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감촉을 떠올리며
비가 쏟아지는 소리에 잠이 깼다. 굵은 빗방울이 창문을 때렸다. 후두둑.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에 괜히 가슴이 뛰어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4시다. 잠시 뒤 밖이 번쩍, 환해지더니 곧이어 우르르 깡깡 천둥이 친다. 아이들이 깰까봐 서둘러 창문을 닫았지만 잠이 깬 것은 나뿐이다. 아이들은 정말이지 잘도, 잔다. 잠결에 팔을 긁는 아이에게 휴대폰 손전등을 비춰보니 벌겋게 부어있다. 서둘러 모기약을 가져와 발라주었다.
곤히 자는 아이의 앞머리가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길래 손바닥으로 쓸어올리니 근심 없는 표정의 눈을 감은 아이의 얼굴이 희미하게 빛난다. 쓸어올린 앞머리 말고도 아이의 헤어라인에는 아래를 향해 빽빽하게 들어찬 잔머리가 보인다. 이 잔머리가 다 자라는 날이면 너는 학교에 갈까. 학교 의자에 앉아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하루를 보낼까. 이마에 입술을 가져가 입을 맞추는데 아이 냄새가 훅 끼쳐온다. 왜인지 모르게 나는 이럴 때면 자꾸만 마음이 아프다.
내가 아이였을 때, 엄마는 자고 있는 내게 입을 맞추었다. 아직 잠들기 전이었지만 엄마를 아는 척 할 수가 없었던 날의 기억이 살아났다. 왜 이 밤에 잠들지 못하고 그녀가 내 얼굴을 바라보았던 것인지 잠 못드는 그녀의 밤을 떠올린다. 그의 마음을 복잡하게 했을, 커가는 아이의 얼굴. 인중의 잔털과 가느다란 팔다리와 살짝 벌린 입술. 그것을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성장통으로 괴로워하던 밤, 엄마는 밤새 내 발목에 얼음 팩을 대주었다. 그러고 맞이하는 아침에는 내게로 달려와 이제 일어났냐고, 다리는 어떻냐고 물으며 여기저기를 주물렀다. 자기 전 누운 아이들의 발과 다리를 주무를 때면 어릴 적 그 당시의 몸의 감촉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그녀와 살을 맞대고 살을 부비었던, 부들부들하기도 하고 보들보들하기도 했던 느낌. 내가 낳은 아이들은 자꾸만 나를 낳은 이를 이렇게 불현듯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로 데려온다.
누군가 내게 육아는 어린 시절의 나를 돌보는 일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내가 받지 못한 혹은 받은 것 중 좋은 것들을 다시 아이에게 주면서 그 시절의 어린 나를 돌보는 일. 요즘 나는 그녀가 내게 준, 내가 받은 것들을 재현하며 그 사랑을 복기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아이들과 있을 때면 자주 그녀 생각이 난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거실 통창에는 분명 하나의 줄기 같았으나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물방울 하나하나가 동그란 모양을 간직한 채 그대로 고여있다. 비슷하고 같아보이지만 결코 하나는 아닌, 하나로 합쳐질 수 없는 것. 나를 향한 그녀의 마음이 이랬을까. 여러가지가 뒤섞여 있어 어려웠던 마음. 도망가고 싶고 안타깝고 미안하고 화가 나고 편안하기도 한 그런 마음들. 그녀는 이 마음들을 어떻게 품고 거두었을까. 도저히 진정되지 않는 마음들에 어느 때는 잡아먹혀 술로 도피했을까.
“시원하다. 비가 오니까 마음이 시원해져.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 비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가 뱉었던 말. 그 말을 듣고 엄마에게 씻겨야 할 마음이 있는 것인지 그건 무엇인지, 혹은 그 마음이 또 술을 먹으러 나가게 하진 않을지 불안에 떨었던 열살의 내가 떠오른다. 나는 그녀가 죽고 난 후 열 번의 장마를 보고서야 드디어 내리는 비를 보며 비가 시원하게 온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