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픽션 읽기

자기 탐구에서 사회적 탐구로 나아가기

by 한시영



쓰는 이의 윤리란 무엇인가. 어디까지 드러내고 무엇을 감춰야 하는가. 내 삶이 사회와 조응하는 그 지점을 어떻게 포착하고 글로 담아낼 것인가. 그 가운데 문학이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지난 여름 말과활아카데미에서 열린 오토픽션 읽기 과정을 들었다. 신유진 작가님과 함께 프랑스 작가들의 오토픽션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를 꺼내어놓는 시간. 목요일만 되면 서둘러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치우고 샤워를 시킨 후 급하게 피씨를 켰다. 수업이 시작되면 엄마, 부르며 나를 찾는 아이에게 응, 이라는 대답보다는 잠시만, 이따가, 라는 답을 건네며 수업을 들었다.


로랑스의 <여자> 라는 작품에서는 미덕처럼 여겨지는 여성의 침묵을 깨는 비명같은 글쓰기를,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에서는 계급을 횡단해 노동 계급을 건너온 이의 증언을, 에두아르 루이의 <에디의 끝>에서는 자신이 겪은 폭력을 고발함으로서 고통을 문학으로 만든 이의 재능을,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돌아가다>에서는 자신의 수치심(계급, 성)을 다시 써내려감으로서 사회구조를 이해하는 닿아감의 글쓰기를 만났다.


마지막 수업에서 신유진 작가님은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가장 큰 결핍은 나를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자기 결핍으로 나아가는 서사가 오토픽션이라고. 결핍을 메꾸려는 시도, 자기 탐구가 사회탐구로 확장되는 것이 바로 나를 쓰는 일이라고.


이토록 자신을 정직하게 세워놓아 이리보고 저리보고 뜯어보고 고통과 수치 조차 꺼내어 쓰는 작가들의 이 용기와 기개를 한번 마주하면,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마치 아이가 태어난 뒤 아이를 낳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 처럼. 용기와 기개가 담긴, 번쩍이는 통찰과 비명이 담긴 글은 읽는 이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 그래서 내가 지금껏 아무렇지 않게 보아온 나 자신과 속한 곳에 대해서도, 당연하게 여겨온 나의 조건과 환경, 인과관계라 여겨온 나의 작은 선택들 하나하나에 대해서도 질문이 새어나온다.


왜 나는 그때 그런 선택을 했나?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수치였나 부끄러움이었나, 그것이 지금의 나를 어디로 이끌었나.


좋은 책과 선생님, 학인들과 함께 한 수업이 끝난 지 한 달이 되었으나 그 기억과 가르침들이 자꾸만 마음을 간질였다. 몇 주간 간질간질한 마음을 벅벅 긁기만 하다 이제야 꺼내어놓는다. 좋았던 너무 좋았던 시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결혼식 축사를 부탁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