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지가 빯리 닳는 집 _ 1
이 집에 산 지 4년이 되었다. 직접 부지를 둘러보고 땅을 사서 사람들과 같이 지은 집. 사람들은 이 집을 빨간 벽돌집이라고 부른다. 함께 살며 각자 독립된 공간과 더불어 커뮤니티 실이나 주방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체 규약을 만들어 사는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공동체 주택’이다. 일곱 가구가 모여 각자 살 층과 위치, 방의 개수와 구조를 입주민이 직접 고민하고 결정해서 지은 집.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이 하는 말은 대게 비슷하다. 일 층에서부터 신발을 벗으니까 되게 이상하네. 엘레베이터를 맨발로 타니까 좀 낯설어. 그럼 여기 사는 사람끼리는 다 아는 거네?
이 집에서 가장 자주 사게 되는 소모품은 단연 건전지다. 도어락 건전지가 빨리 닳기 때문인데 그만큼 집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입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초인종 소리에 월패드 화면을 보자 아무도 없었다. 누가 벨을 누르고 도망갔는지 아니면 시스템이 고장 난 건지, 혹시 몰라 현관문을 열어보니 문밖에 작은 친구가 서 있었다. 키가 작아 초인종 카메라에 모습이 잡히지 않는 친구.
쿠키, 흑, 저 오다가요 흑, 미끄러졌는데요, 많이 다친 것 같아요. 도움이, 흑, 필요해요.
며칠 전 오후,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여니 윗집 아이가 훌쩍거리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아프다는 곳을 살펴보니 다행히 피도 나지 않고 상처도 심하지 않다. 하지만 밖에서 혼자 넘어진 게 서러웠던 탓인지 아홉 살 윗집 아이는 말하는 내내 훌쩍였다. 통통한 무릎에 밴드를 붙여주고 냉장고에 있는 요구르트를 꺼내 손에 쥐여주자 그제야 어쩔 줄 몰라 하던 시뻘건 얼굴이 본래 색을 되찾았다.
그런데 내가 집에 있는 거 어떻게 알고 너희 집 말고 우리 집으로 왔어?
엄마랑 아빠는 회사 가고, 주차장에 쿠키네 차가 있어서 알았죠.
당연한 걸 뭘 묻냐는 표정. 요구르트병을 기울여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야무지게 쪽쪽 마신 아이가 빈 병을 넘기며 말한다. 쿠키 고마워요. 저 이제 영어 학원 가야 해요. 응 잘 다녀와. 문을 나선 아이가 엘레베이터를 타고 손을 흔든다.
쿠키, 엄마가 감자 갖다주라는데요.
쿠키, 밥 한 공기 남아요? 아빠가 밥이 없대요.
쿠키, 엄마가 지난번에 계란 빌려줘서 고맙다고 이거 먹으래요.
쿠키, 있잖아요. 음.. 뭐랬더라.. 엄마가 뭐라고 했는데 까먹었어요.
띵동- 소리에 월패드의 빈 화면이 보이면 서둘러 문을 연다. 그러면 쿠키이- 라고 부르며 가슴팍에 한아름 무언가를 안은 친구들이 나를 바라본다. 감자와 가지 같은 채소를 안고서, 빈 그릇을 아슬아슬하게 들고 눈을 끔뻑거리면서. 그들에게서 채소를 건네받아 안아들고, 집에 남은 밥을 퍼서 조심스레 안겨준다. 그러다보면 건전지를 갈아낀지 얼마 되지 않은 도어락에서는 경고음이 울린다. 삐삐삐삐. 배터리 모양이 그려진 아이콘에 벌건 불이 깜빡거리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AA 건전지 5개를 갈아 끼워 넣는다.
5년 전 SNS에서 함께 살 사람을 구한다는 지인의 게시물을 보았다. 대학 시절 같은 동아리를 했으나 학번 차이가 크게 나 그저 얼굴만 알고 지내던 선배였다. 졸업 후 동문회나 행사에서만 간혹 마주쳤던 그녀는 외국 항공사의 승무원으로 일하다 아들 셋을 내리 낳고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다. ‘공동체 주택 지어서 살고 싶으신 분 모임 모집해요. 육아를 함께 할, 저녁 먹고 한숨 돌리며 수다를 나눌, 아파트 들어갈 비용은 어렵지만 아늑하고 튼튼한 집이 필요한, 아니면 그냥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 없나요?’
