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찾기>
첫사랑은 뜀틀 같은 것, 못 넘어도 살아지지만 넘고 나면 다음 사랑이 기다리고 있지. 사람은 언제나 사랑하는 것들의 목록을 갱신하는 존재다. 죽고 못살던 연인들이 헤어지고, 없으면 간첩이라며 유행하던 옷가지들은 버려진다. 품절 대란이 일며 웃돈을 주고도 못 구하던 과자가 묶음 할인 행사 매대에 누워있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옛날 추억을 못 잊어 고전 팬시와 장난감을 비싸게 사는 어른들, 30년 전쯤 유행했던 옷을 집중적으로 모아 파는 인스타그램 빈티지 샵도 많다. 영화 <김종욱 찾기>는 못 넘은 뜀틀을 다시 한번 넘어보는 이야기다.
언제나 뜀틀을 잘도 넘어 다니며 살아온 한기준은 뜀틀 못 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일 뿐, 모든 일에 예외가 어디 있겠어! 그럼에도 여행사에서 잘린 기준의 창업 아이템은 '첫사랑을 찾아주는 사무소'다. 기준의 사무소의 제대로 된 첫 손님, 서지우는 뜀틀이 보이기만 하면 피해 다니는 사람이다. 끝을 알게 되면 실망할까 두려워 소설의 마지막 부분도 못 읽고, 호두과자도 좋은 기분을 남기기 위해 맨 마지막 건 안 먹고, 결혼하라 성화인 아버지를 알면서도 첫사랑을 잊지 못해 남자 친구의 고백을 거절하는 사람. 그럼에도 스스로 첫사랑을 찾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지우를 답답하게 여긴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첫사랑 사무소에 발을 딛는다. 김종욱, 첫사랑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이 이름 석 자뿐.
이름 석 자뿐인 건 너무하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정상적인 의뢰가 처음인 기준은 좋은 선례를 남기기 위해 김종욱 찾기에 물심양면으로 임한다. 지우와 종욱은 몇 년 전 인도 여행에서 만났다. 비행기에서 멀미를 하던 지우에게 멀미약을 주었고, 지우가 마지막으로 예약한 여관에서 우연히 멀미로 죽어가는 종욱을 재회해 같은 방을 썼다. 그렇다면, 인도행 비행기 탑승 명단을 구해야겠군! 점장인 척 연기를 해 순조롭게 탑승 명단을 얻은 기준은 의뢰를 취소해달라는 지우에게 이름 하나로 이렇게까지 찾았는데 포기할 순 없다며 가버린다. 그날 밤, 지우는 다이어리 속 넣어둔 인도 사진을 보며 기준에게 문자를 보낸다. 찾을 생각 없어요.
보낸 문자가 무색케도 기준의 열정에 말려 천 명이 넘는 김종욱 찾기를 함께 나서는 지우. 번번이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길에 함께 한 술자리에서 만취한 채 기준에 등에 업혀 집까지 간다. 그날, 지우의 아버지가 은밀히 기준에게 건넨 결정적 단서. 지우의 다이어리. 지우가 인도 여행 중 쓴 일기를 읽은 기준은 산골짜기로 김종욱을 찾아 나선다. 역시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마음속엔 서로에 대해 깊게 알아가면서 새로운 사랑이 움튼다. 제 첫사랑은요, 제가 일본에 있을 때 결혼했어요. 결혼식엔 못 갔어요. 기준의 이야기에 인연이 아니었다는 지우. 기준은 끝까지 사랑한 게 아니었다고 답한다. 짧았던 여행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가야 할 때, 다이어리를 살펴보던 기준은 김종욱의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종이를 발견한다.
종욱과 쉽게 만날 수 있었음에도 지우가 만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기준은 다이어리를 돌려준다. 끝까지 가면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아니요, 다시 시작할 수가 있어요. 기준은 지우를 등지고 돌아선다. 얼마 뒤, 기준의 사무소에 두 번째 의뢰가 들어온다. 의뢰인은 첫사랑을 잊지 못한 김종욱 씨. 기준은 오랜만에 지우를 찾아간다. 김종욱 씨가 찾아요. 내일 다섯 시 비행기를 탄대요. 그 말을 끝으로 지우와 기준은 작별을 고한다. 뜀틀을 자유자재로 넘던 기준은 전에 다니던 여행사에 고객으로서 찾아가, 도대체 인도의 공기, 냄새, 사람이 어떻길래 못 잊느냐며 하소연한다. 상사였던 여행사 직원이 달라진 기준을 보고 놀랄 정도로.
종욱과 지우가 만나는 시간, 종욱은 기껏 와놓고 본인을 발견했음에도 부르지 않고 돌아서려는 지우를 불러 세우고, 공항에 도착한 기준은 마주 서있는 두 사람을 보고 등 돌려 나간다. 그때, 지우가 기준을 붙잡고, 둘은 길고 긴 김종욱 찾기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지우는 뜀틀을 넘었다. 몇 년을 그리워했으면서도 넘지 못한 이유는 뜀틀을 넘지 못할 게 두려워 뜀틀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사 복잡 미묘하고 어려운 일 투성이지만 뭐든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나아진다. 9년째 백업이었는데도 운동 열심히 하고 타격 폼 수정 열심히 한 선수가 팀의 간판이 되는 시즌이 오고, 주전 넘기 힘든 환경에서도 매일 같이 죽어라 배팅 연습하던 선수는 다른 팀에 트레이드되어 주전이 되는 날이 온다. 뜀틀이 있다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뛰어보면 된다. 못 넘어도 살아지지만 넘고 나면 다음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