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저희 집에 두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요. 만난 지 시간은 꽤 되었는데 이 만남이 결혼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우리가 과연 서로를 기다려주고 서로의 가능성을 발견하며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인지 고민이 된다던 지은과 희성이였습니다.
저는 이 둘이 꺼내어 놓는 그 뜨거운 불안과 걱정, 초조함을 삼키며 함께 밥을 먹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낯을 가리던 일곱살 둘째와 어른들 이야기에 끼고 싶어하던 열한살 첫째의 방해를 이겨내고 이야기를 겨우 이어나갔던 봄날 그 저녁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두번 째 만남. 희성과 같이 실제 사역 현장에서 목사로 일하고 있는 선배 부부를 불러 같이 식사를 하던 순간도 기억이 납니다. 그 시간들을 지은과 희성과 함께 보냈기에 오늘 이 자리가 저희에겐 더없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이 특별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이 두분에게 하고 싶습니다.
사실 삶이란 것이 별 것 없는 것이기에 무엇이라도 있는 듯 그것을 쫓아가다가도 결국 가 닿고 보면 내가 이걸 위해 달려온 것인가? 라고 생각할 만큼 초라할 때가 많습니다. 삶의 덧없음과 초라함을 느끼는 저희가 결혼 후의 찬란함이나 함께 사는 대단함 같은 것에 대해선 말해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만나 한 공간 안에서 서로의 시간과 몸을 포개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큰 노력을 요하는 일인지 말하고 싶습니다. 내 안의 가장 중요한 부분, 나를 억누르는 과거의 상처, 나 자신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의 취약함. 꺼내놓고 직면하기 어려운 그 부분들을 꺼내어 놓지 않고서는 함께 사는 부부로서 깊은 이해와 교제로 나아가기가 어렵습니다. 나의 취약함과 어두움을 상대방에게 꺼내어놨을 때 받아들여질 수 있을 지에 대한 의심은 우리는 움츠려들게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를 보여주어야 하고 꺼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저희 역시 살아가며 배워가고 있습니다.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집에 살고 어떤 외모를 가졌는지, 눈으로 보이고 셀 수 있는 것들이 마치 전부인 듯 말하는 이 세상에서 진짜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내 성취나 성공, 능력 말고, 내 옆의 나와 마주하며 살을 맞대고 함께 먹고 자는 이에게 내가 건네어줄 수있는 친절과 호의라고 생각합니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마음. 내가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에서 나의 마음과 생각대로 하고 싶은 것을 조금 뒤로 재쳐두고 상대의 필요와 상황에 집중하는 일이요.
함께 반려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것들을 배우는 일 같습니다.
가장 편하고 안전한 대상이지만 결코 긴장을 놓지 않는 일. 그와 함께 안식을 누리만 함부로 대하지 않는, 균형잡는 것을 배우는 일.
잘 할겁니다, 잘 살겁니다, 라는 대책없는 희망의 긍정적인 말들보다는 지은과 희성이 길을 걸어가며 지치고 어려울 때 언제든 와서 쉴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저희 역시 한 순간 한 순간 정성스럽고 고운 마음으로 살아가야하는 것이겠지요.
두 청년의 부모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 둘이 사람들 속에서, 또한 교회 공동체에서 얼마나 빛이 나는 사람들인지 알고 계시지요?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고 자신의 어려움을 내어놓고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이 빛나는 청년들을 키워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이들 앞으로의 시간에 신뢰와 믿음으로 기다려주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함께 녹녹치 않은 이 땅에서의 삶을 함께 살아가보면 좋겠습니다. 뒤에서 묵묵히 이 두 청년을 이 부부를 응원하는 저희가 되겠습니다.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
결혼 제도의 명과 암을 알기에 결혼을 장려하는 것도, 그렇다고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이 제도에 대해서라면, 성별 장애유무 국적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내게 중요할 뿐. 누군가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축사를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넘겨받고 이제야 기록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