당시 둘째를 낳고 육아 휴직 중이었던 나는 직장과 가까운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엘레베이터가 있는 고층 아파트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보증금을 회사와 은행에서 풀로 끌어와 겨우 맞춰 집주인에게 이체했던 날. 비록 전세였지만 회사 다닌 보람이 있다고, 힘들어도 참고 다니길 잘했다고 그렇게 남편과 서로를 격려했었다. 엘레베이터가 있어서 아이를 안고서도 장을 보러 갈 수 있고, 넓어진 거실 덕에 아이 장난감을 살 때도 큰 고민 없이 들여놓을 수 있는 집. 쾌적함과 편리함은 집이 주는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연고가 없는 곳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은 그 두 가지 만으로는 상쇄될 수 없는 어려움과 고립감이 따르는 일이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몇 개월 뒤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어린이집은 휴원이 결정되었고, 아이들의 놀이와 돌봄은 각 가정의 양육자 몫이 되었다. 하루 종일 두 아이의 삼시세끼를 챙기고 먹은 것을 치우고 씻기고 재우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갔다. 8개월 둘째에게 겨우 맞는 초소형 마스크, 품절 대란 속 겨우 구매한 마스크를 아이의 작은 얼굴에 억지로 씌워 유모차를 태우고 나가 단지를 돌거나 편의점을 가는 일이 외출의 전부였다. 얼굴을 맞대고 간단한 근황이라도 나눌 사람은 세 명뿐. 여덟 시는 돼야 집에 오는 배우자와 한 살, 다섯 살짜리 두 아이가 다였다.
종종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마스크를 벗고 대화를 하고 밥을 먹는 일은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감염원이 될 수도 있다는 위험. 당시 정부와 언론은 코로나에 감염된 이들의 동선을 샅샅이 추적해 매시간 공표했다. 감염자라는 이유로 마트에서 무엇을 사고 몇 번 카운터에서 계산을 했는지, 사는 곳과 이름까지 너무나 쉽게 특정화되었다. 누군가의 동선 추적 중 불륜으로 의심되는 행위가 포착돼, 그 감염자는 전 국민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종편 뉴스에서는 이 사건을 마치 특종인듯 보도했다. 감염자를 향하는 사람들의 분노와 조롱을 볼 때면 그것이 곧 나를 향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졌다. ‘홍제동 H 아파트 115동 4호 라인에 사는 한 모 씨, 다섯 살 한 살 딸과 함께 감염된 채로 마트에서 아기 치즈를 사고 동네 카페에서 라떼를 사고 편의점을 들러 생리대를 구매…’
감염병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아내느라 안팎으로 지친 마음이었을까. 남편을 설득해 함께 사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모인 집이 일곱 집이다. 같은 학교와 동아리, 공동체 주택 플랫폼 등 여러 교차점으로 얽힌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기로 했다.
‘집을 짓는데 그것도 사람들과 함께 사는 집’을 짓는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로 시작해서 어떡해?로 끝이 났다. 정말? 집 짓는 일이 그렇게 어렵다는데. 집 짓다 시공사가 잠적하면 어떡해? 아이들끼리 싸웠는데 어른 싸움이 되면 어떡해? 맞벌이면 서울 아파트 작은 거 하나 살 수 있지 않아? 어쭙잖은 곳에 집 지어서 거기 묶이지 말고 하나 잡아. 서울 집은 오늘이 가장 싸다니까. 사놓고 타이밍 보다가 애들 학군지에 진입하면 돼. 애들 생각도 해야 하지 않겠어? 나중에 애들이 원망하면 어떡해?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 때면 마치 반대가 심한 결혼을 하는 것처럼 제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고, 그들의 걱정이 정말로 현실이 될까 봐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오기든 무서움이든 오래가지 않았다. 당장 집을 어떤 구조로 짓고 방을 어떻게 빼고, 공동체 규약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다 보면 걱정할 틈이 없었다. 그냥 시간이 흘러버렸다. 부지 계약을 마무리 지은 날엔 함께 살며 부르게 될 별칭을 지었다. 처음에는 어른들을 이모 삼촌이라 부르던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빠르게 별명을 익혀 익숙하게 쿠키- 초코- 먹보- 메탁포-라며 신나게 어른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찹쌀떠억- 망개떠억-”
겨울에 완공된 집에 들어와 창문을 모두 열고 짐 정리를 하는데 밖에서 떡을 파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처음 들어본 아이들은 내게 물었다. 엄마 누가 온 거야? 아저씨가 누구를 찾는 거야? 하지만 이 집에서 맞이한 네 번째 겨울, 저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서둘러 내복만 입은 채로 일 층으로 뛰어 내려간다. 그러면 현관 앞에는 우리 애들과 똑같이 내복만 입은 아이들이 벌벌 떨며 떡 아저씨 리어카 앞에 오픈런마냥 일렬로 줄을 서있다.
