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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Dec 28. 2022

책에 부채의식을 갖고 있던 분들에게

이시한의 열두 달 북클럽


12년 전 서른 살 때의 이야기입니다. 명절 때마다 아버지께서 늘 만나는 친구분 M 아저씨가 있습니다. M 아저씨는 경북고, 서울대 법대, 사법고시 패스 후 판검사 재직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분입니다. 한 번은 아버지와 M 아저씨가 만나는 술자리에 불려 나간 적이 있습니다. M 아저씨께서는 최근에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저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살면서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냐는 질문을 처음 받았습니다. 읽고 있는 책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혹시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 보았냐고 물으셨고 저는 책 제목은 들어보았지만 읽지는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이후 다른 소재로 대화가 지나갔지만 읽고 있는 책이 없다고 답했을 때 창피했습니다. M 아저씨의 표정에서 국어 선생이 '로마인 이야기'도 읽지 않고 뭐했냐는 꾸지람이 느껴졌습니다. 이날의 일은 오랫동안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늘 독서에 대한 압박감과 부담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인기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지만 한 번 정도 제목을 들어보았을 법한 유명한 책을 읽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창피해합니다. 그 사건 후 학교 도서관에서 '독서하는 홍대리'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독서로 인생을 바꿔 보겠다는 의욕과 함께 당시 성과급을 모두 털어 50권의 책과 책장을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책보다 재미있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구입했던 50권 중 10권도 읽지 못했고, 그렇게 저의 삶에서 책은 다시 멀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새해 때마다 다이어트, 운동, 외국어 공부, 금연, 금주와 더불어 책을 읽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결심들 중 가장 지키기 힘든 것이 독서가 아닐까요? 당장 시작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에 큰 지장이 없거든요. 게다가 우리들의 손에는 책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는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들려 있습니다. 각종 플랫폼에서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동원해 우리들의 시간을 빼앗아 갑니다. 하지만 남의 것을 보고 배우고 즐기는 것만으로는 저의 삶이 공허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보잘것없더라도 무언가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를 채워야 했죠. 인생에 대한 공부, 사람에 대한 공부,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제대로 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시 책에 의지해야 했고, 책을 읽기 위해서는 독서 습관부터 만들어야 했습니다.



일상에서 책을 가까이 두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자주 머무르는 장소마다 책을 두었습니다. 책을 구비해 놓으면 언젠가는 읽을 거라는 믿음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고서점에 들러 책을 샀습니다. 항상 가방에 읽을 책을 넣어 두었고, 집 곳곳에 책을 비치해 두었습니다. 직장에서도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언제든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책꽂이 안에 읽을 책을 2~3권 정도 넣어 둡니다. 주말에는 대구와 천안을 오고 가는 기차 안에서 늘 책을 읽지요. 그렇게 매주 2~3권의 책을 읽다 보니 3년째 100권 이상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1주일에 한 번은 블로그에 서평을 남겼고, 매달 초마다 '책 좀 권해볼까'라는 제목으로 한 달 동안 읽었던 책을 간단히 기록하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감 시간을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덧 독서와 기록은 제 일상의 루틴이 되어 있었습니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공부하듯이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접하는 일은 참 즐겁더라고요. 독서가 즐거우니 습관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말하고 쓰는 것이 그 어떤 취미 생활보다 재미있습니다. 어느 정도 책과 친숙해졌음에도 예전처럼 다시 책과 멀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을 늘 갖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제가 선호하지 않는 분야의 책은 잘 읽지 않습니다. 올해 과학 분야의 책을 읽으려고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구입했는데요. 여전히 책꽂이의 한자리를 차지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저의 문해력보다 수준이 높은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벽돌 책이나 난해한 철학 및 과학 책에 손을 대지 못합니다. 고전 작품의 경우 독서모임의 힘을 빌려야 끝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책에 재미를 붙인지 이제 3년 차임을 감안하면 수준 높은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은 빨리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하는 제 욕심일 수도 있겠네요.



이왕 시작한 책 읽기를 더 잘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독서가로 살겠다고 결심한 만큼 책 읽기에 대한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책 읽기'와 관련된 책을 읽습니다. 수천여 권의 책을 읽으며 다독가라고 불리는 대가들이 오랜 세월 책을 읽으며 배우고 느꼈던 점이 응축되어 있는 그런 책들을 좋아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유튜브에서 시한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시한 작가의 '이시한의 열두 달 북클럽'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다소 어려운 내용의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꼭 이시한 작가의 '읽은척책방' 유튜브 영상을 찾아봅니다. 1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책의 핵심과 정수만을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설명해 주는 작가님입니다. 알고 보니 설민석의 '책 읽어드립니다'라는 교양 프로에서 책 선정 위원을 맡으셨더라고요. 작가님께 독서 수업을 받는다는 기분으로 '이시한의 열두 달 북클럽'을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 인상 깊었던 처음 책, 콘텐츠가 된 책, 시대정신이 담겨 있는 베스트셀러, 인문학을 품고 있는 잘 쓰인 과학 책, 몰입하기 힘든 책을 몰입해서 볼 수 있는 방법, 밀리언셀러 책이 사랑받는 이유, 고전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 한 분야를 대표하는 책의 조건, 자신에게 맞는 좋은 에세이를 고르는 방법, 벽돌 책을 대하는 자세 등 책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에세이 식으로 12장에 걸쳐 들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셜록홈즈, 해리포터, 죽은 시인의 사회, 위대한 개츠비, 사피엔스, 총 균 쇠'와 같은 친숙한 책을 사례로 저자만의 책 읽기 노하우를 독자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해 주고 있습니다. 가령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남미나 아프리카 대륙의 생소한 작품을 통해 새로운 취향을 경험해 보라는 조언이 저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늘 가던 길로만 다니는 것보다 가끔은 새로운 길을 경험하는 것도 인생에서 꼭 필요하니깐요. 에세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몽테뉴의 수상록이 지금의 에세이가 주는 메시지와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도 신기했습니다. 수상록의 차례를 보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긴다, 진짜 나답게 되는 법을 안다, 늙음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와 같은 문구들이 등장합니다. 요즘 나오는 에세이의 주제의식과 다를 바가 없지요.



