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타국의 지배를 받아 주권도 땅도 빼앗긴 땅의 청춘들, 자신이 처한 환경 그 가운데 했던 선택들이 그를 어떻게 영예롭게 하고 혹은 구렁텅이로 몰아가는가.
이 소설 속에 나온 인물들의 별 것 없음, 그러니까 그다지 비장하지도 엄청나게 선하거나 악하지도 않은 그 인간다움이 가진 현실감이 몰입도를 높였다. 독립운동을 하는 명보의 경우,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독립운동을 돕고 사회주의 체제에 감명을 받아 좌익의 중요한 인사가 된다. 그의 독립운동은 그 스스로도 말하기를 개인적이었으며 자신의 선택이 희생을 무릅 쓴 고귀한 선택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양심의 자각이(185p) 너무 강렬했을 뿐이라 말한다. 하지만 결국 그가 했던 선택과 그것에 수반된 그의 책임은 개인적인 영역을 훨씬 벗어나 민족적, 국가적인 의미를 지닌다. 한 개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무엇이고 그 힘이 어디에서 발휘가 되는 지 작가는 그것의 시작을 명보의 타고난 품성과 자질로 설명한다.
기생 단이 또한 대의를 보고 움직이는, 독립운동을 돕는 과감한 여성이지만 남성이 주는 사랑과 관심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 받고 행복해 하는 어떤 여성으로 그려져있다. 누구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어떤 욕구. 대의로 일컬어지기도 하고, 욕망 또는 갈망으로 부를 수 있는 그것이 한 인물의 생애를 어느 곳으로 이끌어가는 지. 그리고 그렇게 이끌려 간 곳에서 사건이 어떻게 벌어지고 그 사건은 또 다른 누군가를 먹이 삼아 어떻게 증폭되는 지 마치 도미노를 정성스레 쌓아 촤르르 한 순간에 물결처럼 길을 내는 에너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물과 인물들이 느슨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어떤 후크에 걸려 빼도박도 하지 못하는 촘촘한 이야기 속, 자신과 연결된 그 팽팽한 선을 외줄타기 하듯 아슬아슬하게 오고간다. 인물 간 오고가는 그 팽팽한 선에는 선의와 악의가, 배신과 절망, 체념과 안도라는 감정들이 함께 오가며 선이 끊어질 듯 조일 때도, 한 시름 놓고 느슨해질 때도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저자가 어떻게 이리도 소상하게 자기 조부모의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고 재현해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끝이 텁텁하지만 가뿐히 책을 덮으며 아쉬웠던 까닭은 이 책이 지닌 현실감각 때문이 아닌가 싶다.
관계에서 조차 비용과 손익, 효율을 따지는 선택을 하며 절친한 이를 배신했던 이들이 누리는 부와 명예가 이 소설에는 약오르게 잘 묘사되어있다. 약삭빠르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양심을 접어둔 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쌓은 부와 그것의 대물림. 그들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사회에 우리는 여전히 살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그로 인한 삶을 책임질 수 있겠냐는 그 물음에 나는 쉬이 답을 할 수가 없다.
과연 나라면, 나는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지. 그 길이 부디 나 자신을 지우고 누군가를 밟고 외면하는 길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읽고 쓰는 벗들과 책장을 들추고 그 책들을 의지하고 내게 손 내미는 그 호의들을 의지하며 걷는 나의 길이 호사스럽진 않을 지언정 부끄럽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것이 소시민으로 사는 아주 작은 사람인 내가 할 수 있는 거창한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