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8.
비 내리는 금요일.
도서관에서 책을 무릎에 덮은 채 기분 좋은 피로감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저녁 무렵이었다. 등 뒤 열린 창에서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이따금 불어왔다.
몽롱한 머릿속에 훅 불어드는 물기 어린 밤바람 탓에, 십여 년 전 온몸으로 새로움을 들이마시던 이국에서의 내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외투를 뚫고 들어오던 차고 습한 바람마저도 사랑했던 시절이었다. 외로움도 황홀했던 그런 사치스러운 날들이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저만치 앉아 책을 보는 남편을 본다. 아래층엔 책뭉치를 쌓아놓고 엄마, 아빠가 내려오길 기다리는 우리 복동이가 있다. 나의 세계, 사랑하는 내 사람들이다.
식사 시간, 구멍 났던 마음은 하이볼 한잔으로 조용히 다독이고 이번 주말엔 복동이가 부쩍 관심을 보이는 불닭볶음면 까르보‘닐’라 맛에 도전해 보자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는다.
집에 돌아와 내일 먹을거리들을 만들고 부엌을 치우며 아까의 바람이 가져다준 달콤한 슬픔을 생각한다. 아마 다시는 오지 않을 혼자의 시간이겠지. 다들 이렇게 사는 거겠지.
C’est la vie.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