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밤.

2017. 8.

by 칠성상회

가을이 오려는 모양인 지 아침 공기가 꽤 서늘하여 욕심껏 아기에게 노란 긴팔 바디수트를 입혔다. 큰 맘먹고 아가를 슬링에 넣어 아파트 주변을 한 바퀴 돌 때에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천기저귀에 싸여 있던 애기 얼굴과 궁뎅이, 다리에도 시원한 공기가 기분 좋게 닿았을 것이다.


밤잠 전 맘마 타임 후 이제 눕히기만 하면 되겠지 하고 내려다본 아가가 너무 아침 같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음에 심히 낙담했지만 이쁜 딸은 금세 잠이 들어주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사다주신 체리와, 남편이 데쳐준 오징어를 안주삼아 맥주 한 캔 하는 밤. 비긴 어게인을 보며 이소라, 윤도현의 노래,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비틀스의 노래를 들을 때의 나는 남편의 아내도 아가 엄마도 아닌 오롯한 나 자신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 뒷베란다 창문을 여니 적잖이 내린 비에 말꼬롬하게 씻긴 차들과 노란 가로등, 나무들 사이로 청량한 바람이 불었다. 후레쉬베리에 이어 한참 빠져있는 카스타드보다도 더 달콤한 밤공기였다.


오늘 밤은, 지난 날과 다가올 날을 전혀 근심하지 않았다. 다만 맘마를 먹이려 아가를 안고 나올 때의 눈 못 뜬 새끼 강아지처럼 사랑스럽던 모습과 중독성 심한 머리냄새를 떠올리며 마냥 헤낙낙했다.


그 간의 고군분투 덕에 하루에도 몇 번씩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지낸다. 일일이 늘어놓기는 사소하지만 내가 누리는 일상이 절대 당연하지 않음을 자주 생각한다.


방귀쟁이 아가의 푸두두 소리와 늘 등 돌리고 자는 남편 사이에서 잠드는 밤. 마음이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