읽고 쓰는 삶을 산 지도 어느덧 3년 차가 되었습니다. 여유가 있으면 책부터 찾고 독서가 취미라고 말할 수 있고 정도로 독서가 습관이 되었습니다. 내년부터는 독서 편식에서 벗어나 과학, 철학, 소설과 같은 제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책에도 자주 도전해야겠습니다. 여행이 설레고 재미있는 이유는 새롭고 낯선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독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수월하게 내가 모르는 분야로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독서입니다. 감사하게도 이 책에는 평소 제가 읽지 않았던 분야의 다양한 책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본 쉬나드), 무정(이광수), 수레바퀴 아래서(헤르만 헤세), 니코마코스 윤리학(아리스토텔레스),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코스모스(칼 세이건)'를 내년 독서 목록에 메모해 두었습니다.



항상 책에 부채의식을 안고 계셨던 분들, 새해를 앞두고 독서를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모든 분들께 '이시한의 열두 달 북클럽'이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책에는 기가 막힌 독서 방법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독서 방법은 제각가 다릅니다. 조용한 방 안에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백색소음이 존재하는 카페에서 책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독서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만의 독서 루틴을 만드는 것인데요. 이 책은 자신만의 독서 환경을 조성해 독서 루틴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자세히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독서루틴 구축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는 방법까지, 이 책을 읽고 자신에게 적합한 독서 방법을 찾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추신


저자의 독서 이야기와 책에 얽힌 생각들을 들으며 나만의 독서 이야기를 펼쳐 나갈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각 장의 마지막 페이지는 저자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저자의 질문에 간단히 답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의 인생 책은 무엇인가요?



1. 다시 읽고 싶은 처음 책은?


삼국지, 나관중


→ 초등학교 4학년 때 상중하 세 권으로 나누어진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었다. 당시 어린 마음에 유비, 관우, 장비의 죽음 앞에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이후에도 여러 저자의 삼국지를 읽었는데 40대가 된 지금 다시 삼국지를 읽어 보고 싶다. 이번에는 어떤 인물들이 나에게 다가올까.



2. 미디어를 통해 접한 책은?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와인 들고 있는 영화 포스터를 통해 '위대한 개츠비'라는 작품을 알게 되었다. 올해 독서 모임을 통해 읽게 된 책으로 스토리가 재미있었다. 이미 지나가버린 사랑을 어떻게든 되돌려 놓으려는 개츠비의 마음에 공감하며 책을 읽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프로그램에서 김누리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당시 강연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 강연을 토대로 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3. 당신이 읽은 베스트셀러는?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 워낙 유명한 베스트셀러라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다. 건강한 삶을 위해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이 책을 읽고 타인의 욕망과 시선이 아닌 나의 욕망과 시선에 충실한 삶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4. 읽어 보고 싶은 과학 책은?


코스모스, 칼 세이건


→ 작년부터 벽돌 책에 도전하고 있다. 작년에 '사피엔스', 올해는 '총균쇠'를 읽었고, 내년에는 '코스모스'를 읽을 계획이다. 이시한 작가도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선택했다. 어차피 살면서 여러 번 읽을 생각이기에 완벽히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내 마음에 와닿는 구절 위주로 책을 읽어야겠다.



5. 밤새워 읽어 본 책은?


셜록 홈즈 시리즈


→ 중학생 시절 성탄절 선물로 아버지께 셜록 홈즈 전집을 받았다. 당시 동생과 서로 번갈아 가며 책을 읽었다. 추리적 요소, 탄탄한 스토리로 인한 몰입감, 개성 넘치는 인물들 등의 장점이 담긴 '셜록 홈즈' 시리즈를 통해 책 읽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6. 당신의 기억에 남은 고전은?


1984, 조지 오웰


→ 왜 이 작품을 남기고 얼마 후에 조지 오웰이 유명을 달리했는지 알겠다. 작품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정교하게 설계된 미래 사회의 모습도 놀랍지만, 전체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고전 작품이었다.



7. 낯선 분야에 흥미를 갖게 해준 책은?


매일 아침 써 봤니, 김민식


→ 이 책 덕분에 블로그를 시작했다. 40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글'이라는 분야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을 포스팅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의 영향이다.



8. 기억에 남는 에세이는?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 내가 닮고 싶은 저자의 에세이는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과 그것을 담아내는 개성 있는 문체에 감탄하며 읽었다. 새해가 되면 또 읽고 필사해야겠다.



9. 도전해 보고 싶은 벽돌 책은?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 재미가 없더라도 의미가 있기에 읽어야 할 책이 있다. 21세기 가장 논란이 되었던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그러하다. 그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격차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선언했다. 이 책을 읽고 자연과 공존하며 모두가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



10. 당신의 인생 책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 조금은 진부하지만 나의 인생 책은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진짜 죽음은 심장이 멈출 때가 아닌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을 때라는 걸 알려준 소중한 책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의미를 되돌아보게 해 주는 인생 책이다.



이시한의 열두 달 북클럽저자이시한출판비즈니스북스발매202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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