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완전하지 못한 기억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1. 회사에서 내가 일하는 사무실을 나가면, 같은 층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쓰는 휴게 공간이 있다. 수도, 프린터, 음식을 먹거나 잠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 소파, 냉장고 등이 있다. 환경 미화 담당분들이 애정으로 키우는 화분들도 있다. 이 공간은 큰 창문을 끼고 있어서 테이블에 앉아서 창문을 내려다보면 회사의 일부 구획이 보인다. 그 광경에는 아주 커다란 환풍기 같은 것이 있다. 이 환풍기는 정방형이지만 사이즈는 컨테이너박스 만한데 하늘 방향으로 송풍을 한다. 이 송풍구가 내게는 미스터리였는데, 왜냐면 송풍구 바깥으로 하얀색 무언가가 둥실둥실 떠다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는 깃털인 줄 알았다. 불행한 새 한 마리가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갔나 보다 했다. 그런데 며칠을 보니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다. 새가 아니구나. 그러면 휴지일까? 주변에 액화기체를 보관하는 탱크들이 있으니 관련해서 얼음 조각이 나오는 것일까?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해 보았지만 결론은 모른다였다.
2. 요즘에는 집을 완전히 청소하고 인테리어를 탈바꿈하고 있다. 오래된 가구나 옷 등도 처분 중인데, 처분한 자리에 놓을 비교적 작고 가벼운 (한 번 정리를 해 보고 깨달았다. 무거운 것은 웬만해선 들여놓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구들을 몇 개 샀다. 그중에 10만 원이 조금 넘는 60cm 지름의 테이블이 있다. 이 테이블의 배송비가 25000원이었는데, 나는 평소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어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제품이 오기 전에는 말이다. 제품이 오기 전날, 전화가 와서 1. 오후 한 시 전까지만 방문하고 설치가 가능하다. 2. 60cm 지름의 테이블이 현관을 넘을지 확신을 할 수 없으니 조립은 할 수 없고 문 앞에 두고 가겠다. 3. 알아서 조립해라라고 했다. 세상에 오후 한 시 전까지만 일할 수 있는 직장이라면 내가 가고 싶다. 하여튼, 설마 배송비를 설치 배송비로 받겠는가 했다. 그렇게 받더라. 그리고 박스를 직접 들어보니 차라리 택배를 이용하는 게 나았겠다 싶었다. 그 정도로 가벼웠다. 조립은 쉬웠지만 비호감이 남았다.
3. 나는 어리석게도 내가 운동을 지속할 수 있을 줄 알고 (이전에도 다른 글에서 내가 부들부들 떨면서 썼지만, 나의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지속’이다) 집에 큰 운동기구를 들여놓았다. 얼마나 크냐면, 나 혼자서는 바닥에서 조금 질질 끌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이동은 불가했다. 나는 그 기구를 가지고 육 년을 씨름하면서 간헐적으로 썼다. 그리고 이제는 깨달았다. 운동을 하려면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낫다. 쓰지도 않을 운동기구를 가구처럼 집 안에 못 박아 두는 것 보다야. 그 깨달음으로 이 기구를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숨고라는 곳에서 폐기 전문가 분을 구했다. 이 분은 처음에는 침대 원목 프레임(중간이 휘어버렸다…)과 운동기구를 치우는 데에 17만 원을 요구했다. 그리고 선수금을 오만 원 받은 후에 집에 와서는 운동기구를 보고 22만으로 올려야겠다고 했다. 일단 올려 드렸다. 그분 생각에 자신의 노동의 대가가 22만 원이라고 생각한다면야 어쩔 수 있겠는가? 다만 리뷰를 적으면서 가격에 대한 부분은 제외했다. 양심적으로 싸다고 말해줄 순 없지. 하지만 문제의 가구들이 집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은 순식간에 홀가분해졌다. 그러니 나는 돈으로 평온을 산 셈이다.
4. 나의 ‘지속 불가능성’은 취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데, 초등학생 때 애완동물을 기르면서도 그랬다. 학교 숙제로 개구리알을 떠 와서 올챙이를 길렀는데,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서로를 잡아먹더니 한 올챙이만 남았다. 또 한 번은 햄스터를 길렀는데, 나중에는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죽었다. 나는 이때에 울기보다는 ‘대체 이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끔 이 기억으로 ‘내가 사이코패스였나?’ 의심한다. 물론 사이코패스는 그런 게 아니란다. 그보다 좀 더 어린 나이에는 시장에서 어린 산토끼(크고 나서야 산토끼임을 알았다)를 사 와서 길렀는데, 이 때는 나름 지속적인 애정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11살의 나는 (특히 인터넷도 없었던 환경에서) 토끼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토끼는 다 큰 후에 어느 날 입에서 침을 흘리면서 죽었다. 나는 울면서 아파트 뒷 산에 토끼를 묻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마 아빠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법적으로 안 되는 게 맞았는데 나는 빡빡 우겼다. 그러나 엄마와 아빠가 이겨서 토끼를 산에 묻어줄 순 없었다. 나는 이 날 부모님을 버리고 울면서 먼저 집에 와 버렸는데, 부모님과 동생은 내가 집에 오는 길에 지나쳤던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측하던 사람의 도움으로 별을 좀 구경하고 왔다고 했다.
5. 마지막 기억은 비교적 최근의 것이다. 봄날의 나는 산책에 열중해 있었는데, 어느 정도냐면 매일 퇴근 후에 한 시간 반 이상을 밖에서 걷다 들어왔다. 산책을 가는 루트가 있다. 우리 동네 아파트에서 출발해서 산과 단독주택지역 사잇길을 걷다가, 다른 아파트 단지를 걷다가, 작은 개천 주변으로 형성된 산책로를 따라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루는 낮에 산책을 하다가 앞에 가는 여성이 갑자기 풀숲을 구경하는 것을 보았다. 뒤에서 걷던 나는 호기심에 여자분이 떠나고 그 자리를 보았는데, 흐드러지게 핀 노란 금계국 사이에 산딸기가 붉게 익어 있었다. 산딸기를 본 지 오래되어 매우 반가웠고 즐겁게 구경하고는 그 자리를 떴다. 그런데, 다음날 다시 산책하면서 그 산딸기를 구경하려고 보니 정확히 어떤 자리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는 한 시간 반 짜리 코스를 하루에 세 번 돌면서 다시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이르게 온 장마 중 잠시 비가 그친 듯한 틈을 타 산책을 나갔다가 그때와는 다른 위치에서 산딸기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사진을 남겨 놔야만 했다. 썸네일의 사진이다.