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 여행기
태양의 섬 그리고 스피드런 트래킹
태양의 섬은 그 이름과는 달리 생각보다 평범했다. 나는 무슨 태양의 신전이나 거대한 유적지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거 없다. 그냥 날씨가 좋은 날, 경관이 아름다운 그런 섬이었다. 잉카 유적으로 보이는 몇몇 장소가 있었다. 그러나 크기도, 규모도 작았고 달리 안내도가 없어서 오래 구경할 거리는 못 되었다. 마치 섬에 있는 작은 경비실 같은 느낌이었다. 태양의 섬 투어는 촉박했다. 별거 없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음번 배는 40분 후에 도착하며 이후 나가는 배는 없다고 하였다. 즉, 다른 선착장까지 40분 만에 도착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바로 섬 트래킹을 시작했다. 그 배를 놓친다면 꼼짝없이 여기서 하룻밤을 자야 한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 모두 같은 생각인지, 같은 방향으로 트래킹을 하기 시작했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하얗다. 호수도, 하늘도 모두 파랗다. 햇빛을 받아 모두 반짝이는 것이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자연경관만 보더라도, 태양의 섬은 한 번쯤 올만한 섬이다. 트래킹을 하는 길에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현지인들이 많이 보였다. 다 꼬맹이들 아니면 아주머니들이었다. 작은 인형이나 조각상, 알파카 인형 같은 수공예품들을 팔고 있었다. 어린 꼬마들이 팔고 있는 것이 한편으로는 안쓰러웠지만, 나도 배낭여행 중이라 아직은 기념품을 사줄 만큼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시선은 주변 바다나 언덕의 풍경으로 향했다. 가끔 거주지나 식당을 마주치기도 했지만, 활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곳곳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알파카들이 더 활기차 보였다. 코스는 생각보다 짧았지만, 자연경관을 눈에 담으며 가느라 약간 빠듯했다. 언덕코스도 살짝 있었고, 숲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트래킹의 마지막 코스에는 태양의 신으로 추정되는 조각상이 있었다. 선착장 바로 앞에 우뚝 선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알로록 달로록 칠해진 옷은 화려했고, 다부진 체격이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강인한 인상의 태양의 신과 함께 사진을 찍고 다시 배에 올랐다. 40여분의 짧은 트래킹을 마치고 다시 코파카바나로 향했다. 살짝 피곤해서 이번에는 선실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했는데, 젊은 여성 관광객들이 너무 시끄럽게 떠드는 통에 잠들기는 어려웠다. 피곤은 한데 시끄러워서 잘 수 없는 그 짜증이란! 조용히 해달라고 할까 말까 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고민하는 사이 어느샌가 도착해서 그냥 내렸다. 배편이 짧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끔찍했던 아시아 음식의 기억
코파카바나에 다시 도착한 후 숙소로 향했다. 그냥 가기는 아쉬우니 좀 빙빙 돌아서 시내 구경 좀 하기로 했다. 이슬람 사원처럼 생긴 성당을 지나 골목시장을 구경했다. 분명 십자가도 있고, 성당이 분명한데 이슬람의 모스크를 연상케 하는 외관이었다.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고, 외관만 슥 둘러봤다. 시장에서는 저렴한 티셔츠와 함께 여러 과일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기념으로 티셔츠를 살까 말까 고민했지만, 아직 짐을 늘릴 시기는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잠시 피로를 풀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저녁은 배를 탈 때 한 외국인이 알려주었던 아시안 식당으로 향했다. 과연 지구 반대편의 아시안 식당에선 어떤 아시안 음식을 팔고 있을까. 궁금증이 도졌고, 곧바로 식당에 들어섰다. 사실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먹었던 일식집이 나름 괜찮았었기에 은근 기대가 있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최악이었다. 우리는 이곳이 송어로 유명하니 송어 초밥과 알파카 사태 꼬치구이를 시켰는데, 송어 초밥은 말 그대로 최악의 선택이었다. 같이 나온 미소국에는 고수가 들어가 있고, 밍밍한 맛이 물을 잔뜩 탄 맛이다. 송어 초밥은 얇디얇은 회에 밥알은 꽉 쥐었는지 퍽퍽하기만 하다. 심지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녹색 소스가 발라져 있었는데, 분명한 것은 와사비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식물을 짓이겨서 즙만 바른 것 같다. 알파카 꼬치구이는 그냥 고기를 구워낸 것이니 그냥저냥 한 맛이었다. 우리보다 일찍 와서 먹고 있던 일본 관광객들이 음식을 먹어보고 웃은 이유를 알 게 되었다. 그 웃음을 보고 우리는 나갔어야 했는데!
입맛을 정화하기 위해 결국 트루차 식당으로 향했다. 트루차 튀김에 맥주를 마시며 혀와 배를 정화했다. 역시 최고의 맛이다. 시원한 맥주로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며 집으로 휘적휘적 걸어왔다. 오는 길에 밤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질 것 만 같았다. 공해도 없고, 하늘을 밝힐 도시의 불빛도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하늘이다. 맑은 하늘을 따라 알알히 박힌 별들을 보며,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