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이 세상을 구한다

<프리키 프라이데이>

by 이메리



록 음악에 빠져 공부는 등한시하는 딸 애나와 재혼을 계획 중인 엄마 제이미. 둘은 패션, 음악, 남자까지 아예 다른 취향을 가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애나는 아직 새로운 가족을 맞을 준비가 안 됐지만, 제이미는 이미 사랑에 빠졌다. 둘 중 누구도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거나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려 노력하지 않고 재혼 상대인 라이언을 소개하는 자리인 중국 음식점에서 애나와 제이미는 대판 싸운다.



한창 싸우던 와중, 소리를 듣고 온 중국 음식점 주인이 건넨 포춘 쿠키를 먹은 다음 날, 둘의 몸이 바뀐다. 서로가 아무리 원망스럽고 이 상황이 미워도 도망칠 수는 없기에 둘은 서로인 척 일상을 보내게 된다.



영화의 시작점인 이 부분에서 나는 오리엔탈리즘을 느꼈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동방, 동양을 뜻하는 오리엔트(orient)에서 유래된 말로, 동양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서양의 편견을 뜻한다. 시대가 한참 지나고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진 지금에도 왜 서양인들의 영화에서 동양인과 동양 문화는 늘 신묘한 능력이 있는 판타지적 존재, 샤머니즘의 정수처럼 다루어질까? 그게 이야기에서 얼마나 재밌고 비중 있는 맥거핀이 되든 간에 정작 중요한 얘기에는 끼워주지 않는다. 아직 이렇게라도 동양인이 영화에 등장하는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 서양인들의 이야기 속 들러리나 희귀 생명체 대하는 식의 사용법에 분노해야 할지 모르겠다. 본인들이 잘 모르는 현실 문화를 창작물의 소재로 다룰 때일수록 좋아 보이는 면만 찾아 추켜세우거나 로망 취급하지 말고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존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본인들과 같은 동작으로 숨을 쉬고 둥근 땅바닥을 걷는 무리. 대충 보고 뭉뚱그린 작품은 실존하는 문화와 사람에게 상처가 된다. 물론,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작품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예술가들은 늘 고민해야 한다. 그것 없는 창작은 레토르트 식품과 같기에. 아무리 맛있어도 요리라고는 할 수 없단 뜻이다.



차분한 제이미는 책 출간 기념 토크 쇼에서 rock&roll을 외치고, 자유분방한 애나는 친구들에게 잔소리하게 됐다. 이처럼 처음에는 둘 다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고 서로의 개성을 무시하거나 지워버리려고 했지만, 서로의 삶에 강제로 초점을 맞춘 나날이 계속되자 둘은 점차 서로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이유로 지금까지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게 된다. 애나는 제이미 대신 청혼 받는 장면에, 제이미는 애나 대신 록 밴드 오디션을 보는 장면에 서로 같은 서로로서 존재한다.



애나가 빠진 음악은 왜 하필 록으로 설정됐을까? 록 음악은 1950년대 중반 로큰롤에서 발전한 음악으로, 흑인 음악인 블루스와 백인 음악인 컨트리 앤 웨스턴에 영향을 받아 태어난 장르다. 즐기는 주요 소비층이 정반대인 음악의 융합이 모두가 즐기는 록 음악을 만들었듯이. 늘 어긋나기만 했던 두 사람의 정반대 자아가 개인의 취향을 유지하되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취향을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마치 정확히 반반이 나뉜 냄비에 시뻘건 홍탕과 새하얀 백탕을 동시에 끓여 이것저것 취향대로 넣어 먹는 중국 음식 훠궈같이.



설득은 사랑과 닮았다. 둘은 모두 진심으로 남의 얘기를 경청하고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는 동양인이기는 하지만 신묘한 힘이 담긴 포춘 쿠키는 만들 재주가 없으므로 영화처럼 몸이 바뀌는 경험을 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서 간접적으로나마 그 사람이 돼볼 수는 있다. 그 방법 첫째, 평소에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머릿속에 그 사람 닮은 찰흙 인형을 만들어 잠시 들여다본다. 둘째, 그리고 남이 만든 내 찰흙 인형을 본다. 나는 웬만큼 충격을 받거나 세월이 흐르지 않으면 여전하지만, 내 찰흙 인형의 모양은 수시로 바뀐다. 어디 한구석 찌그러진 데도 있다가 전날 라면 먹고 잔 듯 부풀기도 한다. 이상이 끝이다. 주의사항, 우리는 멋진 찰흙 인형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필요한 일은 남의 찰흙 인형을 더 섬세히 빚기 위한 연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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