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문학(Humanities, 혹은 Liberal Arts)은 언어,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의 몇몇 분과 학문으로 이해되나, 과거에 인문학은 융합학문으로서 보다 폭넓은 분야를 융합적으로 다루었다. 12세기부터 수도사 양성을 위해 세워진 대학들에서는 활발한 융합연구가 이루어졌고, 르네상스 시대에도 인문학은 기존의 신(神) 중심의 학문을 제외한 인간에 관한 모든 학문, 즉 언어, 문학, 역사, 철학뿐 아니라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등의 분야를 아우르는 융합적인 성격을 지녔다.
근대에 이르러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분리되어 “두 문화(two cultures)”※라고 불릴 정도로 거리가 멀어졌고, 지식기반 사회로 이행된 20세기 후반에는 수요자 중심의 실용성에 치우치고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이 단행되면서 대학 내의 인문학도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인문학 위기’에 관한 논의가 촉발되었는데, 대학교에서 인문학 전공자가 줄어듦에 따라 일부 대학들이 인문학 관련 학과를 경쟁력 없는 학과로 평가해 통폐합하면서 제기된 인문학의 위기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세계적인 현상이다(오창은 2013).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연구재단을 중심으로 인문학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었으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못하였다.
※ 과학자이면서 소설가인 Snow(1964)는 <두 문화(The Two Culture)>에서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 예술인과 지식인이 있다면 반대로 나머지 한쪽 끝에는 과학자가 있으며 이 둘 사이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찾을 수 없다”라고 두 분야 간 괴리를 설명
최근에는 우리 사회가 단기간에 고도 경제성장의 신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직면하게 된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가치를 탐구하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이상열 2013). 물질만능주의의 팽배,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괴리, 생명경시 풍조, 사회적 양극화, 이기주의 만연, 경쟁 지상주의, 과도한 교육열 등 다양한 사회문제 해소에서 인문학 융합형 해결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융합과 통섭형 인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인문학과 과학, 혹은 인문학과 여타 분야 간의 융합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일본,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주요 국가들에서는 인문학의 중요성이 재인식되면서 인문학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국가적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실현하기 위한 융합적 접근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인문학을 포함한 문화예술분야와 과학, 혹은 여타 분야 간의 융합과 성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와 같이 기존에 대학과 연구자 등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에 집중되었던 논의와 달리, 최근에 인문학에 대한 관심 및 시각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산업분야에서는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등장 이후에 인문학을 과학기술, ICT 등과 융합하여 제품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서 아이폰이 탄생했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창의와 융합에서 인문학의 역할에 대한 산업적 관심이 촉발되었다. 기업들은 인문학적 가치를 기술과 융합하여 제품에 반영하고자 인문학자들과의 다양한 협업을 추진하고 인문학 전공자를 채용하여 디자인에 반영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시민 인문학’으로 표현되는 움직임이 활성화되면서 인문학 강좌, 인문학 서적을 중심으로 인문학이 부각되면서 실생활에서 인문학적 사유를 접목하고 실천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김경집 2013). 시민사회에서 인문학 열풍의 시작점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로 삶에 대한 성찰에 관심과 자기 계발서가 유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후 ‘힐링’, ‘치유’ 등이 유행하였지만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깊이 있는 인문학 강좌, 인문학 서적 등으로 대중의 관심이 이동하게 되었다.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정책적 관심이 증가하는 이유는 이와 같이 인문학이 다양한 문제의 해소에 기여할 수 있고,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서 사회발전의 핵심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집(2013), 인문학은 밥이다, ㈜알에이치코리아.
오창은(2013), 절망의 인문학: 반제도 비평가의 인문학 현장 보고서, 이매진.
이상열(2013), 인문정신문화 진흥방안 연구, 한국국학진흥원.
Snow, C.P.(1964), Two Culture, London:Cambridg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