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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Jul 23. 2021

남미 여행 일지 18. 코파카바나의 지붕

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 여행기

아아, 마지막 트루차라니


 아침먹고 다시 관광을 재개하려는데, 숙소 앞에 주인이 있는 듯한 알파카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사람을 겁내기는 커녕 잘 따랐고, 귀에 장식도 있는게 주인이 있는 게 분명했다. 우리에게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먹을게 있나 찾는 눈치였다. 아쉽게도 먹을거는 없단다 아이야. 주머니를 뒤져봐도 먹을 거는 사탕 하나 없는 우리였다. 알파카와 놀아주며 운 좋게도 같이 사진도 기념으로 남길 수 있었다. 사람을 잘 따르는 것이 정말 귀여운 친구였다.



 어제 수박 겉핥듯 스쳐 지나갔던 성당을 찾아갔다. 건축양식만 보면 힌두교의 사원이나, 이슬람의 모스크 같은데 영락없는 성당이었다. 안에서는 미사를 집전 중이었다. 오전이라 오전 미사가 진행 중인가 보다. 분위기는 신성했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여느 미사와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미사 중이라 내부 구경은 포기했고 주변 구경만 하다 나왔다.




 코파카바나에 온 뒤, 트루차를 먹고 나서, 언제였던가 트루차를 질리게 먹어야겠다고 다짐한 적 있었다.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해 이번 점심도 트루차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의 모습도, 송어의 자태도 모두 그대로였다. 여전히 실망시키지 않는 맛이다. 가장 만족스러운 식사는 트루차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식사 후 호숫가 주변을 산책했다. 태양의 신과 달의 신의 조각상이 늠름하게 서있었다. 해변의 모습 같기도 한 호숫가 주변에서 지역의 토착신이 이 근방을 수호하고 있었다. 토착신앙으로 다부진 모습이 늠름했다.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를 등지고, 섬을 향해 우뚝 서있는 모습이 바람과 파도로부터 이 섬을 보호하는 듯했다. 이 조각상을 보는 것으로 점심 산책을 마쳤다.




코파카바나의 지붕, Corzon de Jesus


 그리고 우리는 이곳 코파카바나에서 가장 높은 언덕으로 향했다. 이름은 코라존 데 헤수스. Corazon de Jesus는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예수의 심장이라는 뜻이다. 어찌 언덕에 이리도 거창하고 거룩한 이름이 붙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렇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건 언덕에 오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산이 있으니 그곳에 간다, 우리는 언덕이 있으니 오르기로 했다. 


 가는 길이었다. 너른 공터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마치 시장이 열린 것만 같았다. 인구수만 보면 코파카바나의 시민들이 전부 모여있는 것 같았다. 축제를 하는 건지, 시장이 열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향을 피우고 있고, 꽃을 뿌리기도 하고 돈 모형을 팔고 있었다. 자세한 구경은 언덕을 내려와서 하기로 기약하고, 해가 더 뜨거워지기 전에 오르기로 했다. 자, 드디어 등산 시작이다.



 처음엔 할만했다. 문제는 여기도 만만치 않은 고산지대에다가 경사까지 가팔랐다는 데 있었다. 정말 올라가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햇빛은 내리쬐고, 숨은 가빠오고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오른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동네 뒷산 오르는 정도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생각보다 숨이 많이 벅찼다. 어쩌면 이곳의 이름이 예수의 심장인 것은, 골고타 언덕을 오를 당시의 예수님의 심장을 느껴보라 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 이름답게 올라가는 곳곳에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듯한 비석들이 있어서 이정표 삼아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세어가며 올라가는 재미가 있으니 가는 길이 심심하진 않았다. 힘들어서 그렇지. 

 

 예수의 고난을 그려낸 십자가의 길 14처인듯한 비석들이 인상적이었다. 성당에서 보던 그림과 스페인어로 적힌 설명문이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글을 해석할 순 없었지만, 뭔가 이해가 가는 듯했다. 역시나 이 산길은 그 고행을 본뜬 것이 분명해 보였다. 쉽게 올라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던 게 아닐까. 그렇게 고생 고생하며 우리는 한 발 한 발 올라갔다. 가는 길에 한국인도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지나가던 현지인들의 부탁을 받아 같이 사진도 찍어주었다. 이런 게 연예인의 삶인가. 하루에 한 번꼴로 사진 요청이 들어오는 것 같다. 그렇게 인사도 나누고, 중간에 코파카바나 전경도 보고 비석도 보고 사진도 찍어주며, 흙바닥과 돌멩이를 밟은 끝에 마침내 언덕 꼭대기에 올랐다.



 언덕 위에는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한 듯한 돌로 된 비석과 성모상이 있었다. 무덤가의 비석을 닮아있는 이 조형물들의 주변에는 서늘한 바람이 감돌았다. 상쾌한 바람을 맞이하며 우리는 정상에 올라왔음을 만끽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좀 더 걸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작은 벽이 있었는데 그곳에 어떤 물건들과 촛불들이 놓여있었고 그 앞에서 사람들은 기도하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맥주를 마시기도 하며 행사인지, 의식인지 어떤 목적 아래 다들 모여있는 듯했다. 그리고 시장판이 벌어진 듯 여러 행상들도 눈에 들어왔다. 고요함과는 거리가 먼 꼭대기의 풍경이었다.



