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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Sep 17. 2021

건망증, 리모컨의 실종


                                                    1.     


‘리모트 컨트롤’, 멀리 떨어져 있는 기기나 기계의 원격 제어에 쓰이는 전자 장치로써 텔레비전, 라디오, 오디오 장비를 제어하는 데 주로 쓰인다. ‘리모컨’ 이라는 낱말은 리모트 컨트롤의 일본어식 줄임말이다.     

인터넷 ‘위키백과’에 쓰여 있는 리모컨에 대한 풀이다. ‘리모컨’이 일본어식 줄임말이라는 것은 이 풀이를 보고 처음 알았다. 영어의 줄임말이라면 그런가 보다 하지만 ‘일본어식’이라는 설명이 있으면 거부감이 앞서니 우리에겐 일본이라는 단어가 주는 반감 의식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렇다고 ‘리모컨’이라는 용어 외에 딱히 대체할 단어가 없기에 이 글에서 계속 사용함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원격 조정기’로 대체하면 로봇인 ‘마징가제트’를 조정하는 장치 같아 너무 거창한 것 같고. 아, 마징가제트도 일본 캐릭터구나. 여하튼, 지금부터 리모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것도 가정집 거실에서 리모컨이 실종된 이야기다.         



                                                    2.     


해는 쉬로 들어가고 달이 야간 근무를 시작한 어느 한가로운 금요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취미생활을 위해 나는 서재로, 아내는 거실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았다. 다음 날과 그다음 날, 이틀이나 쉴 수 있는 금요일 저녁은 무언가 많은 것을 가진 듯이 마음의 여유가 있다. 무언가를 하다 밤을 새워도 좋을 듯한, 소주 한 잔이 두 잔이 돼도 부담이 없을 그런, 시간이 그리고 여유가 풍족한 날이다. 하여, 난 그날 맘 놓고 퍼질러져 밤새 책을 읽기로 했지만, 인생사 방심은 항상 사건을 불러오는 법이다. 서재 자리에 앉아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아내로부터 호출이 왔다.

“여보, 없어졌어.” 

“뭐가?”

“리모컨.” 

나라 잃은 표정의 아내가 리모컨 실종신고를 한다. 아내가 하는 신고나 고발은 접수 및 해결 1순위다. 반려나 접수 기각은 얻는 이익보다 잃을 것이 더 많다. 

직업상 자주 들어본 실종신고는 사실 실종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스스로 가출을 했거나 아니면 게임장에서 신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신고대상을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리모컨이 스스로 가출을 하거나 게임장에 갔을 리는 없으니 수색 반경은 제한적이고 리모컨의 상습 출몰지역만 잘 기억해내면 쉽게 마무리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놓치기 쉬운 주변 상황의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 선행된 초동수사에서 대부분의 사건은 종결된다. 아내의 신고를 접수한 나는 기본적인 초동수사를 시작했다. 

“아침 출근 전에 TV 당신이 껐지?”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아내가 하는 최초의 의도적 움직임은 TV를 켜는 일이며, 출근 직전에 하는 강박적 집단속은 TV 끄기와 보일러 끄기라는 사전 정보를 나는 몸소 체득을 통해 알고 있다. 

“TV를 끄려면 여기 정면에서 꺼야 했을 것이고, 출근 직전이면 옷을 입었던 상태일 것이니 서 있는 상태에서 리모컨을 작동하고, 곧바로 놓아둘 수 있는 장소를 생각해봐.”

“찾아봤어. TV 대, 그 아래 서랍, 그리고 내가 앉는 소파 깊숙이 손을 다 넣어 봤어. 근데 없어. 이 거실에 있을 만한 곳은 다 찾아봤고, 냉장고 안을 찾아보라는 소리는 하지 마. 이미 봤으니까.”

냉장고는 과거 리모컨의 상습 출몰지역의 하나였지만 요즘은 거의 출몰하지 않는 지역이라, 아내의 말이 없더라도 수색 장소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TV 근처, 소파, 그리고 냉장고까지 수색했다면 부엌은 이미 확인했다는 것, 이제 남은 가능성은 안방 베개 밑과 신발장이지만 아침에 거실에 있는 TV를 껐다면 안방 베개 밑은 제외, 신발장은 아직 가능성이 있다. 가끔 아내가 그날 신은 신발이 나온 곳에 리모컨이 얌전히 들어 있는 경우가 있었으니.

