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룡을 보고 나를 읽었다.
주룡이 전빈과 행복하게 살았더라면, 내가 그 주룡이었다면 나는 일찍 남편과 사별했을지 모를 일이다.
나의 첫 아이는 뱃속에서 옆으로 누워있었다. 다니던 여성병원에서는 수술이 어려울 거라 했고 아이 낳기 1주일 전 겨우 받아주겠다는 대학병원을 찾아 솔이를 낳았다. 주룡과 전빈이 살았던 당시 운이 좋았다면 자기가 되돌아 머리부터 나왔겠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 산도에 아이의 다리가 끼고, 아이와 나는 모두 죽었을지도 모른다. 재수 없는 소리, 상상이라고 하지만 병원도 없고 수술도 없던 그 시절, 아이 낳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나는 그렇게 죽음에 취약했을 거다.
나라 없는 백성은 참 서럽다. 그중에서도 나이 들고 약하고 어린것들은 더 했을 테지. 서러운 이유 중에서 단연 으뜸가는 것은 늘 감추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제 감정, 제 느낌을 표현이라도 할 수 있어야지 말이다. 약자는 솔직하기 어렵다. 솔직은 평등한 관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늘 눈치를 봐야 했던 주룡. 대놓고 시댁에 대들진 못해도, 눈치가 빤해도, 자신의 마음만은 숨기지 못한다.
나라의 독립을 원하는 것도, 그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나라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원한다. 독립을 원하는 속내가 바르지 못하다고 채근당하기 십상이지만 채룡에게 중요한 건 그 채근이 아니라 자신의 속내다. 시대가, 사람이, 꾸지람을 놓고 눈치를 준다. 그것이 두렵다 하면서도 채룡은 끝없이 굴복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불꽃처럼 살다 갔을 거다.
소설 필사는 잘하지 않는데 주룡의 사랑하는 이를 향한 맘이 내 맘 같아서, 들킨 것 같아 화끈거리면서도. 언어화하지 못한 내 감정을 해석당한 것이 싫지만은 않아 적어놨다.
가장 기억 남는 구절, 아래에 붙인다.
“자라서 무엇이 될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 살았다. 살아있기는 하나 고되고도 즐거운 일이었다. 살아있기만 해도 바빠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장차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이도 없었다.”
“출근하자마자 양수가 터져 집으로 갔던 삼이는 사흘만이 반쪽이 되어 돌아왔다. 갓 낳은 애를 안고서였다. 하루라도 일찍 출근하고 싶었는데 밤을 꼴딱 새워가면서 애를 낳고 보니 까무러치듯 잠들어서, 깨어나지를 못해서 별 수 없이 쉬었다고 했다. 온 뼈마디가 쇠를 물고 있는 어금니처럼 사라진다면서도 한 팔에는 애를 끼고 한 팔로는 고무형을 잘도 주물렀다. 집에서 애를 보다면 돈 버는 사람이 없어 곤란하고, 갓난애를 두고 일하러 오자니 시모도 남편도 믿을 수가 없어서 데리러 왔다고 했다. 기가 막히는 노릇이지만 홍이 형님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