 다른 것을 제쳐두고 전망하나만은 끝내주었다. 코파카바나에서 가장 높은 곳답게 주변 광경이 모두 돈 주고는 못 볼 풍경이었다. 푸른색으로 끝없이 펼쳐진 호수는 바다를 연상시켰고, 마침 날씨도 좋아 햇살이 그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선명한 파란색 색감이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느낌이었다. 한쪽에는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구름, 바다 그리고 여러 섬들이 어우러져있었고 한쪽은 코파카바나의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높은 건물 없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장난감 마을을 옮겨 놓은 것만 같았다. 마을을 내려다보니 생각보다 크다 싶으면서도 하루면 다 돌 수 있을 것 같이 작아 보였다. 식물의 씨앗처럼 작은 배들이 짙푸른 호수의 표면을 잔잔히 돌아다녔다. 몰리서 보니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였다. 배들도, 구름도, 작은 사람들도 모두. 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니 정말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티티카카 호수의 수평선을 뒤로, 맥주 마시는 현지인들을 뒤로 우리는 가톨릭 유적들을 간단하게 구경했다. 예수의 심장이라는 이름에 맞게 이곳은 고난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석과 조각상을 하나씩 보고 나서 우리는 하산했다. 하산 역시 마냥 쉽지 많은 않은 게, 고생하며 올라왔던 만큼 바위도 많고 고산지대도 한 몫했다. 다행히도 조심스레 내려온 덕에 아무도 다치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다. 역시 등산보다 하산이 더 조심해야 한다. 거의 다 내려올 때 즈음 어떤 아저씨가 자신의 가족들과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또 연예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거절할 이유도 생각도 없어서 흔쾌히 수락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집 쪽을 향해 손짓을 했는데, 순간 10여 명 되는 대가족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미소를 띠며 사진을 찍었다. 유명인사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언제 이런 순간이 또 올까.



마을 주민은 모두 그곳에 있었다



 하산하고 난 뒤에도 시장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주민들이 줄 서 있는 곳에서는 향을 피우고 꽃잎을 뿌리는 의식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의식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경건한 분위기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주변이 시장통이라 너무 시끄러웠던 것이 조금 흠이겠지만, 아마도 이들의 관습이고 문화일 테지. 우리는 그곳에서 지폐모양의 기념품을 구매하고 미니 소라빵 모양의 간식을 샀다. 재물운이 들어오리라 기대하며 기념품을 쟁여두었다. 미니 소라빵은 그냥 우리가 아는 크림빵 맛이었다. 코파카바나의 주민들은 모두 여기 시장이나 언덕 위에 있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한껏 활기를 느끼고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는 정든 코파카바나를 떠날 시간이다. 짐을 찾아서 홉 버스를 다시 탑승하러 갔다. 볼리비아를 떠나 페루로 간다.




볼리비아를 넘어 페루로, 육로로 넘는 국경

 

 홉 버스에 다시 올랐고, 우리는 손목 위 팔찌를 보여주며 버스에 앉아 잠시 눈을 붙였다. 이윽고 국경에 도착했고, 내려서 출국 절차를 밟았다. 육로의 출국 절차는 정말 처음이었다. 출국에 필요한 서류를 적고, 남은 볼리비아 돈을 전부 환전했다. 그리고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서 강렬한 태양빛을 맞으며 페루 국경으로 걸어갔다. 국경 치고는 뭔가 엄중한 분위기는 풍기지 않았다. 마치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걸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휑량한 벌판이었고, 걷다 보니 페루라고 영어로 적인 조형물이 우리로 하여금 페루에 입국하였음을 알려주었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시골길이었기에 저 조형물이 없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걸어서 국경을 넘는다니,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볼까. 주변 자연은 그대로인데, 선 하나로 국경이 나뉘고 문화가 갈린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그렇게 우리는 걸어서 볼리비아에서 페루로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넘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공기도, 햇살도 전부 그대로다. 입국 사무소가 보였다. 가서 비행기에서 입국 심사하듯이 여권에 도장 좀 찍고 나올 뿐이었다. 도장이 하나 더 늘어난 여권을 챙겨 다시 홉 버스에 올랐다. 이번엔 페루에서 운영하는 홉 버스였는데, 이럴 수가 버스가 완전히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었다. 일반버스가 갑자기 2층 우등버스가 돼서 떡 하니 서있었다. 우리는 가는 길 전망을 더 잘 보려고 2층에 올랐다. 해가 더 잘 내리쬐어 눈은 좀 부셨지만, 그만큼 우리 앞에 펼쳐진 길들 과 풍경이 더 잘 보였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푸노. 그곳에서 저녁을 간단히 먹고 다시 쿠스코를 향해 달리는 버스 여행이었다. 노래를 듣다가,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가,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가 다시 풍경을 바라보았다. 종종 작은 마을을 지나치긴 했지만, 그리 기억에 남을 정도는 아니었고 마냥 펼쳐진 자연을 바라보다가 저무는 해를 따라 다시 잠에 들었다.


잠깐 스쳐간 도시, 푸노



 푸노 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캄캄한 밤이었다. 자유시간을 주며 저녁을 먹을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구글 지도를 켜서 그나마 식당들이 모여있는 곳을 검색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아르마스 광장 주변이었다. 식사는 평점이 높은 곳을 찾았고, 그럴듯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파스타와 수프 종류를 먹었다. 엄청 맛있진 않았지만 먹을만했고 저녁 한 끼 잘 해결했다. 하루 종일 버스만 타서 그런지 허기가 질 정도는 아니었다. 버스를 오래 타는 건 역시 할만한 게 못된다. 젊어서나 가능했지 나이 들었다면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20대 중반이었지만 힘들었다. 먹고 시내를 산책했다. 어두웠지만, 마침 마을에선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다. 행사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자세히 구경하러 가고 싶었지만, 장소도 꽤나 멀었고 곧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버스에 몸을 다시 실었다. 버스는 어둠 속을 달리고 달려 쿠스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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