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뺐다.

열대 우림의 시점

by 익소라




한국에 잠시 머무는 동안 꼭 해야 할 일은 그동안 미뤘던 병원을 다니는 일이다. 한국식 토종 영어로 직장 생활을 하는 남편은 늘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위 소장 그리고 대장을 내시경으로 훑어봤다. 위에서 용종 하나를 제거했다. 나잇살이 붙는지 지방간 진단도 받았다. 간에 대해서도 조심해야 한다는 소견을 들었다. 걱정이 입 밖으로 나오면 왜 남편에게 잔소리로 쏟아질까. 이제는 맥주 한 잔도 조심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와는 달리 해외에서는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 문화는 없다. 한국에서 일했을 때 남편의 회사생활 중 음주 문화는, 엉망이었다. 2007년 다시 싱가포르로 이직 기회가 있다고 하자 나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처럼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자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남편은 벌써 술독에 빠지고 나의 인내심은 알코올에 녹아버렸을 것이다. 요즘은 한국도 많이 변했다고 들었다. 다행이다.


나는 점을 뺐다. 내가 점을 뺐다는 사실은 상당한 심적 변화를 의미한다. 한국에서 지낼 때 거의 화장을 하지 않고 지냈었다. 내적인 미가 더 중요하다는 아집이 강했던 시절이었다. 싱가포르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거의 화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이제 마음도 중년으로 가는 길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운동을 조금 하다가도 다치면 회복 기간이 한참이나 걸린다. 열대 지방에서의 강렬한 빛이 얼굴에 찍어 놓은 점들은 점점 늘어 갔다.


갱년기를 지나면서 그 점들이 짙어가는 만큼 나는 더 울적해졌다. 그동안 싱가포르에서 잘 지내왔으면서도 한국의 사계절이 자주 생각났다. 점을 뺀 후 딱지가 앉은 얼굴을 보고 남편이 물었다.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점까지 뺐냐고. 씩 웃고 지나갔다. 점이 없던 시절에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 나의 밖으로 돌아다녔었다. 현재의 나는 나에게 잘 보이고 싶다. 살아 있는 동안 육체와 정신이 따로 놀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이들도 다 키운 시점에서 다른 무언가를 찾아보고자 열대 우림에서 나의 안으로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