고 남궁인 작가를 저격하는 제목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이슬아 작가는 지금까지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글의 주어 사용(나/너)을 분석해 남궁인 작가가 상대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에 휠씬 더 집중했다고 꼬집고 있습니다. 즉 남궁인 작가가 서간문의 본질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남궁인 작가의 편지가 굳이 수신자인 자신과 크게 상관없는 일반 독자들을 위한 내용이 많았다는 것이 그녀의 날카로운 지적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40대 남자인 저는 저의 구린 언어생활에 대해 되돌아보았습니다. 저는 타인과의 대화에서 얼마나 나 자신이 아닌 당신의 이야기에 집중했을까요? 혹시라도 상대의 미세한 얼굴 근육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라떼는'을 시전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아프다는 상대의 말에 "나도 아픈데!"라며 공감이라고는 1도 없이 나만 바라보는 이기적인 대화를 이끌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았습니다.


경험의 양이나 길이로써 대화의 우위를 점하려는 태도가 '라떼는'을 '라떼는'으로 만듭니다. 106쪽


 '라떼는'의 본질은 과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 사람은 세대와 상관없이 누구나 과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다만 경험의 양으로 대화의 우위를 점하려는 태도가 '라떼는'을 '라떼는'으로 만든다고 이슬아 작가가 정확히 '라떼는'을 지적합니다. 결국 나의 이야기만 풀어놓고 듣기를 강요하는 것이 '라떼는'의 본질입니다. 무작정 과거 이야기를 꺼낸다고 꼰대라고 비하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과거 이야기에 내재된 관계의 폭력성이 '라떼는'을 '라떼는'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저는 천성이 투머치 토커라 더욱 스스로를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그 본성은 쉽게 버릴 수 없겠지요. 적어도 저와 상대의 대화 지분이 8:2 또는 9:1은 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겠습니다. (하긴 나와 너의 대화 양 차이가 8:2가 넘어서면 아무도 저랑 안 놀아주겠지요.) 무엇보다 상대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당신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고 듣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야겠습니다.


© Pezibear, 출처 Pixabay


 책을 모두 읽고 나니 편지글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자신을 알아가며 우정을 다질 수 있는 두 작가가 진심으로 부러웠습니다. 두 작가의 매끄러운 글 솜씨에 질투심이 솟구치기도 했고요. 하지만 질투심보다는 경탄의 감정이 더 컸습니다. 글 속에 담긴 그들의 태도에 감탄을 했습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쉽사리 따라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단순히 부럽다, 질투 난다는 감정의 영역을 벗어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험난한 이 세상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노력의 흔적이 바로 글에 녹아 있고요. 그래서 그들의 편지 속에는 글쓰기란 행위에 대한 애정이 많이 드러납니다. 슬프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기 위해 글을 썼고, 자신을 성찰하고 자책하고 용서하기 위해 글을 썼고,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며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써 왔습니다. 저 역시 '영천소년의 자기혁명'이라는 제목으로 블로거로서 글을 쓴 지 2년이 넘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글쓰기가 숙명임을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달았습니다. 글 재주가 부족한 것에 스스로 실망하지 말고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내가 되기 위해서 꾸준히 글을 써야겠습니다.


 한편 이 책의 제목은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입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사이에 늘 오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잘 모른다는 이유로 그 상황을 피하기 때문에 그 오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지요. 좋은 삶의 태도가 그대로 글에 투영되는 두 작가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두 사람은 차이점이 제법 많습니다. 살아온 환경 역시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요. 무엇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해는 필연적입니다. 그래서 사람 사이의 관계는 참 어렵나 봅니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그대 남들과 얼마나 다르리오.

그 얼마나는 때론 제로. 그리고 종종 무한대

우리들은 언제나 웃으며 그 거리를 여행한다.


