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온 후 만난 이들, 만나야 하는 이들
책이 나온 후 내가 만나게 된 이들은 일반 독자였다. 북토크를 하거나 모임에 가더라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주로 모였고 그들과 주된 소통을 했다. 물론 그 가운데 중독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었겠다. 고통 받는 이들은 자신이 아프다고 대부분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몰랐을 수도 있고. 요즘 건강 이슈로 회사를 쉬며 시간이 좀 생겨 엄마가 입원했던 병원과 회복을 위해 과거에 알아 보았던 여러 센터에 연락을 했다. 나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늘 어렵고 당황스럽고 마치 대답을 요구 받은 사람처럼 긴장이 된다.
엄마가 중독자였고 딸이었어요. 회복은 되셨나요? 아니요 돌아가셨어요. 아이고 저런.
제가 책을 팔려는 것은 아니고요. 제 책이 중독자 혹은 그 가족분들에게 잠시나마 숨 구멍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어서요. 한두 권 보내드릴테니 혹시 더 원하시는 가족 분이 있다면 제게 또 연락 주세요.
중독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는 대게 바깥으로 새어 나오지 못한다. 여력이 없는 것이다. 중독자 본인은 약과 약물의 잔혹한 굴레 속에서 허덕이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를 돌봐야 한다는 중압감에 학교나 회사에서도 어느 것 하나 집중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회사 화장실에서 엄마로 인해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목소리를 낮췄던 일이 많았다. 모니터 화면을 엑셀을 보다가 엄마가 계단에서 떨어져 응급실에 있다는 말에 피씨를 끄지도 못하고 병원으로 달려가기도 했었고. 중독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일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누가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남들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니까.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를 가장 아프게 하니까. 그 감각은 나 자신도 나를 돌보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니까.
하지만 나에게 전부였던 그 세계를 나는 모른 척할 수가 없다. 이미 나의 세계였고 여태껏 나의 전부이며 일부이고, 그 세계 속에서 만들어진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를 무너뜨렸으며 일으켰다가도 다시금 주저앉혔던 그 세계. 대문 밖을 나서면 그 누구도 몰랐던 세상.
알콜 관련 병원이나 센터에 전화한 것은 거의 십년 만이다. 늘 보호자의 입장에서 당사자로 전화를 걸다가 이런 위치는 처음이다. 더이상 중독자 가족이 없다는 사실, 그것이 나를 다행스럽게도 만들고 안타깝게도 만든다. 전화를 끊고서 한 삼십 분 가량은 마치 다시 그 지독했던 세계의 중심에 서있는 듯한 착각도 일었다. 데려가야 할 엄마가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며 있는 것만 같아서. 그래, 나에겐 그 세계가 사랑인 동시에 트라우마였지. 그 세계에 내가 내 의지로 이렇게 발을 딛는 것은 엄마가 죽고나서 처음이었잖아.
한 병원은 자신이 알아넌 같은 알코올 중독 치료 자조 모임을 만들고 운영도 했지만 알라틴이라는 중독자 가정의 십대 청소년 모임은 잘 되지 않더라, 는 푸념을 건넸고 어떤 센터에서는 어머님의 빈자리로 인한 따님의 마음에 대한 위로를 건넸다. 그 무엇 하나 내 마음에 내려 앉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말들. 엄마를 더 좋은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던 것, 좋은 치료자를 만나지 못하게 한 것, 더 빨리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한 것, 그때 내가 너무 어린 아이었던 것, 크고 나서 엄마를 짐으로 생각한 것,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던 것, 그 짐을 나는 조금 가볍게 만들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그들과의 전화를 복기하며 내 마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