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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Feb 03. 2020

말 높여 주세요.

참 어리석고 유치한 지난 일들

지난일을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고 유치한 일들이 많습니다. 젊은 시절, 말 높여달라는 한 마디에 거의 발작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검사실 수사관 생활을 시작한 것은 검찰 5년차 부터였습니다. 한 직급 승진하여 타 청으로 전보되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친한 선배 수사관의 추천으로 검사실로 발령을 받았고, 검사실 수사관으로서 첫 시작이었습니다. 초임시절 수사과에서 조사경험은 몇 번 있었습니다만 조사 횟수가 많지 않아서 검사실 생활은 설렘과 긴장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죄가 되는지 여부를 캐낸다는 것이 녹록치가 않습니다.


검사실을 추천하며 자신과 같이 근무하자했던 선배 수사관은 조금 더 편한 사무과 계장 보직이 나오자 배신(?)을 했고, 타 청에서 내려온 다른 수사관이  선임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P였습니다. 검찰청 내부의 호칭으로 저는 주임, 파트너 P는 한 직급 높으신 계장, 제가 졸업한 법대의 1년 후배였지요. P는 저와 같은 해 입사하였으나 공채 직급이 달라 P가 한 직급이 높았습니다.      


다행히 검사실 수사업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나름 재미도 있었지요. 저는 초짜 수사관인데다 그 검사실에서 후임인지라 검사가 간단한 사건만 배당해주는 이유도 있었고, 나름 수사과에서 조사경험이 있어 걱정했던 것 보단 어렵지 않게 며칠을 보냈습니다. 검사도 사람이 소탈하고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출신 대학이 출세와 좀 거리가 있는 대학이라며 승진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고, 검찰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배당된 사건만 과오 없이 충실히 처리하자는 주의였습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검찰에 있을 사람은 아니었지요. 마른 몸에 주량은 생맥주 한잔이었지만 친목도모에 술이 최고라며 가벼운 술자리도 자주 마련하는 편이었습니다. 예상 했던 대로 그 검사는 몇 년 후 변호사 개업을 했지만 무난한 검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직급에 대한 자부심이 사단이었습니다.


사단은 대학후배이자 한 직급 높으신 P의 직급에 대한 자부심이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청은 소도시 지역의 특성상 수사관들 대부분의 호칭은 직급과 상관없이 형님, 동생이라 부릅니다. 친분이나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경우에야 당연히 서로 존대를 하고 직급의 호칭을 사용했지만 지역의 선후배이거나 학교 선후배의 경우엔 형님, 동생의 호칭이 자연스러웠고, 저도 대부분 그렇게 불렀습니다.


서울물은 좀 다른지 서울 쪽에서 근무하다 온 직원들은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동기면 나이가 적든 많든 서로 반말을 하는 게 맞다고 했고(전 이 의견에 반대합니다), 직급의 차이가 있으면 나이를 떠나 존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았고, 직급이 높은 직원이 저보다 나이가 적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나이가 적다고 해도 부서장이고, 저에게 지시를 내리는 상사라고 하면 당연히 존대를 하는 게 맞겠지만 같은 일을 하는 수사관이고 직급이 차이가 있을 뿐인 후배에게 말을 높이기는 어려웠습니다. 이게 사단이었습니다.     

검사실에 근무한지 1주일, 저는 파트너에게 ‘P계장’이라고 불렀고, P는 저에게 “주임님”이라 ‘님’자를 붙여 불렀습니다.(검사실에는 계 단위가 없으므로 계장은 직위가 아닌 관행적인 호칭입니다.) 그 놈의 ‘님’이 문제였습니다. 제가 ‘님’ 없는 ‘P계장’이라고 할 때마다 P계장은 얼굴이 굳었고, 저는 그걸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님’자는 은행이나 마트에서 듣는 ‘고객님’으로 충분했던 저는 대학 후배가 설마 선배를 상대로 ‘님’자에 목을 맬 줄을 몰랐으니까요. 하루는 퇴근 무렵 P가 둘이서만 술 한 잔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평소 P계장은 술을 좋아하지 않았고, 더구나 둘이서 술을 마셔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P와는 수사관 초임시절 같은 청에서 1년가량을 근무한 적이 있었지만 따로 만나 이야기한 적도, 술자리가 아니라 믹스 커피한잔도 같이 마셔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학 후배라는 것일 뿐 같이 밥 먹을 사이는 아닌, 길 건너에 걸어가면 굳이 쫒아가 아는 체 할 필요 없는  딱 그 정도의 사이였습니다.


술 한 잔 하자는 제의에 저는 같은 검사실에 근무하니 서로 잘 지내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였고, 어색할 술자리의 어색을 때우려고 눈치 없이 다른 후배들도 같이 하면 어떻겠느냐며 자리를 키우려 했지요. P는 이 제안을 단칼에 잘랐습니다. 다른 사람과는 다음에 하고 그날은 둘이서만 식사 하자가 그 단칼 도법에 사용한 초식이었습니다. ‘굳이 둘이만?’ 눈치가 좀 이상했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둘이서 식당을 찾았습니다.