아쉽게도 가능성 높았던 신발장도 아니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수사가 벌써 10분이 넘어서자 나도 아내도 조바심이 났다. 아내가 보고자 했던 TV프로는 이미 시작했을 시간이 지났고, 리모컨 실종 수사는 아직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수사 담당자인 내게 돌아 올 질책이 두려워진다. 20여 년의 수사경력에 오점을 남길 판이다. 

그때, 갑자기 안방 화장대 위에서 아내의 휴대폰 소리가 울린다. 아내는 전화를 받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잠시 팔짱을 끼고 서서 사건을 정리해본다. 안방, 거실, 부엌 그리고 신발장까지 없다면 리모컨은 열거된 공간에서는 이미 떠난 것이 분명하다. 

하늘에 드론이 뜨는 세상이지만 리모컨에겐 아직 발이 없으니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옮겨졌을 터. 그 누군가는 아침 TV를 껐던 사람일 것이고, 그 사람은 아내다. 아침 출근 시에 아내의 손에 리모컨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리모컨을 옮기는 데는 어떤 도구가 사용되었을 것이고,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는 아내의 가방뿐이다. 

매일 아침 아내의 가방에 들어가는 물건은 아내의 휴대폰인데 그 휴대폰은 집에 돌아와도 가방 안에서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 허나, 조금 전 휴대폰은 아내의 가방이 아닌 안방 화장대에서 울렸고….

그렇다면?. 리모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아내의 가방 안이다. 아내는 아침에 리모컨을 휴대폰으로 착각하고 가방에 넣었고, 휴대폰은 안방 화장대에서 오늘 하루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전화를 받고 나오는 아내에게 나는 물었다. 

“오늘 출근할 때 휴대폰 안 가지고 갔어?”

“응 맞아, 오늘 휴대폰을 깜빡하고 놔두고 갔던데?”

“그럼 당신 가방 안을 뒤져봐. 리모컨이 들어 있을 거야.”

대꾸 없이 나를 쳐다보던 아내는 가방 안에서 리모컨을 찾았고, 리모컨 실종사건은 20분 만에 종결되었다. 평소 리모컨에 대한 수사는 1분에서 길어야 3분을 넘지 않았으나 본건 수사는 생각보다 수사가 장기화되어 아내는 보고자 했던 프로를 20여분 가량 보지 못했고, TV 다시 보기의 요금이 1,600원가량 나왔으니 수사 지연으로 동액 상당의 손해가 발생하였다.     



                                                            3.     


난 그날 다시 서재로 돌아갔으나 수사에 소요된 심력으로 인해 밤새 책을 읽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아내와 나 둘 다 오메가 3의 복용이 필요하다. 난 체력을 위해, 아내는 건망증 회복을 위해. 리모컨 실종사건으로 영양제 복용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니, 모든 사건은 항상 교훈을 남긴다.       


내 아내는 이 글이 재미있다고 한다. 리모컨 분실은 아내의 특기다. 이 글을 재밌어 하는 이유일 것이다. 자신의 특기를 글로 써주니 재밌나 보다. 특기가 아니라 지병일수도 있는데. 아내는 거실에 앉자마자 리모컨부터 챙긴다. TV 볼 때는 당연하지만, 책을 읽을 때도, 다이어리에 뭔가를 열심을 적을 때도, 뜨개질을 할 때도, 우선 리모컨부터 챙겨 옆에 얌전히 앉혀두고 뭔가를 시작한다. 리모컨 없이는 거실에 안착하지를 못하니, 리모컨 찾기에는 내가 동원된다. 그래도 아직 아내를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 다들 이렇게 사는 거다. 


그런데 아내의 이 정도 건망증, 그냥 둬도 괜찮을까? 인터넷 기사를 보니 어느 누구는 휴대폰을 밥솥에 넣고 쪘다고 하던데, 그 정도는 아니니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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