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지역은 모라이. 동신원을 그리며 만들어진 계단식 유적지가 가득한 곳이다. 버스에서 내려 달려가 보니 정말 동그란 원들을 그리며 계단식으로 파내려 간 유적이 있었다. 잔디들이 잔뜩 자라서 놀이터 같기도 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보니 경작방법에 대해 농업연구를 한 곳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아직 전부 발굴된 건 아니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UFO가 착륙한 곳이라는 느낌이었는데, 농업연구라고 들어보니 또 그럴듯했다. 가이드의 설명대로 아직 다 발굴된 것은 아닌지 아직 발굴되다 만 듯한 흔적도 있었다. 들어가 볼 수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었다. 이런 식의 유적은 처음이라서 마냥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가이드가 대뜸 어떤 식물의 잎을 뜯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인 '무냐'라고 했다. 주로 차로 우려먹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만든 무냐차는 고산지대에서 만병통치약으로 통한다고 한다. 배가 아플 때에도, 머리가 아플 때에도 이 차를 마시면 증상이 호전된다고 한다. 두통, 치통, 생리통엔! 무냐차! 기회가 있으면 꼭 무냐차를 사봐야겠다 생각하며 다시 버스로 돌아왔다. 낮에 가까워진다. 햇살이 슬슬 피부를 태우기 시작한다.
산속의 염전, 살리네라스
다음 장소는 다른 곳과는 달리 정말 인상 깊은 곳이었다. 눈에 들어온 풍경부터가 다른 곳과는 달랐다. 우선 색감이다. 지금까지는 푸른 하늘과 잔디밭들이 자연의 싱그러운 녹색 빛깔이었다면, 이곳 살리네라스는 흙빛과 하얀색이 어울렸다. 살리네라스는 계곡에 자리 잡은 염전이다. 산에 있는 염전이란 말이다.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때는 의심을 품었으나, 나는 보고 나서야 믿고 말았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정말 하얀 소금밭이었다. 흙으로 빚어진 계단식 염전, 곳곳에 묻은 하얀 소금기, 그리고 찰랑하게 물이 차있는 염전과 저편에 수북이 쌓인 하얀 소금들. 계곡을 따라 계단식 염전이 쭉 펼쳐져있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염전을 두 눈으로 보았다.
흐르는 물을 살짝 맛을 봤다. 너무나도 짠맛을 너머 쓴맛까지 느껴졌다. 초고농축 소금물을 맛본 느낌이다. 계곡에서는 정말 소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유니와 비슷하게 예전에는 바다였던 지역이 솟아올라 계곡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 탓에 산에서 소금기가 가득한 물이 흐르게 되었고, 이렇게 계곡 염전이 만들어진 것이다. 질이 좋은 제품은 핑크 솔트라 하여 분홍빛깔을 띈다고 한다. 히말라야 핑크 솔트는 들어봤는데, 여기서도 분홍빛이 도는 소금이 나오는 모양이다. 햇살도 좋은 터라 소금이 정말 많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정말 그늘 하나 없이 햇살이 가득가득해서 사진을 찍을 때에도 찡그리고 찍을 수밖에 없었다. 선글라스가 없었다면 그대로 햇살에 공격받았을 것이다. 다시 버스로 돌아오는 길, 길가와 벽 곳곳에는 하얗게 소금기가 가득했다. 손으로 살짝 맛 보니 영락없는 소금이다. 협곡에 펼쳐진 소금밭, 직접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었고, 보고 나면 경이로운 장관에 넋을 놓고 보게 되는 곳이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잉카 유적지, 오얀따이땀보
성스러운 계곡 투어의 종착역은 오얀따이땀보다. 마추픽추로 가기 전에 들른 마지막 경유지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성스러운 계곡 투어를 마치고 쿠스코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구아 깔리안떼라는 곳으로 따로 간다. 그래서 다른 관광객들과 다르게 모든 짐을 들고 내렸다. 짐이라 해봤자 메고 온 배낭뿐이다. 배낭을 관광지 앞 가게에다 맡기고는 관광기, 오얀따이땀보로 향했다. 옛 잉카의 고대 유적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이름은 장군의 이름 오얀따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얀따이 장군이 쉬던 곳, 그래서 오얀따이땀보라고 한다.