263쪽(친애하는 미스터최, 사노 요코, 최정호)


 상대와의 거리는 제로가 되었다가 때로는 무한대가 되기도 합니다. 일상을 함께하는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다가 예상을 벗어난 상대의 반응을 접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무척 큽니다. 남궁인 작가와 이슬아 작가의 글을 읽으며 상대와 오해가 생겼을 때 다가설 수 있는 용기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특히 해마다 많은 학생들을 만나야 하는 직업을 가진 저로서는 오해보다 이해를 추구해야 합니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가지 말고 질문하고 대답하고 다시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오해를 이해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오해를 이해로 바꾸었을 때 상대와의 인간적인 교감으로 훨씬 더 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 진실한 우정은 나의 자존감 역시 고양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쉬운 길은 아닙니다. 타인을 잘 모른다는 것은 늘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어설프게 상대에게 다가가려다가 관계가 더 악화될까 봐 무섭습니다. 하지만 피할수록 상대에 대한 오해는 깊어져 갑니다. 그래서 저자는 오해는 흔하고 이해는 희귀하다는 명언을 남겼나 봅니다. 그리고 나와 너에 대한 오해를 이해로 만드는데 유용한 도구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때로는 휘발성이 강한 말보다 묵직한 글이 지닌 힘으로 내 생각과 감정을 상대에게 진심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니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글을 통해 진심을 다해 소통하고 그 과정을 통해 상대와 자신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쪽지 정도는 남긴 적이 있어도 몇 시간 동안 고민하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기억이 언제인지 도통 떠오르지 않습니다. 2000년대 초반 한창 다음 메일이 유행할 때 편지를 통해 상대에 대해 서로 알아갔던 시절이 있기는 했네요. 글이라는 것은 말처럼 휘발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진중하고 배려 깊은 표현으로 나와 너의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군대 시절 지인들에게 받았던 편지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서랍 한구석에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문득 그들의 편지에 제가 보낸 답장 글이 궁금하네요. 오늘은 맑은 가을 하늘 아래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추신 1


 앞으로도 두 작가님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이 책에 이어서 이슬아 작가의 다른 수필집을 읽고 있는데 글이 기가 막히네요. 솔직하게 술술 적어가면서도 솔직함의 정도가 과하지 않습니다. 뭔가 에피소드를 통해 메시지를 주겠다는 의도가 뻔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저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만들고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포인트를 전합니다. 게다가 일상의 이야기를 다룬 수필에서도 저의 글에 써먹고 싶은 인용구가 꼭 등장합니다. 이것이 나 같은 필부와 다른 전업 작가의 실력이구나 감탄을 하게 됩니다. '일간 이슬아'를 통해 매일 글을 쓰면서도 매일 좋은 글을 쓰는 그녀의 비범함이 가히 놀랍습니다.


 이번 책을 통해 내적 친밀감이 형성된 남궁인 작가의 책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참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입니다.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그의 삶의 태도를 닮고 싶습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 조금이나마 더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됩니다. 책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참 매력적입니다. 수필만큼 작가의 개성과 태도를 적확하게 전달하는 매체는 없습니다. 앞으로 그 어떤 매체가 등장하더라도 글이 가진 소통과 전달력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글을 통해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다른 두 사람의 진실한 우정 이야기를 엿보고 싶은 분들께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라는 수필집을 추천합니다. 게다가 글을 읽는 재미와 즐거움은 덤입니다.



추신 2 -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이슬아 작가의 말


우리는 참으로 절절하게 반성하고 자책하면서도 타인의 이해를 갈구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11쪽


우리는 꾸짖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털어놓고 안아주면서 평생 해오던 쓰기를 연장할 것입니다. 12쪽


아픈 곳도 괴로운 문제도 없는 날에, 그것이 어마어마한 행복임을 알아보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58쪽


선생님은 응급실에서 험한 일을 많이 겪은 나머지 웬만한 좋지 않은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82쪽


사실 우정의 범위를 넓힌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정에는 연민도 따르고, 수고도 따르잖아요. 좋아하는 만큼 마음이 아플 테고요. 86쪽


체력이 인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튼튼해지고 싶어요. 바쁠 때에도 상냥함을 잃지 않고 싶으니까요. 108쪽


글을 쓴다는 건 당연하게도 매일 아침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절망의 옆구리와 뒤꽁무니를 보며 농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114쪽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 가능한 한 많은 존재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려 애쓰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축복이겠습니다. 136쪽


지치고 싶어서 갑자기 대청소를 시작한 날들이 떠오릅니다. 선생님도 가끔은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육체를 지치게 만들지 않나요? 157쪽


고난을 고난으로만 두지 않게 하는 속성이 글쓰기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경험은 글로 쓰면 견딜 만해지니까요. 하지만 어떤 경험은 글로 쓰면 쓸수록 비참해집니다. 그 경험을 잘 다룰 깜냥이 아직 없어서겠죠. 180쪽


