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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Jul 01. 2021

남미 여행 일지 16. 다시 찾은 라파즈

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여행기


익숙해질만 하면 떠나는 게, 여행이니까


 아침 식사는 호텔 조식이다. 늘 그렇듯 과일과 빵이다. 이제는 없으면 허전하다. 나 홀로 침대를 사용해서 편했던 호텔을 떠날 시간이다. 짐을 챙겨 체크아웃 후에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가는 순간까지도 날이 너무 좋았다. 놀이터 풍경, 거리의 조형물들 그리고 관광지 거리. 기분 좋은 햇살 아래 기억들이 지나쳐갔다. 사람이 늘 붐볐던 여행사 앞 거리. 중앙의 시계탑과 거리의 시장들. 흙먼지가 날릴 것 같은 길거리는 여전했다. 우리가 가더라도 우유니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그대로일 것이다. 




 짧지만 정들었던 우유니의 시내 풍경을 지나면서 우리는 이윽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먼지가 날리고, 매연냄새가 나는 이곳. 예매해 두었던 티켓 구매소에 갔다.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표를 들고 우리는 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배낭을 메고, 버스를 기다리니 새삼 여행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낯선 언어들이 가득한 이곳. 현대식으로 언제 버스가 오는지도 잘 알 수 없는 터미널에서 우리는 여행객이 되어 또 다른 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가 택한 버스는 세미 까마라고 해서 우등버스 정도 되는 급이다. 하지만 한국의 우등버스보다는 다소 열악했다. 그렇게 버스에 올라탔고, 우유니를 떠났다.


우유니 꼬맹이들은 못말려!


 한숨 잘까 했다. 실패했다. 뒷좌석에 4~5살 되는 꼬맹이들이 탔기 때문이다. 동양인이 신기했던 꼬맹이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처음엔 인사도 하고, 놀아주었다.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조금 놀다가 갈 줄 알았던 아이들은 오루로로 가는 내내 놀자고 보챘다. 어린아이들의 체력을 우습게 본 나의 탓일까. 조카였으면 핸드폰 하나 쥐어주고, 게임하라고 했겠지만 낯선 아이들에게 덜컥 내 핸드폰을 주며 갖고 놀라고 할 수도 없었다. 초반엔 귀엽고 재밌었지만, 강행군의 투어로 지친 나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애 엄마들은 몇 번 말리는 체 하더니 마치 보모에게 맡긴 것처럼 놓아버렸다. 이 친절한 동양인은 결국 비장의 무기로 자는 척을 해야 했다. 그것도 필사적으로.



오루로 버스 환승 터미널


 버스는 달리고 달려 4~5시간 끝에 오루로에 도착했다. 기나긴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서 자유를 만끽했다. 이 해방감이란! 역시 애를 보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도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라면 더욱. 오루로의 버스 터미널은 일반적인 터미널을 연상케 했다. 번듯한 건물들과 깔끔한 대합실, 매점들까지. 간단하게 빵 쪼가리 간식을 산 뒤 라파즈행 버스 티켓을 구매하러 갔다. 빠듯한 표와 지나치게 여유로운 표 두 종류가 있었다. 여유 있는 표를 산 뒤 간식을 먹고 가려했으나 지나치게 여유로운 표는 여유로워도 너무 여유로웠다. 아무래도 빨리 가는 게 스케줄 상 나을 것 같아서 결국 빠듯한 표를 구매하기로 했다. 덕분에 간식 먹을 새도 없이 곧바로 버스에 올라타야 했다. 검표를 받고, 버스를 찾아 탑승했다. 특이한 점은 환경부담금이란 명목으로 소정의 금액을 징수해갔다는 점이다. 이번 버스는 까마 버스라서 좌석을 뒤로 끝까지 젖힌 채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다시 찾은 라파즈


