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아이는…

나라는 존재를 재조합하는

by 한시영


열한 살이 된 아이에게 가장 큰 변화는 ‘개인 시간’이 생겼다는 거다. 하교 후 6시 전까지 ‘개똥이네 문화놀이터‘라는 마을 거점 돌봄에서 시간을 보낸 저학년 때와는 달리 스스로 시간을 조직하고 거점 돌봄에서 간식도 돌봄도 졸업한 고학년, 4학년이 되었다.


4학년이 되어 개똥이네에서 주 1회 ’자치활동’ 이란 것을 시작한 아이는 초반에 운동 동아리를 하며 몸을 쓰더니 지금은 음악 동아리를 언니들과 함께 만들어 활동중이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있었던 양육자 모임에서 자치활동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끼리 그냥 모이는 거겠지, 라며 넘겼는데 일 년 가까이 옆에서 보니 이거이거 보통이 아니다. 하고 싶은 활동을 자신들이 정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계획과 역할의 분담을 아이들 자신의 속도와 힘으로 해낸다.


언제는 한강까지 자전거 타고 가는 계획을 세워 어른들 둘이 앞과 뒤에만 조용히 붙어 따라갔고, 중간 중간 휴식지점에서도 아이들은 알아서 정한 대로 자전거를 세웠다. 그러고선 챙겨 온 카드로 자기 먹을 것을 골라 계산한 뒤 서로 나눠먹었다. 그리고는 목적 지점까지 다시 자전거를 몰아서 가는 아이들. 그들을 보자 그간 내가 어린이, 청소년기를 앞둔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했고 평면적이었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음악 동아리에 들어간 아이가 가져온 파일. “엄마, 수민이 언니가 우리 파일까지 다 만들어서 이름도 써왔더라.” 파일을 펼쳐보니 각자 파트도 나눠놓고 가사도 뽑아오고 연주까지 연습 일정을 정해놨다. 자치 활동이 있는 날마다 아이패드를 가져간 아이에게 떨어뜨리지마라, 조심히 써라, 유튜브 보지 마라, 라며 괜한 잔소리를 했던 순간이 떠올라 얼굴이 벌게졌다.


아이는 늘 모임 전날 아이패드 충전을 체크했고 내 잔소리에도 응, 알겠어~ 걱정마~ 라며 무덤덤하게 반응하며 패드를 챙겨가, 또래들과 모여 유튜브 뮤직에서 같이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만한 팝과 가요를 찾고 가사를 외우고 곁들일 안무를 고민했다.


언제나 이끌어주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라 생각했던 존재가 커가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다싶으면서도 섭섭하다. 이렇게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구나, 자기 역할을 찾아가며 관계 가운데에서 자신을 발견해 나가겠구나. 그것이 또 전부인 것 같아 좌절하고 괴로워하고 아파하기도 하겠지만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나는 구나. 너를 돌보고 보살피며 얻은 내 삶의 동력과 의미에도 재조정이 필요하겠구나.


아이의 음악 동아리 활동을 실컷 응원하면서, 어리나 나이가 드나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율성’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원하는 것을 나 홀로 또는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가고 이뤄나가는 것. 그것이 실패든 성공이든 일을 해내는 과정 중에 나라는 존재를 재조합하고 세워나가는 것이겠구나, 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늘 음악을 달고 사는 열한 살 아이가 무엇이 될까.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음악 선생님? 혼자서 여러 상상을 해보다 이내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 역시 릴스 그만 보고 쇼츠 그만보고(쇼츠는 끊은지 3주 됐다. 유튜브 어플 삭제 3주 차) ‘내 것’을 하자 맘 먹어본다.


곧 아이가 올 시간이다. 열한 살에 걸맞지 않은 몸짓으로 대형견처럼 내게 달려와 푹 안길 아이. 자꾸만 자기 무게 생각하지 않고 내 무릎 위에 엉덩이를 들이미는 아이. 이제 이런 때도 얼마 안 남은 것을 안다. 아이가 오면 팔을 넓게 벌려 안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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