우리가 문장력만큼이나 갈고닦아야 하는 건 '닥침력'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우리보다 더 훌륭하게 편찬할 사람들이 또 있을 테니까요. 183쪽


서간문의 본질은 자기만 생각했던 사람이 문득 남을 돌아보게 되는 과정이라고. 205쪽


우리 사이엔 늘 오해가 있고 앞으로도 그럴 테죠. 우리는 대체로 패배하고 가끔 승리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다시 패배로 돌아올 것입니다. 서로를 모르니까요. 오해는 흔하고 이해는 휘귀하니까요. 215쪽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요조, 215쪽


저는 제가 아름다운 정도를 좋아합니다. 거울 앞에서 괴로울 정도로 못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아름답지도 않은 만큼의 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48쪽


글쓰기는 변화에 관한 예술이며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전과 다른 자신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277쪽


미래에도 계속될 우리 사이의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질문하고 듣고 대답하고 되물을 수만 있다면, 그럼으로써 달라질 수만 있다면 오해는 아주 사소한 어려움일 테니 말이다. 277쪽



남궁인 작가의 말


몹시 급박하고 절망적일 때조차도 그가 친절을 잃지 않았던 순간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9쪽


문득 남을 생각하다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서간문의 본질임을 직면합니다. 작가님은 적어도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입니다. 31쪽


누군가 와락 안아주는 일 같은 것이 우리의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서면으로 방법을 묻고 서로를 깊게 이해하려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계속 이겨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패배하고 가끔 승리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다시 패배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삶은 눈물나는 일입니다. 51쪽


그 글들을 보면 누군가의 생과 존재에 대해 경탄하고 탐구하려는 자세가 깊이 배어 있습니다. 글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진정한 놀라움이 그 글을 더 빛나게 만들고야 맙니다. 71쪽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조금 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반성하고 주위를 되돌아보고 읽고 이해하는 것이 글쓰기를 계속하는 행위니까요. 75쪽


아무것도 없는 제게서 무언가 새로운 존재가 탄생한다는 데 삶의 희열을 느꼈습니다. 92쪽


보잘것없는 단상이 기록되지 않고 지나가는 일에 발을 구르던 미련한 존재였습니다. 93쪽


이미 고갈되어버린 듯한 나에게서 무엇인가 계속 탄생하는 기쁨이 작가님에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94쪽


혼자 마시면서 주량을 넘겨야 술과의 싸움에서 패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다음날 그나마 온전하게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요. 99쪽


누군가는 우리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편지를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요. 그래서 저는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행복을 바랍니다. 102쪽


신비롭고 유일무이한 존재이기도 싶은 괴물 같은 과욕의 사내가 되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강박입니다. 120쪽


저는 제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조리 인정해버리고 맙니다. 그게 제가 하는 최선의 노력입니다. 121쪽


사랑하는 사람이 숟가락을 떠서 배를 채우고 제법 먹을 만하다고 말해주는 순간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존재의 이유를 느낍니다. 126쪽


그럼에도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고 약자가 약자라는 이유로 안위가 위협받아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의 '삶'을 바라는 위치에서,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147쪽


어떤 강박은 명백하게 타인에게 해를 끼칩니다. 그중에서 누군가를 가장 괴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모든 것을 기록하는 강박입니다. 166쪽


글쓰기는 제게 어차피 자연스러운 삶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198쪽


결국 더 안일하고 비겁하게 제 이야기로 숨어들어갔지요. 타인의 세계를 생각하는 어려운 일에서 도망쳐 쉬운 선택을 한 셈이었습니다. 221쪽


돌이켜보면 살면서 즐긴 일도 피한 일도 특별히 없는 것 같습니다. 243쪽


제가 옛날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었다면 글을 쓰기 위해 많이 울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는 행위에는 슬픔의 본성뿐만 아니라 달라지고 나아가는 본성 또한 있다고 생각합니다. 236쪽


그래도 달리기는 마감보다는 재미있는 편이니까 글을 쓰다가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으면 신발끈을 묶고 도피하곤 합니다. 피하고 싶은 일에서 즐길 수 없는 일로 넘어가는 셈입니다. 244쪽


빛나는 한 우주가 제게 조금 가까워져서 그동안 외롭지 않았습니다. 가장 친절하고 진솔한 우주를 알게 되어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든 것이 아련해질지라도, 아득한 거리에서 빛을 뿜으며 서로에게. 268쪽










작가의 이전글 당신은 지금 행복하신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