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읽기를 시작하며

삶의 진실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아서

by 한시영


지난 6월, 회사에 병상휴직을 내게 되었다. 심장이 조일 듯 아프고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해 밥을 잘 먹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하나둘 반팔을 입고 다닐 때 나 혼자 두꺼운 후리스 자켓을 입고 몸을 덜덜 떨었다. 그래 12년 차면 몸이 아플 때도 되었지, 라며 넘기려 했지만 늘 하던 업무 하나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나를 보며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초반에는 우울이나 공황같은 마음의 문제인 줄 알고 병원을 전전하다 어쩌다 피검사를 하게 되어 혈색소 수치가 급격하게 내려간 것을 알게 되었다. 휴직계를 제출하면서도 이것 하나 이겨내지 못 한 내가 어찌나 패배자 같은지, 휴직이 시작한 후 몇 주는 꼬박 침대에만 누워있었다.(이 이야기는 짧은 글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한 달이 지나고 휴직 동안 그래도 뭐 좀 해야하지 않나 싶어 시작한 것이 토지 전권 읽기다. 오늘이 <토지> 1권 읽기를 시작한 날이고, 그것을 기념해서 오늘 이 글을 남겨놓는다. 20권을 다 읽은 날 이 글을 보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죽음의 공포, 암이라는 병에 대한 불안은 가을, 회복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언덕길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아이들이 뛰어가고 시장바구니를 든 주부가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세상은, 모든 생명, 나뭇잎을 흔들어주는 바람까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것들, 진실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고 그것들을 위해 좀 더 일을 했으면 싶었다. 고뇌스러운 희망이었다.’(토지, 8p)


총 세 부로 이뤄진 토지의 1부 연재를 막 마치고 암수술을 받은 작가의 소회다. 나야 작품을 읽으며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하고 이야기에 푹 빠져 지내면 그만이지만, 이것을 써낸 작가가 어떤 시간을 보냈을 지는 상상 조차 할 수가 없다. 1969년에 연재를 시작해서 26년이걸려 막을 내린 이 이 야기를 쓴 작가는 어떤 진실에 닿고자 하였나. 이 책을 읽으면 나 또한 닿을 수 있는 것인가. 닿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진실이 맞는가. 결국 이야기도 어떤 길을 내는 것 뿐이고 그 위를 걸어가는 것은 독자인 나, 인생을 살아가는 나의 몫이 아닌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토지를 읽게 된 것은 아니다. 5년 전 함께 글쓰기 수업을 듣고 3년 넘게 책을 같이 읽고 있는 벗이 토지 읽기 모임을 한 걸 눈동냥으로 보아왔다. 그리고 글방에서 매주 만나 글을 쓰는 동료의 토지 덕후력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쓰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글방에 꽤 자주 가져왔던 글. 토지를 사랑하다 못해 토지 학회를 쫓아다니고 그걸로도 모자라 토지 속 인물들에 대해 쓴 글. 그녀의 그 '토지 덕후력'이 나를 홀리듯 <토지>로 이끌었다. 그녀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좁은 집에 20권이나 되는 토지 전권을 들여놓는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니 내 곁에 어떤 이들이 있는가에 따라 내가 하는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서두에 쓰인 작가의 서문에 가슴이 울려 이렇게 또 읽기도 전에 호들갑을 떤다. 20개월 간 20권의 책을 함께 읽어내려갈 아홉 명의 토지 대장정 모임원들과 즐겁고 때로는 괴롭게 그치만 기쁘게 <토지>를 읽어갈 시간을 기대해본다. 작가 박경리 선생님을 작품으로 만나게 될 이 시간을 기념하며, 선생님이 닿고자 했던 그 아름다운 삶의 진실의 끝자락에라도 닿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의 서문 속 몇 문단을 가져오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토지의 원고를 썼던 것이다. 백 매를 쓰고 나서 악착스런 내 자신에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어찌하여 빙벽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8p)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애잔하다. 바람에 드러눕는 풀잎이며 눈 실린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 우짖는 작은 새, 억조 창생 생명 잇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과 애잔함이 충만된 이 엄청난 공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의 일사불란한 법칙 앞에서 나는 비로소 털고 있어섰다. 찰나 같은 내 시간의 소중함을 느꼈던 것이다.(13p)


‘섬진강 강변 길을 따라가는데 지천으로 쌓아놓은 붉은 감이 오후 햇빛을 받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그때도 왜 나는 작가가 되었을까, 마음 속으로 되내었다. 행사장에서 몸과 마음이 얼어버린 나는 자동인형처럼 연단으로 올라갔다. 지리산의 한(한)에 대하여 겨우 입을 열었다. 오랜 옛적부터 지리산은 사람들의 한과 슬픔을 함께 해왔으며, 핍박받고 가난하고 쫓기는 사람, 각기 사연을 안고 숨어드는 생명들을 산은 넓은 품으로 싸안았고 동족상쟁으로 피 흐르던 곳, 하며 횡설수설하는데 별안간 목이 메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예상치 못한 일이 내 안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세월이 아우성치며 달려드는 것 같았다. 둑이 터져서 온갖 일들이 쏟아져내리는 것 같았다. 아아 이제야 알겠구나, 토지를 쓴 연유를 알겠구나 마음 속으로 울부짖으며 나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중략) 30년이 지난 뒤에 작품의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토지를 실감 했다. 서러움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이었다.’(1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