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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Feb 05. 2020

미스터 션샤인

지위라는 허울보다는 따뜻한 인품으로

딱히 역사에 빛나는 인물도 아니지만, 그렇게 훌륭한 인물도 아니지만, 뭐 그리 완벽하지도 않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인생의 길목에서 소리 없이 그리고 나름 임팩트하게 남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 맘에 드는 조직은 아니지만, 도통 맘에 안드는 사람들이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따뜻한 보통 사람들이 간간히 있어 누군가에겐 공명을, 다른 누군가에겐 감동을 줍니다.


    


세 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홀어머니 아래서 자란 B군은 병마에 시달리는 어머니, 누나의 가출 등으로 사회의 배려에서 버려졌다. 심한 우울증, 자살기도 그리고 상습적인 도벽, B군이 선택한 탈출구는 범죄였고, 버려진 사회에 할 수 있는 반항이었다. 결국 아직 10대인 B군은 상습절도죄로 검찰에 구속되었다.


구속된 B군은 자신을 구속한 검사로부터 의외의 선물을 받았다. ‘배려’라는 책과 검사의 진실된 마음이었다. 그간 사회에서 책 한권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B군은 검사가 선물해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모두 읽었다. 이후 검사는 청소부 밥, 시크릿 등 여러 권의 책을 선물했고, 한 달에 1~2회 정도 검사실에서 B군과 책에 대한 토론을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검사는 어릴 적 어머니와 이혼한 후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를 수소문하였고, B군과 만나는 기회까지 마련했다. B군이 그간 저질렀던 범죄가 가볍지 않아서 B군은 실형을 선고 받고 낙담하였으나 검사는 일기장을 선물하며 위로하였고, 수감기간동안 일기로 그간의 잘못을 반성하며 내일의 희망을 적도록 하였다. B군은 검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일기장에 담았고, 세상에 나가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으로 복역기간을 이겨 냈다.    



언론에 보도된 어느 검사의 이야기 입니다. 책 선물 소식이야 시선 끌 것 까지는 아니나, 소년범과 검사의 독서토론 대목은 그 신선함에 놀랐습니다. “정말?” 검사와 소년범의 책에 대한 토론은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을까? 그간 보아왔던 검사들의 행동으로는 투영도 추측도 하기 힘든 소식이었습니다. 소년범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아주지 않으면 실천하기 힘든 행동. 사실 한국의 검사들은 은연 중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를 정해두고 있습니다.


같은 사법시험 출신인 판사, 변호사, 의사 시험에 합격한 의사, 기타 사회적 지위가 객관적으로 인정된 사람들이 그들이 여기는 같은 선상 입니다.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를 누가 정해주지도 않았으나 스스로 딱 그만큼의 위치에 두고 은연중에 행동합니다. 지독히도 깊게 뿌리박힌 근원을 알 수 없는 자만심은 당분간 아예 뽑힐 여지도 없습니다.


물론 ‘난 아니라고!!’ 부정하는 검사들도 많겠지만 상대방에 대한 의도적 배려를 떠나, 같은 청에 근무하는 수사관, 실무관, 행정관 그리고 객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평가되는 사람들, 결정적으로 검사로부터 조사를 받은 피의자들을 진심으로 우러나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는 검사가 있을까요.


각고의 노력으로 자신들이 사법시험으로 따놓은 직장에서의 지위 등급과 직장이 아닌 사회 속에서의 지위 등급을 동일시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인품, 지식, 지혜 거의 대부분의 모든 것까지 검사라는 등급과 동일시합니다. 뿌리 깊은 이런 자만심의 사례를 말하라면 간단합니다. 나이가 지긋한 수사관이나 실무관들에게 나이어린 부장이나 기관장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훈화(교화하고 훈육하여 좋은 길로 인도함)를 합니다.


나는 검사고 당신들보다 지위가 높으니 당연히 당신들에게 이런 훈화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저 사람들이 나보다 인생 경험이 풍부하고, 인격적으로 훨씬 더 인품이 훌륭할 수도 또한 지식과 지혜가 출중할 수도 있다는 망설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 글을 혹 검사가 본다면 이를 인정하는 검사는 없을 수도 있으나 지위와 인품은 함께 묶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위가 높다고 훈장의 자격까지 주어진 것은 아니지요. 직장의 업무가 아니라면 아무리 아랫사람이라도 함부로 그리고 동의 없이 인생을 가르치려는 행동은 삼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위가 높다고 모든 것의 우위에 있지 않다는 것 좀 알았으면 합니다.     


욕심과 인품은 한 그릇에 담겨 있습니다. 욕심이 많아지면 인품이 들어갈 공간이 부족하고, 욕심을 버리면 인품의 공간은 커집니다. 인품의 크기는 다른 무엇을 얼마나 버려낼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이지요.     


따뜻한 검사의 사례를 말하려다 멀리 갔습니다. 소년범 그리고 20대 초반의 앞날이 창창하지만 잠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피의자들에게 책을 선물하여 바른 길을 찾아주려 노력하는 검사들의 이야기가 간간히 들립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따뜻한 빛을 주는 미스터 또는 미스 션샤인들입니다. 재소자에게 검정고시 책을 선물한 검사, 4년간 소년범에게 200여권의 책을 선물한 검사, 재소자들에게 8년간 100여권의 책을 선물한 검사, 22개월 아기의 억울한 죽음을 수고로움을 다하여 밝혀준 검사, 가정 학대 피해 학생들의 인생 멘토가 되어준 검사, 제목만 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검사들의 마음이 고맙습니다. 지위라는 허울보다는 인품으로 그릇을 가득 채운 그들의 션샤인이 재소자들의 어두운 과거를 닦아내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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