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흉기난동사건 비평-제복의 의미

제복을 입은 순간, 개인은 중요치 않습니다. 그 밑으로는 경찰만 있을뿐.

by 쿨럭쿨쿨럭

2021.11.21.자 작성된 글입니다


인천에서 가해자가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피해자가 뇌사상태에 이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한 경찰은 도망쳤고, 현장 밖의 한 경찰은 그저 기다렸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여경’이 도망쳤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저는 반대로 제복의 의미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공권력에 대한 신뢰입니다.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시스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사회에서도 치안을 확보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공권력을 믿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자력구제로 눈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범죄를 당해도 지켜줄 사람이 없다는 인식에서 나오는 공포는 사람을 좀먹습니다. 국가도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데, 스스로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시민들이 자력구제에 눈을 돌릴수록, 필연적으로 보복범죄의 확률과 전체적인 범죄율이 증가합니다. 미국 할렘가의 극도로 높은 범죄율은 반대로 거주민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곳의 거주민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총기를 가지고 다니고, 지나가는 행인을 일상적으로 경계합니다.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치안율은 아직 아주 양호한 수준입니다만, 유사한 사례가 반복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칙적으로 총기가 허용되지 않으니, 도검이라도 허가받아서 허리춤에 꽂고 다녀야 할지도요. 거리마다 야스오가 넘칠테니 라이엇은 좋아하겠네요.

만인투적 사회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공권력을 이루는 가장 거대한 축이자, 치안의 주체인 경찰의 존재가 중요합니다. 경찰은 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보장받습니다. 사인의 폭력은 범죄가 되는 사회에서, 합법적인 폭력이란 엄청난 권한입니다. 이 막강한 권한에 더불어서, 약 13만명에 달하는 경찰공무원의 월급은 세금으로 지급됩니다. 흔히 ‘철밥통’이라고 할만큼 생계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특권들이 존재하는데, 경찰에게 왜 이러한 특권이 부여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오직 양심에 따라 법을 집행하는 공정한 경찰이기를,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그러나 불의와 불법에 타협하지 않는 정의로운 경찰이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허가받은 권력과 권한으로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그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렸습니다. 그들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명분을 상실했습니다.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에도 그 밑은 있었습니다. 피해가족의 주장에 따르면, 경찰은 나아가 피해가족들을 회유하려고 협박했습니다. “수사에 전념해 구속시켜야 하는데, 구속 안 되고 풀려날 수도 있다” “막말로 형부가 범인을 내려친 칼이 형부 것인지, 범인 것인지 뒤죽박죽 얽혀서 형부가 잘못될 수도 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한계가 있어,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제3자가 확신할 수 없겠습니다. 다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가 찰 지경입니다. 두 경찰만이 문제인 줄 알았더니, 경찰 조직 전반에 문제가 만연하다는 뜻입니다.


이 사건의 여러 영향을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상기했듯이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습니다. 경찰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으니, 조직 전체에 타격을 입힌 것이겠습니다. 국민들이 경찰을 신뢰하게 된 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무너진 신뢰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수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겁니다. 비판받고 조롱당하느라 만신창이가 되버린 경찰이 과연 이 손실을 쉬이 회복할 수 있을까요.

둘째, 여경들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여경들에 대한 부정적 편향은 극도로 심해졌습니다. 그 구성원이 자초했다는 점에서 이를 개선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안 그래도 부정적인 이미지로 힘들어하던 여경들입니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직면하게 된 그들이 안타깝지만, 저로서도 위로해줄 말이 없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서 있었던 남경 역시 면죄부가 주어지진 않을 겁니다)

셋째, 결국 피해자는 뇌사상태에 빠졌습니다. 피해가족들의 분노는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요. 지나간 과거는 돌아오지 않고, ‘만약’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조치가 있었다면 피해자는 안전했을지도 모릅니다. 경찰이 범인이라는 일부 의견에까지 동조하지는 않으나, 피해가족이 느낄 고통을 생각하면 점잖은 말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경찰이신 교수님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은 자살시도가 의심되는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경우를 설명하셨습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경찰관은 자살을 시도한다고 의심되는 사람의 주거에 출입해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이 조항만으로 출입을 정당화할 수 없기에, 불이익을 감수할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경찰이라면 들어가야죠’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기적이지만, 저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저를 구해줄 경찰을 바랍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와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불이익을 감수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현행범을 두고 방관하고 도망칠 경찰을 원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되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청춘들을 공무원시험으로 내몬 사회를 먼저 비판해야겠지만서도.


제복을 입은 순간, 개인이 속한 집단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옷 밑에는 경찰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제복을 입은 경찰들을 존경하고 존중합니다. 제복에는 국민의 신뢰가 담겨 있기에, 입으려는 사람은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합니다. 문제의 두 사람은 잠적하거나 기억이 안 난다는 무책임한 변명을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제복을 스스로 벗고 피해 가족과 이 사회에 사과해야 합니다. 또한 경찰도 조직과 권한을 확충하려고만 노력할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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