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023년 2월에 쓴 글이란다. 잊고 있었다. 전애인과 살던 집 이야기다. 이제는 알 듯 말 듯한 이야기라 이 글을 고치거나 더할 수는 없을 듯하고. 언제까지고 서랍에 둘 수는 없으니, 공기를 마시거라. 숨 쉬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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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에 셋집을 계약했다. 앞으로의 소득이 불분명했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나의 본가는 저기 읍면리로 들어가는 시골, 족히 60살은 된 파란 슬레이트 지붕 초가집이니, 나이에 맞게 행동하려면 도시의 방 한 칸이 필요했다.
설령 마음을 바꿔먹어 <리틀 포레스트>처럼 살아가리라 마음을 먹는데도, 류준열도 없는 내가 아프면 서러워져 콱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기, 내가 살게 될 곳은 서울만큼 번화한 도시도 아니라, 인구수가 적어 친구 누구는 창업 계획을 접었다는 그러한 도시라서, 그렇게까지 월세가 비싸지 않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럼에도 며칠 내 명치 께가 조인 듯 답답하기에 오늘은 동사무소에 가서 웬만한 복지 서류엔 전부 다 사인하고 오는 길이다. 방금 민원인과 무언가 석연찮은 대화-“제가 한 말이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해요. 절차상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었어요. 다짜고짜 난방비 지원이 되느냐 물으시면 제가 대답해 드릴 수가 없잖아요. 장애가 몇 급인지를 확인해야...”-를 나눈 담당자가 헬슥한 얼굴로 말한다. 대기자가 많아 두어 달 뒤에나 결정이 돼요. 되든 안 되든 직접 연락은 안 가니, 4월쯤 해서 동으로 전화 주세요.
최근 청년 주택이니 공모전이니 장학금인 뭐니, 모두 떨어졌기에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럴 때마다 나보다 힘든 사람이 있다면 도움을 받아야지 생각하는 한편, 왜 이렇게 가난하고 살길 막막한 사람들이 사방에 많은가 미치겠다. 도시 곳곳에 집 건너 집 사이사이로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을 수많은 삶을 상상하면 속이 더부룩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사장을 우편에 두고 난 긴긴 골목길 바로 끝에 태양이 떠있다. 요 며칠 날이 궂었던 탓에 그 모습이 영 창백하다. 예전에는 저 해와 싸운다는 생각을 했는데, 근래 들어서 해와 마주하고 걸을 때면 모자를 벗고 고개를 45도 기운 채로 겸손하게 걷는다. 겨우내 명상이 길었던 탓이다.
나는 나의 쓸모, 시간, 역사, 현대사회, 석유와 전쟁 따위에 관해 꽤나 긴 생각을 했다. 광활한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전지구적 불행 같은 게 실재하고, 우리는 어떤 감정적 재난의 피해자들인 듯했다. 어쩌면 끝없이 반복되는 역사와 실수의 국면만 있는 듯도 했다. 그러니까, 질문은 결국 나아질 수 있을까? 였다.
이토록 두려운 문장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푹 수그려질 뿐이다. 밀레의 만종에서와 같이, 고개를 땅으로 떨궈 감히 태양을 향하지 못하는 인간은 기도하는 인간이다. 기도의 효용에 관해 거듭 생각한다.
친구 S의 할머니는 사별하신 이래 매일 밤낮으로 할아버지에게 기도한다. 이렇게 아침을 맞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른바 정통 카톨릭식 기도로, 누군가 주신 생에 감사하고 그것으로 인내의 동력을 만든다. 그런데 재밌게도 당장 그날 밤 할아버지에게 보다 간절하게 말한다. 할아범 오늘 밤엔 꼭 데려가 줘. 이것은 보다 구복신앙적 기도, 인내심 없는 요청이다. 하지만 이 모순되는 두 기도가 모두 할머니에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정확히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진지하게 S에게 바로 이 기도 요법을 추천했고 S는 그 말을 잘 들어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 뭔가를 빌어보고 있다.
나는 얼마 전 거금을 들여 신점을 보러 갔는데 용하다는 점쟁이 말이, 조상들이 나를 둘러보고 계신다고 했다. 당신들이 나를 아껴 사랑하신다고. 나는 그 말만으로도 세상이 나를 돌봐주고 있는 듯했다. 만물 모두 친절하고 다정하다고. S나 할머니에게 일어나는 일이 이러한 것이라면
인류사적 단위의 연대를 가능케 한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서 우리가 우리를 응원하고 보살피게 된다
그냥 기도해 대대손손 죽지 않을 만큼만 불행하게 해달라고 엄마는 자기 전에 아직도 기도하고 자
이서수_ <젊은 근희의 행진>
젊음이
마침 요즘 읽는 렘의 소설에서 그런다. 아주 먼 후손과 아주 오래된 조상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그들이 서로를 살리려고 하여간 애를 쓰는 아주 큰 시간 단위의 이야기인데, 까마득한 일들 속에서 현재의 삶이 어떻다는 둥, 꽤나 정답기도, 서글프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는 동서양이 매한가지이다.
어여쁜 상상력에 다름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