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홍 Feb 15. 2019

첫 월세 내던 날

이제야 치르는, 나만의 성인식

 2월 14일, 누군가에겐 연인 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달콤한 날이었을 테다. 공공연하게 2월 14일이 어떤 날을 의미하는지 반증하듯 출근 후 손에는 몇 개의 초콜릿이 쥐어졌고 그것들의 맛은 주는 이들의 마음만큼이나 따뜻했지만 나에게 2월 14일은 조금 다른 의미였다.
 '첫 월세 내는 날', 그러니까 이제야 세상에 내 두 발로 서게 된 첫 번째 날이었으니 스스로가 정의한 성인의 범주 안에 내가 들어선 날이었달까.

 여행 겸 휴식차 갔던 제주도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싸서 현 직장이 있는 곳으로 올라온 것이 한 달 전이었다. 당시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30일 여 전의 그 맘 때에는 취업준비랍시고 하던 알바를 그만둔 지가 3개월 차를 넘어가고 있었고 저축은 하지 않는 대책 없는 성격이었으므로 통장잔고는 2주 치의 생활비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그러니 '독립'이라고는 하나 집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등의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모습은 그간 내 보잘것없는 자존감을 지켜주던 어떤 호(號) 같은 것들이었지만 이사 초반의 나는 가족들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가족들이 고마우면서도 스스로의 무기력함을 직면했던 순간의 스크래치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중간한 날짜에 입사해 2주만 버티면 반쪽자리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 이상 사회초년생이라는 이유로 엄마의 등골을 빼먹을 수 없었던 이유는 가정경제에 이바지하겠다거나 다 큰 딸로서의 도리보다는 스스로를 무력하게 느끼는 일을 다시 겪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갔고 나는 반쪽자리 월급을 받아 내 손으로 월세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할머니와 엄마로부터 받은 온갖 반찬들, 마트에서 한꺼번에 사다 놓은 생필품 덕분에 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만 내 딴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명품이나 전자기기처럼 단위가 큰 물건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자잘하게 돈을 쓰는 일이 많았고 그런 소비에 막힘이 없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대학시절에도 돈을 전혀 모으지 못했던 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혹적이었던 것은 엄마가 한 달 치 생활비로 주고 간 돈이 온갖 할인행사를 마다하지 않는 쇼핑몰들의 문자나 메일을 받을 때마다 생각이 난다는 것이었다. (소비 금단현상)

 어찌 됐건 인내의 시간을 거쳐 월세를 내는 날이 다가왔다. 퇴근하자마자 내 이름으로 집주인에게 월세를 송금하고 월세 전용 통장에 남은 잔액은 378원, 출금은 커녕 껌 하나 사 먹을 수도 없는 그 금액이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역사적인 순간

 그날 저녁, 남은 월급일로부터의 생활비 계산을 둘째 치더라도 첫 성인식을 치른 나에게 보상이 필요했다. 현재의 재정상태와 다음날 출근까지 고려하니 거하게 할 수는 없었고 이삿날 먹었던 동네 치킨이 떠올라 그 집에서 치킨을 샀다. 봉투에서 올라오는 튀김 냄새나 따뜻한 온기 같은 것들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몸이든 기분이든 가볍고 즐거운 귀갓길이었다. 치킨을 먹기 전까지는.

 허기는 지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축하하는 의미라든지, 첫 월세를 냈다든지 등 각종 의미가 부가된 8900원짜리 치킨을 보고 있자니 신이 났다. 저녁때마다 밥을 해 먹다 외식을 한다는 기분도 좋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요 근래에 항상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음식을 끼니때마다 먹었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원체 위장이 약한데 급하게 먹은 치킨까지 들어가니 속이 괜찮을 리 만무했다.

 먹으면서도 더부룩한 포만감이 올라왔지만 체질 탓으로 여기며 꾸역꾸역 집어삼키다 식사를 마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입술이 마르고 몸에 힘이 빠졌으며 손발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이 났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성인식을 치른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아 징징거리며 엄마에게 전화했다. 증상을 이야기하자 어떤 명의보다 빠르게 진단을 내린 엄마가 가스활명수와 핫팩을 처방했다. 힘이 빠진 몸을 끌고 의사의 말대로 가스활명수를 들이켜고 핫팩을 붙이고 누웠다. 까스활명수 덕택인지 그 지경에 들은 엄마의 목소리 덕분인지 속이 가라앉았다. 누워서 가만 생각해보니 이게 어른이라면 아주 웃긴 어른이었다.

붙이기 부담스러웠던 핫팩

 그날 밤, 나는 핫팩을 안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이 자그마한 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던 핫팩이 밤새 온기를 내며 체증을 가라앉히고 해가 뜬 뒤에도 열을 내고 있었다. 심하게 앓을 수도 있었던 내가 괜찮아진 건 온기를 내던 이 핫팩 덕분이었다. 진짜 내가 괜찮아서가 아니라.

 그러고 보니 그간 내가 해 먹는다고 했던 집밥 마저 누군가의 손길이 안 닿은 것이 있던가 생각해보니 고개가 저어졌다. 전날 저녁 나는 비로소 성인이 됐다고 생각했지만 그도 역시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쯤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아마 냉장고 속 반찬이나 핫팩처럼 나를 유지하는 것들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나를 채우고 있던 누군가의 자리를 깨닫고 내가 온전히 그 자리를 채워가는 일, 그게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면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보다는 조금 쓸쓸한 일이지 않을까. 오늘따라 그녀가 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