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여행기
성스러운 계곡으로, 판초맨들이 간다
오늘은 투어가 있는 날이다. 그 말은 바로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오늘 새벽도 어김없이 서로를 깨우며 일어났다. 몸은 피곤했지만, 기대감이 부풀었다. 얼마나 기다려온 성스러운 계곡 투어인가. 적막을 깨는 알람 소리와 함께 새벽 특유의 분위기를 맞으며 일어났다. 어제 하루 종일 쉰 덕분에 사지 멀쩡하게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짐가방을 든 채 여행사 앞으로 이동했다. 역시 캐리어보다는 배낭이다. 짐을 든 채 이동할 때가 많고, 버스를 탈 일이 많아서 거대한 캐리어로는 감당이 안된다. 아르마스 광장 앞 투어 사 앞에는 이미 다른 투어 관광객들도 보였다.
성스러운 계곡 투어는 쿠스코의 근교 투어다. 그래서 사실 마추픽추를 가기 전에 같이 끼워져 있는, 으레 한번 가보는 투어라 그런지 사전 정보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더 기대가 되었다. 미지의 곳으로 탐험을 가는 느낌. 관광지를 간다기보다 모험을 가는 기분이었다. 날씨도 완벽했다. 햇살이 너무 강한 것만 빼면 하늘은 맑고, 구름은 햇살에 반짝일 정도로 하얀 자태였다. 기분은 상쾌했고 좋은 예감이 들었다.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일념으로 판초를 꺼내 입었다. 전에 쿠스코에 왔을 때 사두었던 그 잉카 문양의 판초다. 거기에 갖가지 기념품 복장으로 치장을 한 채 버스에 올랐다. 놀랍게도, 그런 복장은 우리들뿐이었다. 우리만 한국인이었다.
형형색색, 알로록 달로록 천연 염색
버스를 타고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천연 색소로 염색하여 기념품을 파는 곳이었다. 갖가지 전통 복장이나 액세서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직접 염색을 하는 과정을 시연해주었다. 그 방식은 한국에서 하는 전통 염색방법과 비슷해 보였다. 자연에서 유래한 염료를 물에 풀어, 천이나 실을 적시며 색을 입혔다. 흙으로 된 바닥과, 전통 가옥처럼 보이는 곳에 전통 복장을 입은 주민들이 마냥 신기했다. 모자도 팔고, 인형도 팔고, 옷도 팔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전통 판초들이 온 가게에 걸려 있었다. 나무 냄새와 흙냄새가 함께 섞인 이곳이 참 좋았다. 전통이 지켜지는 방법에 대해 그들 나름의 적응과정을 거친 것일 것이다. 작은 가게였지만, 상품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계단식 잉카 유적지, 친체로
다음으로 간 지역은 친체로. 계단식 유적이 특이한 인상을 주는 곳이다. 이 성스러운 계곡의 잉카 유적 투어를 위해서는 입장권을 사야 했다. 입장권은 버스를 타다가 잠시 내려서 구매했다. 입장권 하나에 성스러운 계곡 근교 투어 입장이 모두 가능하다. 여러 유적을 한 번에 묶어서 판매하는 형식이었다. 그렇게 티켓을 구매하고, 유적으로 가는 길. 몇몇 상인들이 기념품과 먹을거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는 옥수수와 치즈를 파는 상인들도 있었다. 어디선가 콘치즈라는 소리가 들려서, 아니? 여기서 콘치즈를? 순간 머릿속에 노릇노릇 익은 옥수수 알과 쭉 늘어나는 치즈가 연상되며 한번 사 먹을까 싶어 고개를 돌려봤다. 그런데 그냥 치즈 따로, 옥수수 따로 팔며 콘치즈라고 쓰여있었다. 실망감이 잠시 돌았지만, 어눌한 한국어로 연신 맛있다를 외치는 상인 덕에 웃음 짓는 상황이 발생하곤 했다.
친체로는 옛 잉카 건물터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협곡이 인상적이다. 옛터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처럼 구름이 많고 바람이 계속 부는 곳이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푸른 잔디들이 옛 터의 황량함을 채워주는 듯했다. 건물벽을 돌의 모양대로 짜 맞추는 식은 쿠스코의 벽과 마찬가지였다. 잉카식 건축양식은 볼 수록 신기했다. 뒤편으로 펼쳐진 협곡은 푸른 나무로 가득 차있었다.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협곡은 무서웠지만, 신령스럽게 피어나는 구름과 함께 보니 왠지 모르게 잉카 복장의 신선을 만날 것만 같았다. 다른 곳에 비해 엄청 인상적인 곳은 아니었지만, 푸른 하늘과 푸른 잔디밭이 잘 어울려 좋은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