 하루의 대부분을 버스로 날린 후 그렇게 우린 라파즈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문의 맺힌 물방울 너머로 라파즈의 시내가 보였다. 여전히 복잡한 차도다. 터미널에서 나와 바로 택시를 잡고 호텔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이동수단은 택시가 가장 안전하고 빠르다.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이 될 때까지 휴식을 취했다. 그래 봤자 얼마 쉬지도 못했다. 원래는 마녀 시장도 보고 오려했다. 마녀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신기하고 재밌는 물건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날이 흐리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를 보고는 그냥 호텔에 퍼져있기로 했다. 강행군 일정을 겪고 나서 인지 그리 쉽게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일정도 일정이었지만, 사막에서의 큰 일교차도 한 몫했다. 낮은 불볕더위, 새벽은 냉랭한 얼음바람이니 몸이 쉽게 견딜 리가. 가이드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저녁은 전에 라파즈에서 먹었던 바로 그 피자집으로 갔다. 가게 앞에 가자마자 나는 향긋한 피자 내음. 이 향이, 이 장소가 그리웠다! 이번에는 각자 원하는 토핑으로 미니 사이즈의 피자를 시켜서 먹었다. 여전히 이곳은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맛집이라는 뜻이다. 가게 안은 이미 피자 냄새로 가득하고, 우리의 침샘을 자극한다. 기다림 끝에 각자 원하는 피자를 손바닥보다 좀 더 큰 사이즈로 하나씩 받았다. 화덕에 구운 피자맛이 정말 일품이다. 가격마저 저렴하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배불리 먹고 나서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야경을 다시 한번 보기 위해서다. 라파즈는 교통상황이 좋지 않고, 고지가 많아서 버스 등이 다니기에 무리라고 한다. 그래서 효율 좋은 케이블카를 대중교통처럼 이용한다. 이곳의 케이블카는 마치 우리의 지하철 노선처럼 색깔로 구분하며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엘 알토'라는 높은 지역으로 야경을 보러 갔다. 공항이 있는 그곳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다. 그렇지만 다시 못 올지도 모르는 이곳의 야경을 포기할 순 없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케이블카 정류장은 약 15분 정도 걸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비가 오는 언덕을 넘어, 이미 밤이라 파장인 시장을 지나 정거장에 도착했다. 비 오는 시장 풍경은 서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나 보다. 지도를 보며 따라간 곳엔 번듯한 케이블카 건물이 있었다. 내부 시설은 정말 깔끔했다. 대중교통처럼 이용되는 덕분인지 가격이 무척 저렴했다. 표를 끊고 바로 타러 갔다.


 색깔별로 여러 노선이 있는데, 우리는 엘 알토로 가기 위해선 레드라인을 타야 했다. 그런데 아뿔싸! 비슷한 색상의 주황색을 타고 말았다. 우리는 분명 높은 곳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케이블카는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라파즈에서 더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구조인 줄 알았다. 아니면 엘 알토가 생각보다 높은 곳이 아니라던가. 의심이 들었지만, 이미 타버린 케이블카였다. 너무나도 자연스레 이상한 곳에 내렸다. 여긴 어디인가. 우린 누구인가. 아무리 봐도 야경명소는 아닌 것 같아 직원에게 물었다. 당연히 엘 알토가 아니었고, 친절하게 올바른 노선으로 알려주었다. 앵무새처럼 엘 알토? 엘 알토? 연신 외치는 가여운 여행객들이 안타까웠나 보다.



 결국 의도치 않게 케이블카를 더 오래 타게 되었다. 빗방울 맺힌 창문을 다시 또 보게 되었다. 드디어 엘 알토 쪽으로 향했다. 올라가는 케이블카에서 본 풍경 역시 굉장히 아름다웠다. 어둑해진 언덕마다 주황빛, 하얀빛의 조명들이 작게 일렁거렸다. 오직 라파즈, 케이블카에서만 볼 수 있는 야경이었다.



 엘 알토에 도착했다. 전망대를 찾아 이리저리 헤맸다. 분명 엘 알토인데,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봐도 전망대로 향하는 길이나 표지판이 보이질 않았다. 정거장 건물을 나가서 둘러보는데, 돌아보니 코 앞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 했다. 정거장 주변이 어두웠다. 비가 내린 탓에 전망대 유리에는 케이블카처럼 물방울들이 맺혀있었다. 물방울 틈으로 보이는 야경이 한층 더 멋진 분위기를 연출했다. 탁 트인 전경. 파노라마처럼 야경이 펼쳐졌다. 엘 알토라 쓰인 조형물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야경도 한동안 감상하였다. 검은 천 위에 뿌려진 보석들이 반짝이는 풍경. 여기도 고산지대라 숨 쉬는 게 그리 편하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비니쿤카 5천 미터도 갔다 온 사람들 아닌가. 이 정도 고도는 우스웠다. 주황 빛깔과 하얀 빛깔이 어우러져 달과 함께 반짝였고, 그 풍경을 뒤로 우리는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마트에서 과일과 간단한 음료를 사고, 마지막으로 라파즈 글씨로 만든 조형물에서 사진을 찍었다. 라파즈의 마지막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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