아저씨 저 찹쌀떡 주세요. 아저씨 저는 번개떡이요.
자그마치 열 명의 아이들이 한 사람당 한두 팩씩 떡을 챙겨가면 그들을 따라 나온 양육자가 아저씨에게 지폐를 건넨다. 애들이 귀여우요, 이 집 사는 아그들은 떡을 좋아하는가 배요. 그새 또 많이들 컸어요. 이건 어른들 써비스요! 싸늘한 겨울바람에 발을 종종거리며 서있는 어른들에게 아저씨가 막걸리를 한 병씩 나누어준다. 떡 열 팩을 사고 덤으로 얻은 막걸리 세 병. 조금은 가벼워진 리어카를 끄는 아저씨가 위 고개를 넘을 때까지 아이들은 인사를 멈추지 못한다.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 아저씨 또 만나요, 아저씨 내일도 와주세요, 아저씨 잘 먹겠습니다.
덤으로 받은 술이 있다는 소문은 건물 안에 빠르게 퍼지고 집에 있는 주전부리를 챙겨 어른들이 삼삼오오 커뮤니티 실로 모여든다. 안으로 들어온 아이들은 내복 바람으로 온 층을 돌아다니며 이집 저집 초인종을 누르며 외친다. 떡 사세요 떡! 찹쌀 또옥! 번개 또옥! 문을 연 사람들에게 떡을 강제로 쥐여주고 돈도 안 받고 가버리는 쿨한 떡 장사들. 떡 몇 팩에 막걸리 몇 병이 생겼다고 금세 명절처럼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아이나 어른이나 쉬이 잠 못 드는 밤이 되었다.
처음 집을 지을 때 일상에 낭만이 있는 집을 만들겠다며 옥상에는 ‘별밤’이라는 이름을, 커뮤니티 실에는 어른들의 놀이터라는 ‘놀터’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하지만 OECD 국가 중에서 퇴근이 가장 늦고 출퇴근 시간과 연간 근로 시간이 가장 긴 한국에 살면서 낭만 따위를 챙길 여력이 없다. 밥벌이하고 아이를 키우고 고양이를 돌보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 그것을 제대로만 하는 것 자체가 생존이기 때문에. 다만 엘레베이터에서 만난 사람에게 오늘 무진장 힘든 하루였다고 짧은 순간에 힘듦을 내어놓고, 놀러 온 앞집 아이에게 뭘 먹었길래 배가 이렇게 통통하냐고 묻고, 일 년에 한두 번 겨우 시간을 내어 일곱 가구 스물일곱명이 함께 여행을 가는 것, 그게 다다. 이 집을 지을 때 가졌던 꿈과 다짐은 이제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일상에서 낭만을 만들겠다는 다짐이 실현될 일은 앞으로도 멀게만 느껴진다.
조금만 끓인다는 게 손이 큰 탓인지 미역국 한 솥이 나왔다. ‘오늘 저녁으로 미역국 드실분?’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내니 여러 명이 손을 든다. 곧 초인종이 울릴 것이고 그릇을 들고 줄을 선 작은 친구들이 문 앞에서 나를 부를 것이다.
쿠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