이곳은 거대한 언덕을 올라야 한다. 그것도 계단으로.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오르고 있었다. 산행이라 생각하면 되지만, 그것이 전부 계단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도 계단뿐인 산행은 꽤나 힘들었는데, 고산지대라니 말 다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게 배는 힘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비니쿤카 해발 4000m에서도 5000m까지 찍고 온 고산지대 경력직 아닌가 경력직! 이 정도는 워밍업 코스에 불과했다. 고산병 약도 필요하지 않았다. 태양신의 가호를 받은 강력한 전사들로 거듭날 때다. 햇살은 강력했지만, 바람은 선선하니 한국의 여름처럼 막 불쾌하거나 습해서 죽을 것 같지 않았다. 비니쿤카 등반보다는 쉬웠지만 힘든 것은 힘든 법. 물을 챙겨 와서 다행이란 생각을 거듭했다. 만약 오르기 전에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반드시 물을 사갈 것! 생명수를 마시며, 태양의 전사의 가호와 함께 유적지까지 등반에 성공했다.
옛 잉카 유적지에 우리가 섰다. 태양은 빛났고, 바람은 시원했다. 땀으로 얼룩진 온몸을 바람이 시원하게 말려주고 있었다.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아래 자리 잡은 기념품샵들과 시장들, 그리고 민가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생한 만큼 그 광경은 우릴 실망시키지 않았다. 유적지는 가늠할 수도 없는 거대한 산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렇게 올라왔는데도 주변은 여전히 산세였다. 저 멀리 계단을 올라오는 관광객들이 개미만큼이나 작게만 보였다. 위에서 보니 아득하다. 여기서 구르면 뼈도 못 추리겠지.
이곳에 자리 잡은 유적들은 자연과 인간의 기술이 빚어낸 풍경을 하고 있었다. 반대편 산에는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과, 산에 가려진 그늘이란 점을 이용해서 옛 잉카인들이 냉장도처럼 이용한 지역이 있다고 했다. 역시 잉카인들의 지혜! 하지만 그 냉장고란 지역도 산 중턱쯤에 있으니, 저길 가려면 어지간한 체력으로는 힘들었을 것이다. 역시 강한 자만이 시원함을 얻을 수 있나 보다. 유적을 둘러보다 보면 헌병초소처럼 경계근무를 하는 곳도 있었다. 높은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서 아래쪽에 자리 잡은 마을을 경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야, 여기까지 교대근무를 했다니, 기초체력만큼은 무지하게 강했을 것이다. 한쪽에는 음파 반사장으로 이용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 있었는데, 인공적인 메아리라고 보면 된다. 아래쪽 마을까지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아, 바위를 쌓아서 반사장으로 만들어 목소리를 전달했다고 한다.
한쪽에는 태양의 사원이 있었는데, 그 유적만 남아서 형태를 거의 알아보기 힘들었다. 자연스레 풍화된 것일까 아니면 어떤 침략자들에 의해 파괴가 된 것일까. 태양의 사원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저 덩그러니 놓여있는 다듬어진 돌. 단단함과 무정함이 느껴지는 돌이었지만, 어쩐지 쓸쓸함도 함께 느껴졌다. 제대로 된 사원이라면 그래도 제단의 모습은 갖췄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거대하고 많은 돌들을 어떻게 옮겨왔는지 의문이다. 어디서 가져왔고, 어떻게 가공해서 건설했던 것일까. 역시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과 노동력이 주어진다면, 만들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피라미드도 사람 손으로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날이 좋았기에 사진 역시 잘 나왔다. 인물도, 풍경도, 유적도. 모든 사진들이 눈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선명했다. 사진도 찍고, 바람도 맞으며 가이드를 따라다니다가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가이드는 남은 인원을 이끌고 성스러운 계곡 투어를 마무리하러 갔다. 우리는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다. 잉카 특유의 유적지의 분위기를 느끼며 시원한 바람도 쐬었다. 언제 페루의 산 중턱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겠는가.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내려오니, 옛 마을의 터와 마주했다. 물을 긷던 곳, 거주지 등 아직도 그 용도를 유추할 수 있을 만큼, 유적의 모습은 생생했다. 조금만 손보면 바로 사람이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도로는 잘 닦여 있었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조금 작은 마을 단위였지만, 있을 것은 다 있어 보였다.
다음은 기다리던 마추픽추의 전초기지, 아구아 깔리안떼다. 그곳을 향하기 위해, 우리는 기차역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