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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팩트시트(2025.11월) 분석

안보 분야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by 쿠쿠루
화이트홀 브리핑은 실무와 연구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최신 안보 이슈를 분석합니다. 뉴스 요약을 넘어, 저만의 해석을 찾아가는 과정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3-Point Summary

1. 팩트시트 안보 분야의 협의 내용은 한반도 방위 및 확장억제에 대한 기존 공약의 재확인과 함께, 한미 동맹이 보다 포괄적인 전략 동맹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과 관련한 내용이 문서화된 것은 평가할 부분이지만, 세부 사항에 관한 이견이 오히려 동맹의 결속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지속적 리스크 관리 및 조속한 사업 이행 실무 체계 확립이 필요해 보입니다.

3. NPT로 대표되는 기존의 비확산체제에 지정학적 압력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평화적 핵 에너지 이용에 관한 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기존 비확산 체제의 정당성과 지속 가능성을 강화하고, 체제의 틀 내에서 확산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I. 들어가는 말


한미 Joint Fact Sheet이 11월 13일 발표되었습니다. 경주 APEC 계기 한미 정상회담 이후 2주 만입니다. 이 2주의 시간은 특히 한국에서 국내 정치가 한미 동맹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한미 간 관세 및 핵추진 잠수함 건조 관련 합의의 진위를 둘러싸고 한동안 여야 간 신경전이 지속되었습니다. 양측 모두 자신이 한미 동맹의 적자(嫡子)임을 내세우며 상대를 비판하는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논쟁이 '동맹이냐 자주냐'로 프레임화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맥락은 다르지만 한국 역시 '국내 정치는 해안에서 끝난다'는 미국식 외교 정책적 공감대가 생겨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팩트시트는 경제·산업, 통상, 동맹, 역내 이슈까지 폭넓은 사안을 다루고 있습니다. 관세, 대미 투자, 외환 관련 불확실성을 일정 부분 해소했다는 점, 그리고 안보 분야에서도 기존 원칙을 재확인하고 경주 정상회담에서 특히 화제가 되었던 핵추진 잠수함 건조 관련 내용도 포함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합니다. 이 글에서는 안보 분야를 위주로 몇가지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II. 안보 분야 주요 쟁점


우선, 주한미군과 관련하여 한반도 방위 및 확장억제에 대한 공약이 재확인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동맹의 미래 발전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었습니다. 주한미군 주둔 및 한반도 방위 문제는 계속해서 변주되며 동맹의 강도를 시험해왔습니다. 1969년 닉슨 대통령의 괌 선언으로 촉발된 자주국방과 한국의 핵개발 시도가 있었고, 부시-노무현 행정부 시기 '테러와의 전쟁'을 둘러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논의와 동맹의 '연루(entrapment)' 문제가 있었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주장하는 동맹국들이 자신의 방위에 더 큰 책임을 지라는 것 역시, 재래식 전쟁에서 개별 동맹국들이 자국 방위의 일차적 책임(primary responsibility)을 지라는 닉슨 독트린을 연상시킵니다.


반복되어 온 미국의 한반도 관여 축소 신호는, 과거 한일 병합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가츠라-태프트 밀약에서 한국 전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애치슨 라인(Acheson Line)까지, 방기(abandonment)에 대한 한국의 안보 불안을 자극하며 동맹을 흔드는 요인이 되어왔습니다. 이러한 맥락을 감안할 때, 미국이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을 통한 한반도 방위 의지를 재확인하고 전임 정부에서 창설된 NCG(핵협의그룹)를 포함한 확장억제 공약을 재확인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팩트시트에 한국의 입장만 반영된 것은 아닙니다. 한미는 '북한을 포함한(including the DPRK)' 동맹에 대한 '모든 역내 위협(all regional threats)'에 맞서 미국의 재래식 억제 능력을 강화하기로 했는데, 이는 명백히 한반도 방위를 넘어서는 공약입니다. 흔히 간과되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 원문 역시 적용 범위를 태평양 지역으로 명시하며 한반도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팩트시트의 다음 항목에 있는 대만 문제를 함께 보면 이 점은 더 명백해집니다.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입장은 2021년 5월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당시와 비교해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 입장을 명시한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입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대만 문제에 유보적 입장을 보였던 것과 비교해도 확실히 진일보한 내용입니다.


또한 같은 섹션에서 선박과 항공기 항행의 자유, 해양법 준수 내용이 들어간 것 역시 남중국해 문제는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서해 한중 잠정 조치 수역 문제에 대해서까지 생각해 보게 되는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한미 동맹의 역할과 범위가 좁은 의미의 한반도를 넘어 확장되는 토대를 제공합니다. 한편, 앞서 언급한 ‘동맹에 대한 모든 역내 위협’에 '북한을 포함한'이라는 문구를 더한 것은 일종의 '완충(dampening)' 장치로 보입니다. 저에게는 이 문구가, 동맹 적용 범위의 급격한 확장에 대한 한국 내 우려와 중국의 반발 등을 감안해, 당연한 위협인 북한을 굳이 다시 언급함으로써 좀 더 과감한 행보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을 살짝 덮고자 한 것으로 읽힙니다.




