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잇는 서러움, 토지 1권

<토지> 읽기 대장정

by 한시영




박경리 선생님은 토지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 그 서러움으로 토지를 실감했노라고. 인권이나 자유, 평등의 가치가 아직 닿기 전의 조선. 아니 이미 스멀스멀 그 땅에 닿아 바람과 소리로 느껴지고 울려 펴졌던 것들. 시대를 지배할 새로운 가치가 희미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땅에 사는 이들이 얼마나 불안에 떨었을까. 가문을 망하게 하거나 나라를 망하게 할 험한 것 혹은 이 고단한 소작농, 노비의 생을 벗어나게 해줄 기회로 여겼을까?


이 시기 신분제도는 이미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양반과 평민, 노비라는 계급이 공고했던 현실. 자기 삶의 터전을 지키고, 이어나가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 속 외침. ‘내가 저들과 다른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나는 누군가의 땅을 빌려 살고 누군가는 대대로 내려온 땅으로 호의호식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금방 도덕과 순리, 금기라는 이름으로 없어졌을 그 외침들이 내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이따금 이 마음 속 외침에 힘입어 ‘계몽’이란 것을 하고 싶더라도 관습과 전통이란 것에 얽매여서, 또는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사람들. 과연 내가 이 당시에 태어났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이른 나이에 엄마를 잃은 서희의 마음에 내 마음을 포개다가도, 어린 딸을 두고 집을 나간 양반집의 여인은 도대체 무슨 마음이었을지, 가늠이 가질 않아 잠시 멈춰 그 마음을 짚어보기도 했다. 또한 사랑하는 여자와 맺어지지 못한 용이, 그를 남편으로 둔 불타는 질투를 부어대는 강청댁. 잘생기면 얼굴값 한다는 말이 용이를 보면 떠올랐고, 한 때 죽고 못 살았던 여자를 마음에 품은 남자를 남편으로 둔 강척댁이 안쓰럽기도 했다.


인물 사전이 따로 있을 만큼 많은 토지의 모든 인물에 감정을 이입을 할 수 있던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중이 적은 나오는 인물들에게도 그만의 특이한 기질과 과거사가 부여되니 캐릭터들 모두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마음을 둘 수 있는 것, 나의 시공간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가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 이것이 문학의 효용이구나 싶어 나는 문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구나, 라는 생각했다.


<토지>를 읽는 내 자신에게 의아했던 부분은, 신분이 공고한 현실에 불만을 품고 현실을 타개하려는 인물들보다 곧 자리와 재물을 빼앗길 처지에 놓인 양반들에게 마음을 두었다는 사실이다. 귀녀나 평산의 그 욕망 어린 모습에 대해 ‘배신자 혹은 신의를 저버린 나쁜 사람’이라는 가치 판단을 하게 되었다. 왜 나는 귀녀보다는 서희에게, 평산이나 강청댁, 임이네보다는 오히려 최치수나 윤씨 부인에게 마음을 두었을까.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더라도 양반보다는 노비나 평민으로 살아가게 될 확률이 더 높았을텐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선 가진 것을 잃는 것이 없는 것을 갖게 되는 것보다는 더 고통스러운 일일테니 그랬던 걸까. 아니면 귀녀나 평산이 가진 그 깊은 욕망, 내 안에도 자리잡은 그 욕망을 들킨 것 같아서 였을까. 나는 여전히 상승을 향한 그 욕구를 품고 있으며 그것을 내 모습의 하나라고 수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치를 떨리게 하는 차가움이 가득한 최치수와 욕심으로 끓는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 없는 귀녀, 엄마를 잃은 서희와 우직함을 가진 길상. 이들이 만나 과연 어떤 사건을 만들어내고 이야기가 흘러갈지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박경리 작가를 가진 나라에 태어났다는 것, 그와 같이 한국어라는 모국어를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가 펼쳐놓은 <토지>라는 광활한 들판에 나의 모국어로 된 옛말과 사투리가 춤을 추고 그 속에서 인물들이 바삐 움직인다. 나는 그 움직임들을 놓칠 수가 없다.


* 아래는 기억에 남는 인물과 표현들


*윤보

속편한 사내로 묘사되는 윤보, 훌륭한 목수의 기량을 지녔으면서도 돈을 탐내지 않는 윤보라는 남자. 동학교도도 농민도 아닌 윤보가 농민투쟁에 가담했지만 잡혀갔다거나 크게 고초를 치르지 않은 것은 상황을 판단할 줄 아는 여유 때문이었다. 책에 따르면 야심이 없었기때문에 전투에 있어서 인정을 받거나 명예를 쌓고자 하는 마음에 부러 앞에 나서거나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만약 그런 마음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나서 승기를 쥘 수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나가지 않았겠는가. 윤보는 그러지 않았다.


*길상

길상은 외모가 준수하고 그 성품 또한 너그럽다 묘사된다. 나는 길상을 묘사한 부분들 중 다음의 문장을 좋아한다. ‘그러나 절 밖의 세상을 모르는 길상은 모든, 눈에 띄는 곳이 다 신기했다. 아름다운 섬진강이 어디를 향해 흘러가는지 궁금하였고 뗏목을 타고 가는 뗏목꾼, 장배의 사공이 강물을 따라 강물이 흐르는 곳을 내려가는 것도 신기스러웠다. 하늘 끝간 데가 어디멘지 세상은 넓고 또 넓은 것 같아 가슴이 설렜던 것이다.’(133)


노동과 주어진 신분으로 인해 고단했을 현실 속에서도 궁금증을 갖는 길상이라는 인물이 더없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임이네

임이네를 묘사한 부분은 정말이지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고루 볼 수 있는, 인간사에 능한 사람만이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는 염치불고하고 용이의 눈을 더듬어본다. 풍만한 정기를 풀어서 용이 얼굴에다 설설 뿌리는 것 같은 웃음을 머금고, 그는 임신한 여자였을 뿐 어미가 아니었다. 음탕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이었다.’(147)

비록 아이를 임신한 여자여도 자신이 호감가는 남성에 대해 갖는 이성적 감정, 그 자연적 본능에 대한 묘사가 발칙하기도 했고 통쾌하기도 했다. 이 소설이 쓰였을 1960년대 한국이 얼마나 여성을 관습과 도덕으로 옭아매었는지 알기 때문에 이 묘사가 더없이 재밌었다. 게다가 배경은 뿌리깊은 남존여비 유교의 가르침이 남아있는 구한말. 인간의 본능이 가진 성적 욕망에 대해 별 것 아닌 것처럼 넘어가지만 그렇지만은 않아보이는 그 묘사가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최준구

최치수의 친척인 준구. 조심성이 많아 흙물 한 방울 버선에 적시지 않고 비가 온 논길을 걷는 사람. 조심성이 많다는 특성을 저렇게 묘사할 수 있다니.


*기억나는 표현

오광재놀음이 있던 날 밤 이래 월선이는 그의 피가되고 살이 되어버렸다.(294)

한 정인에게 피와 살로 남은 정인이라니… 로맨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