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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Sep 02. 2021

21. 위대한 공중도시, 마추픽추 -1-

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 여행기

공중도시로의 새벽 산행


 아직은 공기가 차가운 새벽이다. 여느 투어처럼 아침 해와 함께 일어났다. 호텔에서는 바나나와 주스 같은 간단한 아침식사를 포장해주었다. 혹여 산행 도중 화장실에 가게 될까 봐 먹는 것이 고민되었다. 그러나 산행을 해야 한다 해서 간단하게 먹기로 했다. 체크아웃을 하며 짐을 호텔에 맡겨두고,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향했다. 새벽 공기가 신선했다. 이미 정류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들 습하고 서늘한 새벽 공기를 뚫고 온 부지런한 여행자들이었다. 우리는 사진을 위해 아침부터 멋진 판초를 입고 버스 대기줄을 섰다. 여권과 버스 티켓을 미리 준비하고는 버스를 기다렸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했고, 순서대로 탑승했다. 버스에 타자마자 얼마 안 가 잠에 들었다.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니, 도착했다. 드디어, 마추픽추다.



 투어를 시작하면 화장실에 갈 수 없다 해서 미리 들렀다. 물론 유료였다. 화장실이 여기밖에 없다 보니 화장실 줄도 꽤나 길었다. 몸을 가볍게 하고 가이드를 따라 마추픽추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간다고 바로 짠! 하고 마추픽추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등산을 좀 해야 한다고 하였다. 마추픽추로 향하는 등산, 시작이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인가.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마추픽추로의 등산이다. 등산을 하면서도 웃음이 계속 나왔다. 믿어지지가 않아서. 해는 슬슬 푸른 산에 열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고산지대라 그런지 숨이 가빴다. 그렇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추울까 봐 입고 온 판초 안의 히트텍이 좀 더워지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판초를 입은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대부분 편한 복장을 입고 왔다. 역시, 사진에 신경 쓰는 민족은 한국인밖에 없나 보다.


 비니쿤카를 다녀와서, 모든 산행을 비니쿤카와 비교하는 습관이 생겼다. 고산지대를 등산 비스무리한 것을 할 때마다 그 힘들었던 기억을 소환해서 비교하게 된다. 역시 이번 마추픽추는 비니쿤카와 비교하면 동네 뒷산 수준에 불과했다. 산행의 풍경은 평범했다. 그냥 산이었다. 한국의 어느 뒷산이라고 해도 믿을 만할 정도로 색다른 풍경은 아니었다. 익숙한 식물들, 돌과 흙 그리고 나무로 둘러싸인 모습이다. 그렇게 앞사람을 쫓아 계속해서 앞으로 향했고, 어느샌가 앞사람의 어깨너머로 마추픽추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CG 같은 풍경


드디어 마주한 공중도시 마추픽추. 그 모습은 너무나도 생소한 이미지 그 자체였다. 인터넷으로만, 교과서로만 보던 그 모습. 날이 좋아 햇살 아래 맨살처럼 드러난 마추픽추의 모습은 마치 CG 같았다. 행운이 깃들은 완벽한 햇살이 마추픽추를 더 웅장하게 만들어주었다. 고대 유적을 더 빛나게 하는 재료였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지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포토존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기다림 끝에 포토존에 서자, 인터넷으로만 보던 바로 그 마추픽추의 모습이 보였다. 잉카문화의 정수가 햇살을 받으며 고고히 서있었다. 잘 끼워 맞춰있는 돌벽과, 온전히 남아있는 지붕들. 그리고 문명의 흔적을 덮고 있는 푸르른 잡초들. 그 뒤로는 거대한 산줄기가 듬직한 호위병처럼, 중후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푸른 하늘과 적당하게 흩어진 하얀 구름들이 신이 내린 조명처럼 유적을 비추고 있었다. 조화롭게 형성된 돌벽들은 이곳이 하나의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이 광경을, 이 흔적을 보기 위해 온 보람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내가, 우리가 마추픽추에 도달했다.



그리고 돌아온 포토타임. 감상과 함께 우리는 연신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단체샷도, 단독샷도 열심히 찍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죽치고 앉아서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후다닥 공장처럼 찍었다. 막상 사진을 직고 보면, 정말 뒷면이 CG 처리한 것처럼 나왔다. 사진에 신기해할 새도 없이 일단 마추픽추 안으로 좀 더 들어갔다. 한적한 곳에 도착해서는 원 없이 사진을 찍었다.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다른 관광객에게 부탁해서 점프샷도 찍었는데, 차마 미끄러져 넘어질까 사리는 바람에 조금은 덜 역동적이었다. 사진을 찍고 난 다음에는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가이드를 따라 이동하며 설명을 들었다. 귀를 열고 있긴 했는데, 남미식 영어 발음이라서 교과서로만 영어를 배운 나에겐 버거웠다. 들을 수 있는 단어들을 따라 조각조각 퍼즐을 맞춰가듯 설명을 들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마추픽추 중앙에 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말로 보니 거대한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침략자들이 와서 그 나무 아래를 파보니 팔찌가 하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외의 보물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마추픽추의 관람 방향은 일방향이다. 이 말인즉슨,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한번 지나간 부분은 다시 볼 수 없고, 재입장 역시 불가능하다. 관광노선에 혼란을 줄이고,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는 있겠지만 일생에 몇 없을 마추픽추 구경을 쓱 보고 지나쳐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래서 더욱 신중해야 했다. 한 루트를 고르면 다른 루트는 갈 수가 없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마추픽추에서도 우리는 선택을 해야 했다. 일방통행이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가이드의 보편적인 설명이 끝나는 대로 우리는 원하는 루트를 골라 자유관광이 시작된다. 결국 우리가 선택한 루트는 콘도르 신전 방향 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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