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멋있는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평범한 사람은 거울을 보다가
갑자기 문득 슬퍼질 때가 있는데요
평범한 사람의 일기장 속에는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 차 있어요
왜 누군가는 항상 주목을 받고
왜 내 얘기는 너에게도 들리지 않는지
-이랑의 평범한 사람 중
어설프고 유치한 싸구려 큐빅을 덕지덕지 붙여 반짝거리는 일본 영화들을 사랑한다. 과장된 연출, 뚜렷한 캐릭터, 우스운 이야기. 이런 영화들은 평범과 긴밀하다. 세상 만물을 평범과 비범으로 나눌 수 있다면, 비범을 평범하게 다루든가 평범을 비범하게 다루는 게 이러한 영화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후자에 속한다. 외국에 근무 중인 남편을 둔 전업주부 스즈메는 평범의 극치를 달린다.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어중간한 맛의 라멘을 좋아하고, 가방에 스티커를 붙이는 센스는 꽝이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열정을 쏟는 취미도 하나 없이 매일 남편이 아끼는 거북이의 먹이를 챙겨줄 뿐인 삶. 그에 반해 스즈메의 소꿉친구 쿠자쿠는 가방에 스티커 붙이는 센스도 최고, 스즈메가 정전 때 본 첫사랑의 잠옷 차림이 다시 보고 싶다고 하니 직접 발전소의 송전선을 자르고 감전돼 폭탄 머리로 나타나기도 하고, 창문으로 에펠탑이 보이는 파리에서 외국인과 사랑하길 꿈꾸는 비범한 인물이다.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둘, 역시 쿠자쿠는 늦는다. 하릴없이 기다리던 스즈메는 평범한 삶에 싫증을 느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일은 없지만 말이다. 혼자만의 목표를 정하고 계단 빨리 오르기를 하던 스즈메의 머리 위로, 계단 위를 지나던 수레에서 탈출한 사과가 와르르 구른다. 다치지 않기 위해 거북이처럼 납작 엎드려있던 스즈메는 전봇대 밑동에 붙은 스티커를 발견한다. 손가락 한마디 쯤 될까 하는 작은 사이즈, 쓰여 있는 말은 스파이 모집!
스즈메는 스파이에 지원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던 선글라스, 몸에 착 붙는 검은 정장, 공포의 기억 삭제기 같은 건 없고, 스즈메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중년 부부가 스즈메를 반긴다. 본부가 모집하는 스파이의 자격 요건은 튀지 말 것. 평범 분야에 순위를 매긴다면 못해도 차석은 될 스즈메는 합격한다. 그날부터 스즈메의 인생은 360도 변한다. 180도가 아니다. 냉장고에 떡하니 든 활동 지원금 오천만 원 빼곤 모든 게 평소와 하나 다를 게 없는 무난한 삶. 그렇지만 스즈메의 마음은 다르다. 아무 생각 없이 어중간하게 행동하면 그만일 뿐이던 일상이 모두 스파이 활동이 된 것이다. 스즈메는 부부에게 스파이에 대해, 평범하게 행동하는 법에 대해 배우며 누구보다 평범하게 보이기 위해서 노력한다. 아래는 스즈메가 스파이 활동을 이어가며 알게 된 사회의 여러 가지 뒷모습이다. (일급 기밀이니 유출에 주의할 것)
1. 병균 연구소에서 다른 연구소로 연구용 위험 세균을 운반할 경우 차는 사고가 날 수 있으니 평범한 아줌마가 전철로 옮긴다.
2. 멈추시오 표지판 중엔 가끔 멈시추오라고 쓰여 있는 경우가 있다.
3. 메추리알 100개를 부친 메추리알 프라이는 맛없다.
4. 초콜릿맛 과자를 하루 동안 물에 담가놓으면 비주얼적으로 엄청 위험한 상태가 된다.
이외에도 사회에는 엄청난 여러 가지 뒷모습이 있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어중간한 맛 라멘 가게 사장님 또한 스파이였고, 사실은 엄청나게 맛있는 라멘을 만들 수 있지만, 손님이 늘어나 이목을 끌면 곤란하기 때문에 어중간한 맛을 유지한다든지, 무사태평해 보이는 두부 가게 사장님이 전직 정부 요원이었다든지. 모두 지나친 관심을 끌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세계에서 제일 평범한 스파이들의 모임이 계속되던 중, 12년간 큰 작전 지시가 없던 본부에서 드디어 큰 연락이 온다.
평범과 비범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일까? 어느 게 더 좋은 걸까? 참새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스즈메는 공작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쿠자쿠를 부러워한다. 어떻게 저렇게 여러 가지 일들을 잔뜩 벌이고 똑같은 걸 보고 똑같은 일을 해도 남다를까? 하지만, 쿠자쿠 또한 스즈메가 부러울 때가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을 벌이는 건 뭘 해도 시시하기 때문이다. 벼락같은 일상이 시시한 사람이 있고, 완만한 일상이 즐거운 사람이 있는데 사람은 일생을 부러워만 하는 것 같다. 나는 한때 사주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것저것 알아보며 배운 것 중 지금도 믿는 부분이 있다. 태어날 때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기에 커다란 좋은 일을 겪는 사람은 커다란 나쁜 일을 겪고, 작은 좋은 일을 겪는 사람은 작은 나쁜 일을 겪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누구의 삶이 더 좋은 삶인지 값 매기고 평가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는 것. 거북이는 종이나 개체에 따른 차이는 있겠지만 어찌 됐든 본인에게 맞는 속도대로 헤엄친다. 의외로 빠른지 생각대로 느린지를 평가하는 건 타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