핵 문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 특기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북한 비핵화 문제입니다. 비핵화에 관한 표현은 조금씩 바뀌어 왔습니다. 과거 당연시되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2018년 전후 추진된 북미 대화 시기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로 점차 변화해 왔습니다. 나아가 최근에는 비핵화 대신 우선 동결 및 중장기적 폐기라는 단계론이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북한과의 협상 목표를 둘러싼 이 회색지대는 결국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습니다. 비핵화의 주체가 북한이냐 한반도냐를 두고 북한과 한미 간 이견이 존재하던 가운데, 이번 팩트시트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명시된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북한은 2025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핵무기가 곧 생존, 주권, 헌법과 동일한 의미임을 천명하며 비핵화라는 표현에 극렬히 반대해 왔습니다. 김정은과의 만남을 추진하면서 비핵화에 대해 다소 유연한 해석이 부여되는 것 같던 상황에서 팩트시트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내용이 들어간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의 화해 제스처에 평양이 응답하지 않은 데 대한 일종의 '역신호(counter-signal)'를 발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한편 핵 문제와 관련한 잔여 쟁점들은 핵추진 잠수함과 우라늄 농축,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입니다. 우선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대한 '승인'이 재확인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조약은 아니지만 양국 간 양해를 문서화한 것이며, 공개까지 2주의 시간과 지난한 협의가 필요했다는 점 자체가 이 문서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증합니다.


다만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언급대로 여전히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많은 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대통령실은 '한국 건조'를 전제로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나, 팩트시트 문안상 이 부분이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트럼프 2기 행정부 이후로도 이어질 중장기적 사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세부 사항이 동맹 간 이견 변수가 되지 않도록 실무적 추진 체제를 조속히 마련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 내에서는 '미국 건조는 사실상 건조 불허와 다름없다'는 여론까지 있는 만큼 리스크 관리가 필요합니다. 속담처럼 줬다가 뺏는 것만큼 동맹의 신뢰를 해치는 일도 없습니다. 혹은 좀 더 점잖은 표현으로는 인간은 이익보다 손실 회피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만큼, 이 프로젝트가 동맹의 잡음을 유발한다면 애초에 없던 일만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리스크 관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III. 잔여 쟁점 및 사족


한편,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문제에 대해서도 '평화적 사용'을 위한 미국의 지원을 명기한 부분은, 현시점에서 팩트시트 발표가 더 지연되는 것을 막는 범위 내에서 양국이 합의할 수 있었던 한계 지점으로 보입니다. 여기에는 '한미 원자력 협정과 미국의 법적 요건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도 붙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요즘 비확산 체제에 대해 좀 더 발전시켜보고 싶은 생각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1974년 발효된 NPT 체제는 50~60년대 팽배했던 수평적 핵확산 우려를 막는 데 기여해왔습니다. 이 체제의 운용에 있어 냉전기 미·소는 각 진영 내 핵확산 시도를 막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한국의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킨 것은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었고, 북한의 1974년 IAEA, 1985년 NPT 가입을 이끈 것도 미국이 아닌 소련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체제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습니다. 안보리 대북 제재 전문가 패널의 형해화에서 보듯, NPT 체제 밖 핵개발 국가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는 어려워졌습니다. 미국 비확산 정책의 딜레마는, 체제 내 규칙 준수 국가들(동맹국)이 오히려 규칙 위반 국가(북한 등)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핵보유국들의 핵 군축 의무 역시 사실상 방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외면한 채 동맹국의 평화적 핵 에너지 이용마저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 과연 비확산 체제의 현실주의적 목적인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 확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성찰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한국처럼 핵무장 여론이 높은 국가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비확산 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불만을 완화하고 동 체제의 틀 안에서 핵무기 개발 여론과 리스크를 저감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족. 핵추진 잠수함 개발 승인에 대해서 ‘nuclear-powered attack submarines’라고 표현한 것이 눈에 띕니다. 이는 이미 SLBM 기술을 갖춘 한국이 핵잠수함 개발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핵무장을 추진할 가능성에 대한 제동장치로도 보입니다.


공격원잠(SSN)은 대체로 SLBM을 장착하지 않는데, 한국은 이미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에 수직발사체계(VLS)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한국 내에서는 핵잠수함 확보 논의 과정에서 적 잠수함 탐지·추격뿐 아니라 필요시 지상 목표물 타격까지 거론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핵추진 잠수함 대신 핵추진 '공격' 잠수함이라는 표현을 구체화한 의미가 추후 어떻게 해석될지 궁금증도 생깁니다.


※ 한동안 논문 작성에 매달리느라 다른 글쓰기를 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시사적인 글은 브런치와는 안 맞는다는 생각 때문에 이 곳에 포스팅 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좀 뜬금 없는 글 느낌이지만, 최근 여러가지 시사 이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오늘 쓴 글을 브런치에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떠나지 않고 남아 계신 구독자님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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