P가 식당도 미리 정해놓고 예약도 미리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메뉴까지 미리 시켜놓았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이 나왔습니다. 오리 전골. 남자 둘이서 할 말은 당연히 없었고, 오리 전골 속의 오리 한 마리 만 조용히 조금씩 뱃살부터 해체되고 있었습니다. 친하지도 않고, 공통점도 없고, 한 사람은 술도 별 좋아하지 않는 남자둘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요. 소주 한 병을 시켜 놓고 한, 오리 부검 식사는 30분 만에 끝났지요. 조용히 숟가락을 놓은 P가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한 직급이 높습니다


‘그렇지. 분명 무슨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았어. 근데 무슨 할 말?’ 할 말이 있다는 P의 엄숙한 대사에 잠깐 동안 머릴 굴려 봤으나 도저히 짐작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머리 굴리는 시간은 길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말 좀 높여 주셔야겠어요. 제가 주임님보다 한 직급이 더 높은데 주임님이 저에게 존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 시간이 잠시 멈췄습니다. ‘가만, 무슨 말인 거지? 사석인데 형님도 아니고 선배님도 아니고, 그래 ’님‘자 붙은 주임까지는 그렇다고 치고, 말을 높여줘?’ 예상 못한 펀치를 한 대 야무지게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사전에 잽이라도 몇 번 날렸으면 조금이라도 예상을 했을 테고, 그랬다면 어떻게 부드럽게 대처를 했을 텐데 갑자기 날라 온 펀치는 저를 심하게 당황시켰습니다. 


“음? 직원들 보기에 좀 불편 했~어? 그럴 수 있지 뭐, 그럼 다음부턴 직원들 있을 땐 존대할게.” 

겨우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얼굴이 화끈 거리고 사고는 거의 마비된 상태로, 제가 입은 내상은 그것만도 가볍지 않았으나 P는 그걸로 끝낼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뇨, 직원들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그냥 말 높여주세요. 제가 주임님께 존대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 같습니다.” 

마무리 카운터 펀치였습니다. 링에 올라서지도 못하고 맞은 카운터펀치. 링에 올라서지도 못했으니 수건도 던지지 못하고.

말은 이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말을 높여달라지만 좀 전까지 하대했던 이에게 10초 후에 존대로 돌릴 만큼 저의 내공은 심후하지 못했습니다. 선혈은 보이지 않았으나 보이지 않는 내상의 출혈은 너무 심했고, 기식은 엄엄했습니다. 화타나 편작이 필요했으나 있을 리 없었지요. 심각한 내상을 입은 채 자리를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대로 아무 대꾸 없이 그 자리를 나왔고, 그날 밤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후배에게 말을 높이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이어린 후배에게 그 말을 들어야 하는 참담함, 낮은 직급으로 들어온 당시 미친 선택의 한심함,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자괴감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마디 하지 못했던, 못난 자신도 짜증이 났습니다. 


“알았다. 자식아. 학교 선배한테 그렇게 존대를 받고 싶던?” 이렇게라도 한마디 해줄걸. 아니면 헛헛하게 웃어주기라도. 아니면 한 대 쥐어박기라도. 아니면 쿨 하게 ‘그렇게 하자’ 하던지. 뭔가를 했어야 했는데 겨우 한다는 말이 직원들 앞에서는 높여 주겠다고? 찌질이 같은 놈. 한 직급 차이가 그렇게 큰가? 더러워서 사표 쓰고 사시 준비나 다시 할까? 


거의 돌아버릴 것 같은 기나긴 밤을 그렇게 지새우고, 저는 어찌 어찌 내상을 호흡법으로 다스리며 다음날 다시 출근했고, 이후, P와의 대화는 거의 단절되어 1년을 보냈습니다. 다음 번 시행된 정기 인사이동은 다행히 둘의 근무처를 분리시켰습니다. 다행히 이후 같은 청에 근무한 적이 없어 존대할 일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후배라도 직급이 높으면 존대가 당연한 것이 한국 직장생활의 문화인지 모르겠으나 아직도 저는 속이 좁아 터졌는지 그걸 못합니다. 여하튼 20년이 지난 일이나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 에피소드고,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끔 이불 킥을 하게 됩니다. “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 미안허이!” 이랬으면 간단한 것을!    




위계질서가 강하여 직급에 따라 존칭을 하거나 하대를 하고, 수직적인 명령을 하는 한국의 직장문화도 조금씩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직장 내에서 직급을 부르지 않는 호칭 문화가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직급의 호칭문화는 예의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일 것 같지만 사실은 일제시대의 수직적 통제 문화라고 합니다. 수평적 문화는 통제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수직적 명령체계를 유지하려면 직급의 호칭을 이용하여 단호함을 표현했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에 서구 사회는 직위나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 이름을 부르는데 익숙해져 있다고 하니, 아무래도 우리보다 민주적이라 할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요즘은 기업에서도 수평적 호칭문화를 통해서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더 나아가 직급파괴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직급을 아예 통폐합하거나 직급을 폐지하는 방향까지 모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한국의 수직적 통제문화는 상위 직급으로 승진하여 하위직급으로부터 대접받는 문화를 만들어 냈고, 관료주의가 팽배한 공무원 사회에서는 수직적 문화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 선배나 사회선배가 직장 내에서 후배에게 존칭을 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무엇이 옳을지 각자 의견이 다를 겁니다만 존칭을 써달라는 말에 제가 그렇게 발작적으로 반응한 것도, 굳이 대학 선배에게 따로 자리까지 마련해가며 말을 높여달라고 정색을 한 그도 수직적 통제문화에 젖어, 드러난 행동들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까이꺼 좀 높여주면 될 것을. 지난 일은 참 어리석고 유치한 일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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