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
예술에 뜻을 품은 사람은 필연적으로 유명해지고 싶어 한다. 나는 남들과는 누구와도 다르고, 그렇지만 내가 동경하는 유명하고 특별한 예술가들과는 닮아야 하고... 그런 생각을 듣고 있자면 예술가는 평생 사춘기인 채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감각은 사시사철 예민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건 죽기보다 힘들다. 날 사랑하는 보통 사람들에겐 쉽게 화를 내지만 날 미워하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저절로 불평하지 않고 깍듯해지지. 이 영화의 주인공 앤드류는 그런 부류다.
명문 음대 신입생 앤드류의 열정을 담은 드럼 소리가 들린다. 이것저것 시켜놓고 듣는 둥 마는 둥 하다 나가버리는 플래처 교수. 실력은 최고지만 학생들에게 가혹하고 폭언은 기본. 때에 따라 폭력까지 일삼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앤드류는 교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수업 중에 덜컥 찾아와 모두에게 연주를 시켜보던 플래처 교수의 눈에 들어 학교 최고의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저를 무시하던 동기를 실력으로 이긴 통쾌한 날! 평소 짝사랑하던 영화관 아르바이트생 니콜에게 데이트 신청도 성공한다.
다음 날, 기쁘고 설레는 마음에 교수와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없다. 늦지 말라고 세 시간이나 일찍 알려준 건가. 어이없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으니 단원들이 물고기 떼처럼 들어와 앉는다. 연주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플래처 교수의 고함이 퍼진다. 음이 틀린 사람이 있다. 자수하라는 말에 아무도 말하지 않자 교수가 직접 한 명 한 명 연주를 시켜보고 범인을 색출한다. 계속되는 공포에 짓눌려 자기가 틀린 것 같다며 색출된 단원은 욕설이 섞인 비난을 듣고 울며 나가고, 사실 범인은 다른 사람인 걸 교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며 자기가 틀린 지 안 틀린지도 정확히 모르는 부원은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쉬는 시간, 플래처 교수가 앤드류에게 다가와 아까와는 상반되는 상냥한 말씨로 말을 건다. 대화 주제는 앤드류의 가족사. 가족 중 음악인이 없지만 좋은 음악을 많이 들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며 격려해준다. 자신감을 얻은 앤드류는 수업에 들어가 메인 드러머인 테너 대신 연주를 시작하는데, 플래처 교수의 분노와 의자가 날아온다. 네 템포가 빨랐나 느렸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앤드류의 뺨을 때리며 자신이 빨랐나 느렸나를 계속 되물어본다. 앤드류는 눈물을 흘리고, 플래처 교수는 아까 물어본 앤드류의 가정사까지 들먹이며 욕을 한다. 그 날로 앤드류는 드럼에 피칠갑이 되고 피가 몇 번이나 나도록 연습한다. 교수에게 인정받고 싶어, 더 잘하고 싶어.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고 꿈이 있더라도 도덕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처우에도 셰이퍼 음대 학생들은 교수의 폭언을 당연하게 견딘다. 그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셰이퍼 음악 대학 스튜디오 밴드가 재즈 대회에 참가하는 날, 메인 드러머였던 테너의 악보를 맡은 앤드류가 악보를 분실하고 일이 터진다. 악보 없이는 못 치는데 어떻게 할 거냐며 화내는 테너와 그렇게 중요한 악보를 왜 맡겼느냐는 플래처 교수에게 앤드류는 저는 악보 없이 칠 수 있어요. 말하고 메인 드러머 자리를 꿰찬다. 연주는 성공하고, 원래도 친구가 없다시피 했던 앤드류는 단원들과 더 멀어진다. 오랜만에 방문한 본가에서도 음악은 먹고살기가 힘들다며 다른 사촌과 차별하는 가족들에게 화를 내고, 드럼에 전념하고 유명해지겠다는 일념 하나로 니콜과도 헤어진다. 이로써 앤드류의 정상적인 인간관계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플래처 교수는 앤드류에게 날이 갈수록 더 큰 시련을 주고, 앤드류는 예술을 위해서라면 학생들의 인간적인 삶은 무시해도 된다는 비틀린 사고방식에 점점 더 동화된다.
어렵게 뽑힌 두 번째 본 공연, 버스는 타이어가 터지고 드럼스틱은 렌터 카 사무실에 두고 왔다. 나무라는 플래처 교수에게 꼭 자기가 할 거라며 똑같이 폭언으로 되갚아주고 급하게 운전하던 앤드류는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피투성이로 무대에 서고 공연은 대실패로 끝난다. 앤드류는 밴드에서 잘리고, 플래처 교수에게 달려들어 폭력을 가한 죄로 퇴학당한다. 앤드류는 음악과 담을 쌓고 살다 교수직을 내려놓고 우연히 바에서 연주하는 플래처와 마주친다. 그 모든 폭언과 폭력들은 학생들이 한계를 뛰어넘어 성장하길 바라서 한 행동이었다며, 다음 주에 있을 공연에 드러머가 필요한데 연주해주지 않겠느냐 제안한다. 연주곡목은 앤드류가 학생 때 손에 피를 흘려가며 연습했던 음악들. 집으로 돌아온 앤드류는 드럼을 다시 조립하고 오래전 연락이 끊긴 니콜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연락한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플래처는 앤드류가 자신의 폭언에 대해 증언해서 교수직에서 잘린 것을 알고 있다며 죽어도 예술인으로 재기할 수 없게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앤드류는 악보가 없었기에 연주는 당연히 맞출 수 없었다. 연주 회장을 뛰쳐나가 집으로 가자는 아버지를 보던 앤드류는 다시 무대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등진 아들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무대에 오른 앤드류는 플래처의 지휘와 지시를 무시한 채 본인의 드럼 독주를 시작한다.
사람의 본질적인 기질은 거스르기 힘들다. 이 영화는 예술인들의 이야기지만, 그렇게 고통받고도 다시 음악을 하기 위해 가버리는 자식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표정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앤드류는 이제 영영 평범한 사람들과 평범한 관계를 맺던 삶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바라던 목표를 이룬 걸지도 모르겠다. 십 년 정도 뒤에는 앤드류가 또 다른 앤드류를 만들고 있을까? 세상에는 천재의 재능을 닮을 수 없다면 기행이라도 닮아보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의 문제점을 알아도 제2의 플래처, 제3의 앤드류는 계속 생겨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