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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Nov 12. 2020

사건 이송

이송 사유 : '아스클레피오스'의 소재지로 추정되므로


박계장이 검사실에서 수사를 한지 벌써 20여 년 째다. 남 일에 했니? 안 했니? 맞니? 틀리니? 시달리다 요즘 몸이 많이 상했는지 수시로 피곤이 몰려온다. 오래간만에 추어탕을 사겠다는 동료의 호의도 귀찮아 매점에서 대충 점심을 때웠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이 피곤을 보탠다. 박계장은 안락의자에 앉는 노인처럼 눈을 감은 채 의자 아래 손잡이를 잡아당겨 몸을 뒤로 뉘었다.     


  오후에 조사할 고발 사건이 지친 몸을 더욱 쳐지게 한다. 마른세수로 애써 고개를 저어 털어버리던 차에, 책상 위에 널브러진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보인다. 요즘 인문학이 대세고, 인문학 입문의 기본이 플라톤이라 하여 틈틈이 시간을 내 뒤적거리고 있다.  

  “소크라테스 변명도 고발사건에 대한 재판인데......, 고발사건이라......” 


  얼마 전 배당받은 택지개발지구 재개발조합장에 대한 수십억 원대 횡령 고발사건에 골머리가 묵직하다. 피고발인인 조합장은, 조합을 위해 사용한 것이라고 항변하고, 고발인들은 조합장이 개인적으로 횡령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특별한 증거가 없다. 


  ‘변명’을 꺼내 들고 읽던 페이지를 찾아 몇 장을 넘겼다. 

  멜레토스로부터 고발당한 소크라테스가 500명의 아테네 시민 재판관들 앞에서, 자신에 대한 고발이 억울함을 특유의 화법으로 항변하는 장면이다. 


『오, 아테네인 여러분, 나는 멜레토스야 말로 죄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장난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진지한 것처럼 가장하고, 사실은 전혀 관심이 없는 문제에 열의와 관심이 있는 체하며, 사람들을 재판에 끌어들이는 데 열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자 합니다.』


'이 소크라테스 사건은 증거가 있었나, 없었나.....'


  조사 중인 조합장 고발사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몇 줄 읽다 보니 더 머리가 복잡해지고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잠깐 눈 좀 붙이고, 오후 조사 기록을 검토하자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오늘 묘한 사건이 이송되어 왔습니다. 계장님.” 점심을 먹고 들어온 양 검사가 두터운 사건 기록을 하나 들고 생뚱한 표정을 지으며 박 계장을 찾는다. 

  “깡치 사건입니까?”


  “아뇨, 깡치라기보다는 묘한 기록이네요. 소크라테스가 고발된 사건인데 죄명이 신성모독으로 되어 있고, 사건 이송 청이 2,500년 전의 아테네 검찰청에, 처분 검사가 아테네 검찰청 검찰관 에피메테우스 입니다.”


흠.... 죽은 지 2,500년이 지난 소크라테스 라.....

흘깃 양 검사를 쳐다보던 박 계장은 아무 대꾸 없이 오늘 조사할 고발사건 기록을 넘긴다. 무슨 싱거운 소리냐 싶다. 


  “아니, 이 기록을 한번 보세요. 계장님. 저도 누가 장난으로 만든 기록인 줄 알았습니다만, 장난으로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좀 디테일하네요. 이송 일자가 BC 399년 5월 7일이고 이송 청이 아테네 검찰청으로 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소크라테스가 사형되었던 해에 조제된 아테네 검찰청의 고발사건 기록이, 사형 집행된 날을 기준으로 저희 청으로 이송되어 온 겁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박 계장은, 마지못해 양 검사가 건네는 기록을 받아보았다. 

  기록이 꽤 두껍고, 종이 질이 아주 오래된 양피지로 되어 있다. 2,500년 전이라면 그리스어로 되어 있어야 하나, 한글로 작성되어 있는 점이 갸웃하지만, 누가 장난한 것으로 보기에는 기록의 모양이나 내용에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이내 흥미가 돋는다.


  “오, 이거 좀 신박하긴 하네요. 종이 질도 그렇고, 멜레토스가 소크라테스를 고발하고 조사된 기록이라. 허.  이거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이걸 그대로 믿어야 할지, 아니면 누가 장난을 야무지게 친 건지.”


  사건기록 표지는 검찰에서 사용하는 양식과 많이 다르나, 첨부된 수사서류는 다를 바 없이 작성되어 있다. 멜레토스의 진술조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참고인 진술조서, 수사보고 등등. 


  기록을 살펴보던 박 계장은 사건 이송 사유가 기재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사건 이송 사유도 있네요? 「‘아스클레피오스’ 소재지로 추정되므로.」라고 되어 있는데....... 아스클레피오스? 어디선가 본 적도 있는 것 같으나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기록을 건네고, 박 계장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던 양 검사는 사뭇 진지한 표정이다. 

박계장은 재빨리 포털 검색창에 아스클레피오스를 입력했다.  

  “맞네요. 제가 기억하는 게 맞다 면 아스클레피오스는 아마 그리스 시대에 의술의 신으로 숭배받았던 사람일 겁니다. 사람이라 해야 할지 신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는 아폴론과 님프 코로 니스의 아들로, 켄타우로스인 키론이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의술을 가르쳐주었지만 제우스가 벼락으로 죽여 버렸다고 합니다.  의술이 과하게 뛰어나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까 두려웠다는 것이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도 유능한 의사로 언급이 됩니다."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아스클레피오스가 꿈속에서 병을 고친다고 믿고, 그의 사원에서 잠을 자는 관행도 있었다. 인터넷 검색 결과 긴 외투를 입고 가슴을 드러낸 채 서 있는 모습의 인물이 당당하게 서 있다.


박 계장은 '소크라테스', '아스클레피오스'를 검색했다. 플라톤의 '파이돈'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말이 나온다.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꼭 기억했다가 갚아주겠나’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생을 마감하는 장면에서 임종을 지키던 크리톤에게 했던 말로 되어 있다.


'이송 사유와 이 말의 의미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아스클레피오스의 소재지로 추정되므로...'

'오후에 사람 불러놨는데....'  박계장은 책상 위에 던져 놓은 '소크라테스 변명'을 흘깃하다 양 검사를 쳐다봤다.


'아! 테스형!....'

"머리 아픕니다. 우선 옥상에 가서 커피나 한잔 합시다." 마른세수로 속 시끄러움을 표낸 박계장은 양 검사의 소매를 잡아 끌고 옥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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