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관계의 구축
요즘 나는 아이와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아마도 아이는 이미 오래 전 부터 그래왔을지 모르나 이제서야 그것이 와닿은 나란 사람. 이전의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가 내 눈 앞에 기다리고 있다.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는 두 자매의 싸움. 둘째를 향한 첫째의 훈계와 둘째의 눈물. 아직 어린 둘째에게 마음을 쏟는 것이 느껴졌는지 첫째는 요즘 동생을 향해 매서운 눈빛과 언어를 쏟아낸다. 그러면 나는 “동생한테 그러지마, 동생한테 그만해, 너는 왜그러니.”하며 첫째를 제지하고 그것이 안 먹히면 비난한다.
하지만 할말은 꼭 하고야 마는 첫째는 “나한테 완벽함을 바라지마, 엄마는 외동딸이라 언니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잖아. 동생한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잘 안된단 말이야.” 라는 대답을 건넨다. 어느새 커버려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이야기하는 아이. 아이와 어른 사이, 애매한 그 사이의 사람.
어제 저녁 아이와 다투고 난 뒤, 해선 안 될 말을 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아이들 앞에서 지나치게 힘든 티를 냈다는 사실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오전 내내 울적함에 젖어있다가 다시금 기운을 내 테이블에 앉았다. 아이 책상에서 아이와 나, 둘이서 쓰는 교환일기를 꺼내 몇 글자 썼다.
어제 너랑 그러고 나서 마음이 많이 울적했다고. 그런 상황 속에서 네 마음도 아팠을 거라 생각하니 많이 미안했다고. 하지만 원래 관계란 어려운 거라고. 실패하고 실수할 수 있다고. 사랑도 미움도 다 같이 있는 게 관계라고. 너와 나의 관계도 그렇다고. 그래도 조금씩 노력해나갈테니 너도 엄마를 기다려달라고. 그렇게 쓰고 집을 나섰다.
멀리서 보면, 아니 한 발짝만 떨어져서 보면 장점이 참 많은 아이인데. 더 잘 했으면 하는 마음에 알게 모르게 아이를 힘들게 하진 않았는지, 언니로서 첫째로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는 마음에 아이에게 완벽을 요구한 건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내 마음 깊은 곳을 보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보아야 한다. 최대한 자세히 내 말과 그 당시 마음, 그 마음 아래 숨겨져있던 본심을 짚으면서. 그저 이런 말을 하지 않아야지, 이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지, 라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니까. 내가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고 그런 행동이 나왔는지 좀더 깊게 들여다봐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니까.
저 글을 쓰고나서 보니, 내가 아이에게 바랐던 것이 실은 아이가 내게 받길 원하는 것들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철렁 내려 앉는다. 내가 받고 싶은 것을 네게 주는 것을 넘어서서 네게 요구했구나. 너도 받고 싶었을텐데. 아직 나도 다 큰 어른아이구나. 나와 가장 가까운 너는 이런 마음의 압박감을 충분히 느끼고도 남았겠구나.
둘째를 가졌을 때 입덧이 너무 심해 하루에도 수십번 씩 변기통을 부여잡았다. 변기 앞에 내가 주저앉을 때마다 네 살이었던 첫째는 정말 그 때마다 많이 울었다. “엄마가 죽을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 변기 옆에 찰싹 붙어 토하는 내 머리를 울면서도 쓰다듬어 주던 아이. 지금도 그때 생각이 불현듯 난다. 작디 작은 네가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그런 네게 갑작스럽게 주어진 언니라는 역할이 고됐을 거라는 생각도.
오늘은 둘째가 이웃집에 마실을 가서 저녁은 첫째와 나 둘뿐이다. 그 사실을 안 첫째는 며칠 전부터 기대를 했었다.
-나 엄마랑 마라탕 먹고 싶어.
-응 나도 너랑 마라탕 너무 먹고 싶.
-뚝.
엄마의 전화를 자기 할 말 다했다고 자주 끊어버리는 너이지만, 나는 그래도 너를 잘 돌보고 너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거란 다짐을 해본다. 너를 사랑하는 길 가운데 놓인 내가 그것에 더 가까워져 갈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란 기대도 품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